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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희 추적자’ 권중희 선생을 추억하며
“민족혼은 살아있다” 권 선생의 투철한 민족정신이 글씨에…
정운현 | 2017-10-12 09:11: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04년 1월 중순경으로 기억된다. 당시 오마이뉴스 주관으로 네티즌(국민)들을 상대로 <친일인명사전> 편찬비 모금 운동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세종문화관 뒤에 있던 오마이뉴스 사무실로 노신사 한 분이 찾아왔다. 추운 날씨여서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노신사는 당시 편집국장으로 있던 나를 찾았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권중희 선생이었다. 말로만 듣던 ‘의인’ 권중희 선생을 그때 처음 만났다.

나는 차를 한 잔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권 선생은 오마이뉴스가 <친일인명사전> 편찬비 모금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매우 기특해 하시며 여러 차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자화자찬 같지만, 당시 이 운동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다. 점심때 회사 인근 식당에 갔다가 손님들이 모금액 얘기를 주고받는 걸 들은 적도 있다.

권중희 선생

계기는 2003년 12월 29일 당시 제1당이던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주도로 국회 예결위에서 사전 편찬비 5억 원 전액을 삭감한 것이 단초가 됐다. 친일파 후예들이 더러 있었던 한나라당은 이 사전 편찬을 반대하였다.

당시 나는 데스크 일을 보면서 틈나는 대로 ‘데스크칼럼’을 썼다. 한나라당이 사전 편찬비 삭감을 한 지 근 열흘만인 2004년 1월 7일 자로 칼럼을 하나 썼다. 제목은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

다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
[정운현칼럼] 국회 법사위의 친일파 청산 특별법 처리를 촉구함
(오마이뉴스 / 정운현 / 2004-01-07)

지난해 연말부터 새해 벽두에 걸쳐 ‘친일파’가 다시 세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역사교과서에서나 접해야 마땅할 친일파 문제가 마치 갓 잡아올린 생선처럼 시퍼렇게 살아서 펄떡거리고 있는 것이다.

사안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인천시민들이 간난 끝에 미군기지를 되돌려받기로 해놓고 나니 난데없이 친일파 후손들이 나타나 자기네 선조의 땅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또 이제라도 친일파 청산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하자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내놓고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그간 역대 정부당국에서 하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나서서 하고 싶지 않을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을 근년들어 민간에서 몇 푼 정부예산 지원을 받아 해오던 것을 그나마 이번 국회에서 예산 전액을 삭감해 이 분야 연구자들이 넋을 놓고 있는 지경이다.

그런 와중에 신년 초하룻날 일본 총리가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봉안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는 외신이 날아들었다.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은 늘 판박이 그대로다. 외교부 명의로 성명을 내거나 주한일본대사를 불러 ‘호통’을 치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달리 어쩔 방도도 없어 보인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 예산 전액 삭감돼

대체 이놈의 나라는, 이놈의 백성들은 언제까지 친일파 논쟁으로 세월을 보낼 것인가, 대체 언제나 정신을 차릴 것인가.

올해로 우리는 해방 58년을 맞는다. 그 원수같은 일제가 이 땅에서 퇴각한지 어언 반 세기가 지났다. 두번 세대가 바뀌었고, 일제강점기를 산 사람들은 이미 역사의 무대에서 거의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시대가 지나면 적절한 '거름(소화)장치'를 통해 역사의 장으로 돌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유독 '친일의 역사'는 이승을 떠나지 못한 원귀처럼 우리 현대사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소화장치를 통과하지 못해 체증현상을 빚고 있는 탓이다.

해방후 제헌국회에서는 우리 현대사의 응어리인 친일 반민족사 청산을 위해 반민법을 제정, 민족차원에서 과거사 청산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이는 잘 알려진대로 친일세력들의 반대로 중도에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이후 50년간 논쟁거리를 제공한 셈이 됐다.

지금 16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친일파청산 특별법 등 4대 과거사법안은 제헌국회에서 불발로 그친 이후 마무리 짓지 못한 우리 역사속의 아픈 상처를 수습하고 불필요한 논쟁에 종식을 고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마치 전후 프랑스처럼 반민족행위자들을 단두대에 세우거나 감옥으로 처넣자는 주장도 아니다. 따지고보면 그럴 대상자들은 이미 다 죽고 없다. 단지 그들의 죄상을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겨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정도다.

@ADTOP@
반민특위 좌절로 이후 50년간 친일파 논쟁거리 제공

그러나 이같은 취지는 국회의원들의 이런저런 사적 인연, 당리당략 등에 밀려 국회에서 관련법 제정이 길게는 몇 년째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생현안도 중요하지만 우리국회가 민족사적인 사안을 근시안적인 가치판단에 매몰돼 있는 현실은 딱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특히 문제는 우리사회 일각에서 친일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대단히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즉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는 어떤 논리로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사안이거늘 ‘곁가지’, 즉 친일파의 정의나 범주, 조사주체의 자격 등을 과도하게 거론하면서 논의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러는 일제때 세금내고 학교다닌 것도 친일이냐, 일제가 강제로 시켜서 창씨개명을 한 것도 친일이냐는 식으로 ‘전국민의 친일파론’을 들고나오거나 아니면 그 시대에 적절히 친일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가 몇 있느냐는 식으로 '상황론'을 들이대기도 한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이같은 주장은 모두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제 나라가 외세에 짓밟히고, 제민족이 그들에게 살상되고 물자가 수탈당하고 청년들이 총알받이로 전장터로 끌려가는데도 제 혼자 출세하고 기득권 유지하자고 "우리가 살길"이라 외쳤다면 이미 그들을 우리 동족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른바 지식인입네 행세하는 자들까지 나서서 친일파 청산론에 대해 딴죽을 거는 식의 망언을 되풀이하는 행위는 차마 눈뜨고서 보고 듣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그 시절에 독립운동한 사람들은 정신병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꼴이 되고 만다.

친일파 옹호’ 궤변 눈뜨고선 못봐

과거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반민족행위자처벌법(반민법)은 친일파의 정의(범주)를 명쾌히 규정하고 있다. 반민법의 전반부 절반은 ‘죄’에 관한 항목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지금보다 더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제헌국회에서 논란에 논란을 거듭한 끝에 제정한 결과물이다.

이 분야 연구자로서 감히 한마디 하노니 반민법이 그렇게 우려할만큼 엉성하게 만든 법이 아니니 제발 염려 붙들어매시기 바란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중인 특별법 역시 반민법을 토대로 한 것으로, 이 역시 이 점에 대해 심사숙고와 논의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정법을 들이대며 법원이 매국노의 땅을 보호해주고, 애국지사가 누운 자리 옆에 친일파가 버젓이 안장돼 있다면, 그리고 건국훈장 수훈자 가운데 친일 경력자가 포함돼 있다면 누가 법정의를 얘기하고 또 국가의 기강을 존귀한 가치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런 점에서 16대 국회에서의 친일파 청산 등 과거사 청산법 제정은 시대적 소명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일본 극우세력의 준동과 우경화에 대한 대응은 차치하더라도 이제 이 시점에서 이런 가치혼란은 종식시켜야 마땅한 것이다.

국회 법사위 4대 과거사 특별법 처리시한 8일로 임박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필자가 알기로 국회의원 273명 가운데 애국지사 후예는 겨우 4명(김희선, 김원웅, 이종걸, 강인섭)인 것으로 안다. 반대로 친일경력자 후예는 모르긴 해도 숫자가 그 이상인 것 같다. 민족정기가 비록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 대접을 받는 세상이라고 해도 그 도가 지나치면 역사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우리는 2차대전후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한 나라로 프랑스와 중국 등을 들면서 자주 예로 들곤 한다. 잘 알려진대로 이들 나라는 전후 국민적 총의를 모아 과거사를 청산한 이후로 다시 이 문제로 국론을 낭비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문제는 우리가 이들 나라를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실천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이제라도 과거사를 정치적, 역사적, 법적으로 청산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길이다.

그간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과 토론은 그만하면 충분했다고 본다. 법사위에서 4대 과거사 특별법 처리시한이 내일(8일)로 임박했다. 이제 종막을 앞둔 16대 국회에서 근대 100년 이후 민족사의 반목과 갈등의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를 대미로 장식해주기를 바란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62524

나는 칼럼에서 한나라당의 반역사적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친일청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분통이 터지는 처사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 칼럼에 공감하는 독자들의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그 가운데 한 네티즌이 편찬비 모금을 제안했다.

나는 급히 편집국 간부들을 소집해 이 제안을 논의했다. 다들 좋다고 했다. 이번에는 독자(네티즌)들을 상대로 의견을 물어 보았더니 역시 다들 좋다고 했다. 나는 오연호 대표와 상의하여 그날로 건물 1층에 있던 국민은행으로 가서 통장을 개설했다.

기대 이상으로 국내외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모금 개시 11일 만에 편찬비 5억 원을 달성했다. 한 달여 만인 2월 19일에 7억 원, 모금이 종료된 3월 15일 현재 약 3만 2천여 명이 동참하여 7억 5천여만 원을 모금했다. 대형 신문사나 방송사도 아닌, 창간 4년밖에 안 된 신출내기 인터넷신문사에서 이 정도의 쾌거를 이룬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선생과 나는 한참을 사전 편찬비 모금 운동 얘기로 꽃을 피웠다. 얼마 뒤 선생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오른쪽 오버 주머니에서 둘둘 만 흰색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네주셨다.

“정 동지께서 이렇게 애를 쓰시는데 달리 격려할 방도도 없고 해서 졸필이나마 글씨를 하나 써왔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즉석에서 권 선생께서 건네주신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총 두 장이었다. 두루마리에는 “민족혼은 살아 있다”고 쓰여 있었다. 글씨에 힘이 있고 달필이었다. 권 선생의 투철한 민족정신이 글씨에 투영돼 있는 듯 했다. 이후 선생과는 이따금씩 이런저런 자리에서 만나 인사를 드리곤 했다. 선생은 2007년 72세로 별세하셨다. 유해는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오늘 두루마리 자료 더미를 뒤지다가 모처럼 선생의 글씨를 접하게 됐다. 선생의 꼿꼿한 모습이 불현듯 내 눈앞에 스치고 지나갔다. 반갑고도 한편으로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여태 선생의 묘소에 꽃 한 송이 바치지 못한 때문이다. 언제 날 잡아 한번 찾아뵈어야겠다.

선생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권중희 선생의 묘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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