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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함미 인양후 왜 저수심으로 이동했을까?
법정증언 - 현장에는 오직 군이들과 크레인 기사만 남아 있었다
신상철 | 2014-11-05 12:54: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천안함] 함미 인양후 왜 저수심으로 이동했을까?
법정증언 - 현장에는 오직 군인들과 크레인 기사만 남아 있었다


1. 2010. 4. 12 - 함미,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다

2010년 4월 12일 오후 4시경, 천안함 함미가 반파침몰 후 17일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함미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으면 바지선에 싣고 평택항으로 떠나면 될 터인데 무슨 이유에선지 합조단은 인양업체의 반발도 무시한 채, <의문의 저수심 지역 이동>을 결정하고 밀어부칩니다.

물 가득차 인양 바로 못해…수심 25m 지점까지 4.6㎞ 수중이동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인양작업을 벌이고 있는 군 당국은 12일 밤부터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는 등 백령도 근처 날씨가 나빠지자, 선체 손상을 막으려고 배꼬리(함미) 부분을 이날 저녁 수심이 얕은 곳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함미가 옮겨진 곳은 원래 있던 곳보다 바람과 조류가 약하고 수심이 얕아 상대적으로 인양작업이 쉬워질 수 있어, 앞으로 날씨만 좋아지면 2~3일 작업을 할 경우 인양이 가능할 것으로 군 당국은 내다봤다. (중략)

이기식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은 이날 “원래 함미가 가라앉은 곳의 수심이 45m인데, 밤부터 날씨가 악화돼 오후 4시5분부터 6시까지 함미를 백령도 연안 쪽 수심 25m인 곳으로 옮겼고 저녁 8시45분께 함미를 옮긴 바다 바닥에 내려놓았다”“옮긴 곳은 원래 위치에서 110도 방향으로 4.6㎞ 떨어진 곳”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바람이 세게 불고 조류가 빨라지면 인양 쇠줄이 꼬이거나 인양작업을 1주일가량 못할 수 있어 수심이 얕은 곳으로 옮겼고, 앞으로 함미 인양작업도 옮긴 곳에서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략)

한겨레신문 권혁철 기자

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415629.html

선체 인양시 가장 어려운 것은 해저에 가라앉은 함선에 케이블과 체인을 거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것이 완료되고 크레인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되면 바지선에 올려 이동하는 것이 그 다음 수순입니다. 일단 함선에 케이블과 체인을 걸었다는 것은 그 작업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합조단은 날씨 핑계를 대며 <저수심 이동>을 결정합니다. 기사의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물이 가득차 인양 바로 못해..>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크레인에 매달고 수면위로 천천히 올리면서 중력에 의한 자연배수를 시행하면 함내 물은 자동적으로 모두 다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물과 기상 핑계를 대며 저수심으로 이동합니다.


2. 물 속으로 가라앉히기 전 함미 들어올렸다

함미를 저수심으로 4.6km 이동한 후 함미를 다시 물 속으로 가라앉히기 전, 그물을 점검한다는 핑게로 함미를 유가족 몰래 들어올리는 장면이 언론의 적외선 카메라에 잡혔는데 침몰전 수위와 같습니다.

그물을 점검한다는 핑게로 함미를 몰래 들어올린 장면이 적외선 카메라에 잡혔다

검은 흘수선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들어 올려진 천안함 함미. 물 속에 잠긴 부분은 흘수선 아래 2.9미터 뿐인데, 결국 2가닥으로 배를 완전히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군당국 스스로 입증한 셈입니다. 그 상태로 중력에 의한 자연배수를 시키면 물은 완전히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이 인양업계의 상식이라는 88수중개발의 반발도 무시한 채 결국 함미를 물 속에 가라앉힙니다.  


3. 인양업체의 반발도 무시하다

합조단이 함미 인양후 바로 바지선 위로 올리지 않고 저수심 이동을 결정하자 인양업체인 88수중개발 정호원 부사장은 “두 줄이면 충분하다”며 “인양업계의 상식”이라고 반발하지만, 그의 문제제기 역시 국방부의 강요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4. 이르면 주말 인양? 1주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

천안함 함미 인양을 시작한 2010년 4월12일은 월요일입니다. 군 당국은 “기상상태가 좋으면 2~3일 내에 인양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면서도 언론에 대해서는 “주말에나 인양 가능할 것”이라며 1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식화합니다. 도대체 함미를 4.6km나 저수심 지역으로 이동한 후 무슨 작업이 필요하길래 1주일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문제는 이동한 곳이 바로 제3의 부표가 있는 방향이라는 점입니다. 故 한주호 준위가 어선을 빌려 어군탐지기를 이용 직접 물체를 찾고 부표를 설치한 이른 바 '제3의 부표' 아래에는 미상의 물체가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이 4월 7일 KBS 특종보도를 통해 알려졌었지요. 바로 그 물체를 처리하는 데에 크레인의 동력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함미가 이동한 방향은 제3의 부표가 있는 방향과 일치합니다. 만약 제3의 부표 인근 지역으로 크레인 혼자 움직이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기 때문에 함미를 매달고 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형태로든 크레인의 힘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따라서 최소한 제3의 부표아래 가라앉은 물체 인근 지역으로의 이동이 불가피했던 것입니다.


5. 미국 구조팀의 D-Day는 '4월 14일'

함미 인양 스케줄 가운데 딱 중간의 날짜인 2010년 4월 14일, 한국 인양팀은 기상상태를 핑계로 일체의 인양업무를 중단하고 현장을 떠났으나, 미국 제7함대 구조팀은 천안함 사고 전 과정을 통해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냅니다. 7함대 소속 대부분 함선이 동원되고 헬기가 떴다내리면서 그들만의 '비밀작업'에 정신없었던 하루였습니다.

미7함대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져 있는 그들의 작업내용은 천안함 인양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미국팀은 천안함 사고 관련 전체일정을 통털어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던 것이지요. 기상을 핑게로 한국 인양팀은 모두 철수한 현장에는 오로지 군인들과 크레인 기사 한 명만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법정 증언석에 선 88수중개발 현장소장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었지요. 

[천안함 제5차 공판] 88수중개발 권만식님의 증언
“4월 13일,14일 우리는 현장에 없었다”

(전략) 결국 88수중개발은 군의 요구대로 함미를 크레인에 건 채 <동쪽>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동쪽>으로 이동한 곳이 ‘제3의 부표’ 위치와 비슷하게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가라앉아 있기에 크레인에 함미까지 걸고 이동을 하는 묘수까지 부리느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지요.

크레인은 함미를 달고 이동을 한 후, 함미를 다시 물속으로 넣습니다. 그렇게 담가 둔 채, 기상이 나쁘다며 이후 이틀간 거의 아무런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4월12일(이동), 13일, 14일(작업재개)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천안함 46명의 시신이 함미 속에 그대로 있는데 수습도 하지 않고 휴식에 들어갑니다.

제가 주목하는 날짜는 4월 13일과 14일입니다. 그날이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오늘 증인으로 나온 권만식 씨는 4월 12일 함미를 이동시킨 다음 날인 4월 13일, “기상이 좋지 않아 작업을 할 수 없어 88수중개발팀 모두 육지(대청도)로 나와 그 다음 날까지 밖에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나와서 쉬는 동안 처음으로 산에도 가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변호인단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13, 14일 양일간 현장에는 누가 있었느냐” 고 묻자 권만식 씨는 현장에는 군인들과 크레인 기사만 있었다”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후략)  -  2012. 1. 9 (천안함 제5차 공판)

미국팀은 크레인을 이용하여 어떤 작업을 하였을까요? 그것은 제3의 부표 인근에 가라앉은 물체를 해저바닥에서 들어올려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수중에서 외해로 끌고나가는 작업을 하였을 것으로 저는 추정합니다. 그래서 4월 14일을 전후한 토마스에클스의 이메일이 중요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비록 중요한 부분은 모두 빼고 제공한 자료이지만 그 속에서 '어떤 정황'은 충분히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0년 4월 14일 미국 구조팀의 작업, 그것은 천안함 사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향후 재판에서도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상철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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