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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⑨ 1부 발포를 거부하다
안호재 | 2021-09-27 09:07:4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6·25전쟁 호국영웅 안병하 대위
경찰청이 선정한 경찰영웅 1호 인권경찰 안병하 치안감

● 광주시내 경찰정보센터 23곳 운용
  
이때 경찰은 시내 중심가 또는 시위대가 집결하기 쉬운 장소 23군데에다 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40 각 정보센터마다 경찰관 2명씩을 배치했고, 임시 경비전화를 가설하여 시위대의 동태를 촘촘히 파악했다. 각 정보센터에서 들어온 보고 내용은 도경 상황실의 지도 위에 실시간으로 표기돼 시위대와 진압경찰의 이동상황이 입체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각 정보센터에서 입수된 상황관련 첩보는 즉시 치안본부에 보고됐고, 동시에 도지사와 31사단장, 보안부대장에게도 통보했다. 유관기관끼리 관련첩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안 국장은 누구보다 군의 작전에 깊은 이해가 있었다. 6·25 때 일선 부대 지휘관으로 참전해서 적군을 섬멸시킨 적도 있었고, 그로 인해 여러 차례 표창까지 받았다. 경찰에 투신해서도 무장공비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고, 서대문경찰서장 재직시절에는 무리 없이 시위관리를 잘했다고 실력을 인정받았던 터였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시위 기세가 수그러들고 있는 상황에 갑작스런 공수부대 투입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군 당국이 하는 일을 잘못됐다고 지적하거나 제지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계엄령이 확대된 시점에서 경찰은 계엄법에 따라 군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41 평소 같으면 경찰국장인 자신이 주도적으로 시위진압 작전을 지휘할 수 있지만 지금은 군이 앞장서고 경찰은 치안유지의 보조적인 역할로 행동반경이 제한된 상태다. 공수부대가 시위 현장에 투입되면 경찰은 군인들의 후미를 받쳐주는 2선 개념으로 바뀐다. 군인들이 시위대 방향으로 돌격하면 경찰부대가 그 뒤를 경계해주는 형태로 경찰의 작전이 전환되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계엄군에게 연행된 시위자를 현장에서 인계받아 호송하는 역할도 맡았다. 안 국장은 기세가 꺾여 거의 사그라질 것 같은 시위가 공수부대 투입에 자극돼 오히려 더 커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오후 4시경, 금남로 5가 수창초등학교 부근에 있던 경찰의 진압부대에서 공수부대가 투입됐다는 보고가 들어왔다.*42 시위진압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경 상황실에는 수창국민학교와 시외버스공용터미널 부근에 최초로 투입된 7공수 대원들의 진압상황이 속속 접수되고 있었다. 공수대원들이 학생뿐 아니라 시위 현장 부근에서 구경하는 젊은이들까지 마구잡이로 붙잡아 진압봉으로 심하게 두들겨 패서 거의 초죽음 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목격담들이었다. 현장에서 들어오는 보고들은 믿기 어려울 만큼 거칠었다. 시위현장에서 공수대원에게 붙잡힌 사람들이 차량에 실려 광주경찰서와 서부경찰서에 도착했다. 군으로부터 경찰에 인계된 연행자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팬티만 걸친 청년들이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머리와 몸에서 피가 줄줄 흐르거나, 등에는 진압봉 자국이 붉은색으로 선명했다. 눈 주위가 부어올라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대검 따위의 날카로운 칼에 찔렸는지 피가 낭자한 모습도 보였다. 안 국장은 공수부대 투입 결과 자신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당장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겨 응급치료를 하도록 지시했다. 경찰서 앞마당과 유치장, 사무실 복도 등에는 붙잡혀온 사람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 공수부대 강경진압, 상상 초월
  
안병하 국장은 공수부대가 투입되면 경찰과 달리 진압강도가 훨씬 세질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은 미처 몰랐다. 연행자들의 모습을 보자 더욱 걱정됐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강하게 진압하면 시위가 곧바로 진압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히려 시위대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사례도 없지 않았다. 금남로에 공수부대가 투입됐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부터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달을 수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오후 5시경, 지산동 법원 방향으로 향하던 경찰 수송버스 한 대가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시위대가 던진 돌멩이들이 유리창 보호용 철망을 부숴버렸다. 담양에서 광주의 시위진압을 위해 이날 오후 긴급 동원된 경찰들이었다. 42명의 경찰이 시위대에게 붙들려 볼모가 됐다. 시위대가 볼모로 붙잡힌 경찰을 에워싸고 도청 쪽으로 향한다는 보고가 도경 상황실에 접수됐다. 이 상황은 곧바로 공수부대에게도 전파됐다. 시위대는 연행된 학생과 자신들이 붙잡은 경찰을 교환하자며 도청 쪽으로 향했다. 이 대열이 동명로 입구 청산학원에 이르렀을 때 공수부대와 마주쳤다. 차량에서 내린 공수대원들은 시위대를 향해 빠르게 돌진하며 진압봉을 사납게 휘둘렀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공수대원들은 각기 한 명씩을 목표로 도망가는 학생들을 끝까지 추격했다. 공수대원의 시위진압을 지켜본 경찰은 깜짝 놀랐다. 진압봉으로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붙잡혀 쓰러지면 여러 명이 달려들어 잔인하게 군홧발로 짓이겨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7공수는 ‘총검 진압’을 펼쳤다.*43 진압에 나선 공수대원들이 이렇듯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주위에서 구경하는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의도인 것 같아 보인다는 보고도 들어왔다. 공수부대가 투입되자 시위대는 혼비백산해서 도망갔다. 그 사이에 시위대에게 붙잡혔던 경찰이 모두 무사히 풀려났다. 안 국장은 공수부대의 도움으로 경찰이 무사히 풀려난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더 염려됐다.
  
오후 6시경, 전남북계엄분소에서는 ‘계엄분소 공고 제4호’를 발령하여 광주 시내 일원의 통금시간을 자정에서 9시로 3시간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밤 계엄당국의 ‘통행금지’ 시각은 지켜지지 않았다. 안 국장은 저녁 7시경 31사단에서 경찰연락관을 통해 시위진압이 완료된 것 같다는 보고를 들었다. 7공수여단 대대장으로부터 31사단장에게 시위진압 완료보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7공수의 강력한 진압은 오히려 구경하던 시민을 크게 자극하여 어두워져도 시위가 그치지 않았다. 가톨릭센터 앞 금남로와 노동청, 한일은행 부근에서는 밤 11시 정도까지 수백 명 혹은 1~2천 명 규모의 사람들이 대열을 지어 몰려다니며 공수대의 잔인한 진압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비로소 시위대가 흩어졌다. 안병하 국장은 이날 밤 시위대가 흩어지자 11시 20분까지 18개 경찰서와 파출소, 36개 도로 교차지점에 계엄군 1개 지대와 경찰 2개 분대씩(약 30명 규모)을 합동으로 배치했다.*44
  
전교사 「작전상황일지」에 따르면 18일 하루 사이에 광주에서 시위 관련 혐의로 연행된 사람 숫자는 405명에 달했다. 대학생 114명, 전문대생 35명, 고교생 6명, 재수생 66명, 일반시민 184명 등이었다.*45 또한 7공수가 휘두른 진압봉에 맞아 청각장애인 김경철(남, 28세)이 ‘후두부 찰과상 및 열상’을 입고 치료 중 5월 19일 새벽 3시에 사망했다. 5·18 기간 중 최초의 사망자였다. 이날 경찰은 파출소 5개소 유리창 및 집기류 파손, 가스분사 차량 1대가 불타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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