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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以武爲植 以文爲種
이정랑 | 2019-08-12 12:13:2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무(武)를 나무로 삼고 문(文)을 씨앗으로 삼는다.

‘울료자’ ‘병령(兵令)‧上’에 문과 무에 대한 훌륭한 구절이 있다.

군을 통솔할 때는 무를 나무로 삼고 문을 씨앗으로 삼는다. 무는 겉이고 문은 속이다. 이 둘의 관계를 살필 줄 알면 승패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군을 다스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옛날 장수들은 문무를 겸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 문무는 서로 대비되면서 표리를 이룬다. ‘사기’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에서는 “문무 겸비는 나라를 오래도록 유지시키는 법술”이라고 했다. ‘손자병법’ ‘행군편’에서는 “문(어짐‧은혜)으로 영(令)을 세우고 무(법‧규율)로 이를 시행하면 반드시 얻는다(승리한다)”고 했다. ‘문무’ 병행은 고대에서 군을 다스리는 기본 수단이었다. 병사들을 통솔하려면 교육이 있어야 하고 규율도 집행해야 한다. 이 둘은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 있어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좌전’ 희공(僖公) 27‧28년조의 기록을 보면, 기원전 636년 봄, 진(晉)나라 문공은 중원을 제패하기 위해 정복 전쟁을 적극적으로 준비했다. 그는 먼저 백성이 편안하고 즐겁게 각자의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또 이름뿐이긴 하지만 주(周)나라 천자의 행동을 존중함으로써 각국의 호의를 얻어두었다. 그해에 진의 문공은 주나라 천자가 자신에게 준 봉토인 원(原.-지금의 하남성 제원현)을 공격했다. 출병하기 전에 문공은 3일 만 공격하겠노라고 선포했다. 그는 3일이 지나도록 점령하지 못하자 그 지역 주민들이 곧 투항할 것이라는 믿을 만한 정보가 들어왔음에도 이를 기다리지 않고 미리 약속한 대로 90 리 밖으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문공은 특별히 전문 기구를 설치하여 관리의 등급 및 규율과 관련된 문제를 처리했다. 그 뒤 문공은 진나라 백성들이 정부를 믿으며 서로 신의를 지키고 자진해서 질서를 바로잡는 등 백성들의 교양이 이미 성숙했음을 알게 되었다. 기원전 632년 문공은 마침내 군대를 출동시켜 초나라와 복(濮.-지금의 산동성 복현 남쪽)에서 싸워 승리를 거두고, 진나라를 마침내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다.

북송 말기에서 남송 초기에 이르는 기간, 송나라 군의 대부분은 금나라 군대의 일격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악비(岳飛)와 한세충(韓世忠) 등이 이끄는 군대는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악비는 우국충절의 사상으로 군대를 정신 무장시키고 엄격한 규율로 병사를 다스려 ‘군사를 움직일 때 추호의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악비의 군대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고 여러 차례 강력한 금나라 군대와 당당히 맞섰다. 적국인 금나라 군대조차도 ‘산은 움직이기 쉬어도 악비의 군대는 깨기 힘들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이 두 가지 이유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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