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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전쟁 종전선언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 ①
인천상륙작전과 삼팔선 돌파
김갑수 | 2018-06-04 15:29:2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6.12 싱가포르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코리아 전쟁의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미 대통령 트럼프의 입에서 나올 정도라면, 이제 종전선언은 시간문제라고 보아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미 3자가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코리아전쟁 종전은 남북미 3자 외에 반드시 중국이 참여해야 온전해집니다.

또한 ‘남한 정부는 1953. 7.27 휴전협정에 조인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종전선언 참여의 자격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관점입니다. 종전선언은 실제 전쟁에 참여한 주체가 하면 되는 겁니다. 코리아 전쟁의 참여 주체는 명백히 남북미중 4자였습니다.

종전선언을 목전에 두고 우리는 이것이 어떤 역사적 인과관계를 갖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선언이 가지는 중차대한 역사적 의의를 실감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1953년 7.27 휴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겠습니다. 다만 기술 편의상 논의의 출발을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부터로 하겠습니다. 3편에 나누어 게재 합니다- 필자 주

▲사진출처: 연합뉴스

인천상륙작전과 삼팔선 돌파

인천상륙작전이 전쟁의 상황을 일거에 바꾸어 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승리에 도취한 맥아더는 38선 이북으로의 북진을 추진했다. 트루먼이 미군의 38선 돌파를 승인한 것은 서울을 탈환한 하루 뒤인 1950년 9월 29일이었다.

물론 이승만 정부의 일관된 주장은 북진통일이었다. 이승만은 이미 9월 20일의 연설에서, “만일 유엔군이 38선에서 정지하더라도 국군은 북진한다”고 말했다. 9월 29일 서울 환도식에 참석한 이승만은 급히 대구로 내려가 후방에 머물고 있는 군 수뇌부 회의를 소집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군 통수권자는 맥아더인가, 아니면 대통령인가?”라고 물었다.

“유엔은 국군의 38선 진격과 통일을 막을 권리가 없다. 나는 국군을 진격시킬 생각인데 여러분의 견해는 어떠한가?”

정일권 국군 총사령관이 대답했다.

“작전권은 유엔군 사령부에 있지만 대통령 각하께서 북진을 명령하면 복종하겠습니다.”

이승만은 품속에서 친필로 작성된 북진명령서를 꺼내 정일권에게 주었다고 보도되었다.

“내가 이 나라의 국군통수권자다. 내 명령에 따라 북진하라.”

하지만 당시 그들이 쇼를 벌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승만의 북진 명령은 이미 백악관의 결재가 떨어진 지 12시간 이상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이승만은 이 사실을 맥아더 사령부로부터 통보 받은 후에 부리나케 대구로 내려간 것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뒷북을 치며 그것을 정치적 효과로까지 연출해 낸 것이었다.

아무튼 순진한 백성들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초강대국 미국에 분연히 맞선 일화 하나를 추가로 간직하게 되었다. 국회에서도 9월 30일, 미국의 뒷북을 치는 북진을 결의했다. 다음 날인 10월 1일, 미군과 국군은 38선을 돌파했다. 한편 중국의 국무원 총리 주은래는, “미군의 38선 돌파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군의 38선 돌파에는 유엔 공식기구의 결의가 필요했다. 뒤늦게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한 소련은 38선 돌파 결의안을 매번 거부했다. 이에 따라 영국을 비롯한 8개국은 결의안을 총회로 돌려 가결시켰다. 이미 미군이 38선을 돌파하고 일주일이 지난 10월 7일의 일이었다. 결국 유엔 역시 미국의 뒷북을 친 셈이었다. 이후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이 대한민국 국군의 날로 지정되었다.


중국군 참전과 1.4후퇴

중국군이 전선에 직접 투입되었음이 확인된 것은 1950년 10월 26일의 시점이었다. 파죽지세로 압록강 가까이 쳐 올라간 국군 6사단은 벽동을 목표로 진격하던 중 동림산 기슭에서 정체불명의 적 부대와 만나 격전을 치르게 되었다. 선두 부대가 적의 저항으로 분산되자 지원 부대가 투입되었지만 상황은 역부족이었다. 그것은 38선 돌파 이후 없던 일이었다. 국군은 적의 저항이 갑자기 강력해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날 오후 국군은 낯선 복장의 병사 하나를 생포한다. 이 낯선 복장의 병사는, “나는 중국군이며 이미 10월 19일부터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그 시간 평양에서 적의 수도를 점령한 유엔군 지휘관들은 마치 전쟁이 끝난 것처럼 기쁨에 들떠 있었다. 미 육군성과 미군 사령부는 미 2사단을 유럽으로 재배치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미 8군 사령관 워커는 차후 한국에 반입할 예정이었던 탄약을 일본 보급창으로 돌리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지휘부가 전쟁에 대해 낙관하고 있는데 미군 병사들이라고 해서 다를 리는 없었다. 오히려 전선에 배치된 병사들의 마음은 더욱 들떠 있었다. 그들은 추수감사절 칠면조를 동경에 가서 먹고, 긴자의 환락가를 쏘다니는 상상에 부풀어 있었다.

한편 미국은 한국의 동의도 없이 이북 지역에 군정을 실시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중국군의 전면 개입이 확인된 것은 이 시점이었다. 신기루처럼 나타나 국군과 미군을 단 열흘 만에 청천강까지 밀어낸 정체불명의 부대들은 11월 6일이 되자 역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미군은 처음 대관절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그리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교묘한 유인 전술과 후방 매복 그리고 야간 전투에 능숙한 중국군에 밀려 미군은 후퇴를 거듭했다. 평양 철수 명령이 공식적으로 하달된 것은 12월 3일이었다. 워커 미 8군사령관은 현 단계에서 미군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중국군과의 접촉을 단절하는 것이라는 보고를 맥아더에게 올렸다. 그로부터 미군은 하루 평균 10km씩 후퇴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도주였다. 썰매와 우마차 등으로 기동해야 하는 중국군으로서는 차량으로 후퇴하는 미군을 따라 붙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리하여 평양 철수 20일 만에 미군은 38선까지 밀려났다. 중국군은 임진강 - 춘천 북방 - 양양을 잇는 38선 지역을 점령했다. 전쟁 6개월 만에 전선은 도루묵이 되고 만 것이었다. 한국의 신문들은 중국군이 인해전술을 썼기 때문에 후퇴가 불가피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군이 시체로 진지를 쌓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군 지휘부는 한국의 신문에서 말하는 인해전술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요컨대 인해전술 같은 것은 실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도 많고 원망도 무성했던 흥남 철수가 이루어진 날은 공교롭게도 맥아더가 전쟁의 종결을 호언장담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설상가상으로 미 8군사령관 워커가 순직했다. 그는 환갑의 나이에 이국의 전장에서 느닷없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의 지프가 국군의 트럭과 충돌한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미군 휴양소가 있던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야산에 순직한 미 사령관의 이름을 딴 ‘워커힐’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한편 인민군에서는 영웅적인 빨치산들이 활약하여 그를 죽였다고 발표했다.

후퇴 또는 방어 작전으로 일관했던 워커 대신에 부임한 리지웨이는 양쪽 가슴에 두 발의 수류탄을 매달고 최전선을 시찰하는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한국과 한국 민족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세력의 폭력에 맞서 서방 자유주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한편 38선 일대에서 미군과 대치하게 된 중국군 사령관 펑더화이는 이제까지 써 오던 지원사령부라는 명칭을 버리고 중국군에다 인민군을 통합시켜 지휘할 연합사령부 구성에 착수했다. 이는 조선 인민군 작전지휘권을 중국에 넘겨주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김일성으로서는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조중 연합사령부를 결성한 펑더화이는 모택동에게 전략을 훈수 받으며 서울 공격에 착수했다. 마침내 그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모든 전선에 일제히 공격 명령이 하달되었다. 유난히 추운 날, 어둠이 일찍 찾아든 저녁에 중국군의 대공세가 개시되었다. 미군은 다시 서울을 내주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한강에 방어선을 구축하지 못했다. 강물이 결빙되어 장애물로서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군이 서울을 비운 것 그것이 누구나 아는 그 유명한 1.4후퇴 즉 해를 넘긴 1951년 1월 4일의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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