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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5
80년 많은 경찰관들이 중·경상을 당했으나 전남경찰청에는 기록 자료 조차 없다
안호재 | 2019-06-25 14:27:5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20년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故 안병하 전남경찰국장. 그는 ‘공격 진압보다 방어 진압을 우선하라’ ‘가혹행위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故 안병하 치안감의 아들 안호재씨의 비망록 이야기를 기획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8) 경찰 철수 후

5월21일 경찰국 철수 후 전남경찰관 직원들은 나름대로 치안 유지에 힘썼다고 한다. 안국장이 평하기를 경찰 자체의 힘으로 광주시내 치안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시민군들의 협력이 무척 컸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보면 전남경찰관들 일부가 22일 이후에 광주시내에 있는 경찰서에서 시민 무장군의 보호 아래 일부 업무(광주시내 안정화)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당시 광주시내에는 20여 개의 정보부서의 파견소가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위급 상황에도 광주시내의 모든 상황을 안국장에게 보고 하였다.

안국장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고난의 길에 빠지게 한 광주와 광주시민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은 이유이다.

안국장은 송정리비행장에서 임시 본부를 운영하면서 광주시내로 들어가 광주시내의 안정화를 위한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경찰상부와 신군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며 경찰공직자로서의 양심적 본분을 다하려 노력하였다.

물론 안국장 휘하에 있던 참모분들과 경찰관, 전투경찰들도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칠 고난을 알면서도 무조건 안국장의 뜻에 동참하였다.

그 당시 안국장은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보안사요원들의 감시가 있었다고 한다. 안국장의 기록에 의하면 보안사로 압송된 것이 26일이 아닌 24일로 기재하고 있다. 처음에는 안국장이 날짜를 착각하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보안사의 밀접 감시가 있었던 것이다.

감시 속에서도 그나마 소신을 어느 정도 펼 수 있었던 것은 안병하국장이 육사 8기 출신이라 계엄군 간부들이 약간의 눈치를 보았던 것 같다.

이 일은 광주시민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집으로서는 고난의 시작이 되었다. 생전에 광주에 대하여 자주 하신 말씀 중에 도청 철수 후에 광주시내에서 평소보다도 강력사건과 약탈 사건은 없었다고 한다.

왜 이 일에 아버님이 자부심을 가졌는지 처음에는 이유를 모르고 흘려 들었다. 오랜 시간 5.18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나서야 아버님의 뜻을 알았다.

1) 절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국장은 부하 직원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지키려 노력했던 지휘관이었다. 그런데 자기 부하들이 피해를 입더라도 시민을 보호하려 하였을까? 안국장은 경찰의 본분인 시민보호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왜 다른 경찰 수뇌부는 경찰의 본분을 내 팽개치고 신군부의 지시에 절대 순응했을까? 국가 안보를 위해서 일까? 국내 치안을 위해서 일까?

국가 안보, 국내 치안 모두가 경찰의 임무이다. 그러나 경찰 수뇌부는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듯했다. 국가 위급 상황을 빌미로 자신의 안위와 영달에만 빠져 있었다. 경찰 수뇌부는 전남경찰관들을 골칫거리로 보았다. 신군부 눈치 보느라 안국장을 계속해서 다그치고, 끝내는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 받고 나온 안국장을 직무유기라고 강제 해직시키고 안국장의 지시를 적극 따른 전남경찰관들도 강제해직 시켰다.

그 대가로 신군부에 적극 협조했던 수뇌부와 간부들은 승승장구하고, 그 방면 안국장의 지시에 헌신했던 전남경찰관들은 39년이 지난 지금도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 지는데 국가의 위기 상황이 오면 어느 공직자가 소신을 갖고 양심적 본분을 다할까?

정부와 국민은 공직자를 감시해야 한다. 공직자가 잘못하면 정부와 국민은 잘못된 공직자를 나무라고 처벌해야 한다.

반면 공직자가 바른 일을 하다 곤경에 빠지면, 정부와 국민이 바른 일을 한 공직자를 지켜주어야 한다. 정부가 지켜주지 않으면 국민들만이라도 지켜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직자가 소신을 갖고 본분을 다할 수 있다. 공직자가 바로 서야 국민이 편하게 살수 있다.

3) 주동자 외에는 연행하지 말 것(교내서 연행 금지)

계엄군이 시위 진압에 나선 다음부터는 경찰은 시위 진압보다는 학생과 시민 보호로 입장을 바꾸었다.

시위 현장의 경찰들은 폭행을 일삼는 계엄군을 말리고 항의도 하였으나, 특전사 위주의 계엄군의 시위대를 향한 무자비한 폭행은 더욱더 강도를 높였다. 그들은 시위진압이 목적이 아니라 혼란을 일으키려 투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위진압이 목적이었다면 시위진압 전문가인 경찰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협조요청을 하였을 것이다. 경찰은 시위 진압을 하기 보다는 학생과 시민을 지키기 위해 귀가를 종용했다. 이것으로 인해 많은 경찰관들이 직무유기 오명을 썼다.

80년 당시 많은 경찰관들이 중·경상을 당했으나 전남경찰청에는 기록 자료 조차 없다.

어떤 경찰관들이 이 일로 강제해직을 당했는지?
어떤 경찰관들이 공상으로 인하여 사망했는지?
어떤 경찰관들이 시민을 어떻게 지켜주었는지?

나는 광주에 사셨던 분이나 경찰관들로 부터 가끔 숨은 이야기를 듣는다. 80년 당시 전남경찰관 간부들은 지금은 대부분이 연세가 90세가 넘으셨다. 이제라도 그분들의 기록을 채록하기 바란다.

형식적 행사로 자기네들 홍보에 혈안이 되지 말고, 진정한 행사의 의미를 살리길 바란다. 왜 비싼 돈 들여서 아까운 시간 낭비하며 행사를 하는지 전남경찰청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번에도 행사에 참석한 것이 잘한 행동이었는지 회의감이 밀려온다. 내년에는 어떤 식으로 행사하는지 지켜보겠다.

4) 경찰봉 사용주의

80년 당시에는 경찰들이 시위진압에 보호장비와 경찰봉을 휴대하였다. 경찰의 진압봉은 길이가 짧았다. 반면 계엄군의 진압봉은 1미터가 넘는 박달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경찰의 진압봉은 자신을 보호하는 호신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계엄군의 진압봉은 폭행용이었다. 계엄군은 어떻게 긴 진압봉을 급히 공수하여 교체하였을까?

5.18 초기 진압 시 계엄군의 진압봉도 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압봉을 교체했다는 기록들이 나왔다. 미리 긴 진압봉을 준비했던 것이다. 이는 계획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전남경찰 지휘부는 진압봉 사용 자제를 지시했고,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그 지시를 최대한 따랐다고 한다.

안호재 / 故 안병하 치안감 아들

【안병하 치안감 프로필】

○ 1928년 강원도 양양 출신
○ 육사8기 김종필 김형욱 강창성 윤필용 유학성 이희성 등과 동기
○ 한국전쟁 당시 포병 중위 시절 춘천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으로 화랑무공훈장 수훈.
○ 1962년 총경으로 경찰 투신
○ 부산중부경찰서장
○ 1968년 서귀포 간첩사건 육상작전 지휘, 중앙정보부장 표창 수상.
○ 화랑무공훈장 2개, 녹조근정훈장 3개 수훈.
○ 1971년 43세의 나이로 경무관 승진
○ 치안국 방위과장, 소방과장, 강원도경국장, 경기도경국장
○ 1979년 2월 운명의 전남도경국장 부임
○ 1980년 전남경찰기동대 안전수칙
“공격 진압보다 방어진압을 우선하라”, “시위진압 시 안전수칙을 잘 지켜라”, “시위학생들에게 돌멩이를 던지지 말고 도망가는 학생들을 뒤쫓지 말라”, “학교 안으로는 진입하지 말라.”, “죄 없는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잡혀온 시민들에게도 식사를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가혹행위하지 마라.” 라고 특별지시를 내리는 등,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었다.
● 1980년 5월 25일 광주를 방문한 최규하 당시 대통령 앞에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발포명령 거부.
● 1980년 5월 26일 전남도경국장 직위해제 및 보안사 연행 후 8일 동안 혹독한 고문.
● 1988년 10월 10일 고문후유증으로 8년간 투병 중 어느 내과병원에서 별세.
○ 2003년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선정
○ 2005년 국립 현충원 안장
○ 2006년 순직 인정
○ 2015년 8월 이달의 호국인물 선정
○ 2017년 11월 22일 경찰영웅 선정 및 전남경찰청사 흉상 제막
○ 2017년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
○ 2018년 국립현충원에서 치안감 추서식 거행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1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2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3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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