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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홍콩수출짐꾼2” 9
배신의 꽃밭 MONKEY BUSINESS MANNER
향암 | 2019-09-06 07:54: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9. 배신의 꽃밭
MONKEY BUSINESS MANNER

많은 취급품목의 확보로 그 만큼의 접촉 상대들과 그것을 수행해주려는 직원들과 그만큼의 노력에 대해 저조한 실적으로 받게 되는 스트레스와 함께 이미 쉴 수 없는 톱니바퀴 속에 들어 있다고 여기면서 살고 있었는데 불쑥 싱가포르에서 은당진 선배님이 노보특을 보려고 홍콩에 찾아왔다.

어쩌면 상상전자를 그만두게 될 때에 은당진 선배는 중공향 냉장고 주문 2천대를 막차로 주문하고서 선적은 됐으나 신용장 결제를 못하여 대금지불이 안되는 유일한 사고를 만들어 냉장고 2,000대는 한국으로 SHIPBACK되었고 그 동안 머물렀던 부두사용료는 은당진 사장이 선사에 물어주고 돌아갔던 선배이었다.

모두 노보특이 병가 중에 일어난 일들이기도 하다. 노보특이 교통사고로 쓰러졌을 때 어찌 되었느냐고 전화도 없었던 무심한 선배이었다. 그래도 노보특은 좋았던 것만 기억해서 반갑게 맞이했다.

1)DEHUMIDIFIER

돌이켜 생각해보면 1979년 상상전자 해외본부 파견근무시절부터 해외지점 중에서는 아무도 부품수출에 대해서 관심을 안 둘 때에 은당진 싱가포르지점장은 품목다양화 거래선 다변화라는 지점평가에는 부품수출이 효자라고 하면서 실적금액 규모가 작아도 부품수출과를 격려했다.

당시 노보특 사원이 싱가포르 지점에 발령 받게 된 절친한 장율 사원과 함께 1982년 2월에 태국부터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동반 출장하면서 Compressor를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용 부품으로 수주하는 것을 칭찬했었고 그만큼 싱가포르 지점의 실적이 되자 특별히 은당진 지점장의 환영을 받았기에 비록 냉장고 불명예사고가 있었지만 과거의 존경하던 선배님으로 여기고 오늘은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다.

운명의 그 날밤, 그러니까 노보특이 해남도로 출장 가기 전날 밤에 서울로 출장 가는 길에 냉장고 상담을 위해   홍콩에 들렸다가 군대이야기를 해준 것을 노보특이 기억해서 해남도 사고 현장에서 ‘정신이 있으면 물리적 충격을 받았을 때에 눕지 말라’던 그 말대로 눕지 않아, 사실은 누울 수도 없었지만, 생명의 은인으로 기억하기로 작정하고 구룡의 바로 그 날밤 그 식당 영빈관에서 푸짐한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다. 정작 은당진 선배는 그런 말은 했는지도 기억을 못 하지만 말이다.

“어쩐 일로 홍콩에 오셨나요? 절 보러 오신 것은 아닐 것이고 좋은 사업거리라도 생겼나요?”라고 노보특이 인사를 했더니,’홍콩에 파트너가 있는데 ‘노보특 사장이 날 도와주어야 할 일이 있어 자네를 만나러 온 것이네’라고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데요?”라고 물었더니,
“꼭 제습기 완제품을 중국으로 공급할 주문이 있는데 상상전자가 공급을 못한다는 것이야.”

“그런데요?”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상상전자에서 만드는 제습기 제품으로 상상브랜드 Compressor가 사용된 것이 라야 한다네.”하는 것이었다.

“상상전자라면 저보다 선배님의 실력과 영향력이 어마어마하게 막강하시고 더구나 서울도 홍콩도 모두 선배님의 S고교와 SG대학 후배들이고 회장님과 S고교 동문이고 더군다나 지금 공장장님과는 형님 아우 하는 사이 아닌가요? 더구나 본사에는 지금 가전수출부장으로 금상로 부장이 있으니 지시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왜 저에게   부탁을 하십니까?”라고 노보특이 되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내가 그렇게 냉장고 2천대의 수출대금 Unpaid사고를 내고 SHIPBACK을 시켰는데 누가 내 말을 믿어주겠냐고? 그래서 꼭 자네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네. 내가 이렇게 부탁하겠네.”하면서 노보특의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만약에 제가 나섰다가 안되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홍콩 파트너를 잃게 된다네. 제습기가 열쇠이고 그 뒤에는 반도체도 따라 갈 것이기에 나로서는 매우 중요하고 지금의 형편에는 내 사업의 사활이 걸려있네. 그래서 내가 홍콩에 자주 오는 정도가 아니라 이사를 해야 할 지도 몰라”라고 존경하는 은당진 선배님이 애타는 얼굴로 노보특을 바라보며 말을 하는 것이었다.

“홍콩으로 이사 오신다면 남들은 제가 힘이 부쳐 선배님을 오시게 만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나 저나 이 일은 어떻게 진행하려는 것입니까? 제가 소개만 하면 됩니까?
“아냐, A-Dragon Corporation 앞으로 Master L/C를 열어줄 테니 Baby L/C를 상상전자에 열어 직거래를 해주게.”

“그럼 Master L/C는 누가 엽니까?” 
“싱가포르에서 내 회사 고압무역이 열겠네.”

“또 신용장 결제 못하면 어떻게 되죠? 이젠 저까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나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네. 날 믿어주고 도와주게.” 라고 하면서 거듭 간청할 줄 알았는데, 신용장은 싱가포르 고압무역이 바로 한국의 상상전자에 개설하고 노보특에게는 대당 US$5의 Commission을 주겠다고 하며 Commission Note를 만들어 서명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그토록 순진했던 것이다.

반드시 BACK TO BACK L/C로 하지 않으면 못 하겠다고 하면서 A-DRAGON CORPORATION이 상상전자 앞으로 신용장을 열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은당진 선배를 믿고 이렇게 찾아온 성의를 생각해서 어떻게 하든 성공시켜서 은당진 선배의 재기를 도울 생각만 했지 조금도 은당진 선배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 바보이고, 바보이니까 속는 것이었다. 일단 얘기가 거기까지 되었기에 그날은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에 노보특은 중공향 California Brand냉장고 200리터SKD를 수출하게 되면서 Spare Parts를 누락시켰을 때에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가 혼이 나서 언제나 솔직하지 않으면 노보특 에게 꼭 들킨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냉장고 설계의 오구광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단히 안부인사를 하는데, 노보특 사장이 떠난 후로는 중공향 냉장고 수출이 사라져서 자기 보직도 수출이 아닌 국판용 신형 쌍문형 냉장고 설계를 맡게 되어 집에도 제 때에 못 들어 간다고 푸념을 했다. 마누라는 언제 봤는지 기억도 없다고 여전한 엄살을 피우는 것이었다. 힘들다고 힘 나는 약 좀 보내 달라고 해서 출장 들어 갈 때마다 특별한 선물을 했던 기억이 떠 올랐다.그리고 노보특 대신에 김행수와 중국 출장을 가서 일은 안 하고 술과 여자를 탐했다는 일화도 생각이 났다.

“제습기에 대해서 좀 아시는가?”

“뭘요?”

“제습기 공급이 불가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수출이 많이 되고 있냐고?”

“아~ 제습기 수출! 그것은 이미 적자수출이라 아예 그만 사업을 접어 라인을 매각할 거라고 하던데. 왜 그래요?”

“제습기 주문이 중국에서 왔는데 할 수 없을까?”

“중국 수출? 그렇다면 가격은 미국보다 좋지 않을까요? 제가 잘 모르니 제습기 설계과장을 바꿔 줄께요”하더니, 이 과장이란 사람이 전화에 나왔다.

“아이고 노보특 선배님, 저는 제습기 설계 과장입니다. 선배님 말씀은 많이 들었는데 선배님이 손만 댔다 하면 수출이 성공되고 Capa. 부족이라고 하던데 우리도 그런 영광을 만나게 됩니까?”

“이 과장님, 저를 아세요? 이렇게 비행기 태우면 제가 어지럽습니다. 방금 듣자 하니 제습기 생산을 중단할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 중단된 것은 아니므로 지금이라도 주문이 있다면 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사업을 접겠다고 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렇게 적자가 심한가요?”

“제습기 수출이라는 게 주로 미국시장인데 미국 법인에서 이익을 다 가져가고 본사 특히 공장은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업이 접히면 저는 집에 가야 합니다. 아직 애들도 어린데 집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마지막 말이 가슴을 때렸다. 노보특은 ‘겁도 없이 완치불가가 된 몸으로도 그냥 회사를 때려 쳤는데 월급쟁이라는 직업이 처자식을 생각해서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났다.

노보특은 제습기 설계과장의 의지와 실정을 파악했기에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COMPRESSOR생산부의 명도남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제습기는 상상전자에서 처음으로 해외본부 부품수출과에 의해서 발견되고 시장개척을 해도 되겠다는 제안을 해서 만들어진 신제품이었다.

함께 공장에서 해외본부 부품수출과로 파견되어 Compressor 해외 시장을 개척할 때에 천성춘 선배는 미주지역을 노보특 사원은 비미주지역을 맡았는데 캐나다의 W.C.Wood사로부터 제습기용 Compressor의 Inquiry를 받은 것이다. Humidifier가습기는 한국에서 겨울철에 주로 사용하기에 알 수 있지만 알파벳 De-가 붙은 Dehumidifier는 몰랐던 것이다.

영한사전을 찾아보니 제습기. 가습기는 습기를 뿜어주고 그렇다면 제습기는 습기를 빨아들인다는 것인데,가습기는 Compressor가 아닌 초음파진동소자를 사용하고 제습기는 Compressor를 사용하니 냉장고와 에어컨처럼 냉각방식을 거꾸로 사용한다는 것에 착안해서 이 제품이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 시장 특히 알라스카 지역에는 필수품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
Compressor는 부품이므로 부품을 공급하려면 SET와의 결합성을 확인해야 품질 문제를 부품에게 묻지 않게 되므로 SET상태에서 Compressor를 교체해서 시험하고자 하니 제습기 견본 한 대를 보내 달라고 했고 바로 캐나다에서 제습기 한 대가 도착했다. 처음 보는 가전 제품이었다.

이 정보를 근거로 해외본부는 시장조사와 함께 제품 개발 가능성을 설계실과 함께 검토한 결과 냉장고에 비해서 너무도 간단한 구조이고 특별한 설비나 장치의 투자도 별로 들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필수 부품인 Compressor가 당초 개발사양에 고압용 HBP= High Back Pressure로 포함되어 있었기에 바로 생산이 가능했다.

냉장고용 Compressor는 LBP=Low Back Pressure/MBP =Medium Back Pressure로 중저압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상상전자 냉장고용 Compressor만 수출하려던 시절에 제습기용 Compressor가 수출되었고 더불어 제습기도 개발해서 한국에서는 여름 삼복 더위에 빨래 건조용으로 판매되게 되었고 수출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습기의 수출 시장이 당시에는 북미에만 있는 것으로 알았고 시장침투를 위해 무리한 세일즈 결과 적자수출이라,팔면 팔수록 적자가 커진다는 얘기에 노보특은 세일즈를 누가 어떻게 한 것인가라는 반문과 함께 그 원인과 내력을 알고 있기에 씁쓸했다.

물량을 키우고 이익을 키워야 법인이 자립할 수 있다는 명분을 가지고 당시 이조선 냉기사업본부장께서 미국출장 갔을 때에 담당과장이 눈물을 굵은 눈물을 흘리며 제습기 가격 특별인하를 허락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 때에는 상상전자가 미국시장에 TV나 팔던 때이니 당연히 제습기 전문업체 W.C.WOOD(1930년 설립)같은 회사와 대적하기 힘들었을 테니 가격으로 시작했나 보다.

W.C. Wood Company Limited
http://www.companylisting.ca/WC_Wood_Company_Limited/default.aspx

그러나 가격은 내려가기는 쉬워도 올라가기는 어려우므로 결국 적자사업을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제습기의 개발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노보특은 홍콩에 주재원으로 부임하자 마자 홍콩시장이 고온 다습하며 동절기에는 습기가 매우 심하다는 해양성 기후라는 점에 착안해서 제습기 수출을 시작하게 되어 공장은 제습기가 흑자사업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조직은 원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곳이어서 물량으로는 미국시장을 능가할 수 없으니 공장으로서는 소량 주문의 공작소가 아니고 양산을 위해서는 미국시장을 선택해야 했고 그래서 적자 사업으로 쇠락의 길을 만났던 것이다.

그런 Compressor관련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노보특은 생산공장에 전화를 걸어 생산 현황판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반갑게 전화를 받은 명도남 부장은 노보특이 신입사원 시절부터 같은 전동기과에 근무한 선후배이고 노보특이 해외본부 부품수출과로 옮겨서는 사실상 상상전자 Compressor의 수출역사를 쓴 장본인이기에 항상 통하는 것이 있었다.

“명 부장님, 이 달에 MH기종 생산이 있습니까?”
‘어~! 있지.”

“하루에 몇 대씩 생산합니까?”
“하루에 2,280대씩 생산하지. 왜?’

“생산현황판에 언제까지 2,280대씩 생산하게 되어있나요?
“18일까지 잡혀 있는 데 별일있어도 20일까지 종칠 거야.”

“만약에 추가 생산을 해야 한다면 20일부터 5일간 지속생산이 가능하겠습니까? ”
“전혀 문제없지 얼마든지 생산해줄 테니까 수출 주문만 많이 보내줘. 그런데 왜 그래?”라고 명 부장이 물었다.

“제습기 수출하려는 데 CAPA. 부족으로 생산을 중단하고 수출 주문을 못 받겠다고 해서 말입니다.”
“누가 그래? 지금 한 대라도 더 생산하고 더 많이 수출해야 하는데 수출을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나?’하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이어서 서울의 가전수출부 금상로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야! 덕분에 잘 살고 있는 A-Dragon의 노보특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더니,“왠 일입니까?”라고 금상로 부장이 반갑고도 당황해서 답변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다름이 아니고 제습기 수출 OFFER가능합니까?”
“이제 제습기 수출까지 해주시려고? 이제 우리는 노보특 사장님 없으면 살지 못 하겠구먼. 가능합니다 만 생산이 안된답니다.”

“누가 그렇게 말합니까?”
“누군 누구야, 생산관리부장이지. 난 아예 말도 걸기 싫다고. 무조건 가격이 나쁘다 CAPA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납기도 안 지켜주고 주문도 거절하니 수출부를 무슨 자기들 밥으로 아는 지…”하면서 전화기에다 대신 퍼붓는 것이었다.

“금상로 부장, 지금 내가 공장의 설계실과 생산과를 주욱 확인해보니 주문만 해주면 생산하겠다는 것인데 주문하려면 OFFER가 있어야 하니 OFFER를 10,000대 보내주시게. 생산과 출하 선적까지 내가 뒤에서 지원할 테니 해볼 테야? 그런데 L/C는 A-Dragon Corporation이 안 열고 고압의 은당진 선배가 여네. 브랜드는Mori이고.”라고 물었다.

“어? 은당진 선배? 내가 CAPA부족으로 안된다고 했는데 어쩌지?”
“그게 금상로 부장이고 이게 노보특이지.”라고 말하고 통화를 끝냈더니 바로 OFFER가 팩스로 들어왔다.

노보특은 바로 홍콩에 머물고 있는 은당진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OFFER와 함께 Commission Note보낼 테니 팩스번호 알려주세요.”

Commission은 Shipping Advice송부후 15일 이내에 지불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진행되어 선적되고 나서 보름이 지나도 은당진 선배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이었다.

존경하는 선배님께 ‘제 Commission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묻기도 그래서 마침 인도네시아 합작생산 공장 법인장이 된 정구주 부장도 볼 겸 싱가포르에 아내와 함께 여행삼아 출장을 떠났다.

은당진 선배는 만나자 마자 냉장고 사고외에도 Extra사고를 거창하게 싱가포르에서 쳤다고 했다.

무슨 사고이냐고 물었더니 반도체 거래 사고이고 단순대금 문제가 아닌 반도체 소속 주재원에게 뇌물을 주어 감사에 걸려서 주재원은 감봉되고 자기는 거래중지 되었다고 했다. 같은 상상그룹 후배에게 뇌물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었다. 상상맨들은 연수원에서 신입사원 연수 받을 때에 배우기를 <회사일 하면서 들어간 1원을 작다고 귀찮다고 경비정리 신청을 안 하는 사람은 회사 일하다 주운 1억원을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착복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저질렀다니 정말로 실망이 되었고 그래서 죽을 지경이라 고만 말 하는 사람에게 ‘제 Commission은요?’라고 돈 달라는 말은 못하고 헤어져 인도네시아로 날아갔다.

정구주 부장은 입사동기이기도 하고 북경출장도 같이 다녔고 만리장성도 둘이서만 지도 들고 돌아다닌 적도 있지만 막상 합작생산법인에 법인장으로 발령받고 나와보니 본사가 해주는 것도 없고 마치 합작사를 망하게 하는 것 같아서 우선 재고가 되어 녹슬어가는 수입 Compressor들을 노보특 사장을 통해 중국시장에 처분해 달라고 했었다.

이 말이 공장 본부장에게 들어갔고 홍콩법인장을 통해서 본사 해외본부에도 들어 갔기에 모두들 노보특의 전방위 인맥과 전천후활동에 기가 질리듯이 방어나 제동을 걸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새로이 냉기사업본부장으로 오신 안 상무라는 분이 한국 출장시에 공장에 들렀더니 꼭 보고가라면서 불러서 찾아갔더니, “노보특 사장이 엄청 유명하더군요. 우리가 회의만 하려고 하면 누군가의 입에서 노보특 사장을 들먹이기에 내가 꼭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노보특 사장, 사실은 내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듣자 하니 인도네시아 생산법인에 나가 있는 정구주 부장하고 절친하다고 들었는데 사업을 하다 보면 흑자가 날 때도 있고 적자도 있을 수 있는데 지금은 사업초기로 흑자는 어려운 때이고 더구나 합작사이므로 이해관계도 달라서<적정적자경영계획>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정구주 부장이 당장 사용하지 않는 Compressor재고를 노보특 사장을 통해서 매각하려고 했나 본대 처분 안해도 되니 그대로 가지고 있고 적자나 흑자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좀 전해주세요.”하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자기가 정구주 부장의 입장을 포함해서 말씀드려도 되겠냐고 물어보고 좋다고 해서 말하길, “해외합작이라는 게 국가 간의 일이고 서로 다른 회사간의 합의된 공동의 목표를 위한 것인데 현지에 나가 있는 한국사람이요 상상전자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한 것 같고 기왕이면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재고 처분을 위한 연락을 해왔고 저는 그런 입장을 고려해서 도와주고자 했으나 사양도 범용성이 아니고 더구나 여기 저기에서 두 사람이 특별하다 관계까지 들먹인다면 전혀 제가 나서서 작동할 일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더구나 그런 지시사항에 해당되는 말을 제가 전달할 사항도 아니라고 여깁니다. 아마 저에게는 상관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리는데 저는 원하지 않는 일은 시작도 안 합니다. 오히려 본부장님께서 걱정하지 마시고, 저는 제가 모셨던 분도 아니고 지금 저와 같은 소속도 아니며 저는 현재 상상전자의 바이어로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바이어가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라고 말을 마쳤다.

이런 상황을 정구주 법인장을 인도네시아에서 만났을 때에 전해주었고 두 부부가 처음으로 함께 만났었고 잘 있다가 귀임하라고 하며 작별했다.

적정 적자경영계획 하에서 편안히 주재하라고 말이다. 그렇게 비합리적으로 운용되는 경영 Know-How가 따로 있었나 보다.결국 정구주 부장은 염려했던 대로 근무성적평가에서 양호하지 못하여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데 이번에는 한국에 설립하는 이탈리아arpa회사와 업소용냉장고 생산판매합작법인 만드는 일에 관여하게 된다.

그렇게 허탕치듯이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출장을 다녀왔더니 엉뚱한 일이 터졌다.

미국식 디자인에 일본식 상표로 중국에 최초 수출된 제습기

제습기 1만대를 실어낸 상상전자는 노보특이 바이어가 아니고 실제는 은당진 사장이 바이어라고 착각을 했나 보다. 두 번째 신용장이 A-Dragon Corporation의 업무연락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상상전자에 들어간 것이다. 상상전자 금상로 부장이 OFFER를 주면 이것을 Commission Note를 첨부해서 은당진 사장의 고압무역에 전달해서 신용장이 개설되면 그것을 고압무역의 은당진 사장으로부터 받아서 노보특 사장이 상상전자에 통지를 해야 하는 업무절차를 무시하고 건너뛰었기에 금상로 부장과 은당진 사장이 Monkey Business를 만든 것이었다.

노보특은 이 사고의 정보를 누구로부터 받지 않았다. 예감으로 수상히 여기고 공장에 제습기생산계획이 잡혀 있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바로 알아냈다.

사고친 금상로 부장은 입을 닫고 있었다. 즉각 금상로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상로 부장,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 거야?”
“미안해!”

“뭐가 미안해?”
“주문을 고압무역으로부터 바로 받아서~!”

“잘못된 것을 알긴 아는군. 빨리 OFFER를 A-Dragon Corporation앞으로 지금 보내라고. 날짜를 소급하고, Documentation을 할 테니. 어차피 이전과 마찬 가지인데 신용장은 고압무역에서 여는 것이고, 나는 고압무역으로부터 Commission을 받는 것인데 이렇게 건너뛰면 상상전자가 물어줄 거야? 지난 번 것도 못 받고 있는데.”

“미안해, 은 사장님을 이젠 내가 어쩔 수가 없어.”

“뭐가 어쩔 수 없었다는 거야? 애당초부터 은당진 선배하고 금상로 부장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해결하지 못하고는 이렇게 길 터놓으니까 새앙쥐처럼 끼어들어가겠다는 것이야? 서로 신뢰가 깨졌는데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이미 개설된 리볼빙 L/C의 신용장을 중단할 테니 Rotary Compressor도 은당진 선배하고 잘 해보시지.”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조직 내에는 한 통 속들이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SG대 동문들이었다. 노보특은 일은 잘 하지만 같은 통 안에 없던 것이었다.

필요할 때는 찾고 필요 없다고 여기면 기꺼이 외면하고 과감하게 돌아서는 속내를 본 것이다.

슬픈 인생사를 또 맛본 셈이었다. 은당진 선배는 그 일로 인해서 아니 그 이전의 냉장고 SHIPBACK건에 대해서도‘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래서 이제 그 인생의 끝을 지켜보고 관찰하는 중이다. 물론 Commission US$50,000은 아직도 미결이다.  

처음 싱가포르 지점장으로 만났을 때에 함께 했던 장율 부장은 노보특을 만나면 5만불 커미션 받았냐고 웃으며 물어본다. 지금도!

그런데 노보특은 돈 내놓으라는 말을 못하고 한국에서 또 다른 일을 도와달라 해서 서로 만났고 다른 사람 특히 냉장고 UNPAID사건으로 불편해졌던 홍콩지점장 금장국 부장과도 함께 만나게 해주었다.

사실 그들은 모두 같은 SG대학 동문으로 은당진 사장이 선배이었다. 그런데 왜 그리 아웅다웅 했는지 노보특은 신기한 공부를 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고정적으로 실적이 만들어지고 이익도 발생했던 Rotary Compressor는 그렇게 굿바이 됐다. 모르는 사람들은 A-Dragon Corporation이 왜 가져간다던 주문을 안 가져 가는 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자업자득으로 만들어진 자기들의 재고를 자기들이 모르고 있던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 잘 안 하고도 월급만 잘 받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들이 똑똑한 것이고 일 잘한다고 한 노보특이 바보인 것이었다.

홍콩법인장을 하다 본사로 들어간 한강호 부장이 홍콩에 출장 나왔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만나자고 해서 카페에서 만나보니 제습기와 Rotary Compressor수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새로 부임한 홍콩법인장 감동팔도 입사 동기인데 그렇게 본사하고 일을 만들면 감동팔 법인장은 뭐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조직은 조직을 지키기 위해 노보특 사장을 경계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냐’고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라며 한강호 부장이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보특이 말하기를 ‘한 부장은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냐?”라고 물었다.

‘내용을 알고 모르고 간에 홍콩법인이 있는데 홍콩에 있는 거래선이 본사에 연락해서 OFFER를 받고 선적을 했으며 더구나 그 바이어란 사람이 홍콩법인장 입사동기인데 말이 된다고 여기느냐?’고 오히려 언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왜 그런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또는 있었는지 내막을 아느냐고?”라고 노보특이 물었다. 이어서 ‘원래   개입하고 싶지 않았고 취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금상로가 도와 달라고 해서 도와준 것인데 오히려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서 일을 스스로 풀지 않고 나 같은 사람까지 나서게 만들어 놓고 지금 와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냐’고 노보특은 강변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서로 핑퐁 치듯이 공급 못한다고 하고 비록 회사를 떠났지만 맥을 짚어서 해결해줬더니 고맙다는 인사는 못해도 체면 구겼다고 불평이나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고 노보특이 한마디를 더 보태었다.

그랬더니 ‘왜 가전출신 사람들은 그 모양이냐’고 하면서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 있는 정구주 부장까지 등장해서 Rotary Compressor를 노보특 사장에게 공급하겠다고 했다 던데 그렇게 필요하면 왜 홍콩법인에 찾아가지 않았냐’고 꼬집어 얘기하며 한강호 부장은 여전히 노보특 사장에게 탓하는 것이었다.

“먹고 죽으려 해도 없다는 물량을 내가 OB라고 홍콩법인 사무실에 찾아가면 물량이 생기고 OFFER가 나오나?   동기가 찾아가면 가격이 더 싸지는가? 이미 CAPA부족을 경험했던 사람이 그런 짓을 왜 해? 나는 상상전자 찾아가서 OFFER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내게 그런 궂은 일이나 부탁하지 말고 제발 월급 도둑들이나 안 되길 바란다.”고 노보특은 말해주었다.

그런데 한강호 부장은 여전히‘제발 심사숙고해서 처신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보특은 “회사 안에 있는 사람들만 입사 동기이고 퇴사한 사람은 입사동기가 아니냐? 무슨 G고교나 SG대학교 동창만 입사동기로 치느냐? 뭘 좀 제대로 알아보고 충고를 하던지 지적을 해라.”라고 더 대꾸해주었다.

그래도 홍콩에까지 찾아와 얘기해줘 고맙다며 한 부장과 노보특 사장은 서로 악수하고 헤어졌다. 그러니까 하필 그 동기들이 같은 G고교에 같은 SG대학동문들이었기에 한 패거리로 처신하는 월급도둑들이라고 노보특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나 한강호 부장이 전해준 얘기가 회사 안에 돌았던 적어도 금상로 부장이 사실 고백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론화된 분위기를 대변한 것이라고 이해를 했다. 그렇다고 ‘그게 아니고!’ 라고 방송을 하거나 신문광고를 낼   필요는 없다고 여기었다.

언제나 그들은 스스로 같은 고교나 대학 출신들이 뭉치듯이 패거리를 지어 갑이라는 착각 속에서 조직 대 개인으로 상대할 것이고, 대한민국에서는 대법원에 가도 상상전자는 사과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해남도 출장 교통사고로 완치불가의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산재보험금도 상해보상금도 위로금도 없이 사표 쓰고 나가는 노보특을 바라보지도 않던 조직이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모두 홍콩의 고급 호텔에도 있을 화장실 정화조통에 담아 버릴 인간 쓰레기들이라고 속으로 욕을 해버리고 싶었다.

이미 그 때에 홍콩은행에서 소개한 한국 최고의 K&J법무법인에서 말해주기를 ‘한국에서는 개인이 상상전자와   법적 상대를 하면 이길 수 없다며 잊으시라’고 했던 일을 1989년 사표 내고 나서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2)LCDVP

그렇게 뒤숭숭한 일을 겪고 HVT세일즈로 매주 중국 출장 다니면서 원적외선사우나와 노래반주기를 Package로 묶어서 열심히 판촉하고 있었는데, 홍콩에 있던 한강호 부장 후임으로 와 있던 감동팔 법인장은 도저히 홍콩주재 접대생활이 힘들다고 청원해서 본사로 들어 갔고 후배로 노보특의 사촌 동생 친구가 나왔는데 한참 경기가 부진해서 상상브랜드 대리점이 없어졌다. 계약을 연장하거나 새로 지명을 해야 하나 본대 상호 조건이 안 맞아 못하고 있어 시장에는 상상브랜드 제품이 없어진 결과가 이어지고 있었다. 힘들다고 들어갔다던 동기 감동팔은 미리 다른 일을 준비했나 보다. 결국 자기가 홍콩에서 데리고 있던 현채인을 독립시키고 그 회사를 통해 상상전자의 휴대폰 생산기술을 몰래 빼돌려 중국에 넘겨주다 한국 수사기관의 조사를 호되게 받고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고생했으니 없던 일로 사면된 셈이거나 그 정도로 여기고 잘 살고 있고 잘 처신하고 있는 건지 그들이 모두 같은 동문들이었기 때문에 무사한 건지 여전히 그들은 끼리끼리 잘도 어울린다. 그래서 그들이 바로 우리 나라의 적폐청산 대상이 되고서도 반성 없이 지금도 활개치고 다니는 것이 아닐까? 임원까지 출세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다시 한강호 부장이 승진하여 법인장으로 발령 나서 홍콩에 왔다.

매일 밤 동기라고 불러내어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이번 부임에는 가족 없이 혼자 나왔기에 더욱 쓸쓸했는지 그랬다. 노보특은 한번 대접받으면 갚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겠고 건강도 그렇고 매일 이전처럼 끝까지 함께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여기어서 점점 둘이 만나는 술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법인장의 부하인 홍창홍 과장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노래방 반주기를 법인장님이 잠깐 빌려오라는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빌리는 게 어디 있어? 한 대를 사가 야지!’

그래도, 동기라고, 필요한 것 같으니 새 걸로 빌려주었다. 한달이 지나도록 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래방 반주기를 만든 한국의 제조회사 반도규 사장과 상상전자가 합작개발을 하여 노래방 반주기 중에 중국노래만 300여 곡의 회로를 상상전자 CTV에 넣어 China Marketing을 해보려는 것이 홍콩법인장의 아이디어였나 보다.

그래서 노보특으로 부터 빌려갔던 그 견본으로 삽입곡의 제목과 가사 그리고 작동시의 BUG등을 선별해서 개발용 견본으로 삼았던 것이다. 반칙이다.

그도 원칙을 논할 자격이 없는 Monkey Business Man이었다. 이런 사실은 그 때는 몰랐고 몇 년 후에 서울에 인터넷 회사에 컨설팅 하러 갔을 때에 처음 노래방반주기를 알려주고 반도규 사장에게 소개해준 고종 사촌 동생 상희가 말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

그토록 요란하게 깃발을 올렸던 상상전자의 노래방 기기 겸용 CTV는 사업은 실패된다. 그 결과로 한강호 법인장은 다른 근무지로 이동을 하고 경고를 받았다.

중국시장향 신제품 개발에 대해서 CTV의 실패사례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구성하여 LCDVP를 개발한 AUDIO사업부가 바짝 얼어 있었고 중국시장의 모든 세일즈 맨들이 고민을 하고 있었나 보다.

갑자기 상상전자 여러 사람들이 저녁에 보자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모두 블록미팅을 하러 홍콩에 출장나온 본사와 중국지점 주재원들이었다.

불러 준 것이 고마워서 저녁을 먹고 난 후에 9시경에 완차이 JAFFE ROAD에 있는 한국 단란주점인 CLUB VENUS에 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었다.

장율 부장, 이장봉 과장, 안호선 과장 외에 중국내 지점 주재원들이 하는 얘기는 한달 이상을 세일즈를 했는데 수주가 안되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노보특이 궁금해서 ‘무슨 제품인데 세일즈를 해도 주문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이야?”라고 물었더니 상해지점에 있다가 본사로 들어가서 영상기기를 수출하고 있다는, 노보특에게 평생동안 형님으로 모시겠다던, 이장봉 과장이 답을 해주었다.

“그게 요즘 이런 클럽이나 가라오케에서 주로 사용하는 걸 LASER DISC PLAYER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본이   거의 30년 가까이 12인치 직경의 영상음반을 재생하는 것인데 이걸 압축하여 CD와똑 같은 크기의 DVD가 곧 세상에 나올 텐데 그 이전에 우리가 기존의 LD는 물론 음악만 있는 CD는 물론 같은 크기의 영상음반이 VCD까지 재생할 수 있는 영상음반 복합재생기로 LCDVP를 개발했습니다. 양산준비가 되어있는데 주문을 못 받아   해외본부가 곤란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맡고 있는데?”

“제가 본사에서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장율 부장님이 제가 모시는 부장님이고요”라고 했다.

“어떻게 두 사람이 함께 일하게 되었네.장 부장님은 좋겠습니다. 똑 부러지게 일 잘하는 이장봉 과장이 모신다고 하니 맘 놓아도 될 것입니다.”라고 노보특이 말하자, 장 부장이 “노보특 사장도 한번 주문할 수 있나 알아봐.’라고 했다.

그러자 이장봉 과장이 “형님이 할 수 있다면 특별히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정말 내가 해도 돼? 가격이 얼마인데?”라고 묻자 가격도 이장봉 과장이 말해주었다.

그 밤은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아무도 술도 더 마시자고 안 하고 노래도 안 부르는 그런 분위기로 있다가 헤어졌다. 집에 돌아온 노보특은 미스터 프랭키에게 전화를 했다.

간단히 제품을 설명하고 해볼 의향이 있는 지를 물어보았다. 미스터 프랭키는 알아보겠다고 하며 ‘굿나잇’을 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미스터 프랭키가 전화를 걸어왔다. “할 수 있으니 바로 OFFER를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출장자들의 호텔전화도 몰랐지만 이미 그 시간은 홍콩법인사무실에 모여 있을 시간이라 법인사무실로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으나 바꿔줄 수 없다는 RECEPTION에 메모만을 이장봉 과장 앞으로 남겨두었다. 오후 3시가 넘어서 이장봉 과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형님, 전화를 못 받아 죄송합니다. 난리가 났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무슨 난리?’

“어제 밤에 듣고 보셨듯이 아무도 수주 확정된 게 없다던 주문이 오늘 아침에 회의를 해보니 가능성으로 등장한 수량이 20만대입니다.다들 입다물고 눈치보고 있었나봅니다. 그런데 공장에는 알고 보니 1만대도 양산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해서 물량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대책으로 L/C를 여는 순서대로 채택을 하되 납기는 미확정이라 연말까지 6개월 이상의 EXPIRY를 주어야 합니다.”

“아니 양산 준비도 안되었다는데 납기 미확정으로 L/C를 먼저 여는 경우가 어디 있냐?”

“아무튼 그리 아시고 제가 서울에 가서 연락을 드릴 테니 기다리면서 대비하세요”하고는 전화를 끊는 것이었다.

일단 상황을 미스터 프랭키에게 전달했더니 웃으면서 별일이라며 해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꼭 해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괜히 말을 꺼냈나 싶다는 염려와 함께 일단 기다려보자고 생각했다.

사흘이 지나서 OFFER가 팩스로 흘러 들어왔다.

역시 이장봉 과장이 말 했던 대로 연말까지 S/D선적일자에 E/D유효일자는 내년 1월 말 까지로 L/C를 열어 달라는 문구가 있었다.그래서 노보특은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

“이장봉 과장, 정말로 공급은 되는 거야?”라고 물으니 “형님 정말로 한국인은 형님뿐입니다. 제가 많이 곤란합니다. 형님을 도와드려야 하고 제가 한 말을 책임져야 하는데 상황이 여간 안 좋습니다. 정말로 하시겠다면 꼭 공급을 해드릴 테니 그렇게 신용장을 열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언제쯤 선적할 수 있다고 보는가?”

“아마 3개월 내에 해결되기를 바라는데 가능하다면 두 달 후에 실어드리겠습니다. 지금 매일 음향사업부 구매팀들이 비행기타고 일본에 출장 간답니다. 그렇게 부품제조업체에 찾아가서 사정하여 부품을 한 움큼씩이라도 집어오듯이 LASER PICK-UP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 부품을 10만개 주문했다고 발표하고 해외본부를 압박했는데 실제로는 1만개 밖에 주문 안 했고 그것도 납기가 멀어서 지금 비상이 걸린 것이랍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일단 알았다고 하고서는 미스터 프랭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스터 프랭키는 상황이 그러면 상상전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당차게 10,000대의 주문이 Master L/C로 California Trading Company에서 A-Dragon Corporation앞으로 열렸고 Baby L/C의 Hua Chiao Commercial Bank가 개설은행이 되어 상상전자 앞으로 열렸다. 한 달이 지났을 때에 이장봉 과장이 약속대로 이 달말에는 실어드린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노보특은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겸해서 한국으로 출장을 들어간다. 일단 바이어였기에 장율 부장도 이장봉 과장도 환영을 해주어 대접을 잘 받았다.

‘상황은 정말 어려워도 꼭 지속 공급을 할 테니 리볼빙 L/C를 열 수 있냐?’고 물어왔다.

L/C는 파트너사와 같은 화교상업은행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 기분 좋게 헤어져 홍콩으로 돌아왔다.

금액도 컸기에 화교상업은행에서 또 축하한다고 해주었고 소원대로 상상전자 새로운 상품을 취급한 미스터 프랭키도 만족해했다.

요란하고 오래 기다렸던 1차 선적이 완전히 거래가 끝나고 제대로 리볼빙 L/C를 준비해서 개설했는데 며칠 후에 화교상업은행의 매니저인 Mr.HO가 연락을 해왔다. 신용장이 상상전자에서 되돌아왔다고!

무슨 말이냐?고 대꾸하고 바로 화교상업은행에 가서 보니 상상전자가 취소불능신용장을 신용장 개설은행에 반송한 근거를 모두 보여주는 것이었다.

Mr.HO는 ‘개설된 신용장이 거래없이 유효일자가 지나거나 선적일자를 수정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최소불능신용장을 그것도 상상전자 같이 큰 회사에서 반송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매우 당황하고 매우 실망하는 안색이었다.

노보특은 바로 이장봉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형님 죄송합니다.”만 연발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제가 죽일 놈이 되었습니다.’라고 하면서 “장 부장님이 서울에서 뵙고자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일단 상황을 미스터 프랭키에게 전달하고 서울에 다녀온 뒤에 보기로 하고 서울로 들어갔다.

장율 부장은 “사무실에 오지 말고 밖에서 보자”고 하더니 시간도 이른데 퇴근했다며 태평로 길거리로 나왔다.

바로 택시를 타자고 하더니 이태원의 단골 술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택시 안에서는 노보특의 손을 꼭 잡으며 꽉 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무 말 하지 말고 나를 욕해라~! 이 과장은 잘못이 없어. 내 책임이야. 오늘은 아무 말 하지 말고 옛날에 우리가 처음으로 1-2-3에서 맥주를 마실 때처럼 술만 마시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술 자리는 둘이 각각 양주 한 병을 마시고는 노보특이 “정말로 아무 말 하지 마? 이건 비즈니스야. 취소불능신용장을 반송하면 내 회사는 어찌되는 줄 알아?”라고 묻자, “거기까지는 내가 모르겠고 알아도 어쩔 수 없고 무조건 나를 욕해. 그리고 부디 홍콩에서 잘 살고 있어. 나중에 내가 찾아가도 재워 줄 수 있게 말이야.” 하는 것이었다.

더 말 할 수 없고 말해야 감정만 생길 것 같고 노보특은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으나 술이 약해진 장율 부장을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자리를 끝내고 택시를 잡아 집으로 보내주고 노보특은 가까운 여관으로 혼자 발길을 돌렸다.

태풍을 못 이기고

홍콩에 돌아온 노보특은 미스터 프랭키와 화교상업은행의 Mr.HO를 만나 상상전자의 공급 능력에 문제가 생겨서 주문량의 10%만 공급 가능하게 되어 강제배분하는데 우리에겐 공급이 연말까지 불가능 하다고 판단되어 아예 신용장을 반납한 것이라고 적당히 둘러대고 사과를 했다.

California Trading Company 미스터 프랭키는 전화 위복이 되도록 다시 더 다른 것을 찾아보자고 했으나 화교상업은행의 Mr.HO는 더 이상 BACK-TO-BACK L/C FACILITY는 A-Dragon Corporation앞으로 더 줄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노보특은 오랜만에 유차진 향우회 선배님을 찾아갔다. 서울에 다녀왔다고 하고는 신용장거래를 해야 되는데 은행을 변경해야 하겠다고 하니까 홍콩에 나와 있는 한국계 은행이 많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K은행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A-Dragon Corporation의 노보특 사장에게 잘 해주라고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K은행 홍콩 지점을 찾아가니 고 지점장이 담당과장을 소개하면서 잘 해드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 때부터는 한국계 K은행을 모든 신용장은 물론 T/T거래까지 이용하게 하게 된다.그리고 K은행   홍콩지점의 과장이 새로 발령 나면 후임자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노보특 사장님이 홍콩에서 무역을 할 경우 은행 문제는 없도록 해 드리라는 전언을 인계인수 사항으로 지켜지게 된다.

사실 MADE IN KOREA제품만을 한국에서 홍콩으로 수출하는 노보특의 입장에서는 Back-To-Back의 MASTER L/C는 어디에서 받더라도 ADVISING BANK만 홍콩의 한국계 K은행 홍콩 지점으로 하고 BABY L/C는 거의 모두 한국으로 개설하므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 후, 두 달쯤 지나서 갑자기 중국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안호선 과장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홍콩 변두리 여관 같은 작은 호텔에 있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 동안에 중국내 영업 지점들의 위상과 서열이 좀 바뀌었다고 하면서 그 때 홍콩 완차이 CLUB VENUS에서 만났을 때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는데 각 지점 간의 알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번에 LCDVP의 CAPA 배분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되어 노보특 사장이 희생양이 되었다고 뜻밖의 애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물었더니, ‘중국내 각 지점들이 실제 주문보다 부풀려서 보고했고 자재는 없다고 하여 당초 보고 수량대비 일정한 비율로 감축해서 실제공급을 정하다 보니 각 지점 간에 싸움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임원들까지 개입하여 여러 가지 변수로 정리할 때에 사실 노보특 사장은 그래도 할 수 있는 양이라서 부풀리지 않았기에 감축도 할 필요가 없는데 한강호 법인장이 ‘왜 저 거래선은 손을 안 대느냐’고 반문해서 마침 중국총괄사장께서 지적하여 감축하다 보니 존재도 없게 되어 취소된 것으로 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장율 부장이 회의 전에 복도에서 부장들에게 모두 CALIFORNIA로 된 거래선이 사실은 노보특 사장의 것이고 100% 공급해야 하는 것으로 리볼빙 L/C가 이미 열려 있는 거래선이므로 감축도 없고 질문도 않기로 다들 약속했던 것인데 한강호 법인장이 약속을 깬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안호선 과장은 현금으로 미화1,000불을 내어 놓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깜짝 놀라면서 “이게 무슨 돈이냐?”고 물었더니 지난번에 북경에 와서 노래방반주기를 한 대 맡겨 놓고 갔는데 이번에 이삿짐을 쌀 때에 다른 사람에게 팔았고 그 때 말하기를 US$1,000은 소매가가 되어야 한다고 한 것 같아서 그렇게 받아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들었던 얘기를 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모르겠으나 그런 일이 있었기에 서울에서 만난 장율 부장이 아무   말 하지 말고 자기를 욕하라고 했나 보다고 생각하면서 안호선 과장은 고마운 친구라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가며 별 생각들이 다 떠올랐다. 언제인가 해외본부에서 한강호 동기를 만났을 때에 서로 그렇게 반갑게 잘 지냈는데 왜 지금 이렇게 틈이 생겼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처음 수출부에서 만났을 때에는 한강호 사원은 수출부 같은 Front Office Job이 아닌 Back Office Job의 지원부서 근무중이었다. 노보특은 공대출신이지만 한강호는 인문계 출신이고 대학원 출신이었던 것이다. 학교도 명문 G고교를 나와서 회사내에 동문도 많았지만 후배를 거느린 동기이었다. 그런데 대만 지점장으로 있을 때에 김행수 대리를 대만으로 보내고 찾아갔을 때에 우연히 안호선 과장의 얘기가 갑자기 나오더니 매우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보특이 ‘사람은 여러 종류이니 업무적으로 일하는 회사에서는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베풀어 주는 것이 상식이 아니겠냐’고 했더니 그래도 불평하며, 왜 두둔하느냐?고 묻기에 같은 동향이라고 했더니 그럼 안호선도 전라도냐? 물어왔다. 그렇다고 했더니 더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노보특 사장도 전라도 출신이란 것을 한강호 지점장이 잠시 깜박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개 노보특을 서울사람으로 보고 서울의 S고교 출신으로 그것도 S대 출신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서울에도 홍콩에도 있었다. 군대에서도 그랬다. 왜 그런 지는 모른다.

노보특은 전라도 출신임을 문제로 여기지 않으며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말 속에 ‘거시기’가 아닌 ‘암시랑 안 해’라는 진짜 전라도 사투리를 섞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지역차별이 여전한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노보특이 다정다감하게 다가 가서 연락을 먼저 하던 성격이라 한강호와는 사원시절부터 서로 반가워하는 사이였기에 한강호 부장과는 홍콩에서도 자주 함께 유흥장소에도 어울렸는데 공교롭게 노보특이 퇴사함으로써 대만에서 홍콩으로 옮기게 된 연유가 되었고 모든 거래선들에게 부임 인사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가전거래선들이 노보특만 찾는 것에 맘이 상했을까? 그럴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노보특이 반칙을 한 것이 아닌데 왜 인식을 달리 하면서 서로 절친한 장율 부장이 부탁까지 했는데 왜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앞으로 너무 가까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홍콩에 근무할 때에 너무 자주 노보특과 어울려 늦게까지 술을 마셨으나 사는 집이 노보특과 같은 아파트라서 한강호 법인장을 집에 데려다 준 날에 못 볼 것을 보았다. 소문에 술 먹고 들어가면 마누라한테 혼나고 문 안 열어주어 문밖 신발장 위에 쪼그려 잔다고 들었지만 농담으로 여겼는데, 굳이 자기 집에 들어가 한잔 더하자고 해서 집까지 갔는데 안에서 문을 안 열어주는 것이었다. ‘친구가 좋고 바깥이 좋으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목소리가 아파트 복도까지 들려 나왔다. 그래서 노보특이‘저도 왔습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라고 해도 ‘안 열어줄 것이니 그냥 돌아가세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반시간 이상을 문밖에서 기다렸다가 노보특은 집으로 돌아오고 한 부장은 다시 술집으로 간다면서 구룡으로 간 적이 있었다. 한강호 부장은 그렇게 아내에게 쥐어 있었다.

평소에는 두 사람이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대만에서 있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게 된다. 김행수 아우가 막 대만지점에 부임해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에 본사에서 높은 분들이 두 분 출장 나오셔 공항 마중을 둘이 나가 정중하게 모시고 고급요정으로 갔다고 한다.

막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바로 옆에 서비스하는 대만아가씨에게 중국어로 예쁘다고 하더니 ‘할래? 라고 물으니 ‘뭘?’하고 답이 돌아오자 바로 껴안고 옷 벗기더니 그 자리에서 알몸으로 뒹굴었다 라는 것인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말리지 못하고 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두 남녀의 알몸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그냥 일어나 옷을 입고 술과 음식을 모두 즐겼다는 것이었다.

아직 술 한 방울 입에 안 댄 상태에서 말이다. 술 자리에서 더러 게임을 하고 옷 벗게 하는 일이 있다고 하지만 지엄한 상사들을 모신 자리에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대단한 사람일까? 아니면 괴물일까? 도대체 그 상사들은 왜 그냥 지나쳤을까? 듣는 순간 기절초풍할 일인데 ‘네 사람은 영원히 출세보험을 든 셈이었겠구나’ 라고 아우에게 말해주었다.

김행수 아우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원래 워낙 대강대강 허허실실 만사형통의 성격이라서 말이다. 그 일화를 오늘 이렇게 다시 되새기게 될 줄이야. 한강호 부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고, 바보가 아닌 기인이라고 노보특은 생각했다. 함께 어울리기에는 한계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뭣만도 못한 뭐라고 생각도 해 보았다. 대개 세상은 그런 기인 같은 사람을 박력 있다고 여기면서 돋보이게 하거나 돋 보여 지게 사는 것인가? 라고 생각도 해보았다. 정말로 이 세상에는 똥 묻은 뭐가 겨 묻은 뭐를 나무란다고 하듯이 도대체 정답이 없는 우주삼라 만상의 세상이라 고도 생각이 되었다.

그러니 우울하고 억울한 일들도 있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한강호 부장도 어쩌면 살아있는 부처로 봐야 되겠다고 여기며 생각을 덮었다. <계속>

향암 (香庵)

홍콩 2B1 Limited 회장
홍콩 A-Dragon Corporation 창업, 1989.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과학기술산업융합 최고전략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SPARC 수료 논문 [출판시장의 변화와 전자책의 미래연구] 발표로 장영실상 수상, 2018.8.

필명: 향암香庵~작품속 가명 노보특 (Robert영어이름 대용)

연재소설 [홍콩수출짐꾼2]는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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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번째 유엔의날 <문재인 대통...
                                                 
[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홍콩...
                                                 
야만적인 수학능력고사 언제 끝날...
                                                 
김사복, 5.18 진상을 세상에 알리...
                                                 
왜 당신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시나...
                                                 
공기업 적자, 정치인-자본-관료의 ...
                                                 
美 합참의장, 방한 앞두고 지소미...
                                                 
[연재] 위안부가 있었던 시대 - 4...
                                                 
여수·순천10.19사건(여순항쟁)을 ...
                                                 
강제징용 귀국선 1호 폭침, 원인은...
                                                 
김대중평화센터 일본후원회, 김대...
                                                 
유승민 물러난 ‘변혁’ 안철수 모...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에…
                                                 
그 때도 그랬지
                                                 
[이정랑의 고전소통] 미우주무(未...
                                                 
이제 눈을 들어 국가경영 전체를 ...
                                                 
[칼기노트 20] 팬암 103편 사건과 ...
                                                 
안병하 공직자 바로 세우기 운동본...
                                                 
[오영수 시] 자재암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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