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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궁구물박(窮寇勿迫)
이정랑 | 2021-12-23 09:20:1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궁지에 몰린 적은 압박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의 ‘군쟁편(軍爭篇)’에 나오는 ‘용병 8원칙’의 하나다. ‘후한서’ ‘황보숭전(皇甫崇傳)’에도 ‘궁구물박’이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세력이 다한 적을 추적할 때도 책략을 강구 해야지 성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되며, 또 너무 심하게 핍박을 가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적이 필사적으로 반항할 수도 있어 적을 섬멸하는 데 지장을 겪게 된다. ‘손빈병법’ ‘위왕문(威王問)’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왕이 손빈에게 물었다.

“탈출로가 없이 궁지에 몰려있는 적을, 공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그러자 손빈이 이렇게 대답한다.

“지나치게 압박하지 말고 적이 활로를 찾길 기다렸다가 적을 소멸해야 합니다.”

동한시대 말기인 184년, 한충(韓忠)이 거느린 봉기군은 완성(宛城)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한의 장수 주준(朱儁)은 몸소 정예병을 거느리고 성 동북쪽을 공격하여 외성(外城)으로 진입했다. 한충은 군을 이끌고 성 안으로 물러나 주준에게 투항할 뜻을 전달했다. 그러나 주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준은 단숨에 섬멸시킬 작정으로 성을 에워싸고 공격을 퍼부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주준은 토산에 올라 성안의 형세를 관찰하다가 수행하던 장초(張超)를 보며 말했다.

“이렇듯 엄한 포위에 급박한 공격을 퍼붓고 항복마저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죽음 한 길뿐이라 생각하고 죽자 살자 싸울밖에, 만인이 한마음이 되면 그 기세를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데 하물며 저들의 수가 10만이나 되니!”
주준은 몸소 관찰한 뒤에야 비로소 ‘궁구물박’의 이치를 깨우쳤던, 것이다. 압박하면 적은 죽을힘을 다해 저항한다는, 언뜻 보면 단순한 이치를 주준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달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계책을 하나 짜내어, 성을 포위하고 있던 군대를 철수시키고 몰래 복병을 배치해 두었다. 한충은 이것이 계략인 줄 모르고 성을 나와 적을 추격하다가 복병의 기습을 받아 만여 명이 전사하는 참패를 맛보았다.

384년,연(燕)의 군대는 오래도록 업성(業城)을 포위하고 있었다. 성안의 식량은 다 떨어져 군사들이 소나무를 벗겨 말을 먹일 정도였다. 그러나 부비(苻丕)의 일사분란 한 지휘 아래 굳세게 싸우면서 조금도 항복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연왕 모용수(慕容垂)는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부비는 궁지에 몰린 적이다. 그러나 항복할 리가 있겠는가? 비향(肥鄕)의 신흥성(新興城)으로 물러나 부비에게 서쪽 길을 열어주는 것이 낫겠다.”

연군은 잠시 업성의 포위를 풀고 신흥성으로 물러났다.

당초 연군은 성을 포위했고, 성안의 진군은 궁지에 몰렸으나 전혀 항복할 의사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연군은 ‘궁구물박’의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포위를 일단 풀었다. 오래가지 않아 제풀에 지친 부비는 업성을 포기하고 장안으로 돌아갔으며, 업성은 마침내 모용수의 차지가 되었다.

1661년 5월, 대만으로 진군한 정성공(鄭成功)은 너무 급하게 성으로 접근하다가 성을 지키던 하란군(荷蘭軍)의 대포 공격을 받아 큰 손해를 입었다. 이는 적에게 지나치게, 또는 급하게 접근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교훈을 남긴 본보기였다.

‘궁구물박’을 구체적으로 운용할 때는 상황을 주시하며 민첩하게 대처해야 한다. 만약 적을 섬멸할 수 있다는 정확한 판단이 섰는데도 ‘궁구물박’에 얽매여 병력을 집중하여 섬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상 ‘적의 상황변화에 따라 용병 원칙을 변화시킨다’는 기본적인 용병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노신(魯迅)은 물에 빠진 개는 맹렬히 두들겨 패야 한다는 정신을 주장했다. 이는 ‘궁구물박’의 계략이 가진 부족한 점을 메워주는 유익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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