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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적폐 1호는 메카시즘 언론이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이런 기레기들이 청소되기를 소망한다.
김갑수 | 2017-05-16 08:19: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누가 뭐래도 적폐 1호는 메카시즘 언론이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이런 기레기들이 청소되기를 소망한다.


<영조, 출생의 핸디캡을 ‘이민위천’으로 승화시킨 지도자>

“저 창창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임금이 되게 한 것은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고 곧 백성을 위한 것이다. 천명(天命)의 거취(去就)와 민심(民心)의 향배(向背)는 오로지 백성을 구제하고 구제하지 못하는 데에 연유될 것인데, 백성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백성을 구제하지 아니하면 민심은 원망할 것이요 천명도 떠날 것이니, 비록 임금이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곧 독부(獨夫)일 뿐이다.”(영조실록 1749년 8월15일)

절절함이 묻어나는 말이다. 조선 21대 임금 영조(본명 이금, 재위 1724 ~ 1776)는 이민위천(以民爲天, 백성을 하늘같이 소중히 여김)의 실천에서 두드러진 국왕이었다.

‘가난 구제는 나라(임금)도 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실록을 읽어 보면 조선의 왕이나 관료들은 이런 말을 결코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백성의 가난을 구제하는 방책을 놓고 토론과 논쟁을 벌였다.

영조는 백성의 가난을 외면하는 왕은 왕이 아니라 ‘독부(毒夫)’일 뿐이라고 했다. 여기서 독부라 함은 ‘모진 정치로 백성에게 배반당한 임금’이라는 뜻이다. 이는 맹자가 말한 ‘일부(一夫)’와 같은 개념으로서 방벌의 대상이 된다.

영조는 “군주는 백성에 의지하고 백성은 나라에 의지하니, 백성과 나라가 서로 의지하고 군주와 백성도 서로 의지한다.”라고 했다. 이것은 백성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국정의 동반자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균역법은 그때까지 거의 면제되어 왔던 양반에 대한 과세 없이는 성공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사실 당시 양반의 사정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양반의 평균 경제력은 일반 양인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가난한 양인이 많았듯이 가난한 양반도 적지 않았다. 당연히 가난한 양반들은 반발했고 이에 사대부들은 신중론을 제기했다.

영조는 민생을 위해 무려 200번이 넘는 순문(詢問, 왕이 신하나 백성에게 직접 물음)을 몸소 시행했다. 그의 순문 대상은 고위직보다 하급 관리나 일반 백성이 더 많았다. 그는 재위 중반 ‘균역 순문’을 세 차례 따로 열기도 했다.

영조는 균역에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비록 나라가 없어질지언정 이 법은 고치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훗날 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균역법을 관철한 영조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균역법이란 군역을 반으로 줄여 균등히 하는 법이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군역세를 반으로 줄인다는 것은 엄청난 재정 적자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영조는 불철주야 연구하면서 사방으로 자문을 구하고 의견을 들어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있는 합리적인 세원을 다방면으로 확보했다.

결과 왕실과 소민, 양반과 양인 등이 모두 하나의 세금 체계로 수렴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역의 형평성, 즉 ‘균역(均役)’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이것은 실로 대동법의 위민정신을 계승한 쾌거였다.

알려진 대로 영조는 선왕 경종의 이복동생이다. 장남이 아닌 왕자도 왕의 정통성에서 문제가 되던 시대였다. 그런데 영조는 왕의 동생, 그것도 친동생이 아닌 이복동생이었다. 더구나 영조의 생모 숙빈 최 씨는 무수리 출신의 후궁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출생이 비천한 사람에 대한 멸시와 오해는 의외로 완강하다. 영조는 선왕 경종을 독살했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사대부들, 특히 권력에서 소외된 소론은 노골적으로 영조를 경멸했다. 재위 초기에는 온갖 괘서가 나붙고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영조를 얕잡아 본 무리들은 세 번 씩이나 반란을 일으켜 왕의 권위에 도전했다.

하지만 영조는 이 모든 도전을 물리치고 성공한 군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나는 영조가 성공한 비결은 그의 끊임없는 수학(修學)에 있었다고 본다. 그는 긴 생애(82년)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수불석권(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했다. 그는 경연에 가장 성실한 국왕이었다. 그의 실력은 경연관들을 압도하여 경연장 토론을 이끌었다. 당대의 석학들이었던 경연관들이 왕의 실력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

공부는 교양과 지능을 발달시키고, 이것은 고도의 정치력을 가지게 한다. 영조는 자기 출생의 핸디캡을 공격하는 무리들에게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한 차원 높은 ‘이민위천’으로 대응했다. 오늘의 정치인 중에서 영조의 반만큼이라도 공부한 사람 있으면 한 번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이석기, 집에 걸렸던 ‘以民爲天’ 본보 보도후 떼어낸듯
(동아일보 / 2013-08-30)

김일성 좌우명… 北헌법 서문에도 명시

▲지난해 5월 31일 본보 취재팀이 서울 동작구 사당동 이석기 의원의 집을 찾았을 당시 벽면에는 ‘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글귀가 적힌 족자가 걸려 있었다(왼쪽). 그러나 28일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이 의원의 집을 압수수색했을때는 이 족자가 있었던 위치(점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동아일보DB

‘이민위천(以民爲天·백성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뜻).’

지난해 5월 31일 본보 취재팀이 서울 동작구 사당동 이석기 의원의 자택을 찾았을 당시 이 글귀가 새겨진 족자가 현관에 들어서면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걸려 있었다. 바로 아래 탁자에는 이 의원의 가족사진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28일 국정원이 이 의원의 집을 압수수색할 당시 탁자는 그대로 있었지만 글귀가 적힌 족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 의원이 족자를 본보 보도 이후 치운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역사서 사마천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 글귀는 김일성 북한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조한 좌우명과 같다는 점 때문에 이 의원이 이 글귀를 현관에 걸어놓은 것은 그의 종북성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회자돼 왔다. 김일성은 1992년 4월 발행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머리말에 “이민위천은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해 4월 개정된 북한 헌법 서문에도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 글귀는 국내 정치인들도 공식 석상에서 사용한 사례가 있다. 2009년 8월 전주의 한 미술품 경매업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6년 여름에 쓴 ‘이민위천’ 휘호를 경매에 부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08년 1월 1일 당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도 신년사에서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이민위천’의 마음가짐으로 새출발하겠다”고 했다.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30830/57315762/1?lbFB=e9a65b879b16704b3d64773b28e56f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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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민폐  2017년5월16일 11시36분    
참 오르신 말씀

우리네 지식인들 ,언론들의 가치. 사고인식 체계을보면 참으로웃기고 가관이다

문패권의 상징 3철을 보자
민초인 내입장에서 볼때 문측근 3철이 아니 10철이 권력을 나누어먹던 내고향 호남 인사을
배려하든 그 무슨 상관이람
고양이 쥐 더 잘 잡는게 중요한것일진데 , 내용보다 이미지가 판을친다
주제꼴에 어떤놈들은 케케묵은 중국고사 들어가며, 현란한 그 조동아리 놀려된다

우리뇌에 쇄뇌된 문패권 할아버지가 문제가 아니라
문패권이 나에게 나아가 우리에게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는것

갑수님 예로든 온나라 흔들엇던 마녀사냥 이석기 찌라시들 보도도 그러햇고,
이에 우린 침묵햇고 나아가 놀아낫고 쇄뇌되엇다
그 진실을 밝혀야 하나
현실에 타협하니 , 문정권차원이 아니라 언론의 힘을 빌수 바랄수밖에 없는게
아쉬움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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