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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6
그래서 나는 이야기 한다. 광주시청은 배반자!
안호재 | 2019-06-28 14:35:0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20년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故 안병하 전남경찰국장. 그는 ‘공격 진압보다 방어 진압을 우선하라’ ‘가혹행위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故 안병하 치안감의 아들 안호재씨의 비망록 이야기를 기획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1) 주동자 검거 금지

경찰은 경찰의 역할과 기능을 계엄군에 의해 상실되었다. 시위 주동자의 검거는 의미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모두가 자발적 주동자라고 볼 수 있다.

부친(안병하 치안감)께서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전남경찰국 창가에서 충장로를 바라보니 끝이 안보이게 시민들이 시위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적이라면 끝까지 싸워보겠는데 이들은 시민이고 나는 경찰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전쟁영웅의 칭호를 받고 있는 아버지는 생전 처음으로 극심한 공포를 느끼셨다고 하셨다. 시위대에는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노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아낙네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고 하셨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광주가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는데,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된 후 아비규환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상부는 경찰이 진압을 잘못해서 그러니 경찰이 무장하여 광주시내를 진압하라고 아버님께 협박적으로 지시하였다고 한다. 계엄군 뿐만 아니라 치안본부에서도 지시를 하였다고 하셨다.

2) 군에서 인계 받은 부상자 치료, 식사 제공

그 당시 많은 경찰관들도 다쳤다. 경찰은 경찰보다 잡혀오고 부상당한 시위대를 우선 치료하려고 애썼다. 경찰도 식사 배급이 원활하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 체포된 시위대를 위해 노력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시위 중 곳곳에서 계엄군에 체포된 시위대가 많았다. 처음에는 계엄군이 시위대를 체포하면 경찰에 인계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체포된 시위대를 인계한 경찰이 훈계 처리하여 집으로 귀가시킴을 알고 계엄군들은 자기들 숙영지나 군시설로 끌고 갔다.

경찰은 계엄군에 끌려가면 처참한 꼴을 당할 수 있음을 알기에 현장에 있던 경찰지휘관 등은 체포된 시민을 한 명이라도 더 인계 받으려고 계엄군과 실랑이를 벌였다는 기록들이 있다.

정부와 경찰청에서는 80년 광주에서 안병하 국장의 지시에 의해서 경찰들이 위민정신을 펼쳤다고 생각하나, 제 생각으로는 전남경찰 모두가 안병하 국장과 같은 생각으로 시민을 지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80년 전남경찰국 경찰관들을 추모하는 기념식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다. 그들의 희생으로 최대 수혜를 본 광주시에서 조차도 그 분들의 자취를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 한다.

광주시청은 배반자!

부제“희망사항”

1) 지휘 책임을 지고 일반적으로 퇴직 당한 간부 명예퇴직

안병하 치안감은 고문후유증으로 수시로 병원에 가야 했다. 8년간 투병하면서 80년에 광주 쪽으로 한 번을 다녀오셨다. 고 이준규 목포서장이 보안사에 붙잡혀 있으면서 재판을 받았는데, 아마 광주에서 재판을 받으신 것 같다.

말씀을 들어보니 이준규 서장에게 무조건 사표를 쓰고 목숨을 부지하라고 설득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이준규 서장은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어 사표를 쓰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준규 서장은 끝내 모진 고문 속에서 파면 당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84년도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 세 가지를 가슴에 안고 가셨다.

1. 80년 전남경찰관은 힘이 없어 광주시민을 지키지 못했다.

80년 모든 경찰이 시민을 지키겠다며 본분을 다 했는데 광주에서는 많은 희생자가 생겼을까? 왜 치안본부에서 전남경찰들이 시민을 지키겠다는데, 계엄군의 지시만 따르라고 압박 했을까? 오죽했으면 안국장이 공직생활 30여 년 만에 상부의 지시를 목숨 걸고 거부했을까?

2. 모든 책임은 내가 질테니 나의 부하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말라.

안 국장은 보안사에 끌려가서 몇 가지 조사를 받았습니다.

“경찰국장이면 집안에 많은 재산을 축적했을 것이다.
=>조사해보니 융자만 잔뜩 있는 집 한 채.
경찰국장이면 업무와 관련해 비리가 있을 것이다.
=>전남경찰국에서 조사를 하니 별 혐의점 없음.”

그래서 보안사는 안 국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엮어 치안본부로 넘겼습니다. 보안사의 사주를 받은 치안본부는 3일간 조사를 하고 안 국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의원면직 시켰습니다.

아버님은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기로 하고 자신의 부하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책임을 묻지 말라고 하고, 약속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치안본부는 약속을 어기고 안 국장 참모분들을 강제해직 시켰습니다.

3.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책임감이 강했던 아버님은 본인 치료비에 얼마 되지 않는 전 재산이 들어갔고 또 계속되는 얼마 안되는 치료비에 힘들어 하셨습니다. 본인은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하고 싶어했으나, 고문후유증으로 그마저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안호재 / 故 안병하 치안감 아들

【안병하 치안감 프로필】

○ 1928년 강원도 양양 출신
○ 육사8기 김종필 김형욱 강창성 윤필용 유학성 이희성 등과 동기
○ 한국전쟁 당시 포병 중위 시절 춘천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으로 화랑무공훈장 수훈.
○ 1962년 총경으로 경찰 투신
○ 부산중부경찰서장
○ 1968년 서귀포 간첩사건 육상작전 지휘, 중앙정보부장 표창 수상.
○ 화랑무공훈장 2개, 녹조근정훈장 3개 수훈.
○ 1971년 43세의 나이로 경무관 승진
○ 치안국 방위과장, 소방과장, 강원도경국장, 경기도경국장
○ 1979년 2월 운명의 전남도경국장 부임
○ 1980년 전남경찰기동대 안전수칙
“공격 진압보다 방어진압을 우선하라”, “시위진압 시 안전수칙을 잘 지켜라”, “시위학생들에게 돌멩이를 던지지 말고 도망가는 학생들을 뒤쫓지 말라”, “학교 안으로는 진입하지 말라.”, “죄 없는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잡혀온 시민들에게도 식사를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가혹행위하지 마라.” 라고 특별지시를 내리는 등,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었다.
● 1980년 5월 25일 광주를 방문한 최규하 당시 대통령 앞에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발포명령 거부.
● 1980년 5월 26일 전남도경국장 직위해제 및 보안사 연행 후 8일 동안 혹독한 고문.
● 1988년 10월 10일 고문후유증으로 8년간 투병 중 어느 내과병원에서 별세.
○ 2003년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선정
○ 2005년 국립 현충원 안장
○ 2006년 순직 인정
○ 2015년 8월 이달의 호국인물 선정
○ 2017년 11월 22일 경찰영웅 선정 및 전남경찰청사 흉상 제막
○ 2017년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
○ 2018년 국립현충원에서 치안감 추서식 거행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1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2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3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4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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