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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논란과 구설의 세월 <일본은 없다>
출간과 그 파장, 재일작가 유재순과의 표절 논란
정운현 | 2014-04-02 09:26:5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 출간과 그 파장

이웃 일본과의 지리적·민족적 거리감을 두고 흔히 ‘두 시간 거리 20년 세월’이라고 부른다. 김포에서 비행기로 일본 하네다 공항까지는 두 시간 가량 걸린다. 그러나 1945년 8월 패망 이후 이 땅에서 물러간 일본은 1965년 한국과 국교를 수립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는 서로 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먼 나라다. 이는 두 나라가 지난 역사 속에서 맺어온 독특한 관계 때문일 것이다.

일본,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은 일면 애증이 교차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 이후 왜구의 잦은 침략과 조선조의 임진왜란, 그리고 근대 일본의 조선 병탄은 한국인들에게 크나큰 피해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이로 인해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민족감정은 원수 그 이상의 것이다.

반면 국교 수립 후 양국 간의 긴밀한 문화·경제적 교류를 비롯해 수십만 재일교포들의 삶의 근거지라는 점에서 일본은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따라서 일본, 일본인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은 ‘이중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미우면서도 일면 부러운 존재 같은 것. 그러다 보니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평가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 미래적이기보다는 과거적, 합리적이기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다.

 93년에 출간된 <일본은 없다> 표지

일본 탐구서는 주로 지일파 지식인 그룹에서 시작됐는데,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그가 1982년 일본에서 1년 동안 머물며 연구생활을 한 뒤 일본문화를 비판한 것으로, 일본사회에서 ‘이어령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뒤이어 나온 책으로 수학자 김용운 교수가 89년에 펴낸 <일본의 몰락>을 들 수 있는데, 두 권 모두 일본어로 먼저 출간된 두 한국에서 재출간 됐다. 일본연구가 김영명의 <일본의 빈곤>은 94년에 출간됐다.

앞서 소개한 책들에서 이어령은 ‘축소’, 김용운은 ‘왜(倭)’라는 개념으로 일본문화를 설명하고 있는 데, 현상 분석보다는 본질, 혹은 원형 탐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이어령은 일본은 무엇이든 작게 축소하는 데 이것이 일본을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키웠다고 봤다. 한 예로, 한국과 중국의 부채가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접이식 부채로 탈바꿈해 역수출되고 있으며, 컴퓨터와 라디오는 미국에서 개발됐으나 일본에서 축소모델로 재탄생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KBS 여기자 전여옥이 1993년에 펴낸 <일본은 없다>는 종래의 일본 탐구서와는 또 달랐다. 그냥 다른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폭탄선언과도 같은 수준이었다. 지구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일본을, 그것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경제대국인 일본을 깡그리 무시하거나 또는 배울 게 하나도 없다고 못 박고 나왔으니 말이다. 책 출간 1년 만에 70만부가 팔렸으며, 일본에도 번역 출간되면서 한일 양국에 큰 화제를 몰고 왔다.

당시 이 책이 큰 인기를 누린 것은 도발적인 제목에다 학자가 아닌 기자가 일본 관찰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였다. 당시 30대 중반의 전 씨는 1991년부터 2년 8개월간 KBS 도쿄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일본의 실체를 매우 ‘주관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과거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대해 깨끗하고 예의 바르고 검소한 인상을 갖고 있던 것을 단 칼에 날려버렸다. 즉, 흑인병사와 명품에 환호하는 일본 여성, 왕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비겁한 언론, 집단주의와 이지메 문화 등. 그리고는 ‘일본, 알고 보니 별 것 아니다’는 식의 결론을 내렸다.

반응은 엇갈리면서도 매우 뜨거웠다. 학계 등 지식인 그룹에서는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거나 지나치게 주관적인 ‘일본 때리기’라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반면 일반 독자들은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호평했다. 이는 해방 이후부터 일제잔재 청산 시비가 끊이지 않은 데다 80년대 중반 일본 극우세력의 역사교과서 왜곡사태 등으로 일본에 대한 반발감이 극에 달했던 당시 상황도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90년대 이후 한국의 급속한 성장으로 민족적 자신감이 고양된 데다 기자 특유의 명쾌하고 독특한 문체와 현장성 등이 보태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여옥 전 의원

스타는 안티와 아류를 낳는다고 했던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여옥의 책이 선풍을 일으키자 당시 현직 외교관이던 서현섭 씨가 <일본은 있다>(고려원, 1994)를 펴냈다. 일본에서 다년간 근무한 서 씨는 주로 역사적 접근을 통해 일본을 파헤쳤다. 즉 일본에 대한 피상적이고 인상비평적인 탐구가 아니라 개화기와 근대기 일본인들의 반응과 적응양상을 조명함으로써 변화의 시기에 대응하는 일본인들의 실체를 분석하였다. 친일성향은 아니라고 해도 일본에 대해 긍정적 접근을 한 것만은 분명한 셈이다. 얼마 뒤 서 씨는 일본인의 성 풍속사를 다룬 <일본인과 에로스>를 펴내기도 했다.

한국인의 일본인 비판서가 줄을 잇자 오랫동안 한국에 체류한 일본인 기업인들이 한국·한국인 비판서를 잇달아 출간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97년 당시 일본 종합상사 도멘의 서울지점장이던 모모세 다다시(百瀨格)가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사회평론)를 출간한 데 이어 2년 뒤에는 이케하라 마모루(池原衛)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중앙M&B)를 펴냈다. 이케하라는 단기상용비자로 입국한 상태였는데 영리목적의 저술활동을 한 것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벌금을 물기도 했다.


2. 재일작가 유재순과의 표절 논란

90년대 중반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불리던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가 돌연 표절시비에 휘말려 또 다시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 표절 의혹은 93년 책 출간 이후부터 줄기차게 제기됐는데 당사자는 재일작가 유재순 씨(현 JP뉴스 대표)였다. 이 사건이 법정 소송으로 이어진 것은 2004년 6월 <오마이뉴스>의 보도가 계기가 됐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고 있던 전여옥 의원은 각종 TV프로그램에서 특유의 독설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기피대상 1호’로 꼽혔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정치와 토론’이라는 주제로 전 의원 인터뷰를 추진했는데 두어 달 뒤인 6월 10일 인터뷰가 이뤄졌고 그 내용은 6월 15일자 <오마이뉴스>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당시 기자가 이 책을 둘러싼 표절의혹에 대해 묻자 “이 책은 10년 전 내 경험으로 직접 쓴 책”이라며 표절의혹을 부인했다.

그로부터 근 한 달 뒤인 7월 1일자로 도쿄 주재 <오마이뉴스> 박철현 기자가 일본 현지에서 유재순 씨를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이 인터뷰는 당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으로 있던 필자의 지시로 이뤄졌다. 그리고 8월 31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던 전 씨는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당시 편집국장이던 필자, 그리고 유재순 씨를 인터뷰한 박철현 기자, <서프라이즈> 논객 김동렬 씨, 유재순 씨 등 5인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5억 원의 소송을 냈다.

전 씨는 고소장에서 “이미 약 10년 전 표절시비를 일으켰다가 흐지부지 된 허위사실을 작가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또다시 인터뷰 등을 통해 원고(전여옥)에게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소개하자면, 이 사건은 2007년 7월 1심 판결, 2010년 1월 항소심 판결,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 등 1, 2, 3심 모두에서 전 씨가 패소했다. 법원은 전 씨의 표절을 공식 인정했다.

 유재순 대표

1981년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당선된 후 르포라이터로 이름을 날린 유재순 씨는 8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와 취재를 병행하면서 재일교포 사회에서 ‘일본통’으로 통했다. 91년 1월경 친구로부터 KBS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하는 전 씨를 잘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평소 자신이 닦아놓은 취재기반을 고스란히 소개해줬으며, 그 과정에서 전 씨는 유 씨의 집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어느 날 유 씨는 자신이 <일본인,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출간 준비 중이던 책의 취재내용과 메모 등을 취재에 참고하라고 보여줬다. 그런데 전 씨는 이 가운데 상당부분을 베껴 문제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으로 먼저 출간해버렸다. 말하자면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다.


3. 정치인 전여옥의 행보와 평가

1959년 서울 출생으로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전 씨는 기자 출신이다. 2004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입당한 후 그해 5월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2006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초선으로서 최고위원에 당선돼 주목을 받았으며, 2007년 4월 박근혜 대표와 결별한 그는 그해 7월 이명박 캠프로 합류해 친박 진영으로부터 변절자 비난을 샀다.

2008년 18대 총선 때 서울 영등포갑에 출마해 재선됐다. 2012년 3월 당의 공천과정에 반발해 탈당한 뒤 ‘국민생각’에 입당해 전국구 1번을 받았다. 그러나 국민생각이 득표율이 저조해 전국구를 한 명도 내지 못한데다 2% 최소 지지율마저 채우지 못해 정당 등록이 취소되면서 본의 아니게 정치권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당 대변인 시절 독설가로 악명을 날린 그는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다음 대통령은 대학을 다닌 경험이 있는 분이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학벌주의를 옹호한 발언(2005년 6월, CBS 라디오 인터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치매노인에 비유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폄훼하는 발언(2006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펴낸 자서전에서 박근혜 후보를 두고 “대통령감이 아니다”고 써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편 전씨는 <여성이여, 느껴라 탐험하라>,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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