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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이적차적(以敵借敵)
이정랑 | 2022-01-13 12:31: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적을 빌려 다른 적을 약화시킨다.

명나라 때 게훤(揭喧)이 엮었다고 하는 ‘병경백자(兵經百字)’의 ‘차자(借字)’에 보면 이런 대목들이 있다.

지혜와 계략을 구사할 수 없을 때는 적의 것을 빌려라.

상대의 수단을 뒤집어 내 수단으로 삼고, 저쪽의 꾀를 내 꾀로 만드는 것이 바로 적의 계략을 빌리는 것이다.

힘이 달리면 적의 힘을 빌리고, 죽이기가 힘들면 적의 칼을 빌려라. 재물이 부족하면 적의 재물을 빌려라. 장군이 부족하면 적장을 빌리고, 지혜와 계략으로 안 되면 적의 계략을 빌려라.

이 계략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은 자신이 하기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할 수도 있으므로 굳이 손을 쓰지 않고 앉아서 이득을 보자는 것이다. 또 적을 부려서 다른 적을 견제하게 하거나, 그 적을 재차 이용하여 나의 의도를 달성하기도 한다. 나아가서는 적을 이용하여 기회를 반전시킴으로써 적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목적을 달성하기도 한다.

‘적을 빌린다’는 뜻의 ‘차적(借敵)’은 동서고금의 군사 전문가들이 몹시 중시해온 책략이다. 적을 이용하여 또 다른 적을 약화시켜 승리하는 것은 힘을 적게 들이고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고차원’의 책략이다. 사실 이 계략의 본질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자치통감’의 ‘위기(魏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삼국시대 말기(257~258년), 위나라의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 제갈탄(諸葛誕)은 사마소(司馬昭)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 반대하다가, 사마권(司馬權)의 군대에 의해 수춘(壽春-지금의 안휘성 수현)에서 포위당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당시 동오(東吳)의 손권은 제갈탄에 대해 동정과 지지를 보내고 있던 차라, 문흠(文欽)‧전역(全懌)‧주이(朱異) 및 대장군 손침(孫綝) 등을 연속 파견하여 구원케 했다. 그러나 문흠과 전역은 수춘성으로 진입했으나, 주이와 손침은 사마소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때 사마소는 수춘성 내에 있는 제갈탄은 물론 동오 쪽의 문흠과 전역을 철저히 소멸시키기 위해, ‘이적차적’의 계략을 운용하여 적진 내부에 변화를 일으킨 다음 외부에서 공격을 가해 대승을 거두었다.

사마소가 던진 첫수는 유언비어의 날조였다. 즉, 동오의 구원병이 곧 올 터인데 우리는 식량이 부족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짐짓 늙고 힘없는 일부 병사들을 회북(淮北) 일대로 보내 식량을 조달하게 했다. 이 조치는 제갈탄을 안심시켜, 제갈탄이 지키는 수춘성 내의 사람들은 마음껏 먹고 마셨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온다던 동오의 구원병은 오지 않고 성안의 식량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자 제갈탄은 측근 장수인 장반(蔣班)과 초이(焦彛)가 속전속결을 주장하며 동오 쪽의 문흠과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제갈탄이 그 둘을 모조리 죽여 버리려 하자, 장반과 초이는 겁을 먹고 사마소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사마소의 두 번째 수는 성 안에 있는 동오의 장수 전역의 가족 문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적의 첩자를 역이용하는 ‘반간계(反間計)’를 사용한 것이다. 건업(建業)에 있던 전역의 조카 전휘(全輝)와 전의(全儀)는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어머니와 일부 가족들을 데리고 사마소에게로 도망쳐 왔다. 사마소는 종회(鍾會)의 꾀를 받아들여 비밀리에 전휘와 전의에게 성안에 있는 전역의 가족한테 편지를 쓰게 했다. 그 내용은 동오의 손권이 수춘을 손에 넣지 못하고 있는 것에 화가 나서 건업에 있는 전역의 가족들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편지를 받은 전역은 수천 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와 사마소에게 투항했다.

사마소의 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세 번째 수는 성 내의 제갈탄과 문흠의 사이가 나빠져 문흠이 살해되자 문흠의 아들 문앙(文鴦)과 문호(文虎)가 투항하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사마소는 기병 수백을 보내 그들을 호위케 하면서 성 밖을 한 바퀴 돌게 했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게 했다.

“문흠의 아들을 우리가 어쩌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을 어찌 해치겠는가?”

성을 지키던 사람들은 이 말에 적지 않게 동요했다. 순식간에 민심이 와해 되어 성안 병사들은 겨누고 있던 활을 모두 내려놓고 말았다.

사마소는 기회다 싶어 대거 공격을 가해 제갈탄을 소멸시키고 최후의 승리를 낚아챘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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