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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편지] 청뢰 이강훈 선생님께
삶을 마치시기까지 선생님은 우리 민족사와 함께 하셨습니다
정운현 | 2017-03-16 15:52: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청뢰(靑雷) 이강훈(李康勳) 선생님.

선생님께서 가신지도 어언 14년째가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일생을 통해 숭앙하시던 백야 김좌진 장군, 백범 김구 선생님, 그리고 여러 애국선열들께서 계신 그곳은 두루 평안하신지요. 불초 소생 이승에서 문안드립니다.

지금 이 땅은 폭풍우 속에서 나침반 없이 표류하는 배처럼 온 나라가 부정과 비리, 갈등과 분열 속에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겨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많은 선열들께서 피땀 흘려 찾고 지켜온 이 나라를 부디 보전해주시옵소서.

청뢰 선생님.

선생님을 생각하노라면 생각나는 것이 몇 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노구에도 불구하고 항상 꼿꼿하셨지요. 그리고 차분하시면서도 당찬 목소리로 늘 좌중을 압도하시던 선생님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께서 광복회장으로 계시던 그 시절 우리 독립운동가 사회는 참으로 든든했습니다. 광복회는 대표적인 애국단체이자 우리 사회의 원로단체로서 자리매김했었지요. 어디에 내 놔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했었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가신 뒤 그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은 채 너무도 허전하고 공백이 크군요.

감히 말씀드리건대 청뢰 선생님께서는 의열투쟁의 마지막 증인이랄 수 있지요. 선생님은 1903년 6월 13일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919년 3.1혁명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신 후 선생님께서는 항일투쟁의 고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육삼정 의거’ 후 체포된 이강훈 선생의 모습

이듬해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실에서 비서로 근무하시다가 1921년 북간도연길도립사범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25년 신민부에 가담해 본격적으로 항일투쟁 전선에 나서셨지요. 1926년 백야 김좌진 장군의 지시로 안도현 삼인방에 있는 신창학교에 재직하시다가 신민부 산하의 각급 학교에서 후진양성에 힘쓰셨습니다.

1932년 다시 상하이로 가서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한 뒤 1933년 3월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행동단체인 ‘흑색공포단’을 조직해 구파 백정기 선생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有吉明) 암살의거를 결행하시다가(일명 ‘육삼정 의거’) 체포되셨지요, 이후 일본으로 압송돼 나가사키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2년간 감옥살이를 하셨습니다.

1945년 8·15 해방으로 출옥하신 후 일본에서 재일한국거류민단 부단장을 맡아 활동하시면서 백범 선생의 지시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의 유해봉환을 주도하셨지요. 이후에는 독립운동사 편찬위원, 독립유공자 공적심의위원 등을 맡아 독립운동사 편찬과 공적심사 작업에도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3의사 유해를 봉환하는 이강훈 선생. 앞줄 오른쪽부터 백범 김구 선생, 성명미상(이봉창 의사 유해 운구), 윤남의(윤봉길 의사 동생, 윤 의사 유해 운구), 이강훈(백정기 의사 유해 운구). 왼쪽 소복차림 여성들은 3의사 유가족

제가 선생님을 뵌 것은 1990년대 초반 무렵 광복회 취재차 찾아뵌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1988년부터 10, 11대 두 차례에 걸쳐 광복회장을 역임하신 후 당시 선생님께서는 물러나 계신 때였습니다. 그래서 광복회가 아니라 사당동 선생님 자택으로 찾아뵙곤 했었지요.

돌이켜보면 그 무렵 광복회는 안팎의 일들로 몹시 번다했었지요. 문민정부 출범 이후 백범 김구 선생 시해 진상규명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된 가운데 12대 광복회장으로 취임한 김승곤 선생이 과거 충칭 시절 백범 살해음모사건에 연루된 인물이어서 논란이 있었고요, 또 일본의 독도 망언과 야스쿠니신사 참배, 총독부 청사 철거를 둘러싼 논란 등으로 영일(寧日)이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여러 가지 일들을 제게 증언해주셨습니다. 백야 선생님과의 인연, 백야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게 된 배경, 당시 만주 일대 친일파들의 반민족적 행태 등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려주셨고요. 당시 제 관심사는 친일파였는데 그런 얘기를 듣기 위해서 주로 야밤에 찾아뵈어야 했습니다. 낮에는 방문자가 많아서 주변사람들 눈치가 보인다고 하셨지요.

1993년 2월 어느 날의 일로 기억됩니다. 하루는 선생님과 대화를 마치고 선생님과 헤어질 무렵 지나가는 말로 혼자 이런 얘기를 하셨지요.

“내가 10년 만 젊었어도 내가 처리하는 건데...”

방문을 나서다 말고 제가 선생님께 여쭈었지요.

“무슨 일이신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선생님께서는 잠시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청주 3.1공원에 친일파 정춘수 목사의 동상이 서 있다는 데 요즘 젊은 사람들 그거 하나를 부숴버리는 기백들이 없어.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내가 나서서 끌어내리는 건데...”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일이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검색해보니 청주 3.1공원에는 1919년 3·1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이 지방 출신인 손병희, 신석구, 권병덕, 권동진, 신홍식 선생과 함께 감리교 목사 정춘수의 동상이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며칠 뒤 저는 3.1절을 앞두고 순국선열기념사업회 기관지 <순국>에 ‘정춘수 동상 왜 서 있나’(<순국>, 1993년 3월호)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이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6년 2월 8일 ‘2·8 독립선언’ 77돌을 맞아 청주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정춘수 동상을 전격적으로 철거하였습니다.

목에 일장기를 감은 채 철거되는 정춘수 동상

당시는 광복 50주년을 전후로 일제잔재 청산 바람이 한창 불던 때였습니다. 경복궁 내 총독부 청사 철거가 절정을 이뤘지요. 1996년 3월 충무(현 통영) 남망산 공원에 서 있던 유치진의 흉상이 철거되는 등 친일파 동상, 기념물 철거가 한 때 사회적 이슈로 크게 주목을 받았었지요. 그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정춘수 동상 철거는 제가 <순국>에 글을 기고한 이듬해 1994년 10월에 출범한 충북지역사회민주단체연대회의에서 자신들의 첫 사업으로 정춘수 동상 철거를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는 1993년 충북역사정의실천협의회가 전개한 ‘친일화가 김기창 기념관 건립 반대운동’을 계승한 것으로,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취지에서 정춘수 동상 철거를 결행한 것이랄 수 있습니다.

해마다 6월 26일 되면 효창공원에서 백범 김구 선생 추도식이 열리곤 합니다. 생전에 선생님께서는 백범 선생 묘전에서 추도사를 읽곤 하셨지요. 90년대 중반 이후로 선생님은 이미 연로하셔서 추도식을 다 읽으시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곤 했습니다. 언젠가 추도식 첫머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 백범 선생님, 제가 선생님 묘전에서 추도사를 읽는 것이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승에 가면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 추도식에 참석한 이강훈 선생(가운데). 왼쪽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 오른쪽은 장충식 당시 백범기념사업회장. (1998.6.26, 필자 촬영)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2003년 11월 12일 선생님은 이승을 하직하셨습니다. 젊어서는 호연지기로 만주 벌판을 누비셨지만 학자다운 면모도 겸비한 분이셨지요. 선생님께서 펴내신 <항일독립운동사> <독립운동대사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사> <마적과 왜적> <무장독립운동사> <청사에 빛난 선열들> 등은 후세들에게 귀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향년 93세의 삶을 마치시기까지 선생님은 우리 민족사와 함께 하셨습니다. 일생을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사신 선생님의 삶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꿈에도 그리던 선열들과 함께 영혼이나마 편히 쉬소서. 부디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굽어 살펴주소서.

2017년 3.1절을 맞아
정운현 씀

(* 이 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진행해오고 있는 ‘100년 편지’ 260회로 실린 내용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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