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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평전 23, 3부 군인에서 경찰로
안호재 | 2021-08-03 08:27: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연각호텔 화재

서대문경찰서에서 1년 동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971년 6월 21일 경무관으로 승진하여 내무부 치안국 소방과장으로 복귀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로 163명이나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6·25전쟁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가장 끔찍한 재난이었다. 화재는 호텔 2층 커피숍에서 12월 25일 아침 9시 50분쯤 프로판가스 폭발로 시작돼 꼭대기 21층 스카이라운지까지 불길이 옮겨가 10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진화됐다. 서울 시내 소방차가 모두 출동했지만 강한 바람과 열악한 장비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차의 물줄기는 8층 이상 도달하지 못했다. 당시 국내에서 제일 긴 사다리차는 겨우 32m로 7층에 닿을 정도였다.

집에서 전화로 화재발생 보고를 받은 순간 안병하는 자신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치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군대에서 작전하던 때를 떠올렸다. 고층에 있는 투숙객들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이 당시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딱 한 가지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육군본부와 미8군에 헬기 지원을 긴급 요청했다. 곧바로 헬기가 출동했다. 헬기에서 늘어뜨린 줄사다리를 타고 상당수의 인명을 구출할 수 있었다.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화재현장을 방문했고, 대통령 전용헬기 투입도 지시했다. 당시 《경향신문》에는 “대통령 전용헬기와 육군 항공대, 미8군 헬기 등이 현장에 투입돼 인명구조를 도왔지만 바람과 연기로 건물 접근이 어려웠다”고 보도했다. *247 방송사들은 낮 12시 30분부터 화재 현장을 TV로 생중계했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지금까지도 대연각호텔 화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텔화재로 기록되고 있으며, 할리우드에서 만든 유명한 재난영화 〈타워링〉의 모티브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대형 화재나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고 나면 관련 공무원의 책임과 문책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때 소방과장 안병하에게 문책은커녕 칭찬이 쏟아졌다.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신속히 육본과 미8군의 협조를 얻어 헬기를 출동시켜 많은 인명을 구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화재는 우리나라에 민방위제도의 도입을 촉진시켰다. 그에게 내무부 치안국 방위과장을 겸직토록 하면서 책임지고 대책을 강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 정부기관의 힘만으로는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민간 역량을 동원할 필요성이 크다고 보았다. 안병하 과장은 선진국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스위스가 가장 앞선 민방위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스위스에서 전 세계 민방위 관계자 회의가 열릴 때 한국을 대표하여 그 회의에 직접 참석했다. 스위스뿐 아니라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의 민방위제도를 자세히 벤치마킹한 후 돌아왔다.

민방위제도 최초 도입

안병하 과장은 1972년 우리나라 최초로 민방위제도 도입을 위해 ‘민방위 기본법’ 제정을 준비했다. *248 ‘민방위’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적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 지방의 안녕질서를 위태롭게 할 재난(민방위사태)으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의 지도하에 주민이 수행하여야 할 방공, 응급적인 방재·구조·복구 및 군사작전상 필요한 노력지원 등 일체의 자위적 활동”이라고 규정했다. *249

새롭게 도입한 민방위제도 시행에 박정희 대통령은 큰 관심을 보였다. 이 제도를 도입하여 최초로 시연하는 행사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안병하 과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준비상황을 보고했다. 내무부에서 안병하 방위과장이 첫 민방위 훈련 때 라디오나 TV를 통해 전국에서 동시에 사이렌을 울리고, 긴급 대피하는 훈련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고 처음 시연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낮 12시 정각에 울리기로 돼 있던 사이렌이 어떤 영문인지 울리지 않았다. 훈련 상황을 총괄 지휘하던 안병하 과장은 진땀을 뻘뻘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통령과 장관은 ‘처음이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면서 관대하게 생각하여 크게 문책은 당하지 않고 ‘1개월 근신’ 처분 수준에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250

안병하는 이렇듯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회적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주춧돌을 놓았던 셈이다. 그의 노력이 무엇이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법의 초안에는 그가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국가의 역할과 사회적 질서, 위난에 대한 평소 생각과 소신이 깊숙이 배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민방위 기본법 제26조에 “민방위대는 편성된 조직체로서 정치운동에 관여할 수 없다” *251고 못 박은 것도 평소 그의 소신이 반영된 것이지 않았을까 싶다. 시대를 넘어 특정 공간을 넘어 오늘날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민방위제를 위난에 대비하여 사회적 협력과 국가의 의무 등을 적극 규정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는 대형사건 사고의 극복 방향으로 삼고 있는 민방위제도의 기틀이 안병하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247 《경향신문》 “어제의 오늘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63명 사망」” 2010.12.24
*248 「민방위 실태분석을 통한 제도개선방안」 13쪽, 국립방재연구원. 2012. 12. ‘민방위 기본법’은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이 계기가 돼 1972년 부터 준비를 시작했는데, 오랜 시간 지지부지 끌다 월남이 패망하고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1975년 7월 25일 법률 제2776호로 제정되었다. 이 법의 기본 윤곽과 개념은 안병하 방위과장 시절에 형성되었다.
*249 민방위 기본법 제2조(정의),제1항
*250 전임순 여사 증언.
*251 민방위 기본법 제26조(정치운동 등의 금지), 제2항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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