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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 경찰’ 하루에 한 명 이상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
고문과 폭행, 약탈, 성폭행을 일삼은 자들이 국가유공자로 연금을 받고 있다
임병도 | 2016-02-13 09:01:0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제주 4.3실무위원회의 127차 회의 모습. 제주 4.3실무위원회는 행자부가 요청한 4.3 재조사를 거부했다. ⓒ제주의 소리

제주 4.3사건이 다시 보수우익 세력의 논리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행정자치부는 보수우익 단체가 주장했던 제주 4.3사건 희생자 재조사 요구를 제주 4.3실무위원회에 요청했습니다. 지난 2월 2일 열린 제주 4.3실무위원회에서는 행자부의 사실조사 요구를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행자부와 보수우익단체의 조사요구는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제주의 소리에 따르면 황교안 총리는 더불어민주당 김우남 (제주시 을) 의원의 서면 질의에 “4.3희생자 중 한 두 명이라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한 인물이 있다면 심의를 통해 희생자에서 제외하는 것이 대다수 4.3희생자 및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좌익 폭도가 희생자에 포함됐으니 이들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요구는 한편으로는 과연 이승만 정권의 제주 4.3 진압이 헌법의 기본이념을 따랐느냐는 의문도 들게 합니다. 제주 4.3사건 당시 정부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훼손하고 위배한 사례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2013년 개봉된 제주 4.3사건을 다룬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지슬 영화 화면 갈무리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에 보면 아편에 취해 광기를 벌이며 마을 주민을 무참히 학살하는 ‘김 상사’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아편에 취해 작전 나가는 부하들에게 “계집애도 하나 잡아와”라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설마 하면서, 단순히 극적인 요소였다고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슬에 나오는 김상사를 혹자는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커츠 대령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슬을 제작한 오멸 감독은 그가 일제의 잔재로 전쟁을 경험한 아편 중독자로 살인에 취해있는 인물이라고 가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김상사와 같은 인물은 제주 4.3 사건에도 존재했었습니다.

제주 4.3을 진압하기 위해 육지에서 경찰과 군인이 내려왔지만, 경비대로는 제주 모슬포에 주둔했던 제9연대가 있었습니다. 9연대는 첫 무장봉기 일어났을 때는 단순히 도민과 경찰,서청간의 충돌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진압작전보다는 ‘경비 치안’을 위해 10명 이내의 부대원을 제주읍에 파견했습니다.

제9연대 연대장 김익렬은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성사시키는 등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작전을 전개하려고 했던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익청년단원들의 ‘오라리 방화사건’을 묵인한 미군과 이승만 정부는 강경 진압을 위해 ‘화평정책’을 추진했던 김익렬을 해임하고, 9연대 연대장을 박진경 중령으로 교체했습니다.

제9연대는 수원에서 창설된 제11연대에 합편하며 제11연대 연대장으로 박진경 중령이 부임합니다. 박진경 중령은 취임식 때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발언하며 무자비한 작전을 펼치다, 1948년 6월 18일 숙소에서 부하 손선호 하사에 사살됩니다.


‘ 사형권을 가진 마약중독자 성폭행범, 9연대 정보참모 탁성록 대위’

이후 제11연대장에 최경록 중령, 부연대장에 송요찬 소령이 임명됩니다. 경비대총사령부가 경비대 제9연대를 부활시키면서 연대장에 송요찬 소령을 임명하고 제11연대는 수원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때 제9연대 정보참모가 바로 탁성록 대위입니다.

앞서 장황하게 제주 4.3을 진압했던 제9연대의 연대장들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연대장에 따라 무자비한 진압과 작전이 전개되기도 했으며, 평화적인 선무공작이 이루어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제9연대 송요찬도 제주 주민을 무참히 학살했던 인물로, 특히 제9연대 정보참모 탁성록의 만행은 ‘지슬’에 나오는 김상사의 만행이 약과일 정도였습니다.

“연대 정보참모가 탁성록인데 그 사람 말 한마디에 다 죽었습니다. 그 때 헌병에게 잡혀가면 살고, 탁 대위에게 잡혀가면 민간인이고 군인이고 가릴 것 없이 다 죽었습니다. “(당시 9연대 보급과 선임하사 윤태준 증언)

“탁성록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예쁜 여자들만 여러번 바꿔가며 살았는데 나중에 제주를 떠나게 되자 동거하던 여인을 사라봉에서 죽이고 갔다. 그는 사형권을 가진 사람이었다”(최길두 증언)

▲ 제주비행장 미군수송기 앞에서 기념촬영한 장교들. 뒷줄 오른쪽부터 9연대 한영주 작전참모, 미 군조종사, 김정무 군수참모, 탁성록 정보참모,앞줄은 미고문관과 안광수 경비대 작전과장. ⓒ미국립문서관리청

탁성록이 마약중독자라는 구체적인 증언은 여러 사람이 했습니다. 당시 제주도립 제주의원 경리주임이었던 하두용은 그는 제주에 오기 전부터 아편에 중독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탁성록은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와 소위 아편주사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마약은 함부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이라 약재과장을 불러와 결재를 받고 주사를 놔 주었습니다. 그는 팔에 주사바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아편쟁이였어요. 안정숙 간호원이 팔뚝에 주사하려 해도 주사 바늘이 들어가지 않자 겨드랑이 밑에 꽂으라고 하더군요. 그는 재임기간 내내 주사를 맞으러 병원을 찾았습니다.” (제주도립 제주의원 하두용 증언)

탁성록은 자신에게 아편 주사를 놓아달라는 명령을 거부했던 오창흔이라는 의사를 공산당으로 조작해 포로수용소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오창흔은 나중에 탁성록이 무서워 석방된 후 서울로 갔다가 제주도로 오지 못하고 부산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탁성록은 마흔이 다 된 사람인데 정보참모의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도 아니고 군악대에서 나팔 불던 놈인데 특채됐는지 나보다도 먼저 대위를 달았어요. 이런 저런 구실을 달아 여자들 성폭행을 많이 했어요” (9연대 군수참모 김정무 증언)

제주 4.3을 진압하러 온 장교, 그중에서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정보참모가 마약중독자이자,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무자비한 살상을 저지르고 성폭행까지 했다는 사실은 제주 4.3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광기에 사로잡힌 학살이었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반민특위를 암살하려던 친일경찰 최난수, 제주에서 고문을 일삼다’

제주는 유독 육지경찰에 대한 반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해방됐지만 독립투사를 고문했던 친일파들이 경찰로 다시 복귀했기 때문입니다. 3.1절 시위에 대비해서 육지에서 온 친일파 출신 경찰 100명이 제주 4.3사건의 시작점이 됐던 발포사건을 유발했습니다.

제주 출신 일부 경찰들은 친일파 육지경찰의 발포에 항의하며 사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제주 경찰력의 75%를 육지경찰로 채웠습니다. 제주출신 경찰은 배제하고 육지경찰이 경찰력을 장악하면서 무자비한 체포와 감금, 고문이 자행됐습니다.

1948년 조병옥 경무부장은 각 지역 경찰서에서 차출한 응원경찰 450명과 수도경찰청 최난수 경감이 지휘하는 형사대를 제주도로 보냈습니다. 이들은 ‘제주는 빨갱이의 섬’이라며 일제 고등계 형사와 같은 만행을 그대로 저질렀습니다.

“제주출신을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서울에서 특별수사대가 내려왔는데 최난수 경감이 대장이었습니다. 최 경감은 왜정 때 고등계형사 출신으로 그 때 버릇이 남아 고문을 일삼았기 때문에 나와 마찰이 잦았습니다.
하루는 내가 제주경찰서에서 숙직을 하는데 여자의 비명소리가 나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취조실로 가보니 여자를 나체로 만들어 거꾸로 매달아 놓고는 고문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가 일본도를 들고 가 화를 냈더니 수사대원이 도망쳤어요.
난 이튿날 홍순봉 청장에게 “최난수가 너무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제주사람들은 점점 더 육지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그러면 사태진압이 어려워진다”고 따졌습니다. 그래도 최난수는 막무가내였어요. 그런 고문을 받으면 안 한 일도 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수사대는 또 스스로 삐라를 만들어 특정 마을에 몰래 뿌려놓고는 그 마을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돈도 나오고 여러 가지가 나오거든요. 자유당 시절의 소위 ‘관제공산당(官製共産黨)’인 셈이지요.” (김호경 당시 제주 경찰 특별수사대원 증언)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반민특위 요인 암살 사건을 주도했던 친일경찰 출신 노덕술(앞줄 왼쪽 첫번째)최난수 (앞줄 왼쪽 세번째)

최난수는 악명높은 일제 고등계 형사처럼 고문을 일삼으며 제주도민을 탄압했습니다. 그는 이런 와중에도 자신의 친일 범죄를 반성하기는커녕 도리어 무서운 일을 벌입니다.

서울에서 ‘반민법’이 만들어지면서 친일파들이 법의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합니다. 친일경찰로 유명한 노덕술과 최난수 등은 국회의원을 납치 38선 부근으로 끌고 가서 살해한 후 ‘조국을 배신하고 월북하는 것을 발견, 즉결처형했다’는 용공조작 시나리오를 가지고 테러리스트 백민태를 고용합니다.

백민태는 최난수로부터 무기와 자금, 암살 대상 명단을 받았습니다. 명단에는 반민특위 관련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청렴결백한 대법원장이었던 김병로와 신익희 국회의장, 권승렬 검찰총장 등이 포함되어 있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수를 합니다. 결국 최난수는 1949년 6월 살인예비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반민법 제5조에는 ‘일본치하에 고등관 3등급 이상, 훈 5등 이상을 받은 관공리 또는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의 직에 있던 자는 본법의 공소시효 경과 전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단, 기술관은 제외한다.’라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만약 반민법이 적용됐다면 노덕술, 최난수와 같은 친일 경찰은 절대 경찰을 할 수 없으므로 이들은 테러리스트를 고용해 반민특위 관련자들과 대법원장, 검찰총장까지 암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해방되면 독립투사를 고문하던 친일 경찰이 사라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이들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여전히 ‘고문’과 ‘암살’, ‘용공조작’을 일삼으며 살았습니다.


‘ 하루에 한 명 이상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던 서청 경찰’

이승만은 서북청년회를 각별하게 여겼습니다. 반공이라는 무기로 정권을 유지하려던 그에게 공산당이 싫어서 (실제로는 재산을 몰수당한 지주와 친일 세력) 넘어와 기댈 곳 없는 이들은 말 잘 듣는 깡패 조직의 행동대원으로 써먹기 딱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경찰에 특채하기도 하고, 군대의 특별 조직으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서청이 처음 제주에 들어온 것은 유해진 지사가 제주로 부임하면서 호위병으로 서청단원을 활용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4.3 전까지 5백~7백명 가량의 서청 단원들이 들어왔습니다. 서청원단원들은 일자리가 없자, 태극기나 이승만 사진 등을 강매하면서 테러와 폭행을 일삼아 이들을 제주 4.3 발발 원인의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제주도 토벌에 나섰던 경찰과 서청단원, 군인을 격려하는 이승만.

제주 4.3이 나자 이승만의 지시에 따라 서청은 대거 제주로 옵니다. 당시 이승만은 서울시 공관에서 열린 서북청년회 총회에서 ‘제주도 4‧3사태와 여수‧순천 반란사태로 전국이 초비상사태로 돌입했다. 이 국난을 수습하기 위하여 사상이 투철한 서북청년회를 전국 각지에 배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서청단원 200명은 경찰로 급조돼 제주로 내려왔고, 이들을 ‘2백명 부대’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서청은 보급을 자체조달하라는 이승만의 지시에 따라 제주도민의 집에 들어가 쌀과 돼지 등을 강제로 약탈했습니다. 또한, 제주도 행정2인자였던 제주도 총무국장 김두현을 서청에 보급을 잘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매질하고 실신한 그를 밖으로 내버려 죽이기도 했습니다.

서청은 자신들의 활약상을 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문사 사장을 구타하는 등 인간으로는 도저히 보여주기 어려운 잔혹한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외도지서 특공대 생활을 할 때 서북청년단 출신 경찰 이윤도(李允道)의 학살극은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날 지서에서는 소위 ‘도피자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갈 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이윤도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윤도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도평리 아기들이 그때 죽었지요.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꼴을 보니 며칠간 밥도 못 먹었습니다” (외도지서 특공대원 고치돈 증언)

서청 경찰 중에는 악명이 높던 삼양지서 주임 정용철이 있었는데, 정용철은 ‘하루에 한 명 이상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서북청년회 출신 정 주임은 너무도 잔인했어요. 여자들 옷을 벗겨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날 여자들의 옷을 벗긴 채 망루 위에 오랜 시간 앉혀 놓았습니다. 난 벌벌 떠는 그들이 불쌍해 코트를 벗어 덮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삼양지서 옆 밭에서 남자고 여자고 수십명씩 잡아다 죽였습니다. 차라리 총으로 쏘아 죽일 것이지 그 마을 대동청년단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김제진 제주경찰학교 10기생 증언)

“정기보고를 하러 지서에 갔더니 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주임은 웬일인지 총구를 난로 속에 넣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젊은 여자를 홀딱 벗겼어요. 임신한 상태라 배와 가슴이 나와 있었습니다. 정 주임은 시뻘겋게 달궈진 총구를 그녀의 몸 아래 속으로 찔러 넣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정 주임은 그 짓을 하다가 지서 옆 밭에서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습니다. 우리에게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덜 죽어있던 상태라 흙이 들썩들썩 했습니다.” (고봉수 대한청년단 분대장 증언)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며 사람을 죽여야 밥을 먹던 경찰’은 삼양지서 정용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주 4.3사건 증언 내용 대부분은 온라인에 공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했고, 끔찍했습니다. 과연 제주도민들이 이토록 모진 고통과 학살을 당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 누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저런 만행을 저지른 자들은 아직도 제주 4.3으로 희생된 자들이 모두 빨갱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승만의 대통령 담화문에서조차 이들이 무고한 사람이었음을 증명하는 역설적인 표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귀화한 공산분자가 남녀 합하여 2,800명에 달하였으나 아직도 겁이 나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수효가 몇 천명 된다는데 가장 곤란한 것은 여러 촌락이 불에 타서 의지할 곳도 없고 먹고 입을 것이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중략) 무식한 남녀들이 공산당 선전에 속은 자도 있고 또는 집이 다 불에 타 갈 곳이 없어 도로 올라간 자도 있었으나 산상에서 살 수도 없고 식물은 더 도적할 수도 없어 형용이 말 아닌 남녀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온 것이 2,800여 명인데 이 사람들을 다 넓은 공청에 칸을 나눠서 거처시키며 하루 두 끼씩 밥을 먹이는데 반찬이 없음은 물론이오…. (朝鮮中央日報, 1949. 4. 13. )

‘귀화한 공산분자가 2.800명’이라고 했지만 중간에는’형용이 말 아닌 남녀, 어린아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결국 입산자 대부분이 좌우익의 대립과 굶주림, 서청의 만행을 피해 도망간 단순 양민이었지만, 이들을 ‘폭도,무장대’로 규정하고 무차별 학살했던 것입니다.

▲제주 4.3사건의 희생자 대부분은 어린아이와 여자, 노인들이었다. 그들을 학살한 자들이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할 정부의 국가 유공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제주도에 있던 스위니(Austin Sweeney) 신부는 서울의 한 신부에게 “만약 여기가 문명화된 나라라면 광범위하게 ‘제주도를 돕는’ 계획을 당장 실시할 것이다. 주민들은 짐승같이 살고 있으며 평균 하루에 고구마 한 개를 먹고 있다”고 전하면서 당시 제주의 암담한 상황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제주 4.3 특별법’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서청, 대청, 민보당 등 우익단체원들이 ‘국가유공자’로 정부의 보훈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고문과 폭행, 약탈, 성폭행을 일삼고 아이와 여자를 칼로 찔러 죽이고 학살했던 자들은 국가유공자로 연금을 받고, 억울하게 죽었던 이들은 수십 년간 4.3을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문명국가라고 말하려면 ‘야만’과는 달라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에 충성했던 자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굶주림에 고생하는 양민을 학살하고 부녀자를 성폭행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애국자’라고 불립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학살도 ‘범죄’로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최소한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준 진실과 화해의 제주4.3사건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서 국가의 폭력으로 재연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광기와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야만 국가’의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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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2016년2월13일 11시07분    
그런 버러지들은 가까이 있는 자가 처단해야지 외부자는 알수가 없지 않은가?
국민이 사나워 그런 짐승나부랭이 누구던지 살려두지 않는 기풍이 서있다면
감히 그런 버러지들이 발호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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