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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홍콩수출짐꾼2” 10
고문님의 은덕 LP GAS BOILER
향암 | 2019-09-09 14:27: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0. 고문님의 은덕
LP GAS BOILER

때는 홍콩의 100년 조차가 끝나고 영국의 식민지 100년을 종식하고 중국으로 주권이 이양된 1997년 7월 1일도 지났고 불안 불안했던 경기 부진의 파장은 홍콩에 1997년 9월부터 동남아의 외환위기가 감지되더니 기어이 그 불똥이 한국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른 바 IMF외환위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홍콩에 사는 한국인, 홍콩에서 한국제품을 수출하는 노보특에게는 직격탄이 되었다.

그 동안 열심히 거의 매주처럼 중국 광동성으로 출장 다니며 전자렌지용 부품들을 수출했던 사업도 부진해졌고, 북경부터 시작되어 상해를 중심으로 화동지역을 비비고 북쪽으로 연길을 비롯하여 흑룡강성 하얼빈을 비롯하여 남쪽으로는 해남도 해구시까지 노래방기기와 원적외선사우나를 세일즈 했던 그 기력도 효과도 지지부진해지면서 결국에는 1인 무역상에게는 고통의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국출장을 중단했다.

그렇게 사무실도 축소되고 중국내 4개 지점도 모두 취소를 하게 되었고 Miss BALI만 홍콩 A-Dragon Corporation에 남아 있었다.

홍콩의 주권은 1997년 7월 1일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72851&cid=43792&categoryId=43801

IMF외환위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82626&cid=47322&categoryId=47322

한강의 야경

과연 무엇으로 다시 한국인들이 한국상품을 가지고 중국 평원을 누빌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연구하고 있었다.그럴 때에 중국에서 가장 잘 산다는 광동성 그 중에서도 가장 부유하다는 순덕시의 고객사인 만가락 萬家樂WANJIALE에서 왜 출장을 안 오냐는 연락이 들어왔다. 이제 중국은 한국이 공급하던 전자렌지 생산용 부품은 MAGNTRON을 제외하고는 HVT까지 다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할일이 없어져 출장을 중단했다고 하니,일단 출장 오면 새로운 일이 기다릴 것이라고 놀러 라도 오라는 것이었다. 일 없이 놀러 갈 입장은 아니라고 여겨져 안 가고 있었는데 거듭거듭 세번이나 연락이 오는 것이었다. 출장 오면 먹여주고 술 사주고 재워줄 것이라고 개발부장이 전화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갔다.

늘 다니던 대로 구룡 China Hong Kong City Ferry Terminal에서 CKS Express Ferry 주강 쾌속선을 타고 한 시간 반을 바다와 강을 달려 순덕시 용기부두에 내렸다. 예전에는 노보특이 택시나 계약된 자가용을 대절하여 적어도 한 번 출장에 두 군데 이상의 공장을 방문하기 위에 차 트렁크에 한 개에 4~5Kg씩 하는 HVT를 적어도 4개 이상 싣고 찾아갔던 출장인데, 그날은 만가락에서 수석부사장과 개발부장과 구매부장 그리고 신용장을 열어주는 회장의 처남이 홍콩에서 먼저 들어와 있다가 부두로 밴츠500을 두 대나 몰고 마중을 나와 있는 것이다.

노보특은 신기하기도 하였고 이 사람들이 무슨 일인데 이러나 싶으면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공장의 직원식당 VIP Room으로 들어섰다. 그 VIP Room은 중국의 이붕 총리가 왔을 때 식사한 곳이라며 총리가 앉았던 자리에 노보특을 앉게 하는 것이었다. VIP Room은 직원식당의 2층방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들은 얘기는 이번 한국의 외환위기는 중국과도 연관이 있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연관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연관성과는 좀 다른 것이다.

그 동안 중국은 수교 이전부터 한국인들이 보다 많이 그리고 한국제품들이 더 많이 중국에 들어오기를 바랬었다. 바라기는 하지만 돈이 없다가 아니고 가격이 비싸다. 자기들은 기술이 없으면서도 자기들이 만들면 절반 값도 안된다면서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중국에 공장을 지어야 한국상품 즉 한국의 중국 수출이 실현되고 지속될 것이라면서 수 많은 Korean Business Man들이 중국을 찾아오게 하고 이내 실망하고 속고 돌아온 그 사례들이 한국의 IMF외환위기의 영접에 일조를 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의 입지가 대북 문제와 대 중국 교역의 중요성 때문에 그런 직설적인 표현을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볼 때에는 이전보다 IMF외환위기가 터져서 한국이 어려워지게 되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었고 그래서 마중을 나가서라도 불러들이고 어려운 한국경제여건으로 기술이나 제품을 더 저렴하고 유리하게 구할 수 있다는 상술이 바탕에 깔린 것이었다.

음식은 거의 고급 중국 식당의 요리 수준이었다. 맛 있는 음식을 대부분 먹고 거의 끝 순서로 흰 쌀죽이 나왔다. 죽 한 그릇씩 나눠 먹으면 점심식사는 끝나는 것이다. 대개 상담은 이 식사시간에 식탁에서 이뤄지는 셈이었다.

드디어 수석부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 만가락이 현재 중국에서 샤워용 온수기 제조업체순위가 모든 면에서, 특히 수량면에서 시장점유 일등인데 앞으로는 동북지방을 중심으로 한국과 같이 난방을 할 수 있는 온수보일러 생산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한국에서 수입해야 하고 기술을 배워야 할 텐데 우리가 아는 한국인, 그리고 믿을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한 분 노보특 사장님뿐입니다. 그래 오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 가격입니다. 싼 가격을 받아 달라는 것입니다.”

노보특이 답변을 했다.

“이렇게 저를 생각해주고 믿어 주신 다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저는 주로 전자레인지용 전기부품공급을 했고 가스 온수보일러는 잘 모릅니다. 오히려 작년에 우리가 함께 한국에 가서 상상전자의 전자렌지 생산공장을 견학하고 이어서 여러분들이 연락해둔 S가스 보일러 공장을 오히려 따라갔었는데 이미 그 공장과 연락이 되고 있을 테니 직접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부품 몇 개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고 장차 생산을 도모할 수 있는 기술과 부품 공급을 보장받아야 프로젝트가 성사되는데 그럴 라면 노보특 사장님 같은 분이 우리를 도와주어야 합니다.”라고 수석부사장이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다면 저 같은 가스보일러 문외한도 할 수 있다고 여깁니까?”라고 노보특이 되물었다.

“그러믄요. 노보특 사장님은 충분히 해낼 수 있죠.”

“그렇다면 이미 연구를 했을 테니 사양과 수량과 희망가격을 말해줄 수 있습니까?”라고 노보특이 벼랑 끝으로 몰아 보았다. 통상적으로 수입하는 바이어가 말 해주지 않는 사항을 물어본 것이다. 수석부사장은 노보특 사장을 믿어서 그랬었는지, 노보특 사장이 가스보일러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겨서 그랬는지 몰라도 모두 답을 해주었다.

당연히 수량은 부풀려 있었을 것이고 가격은 매우 낮게 불렀을 것이라고 감안하고 “그러면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상담 겸 점심 식사를 끝냈다.

그래서 항상 친구처럼 아우처럼 옆을 지켜주는 리빙李冰개발부장이 한마디를 보태었다. 오랜만에 왔으니 순덕에 맺어 둔 의형제 아우인 미스터 아우도 저녁에 만나 술도 한잔하고 내일 홍콩으로 돌아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좋다고 대답하고 일어났다.

노보특은 건물 밖으로 나와서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그토록 아껴주셨던 이조선 본부장님 아니 이제는 현직에서 은퇴하고 대학에 특강을 하시는 노보특 마음 속의 고문님께 전화를 드렸다.우선 오랜만에 문안 인사를 드리고 지금 중국에 오랜만에 출장 들어와 있는데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고 해서 상담 중인데 찾는 것이 가정용 LP가스보일러인데 어느 업체를 잡아야 할 지 한번 살펴봐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홍콩에 돌아가서 다시 연락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 날 밤에는 이빙 부장과 함께 열 살 아래 미스터 아우를 순덕시 고급 해물요리식당에서 만났다. 처음 순덕 만가락 MWO프로젝트 관련하여 공장을 방문했을 때에 만가락 소속이 아닌 젊은 사람이 합석을 하여서 의도적으로 노보특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특히 나이 들고 계급 높은 사람들이 그의 눈치를 슬슬 보기에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부인이 순덕시 세무국장이라는 것이었다. 자기도 공산당 간부이었는데 중국의 개방정책 발표와 함께 자기는 사표를 내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공식적으로는 만가락에 쓰이는 온수기용 부품의 외주임가공업을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기업의 세무관련 해결사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만가락에서는 소개할 때에 인민은행의 주요인사라고 했지만 사실상 그는 공식 직함이 없는 막강한 존재이었고 나중에 친해지니 하는 말이 열 일곱 살에 공산당에 가입했는데 시험 쳐서 가입을 받아주는데 자기가 수석이었다로 했다.

그때부터 지금의 아내와 사귀었지만 자식은 딸 하나이고 자신은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노보특에게 빨리 중국어 보통화 Mandarin만다린이라도 배우라고 했지만, 노보특은 어서 아우가 한국어나 배우라고 하면서 서로는 그렇게 보통화 중국어로 의사 소통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노보특 사장의 얼굴 표정과 눈동자를 보면 중국어를 다 알아듣는 것 같은데 왜 말하지 않느냐고 한다. 노보특은 몇 마디 밖에 몰라서 한 마디 말하면 안 들리는 말이 더 나오니 영어로 하자고 했다. 광동성 시골에는 영어 잘 하는 사람들이 상해지역이나 북경지역보다 적었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미스터 아우가 속에 있던 말을 했다. 2년 전에 자기 공장 건물과 토지 5,000평방미터를 줄 테니 중국에 들어와서 지금 독점적으로 팔고 있는 전자레인지용 HVT공장을 지어보라고 했다. 노보특은 안 한다고 했다. 노보특은 홍콩에서 무역으로 에이전트를 하는 사람이지 공장에 있으며 생산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장을 갖고 있지 않아서 기술을 안 가지고 있고 기술은 변하는 것이라 지속개발 실력이 없으면 공장이 바로 발을 묶게 될 것이라면 공짜로 주어도 중국에 들어와 공장을 운영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 때에 하도 졸라서 홍콩 A-Dragon Corporation의 China Manager라는 명함을 파주고 상상전자 Magnetron Sales Team이 중국에 왔을 때에 미스터 아우도 함께 일주일간을 광동성 상담출장을 동행시켰다. 자기 눈으로 노보특의 고객인 광동성 10개 공장을 보도록 한 것이다. 일주일간 낮에는 상담 한 두건을 하면서 이동하고 밥 사 먹고 밤에는 술도 마시고 다닌 거리는 중국 지도를 A4용지로 축소한 경우에 그 거리가 1cm에 불과했다.

이 사실을 상상전자 과장에게 보여주니,‘아이고 선배님, 저는 다시는 중국에 안 오겠습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영국에 가서 세일즈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니 본사에 얘기해서 Magnetron 독점을 A-Dragon Corporation에 지정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받은 독점권인데 나중에 광동성의 가장 큰 고객 하나는 상상전자가 직접하겠다고 한다. 그들이 그토록 절친했던 동료이고 상상맨들이었다. 그들 과장과 부장이 모두 SG대학 동문들이었다. 노보특은 그걸 ‘의리 없는 배신’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출장을 동행했던 미스터 아우는 해석이 달랐다. 가는 곳 마다 모두 노보특이 취급하는 HVT가 있어야   전자렌지 생산이 가능하니 공장을 중국 광동성 순덕에 짓기에 충분한 사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10개 공장을 다 둘러보았으니 연간 전체 생산 예정량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인데 공장 규모, 생산 Capa,작업자 수 등을 산출하여 그에 따른 월간 경비와 자본금 등등을 뽑아 보라”고 했다.

미스터 아우 왈,‘그런 걸 왜 미리 계산합니까?’라며 중국은 만들면 언젠가는 다 팔린다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죽은 사람의 귀신에게 가짜 종이돈을 태워서 돈 부쳐주는 화덕을 일년내내 생산해두고 있으면 춘절 이전에 다 팔리는데 자기가 하고 있는 만가락의 온수기 부품도 열심히 임가공 해 놓으면 어느 날에 다 가져 가더라’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그것은 계획 생산이 아니고 그렇게 하면 공장은 짓자 마자 망할 것이라고 하면서 다시는 공장 짓자 거나 합작을 하자고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서 속 있는 얘기를 한 것은 ‘그 때에 우리가 만약에 합작공장을 지었더라면 이번에 만나서 악수를 못 하고 멱살을 잡았을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웃고 있었다.

이제 계획생산의 생산관리를 알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후한 대접을 받고 다음날 아침배로 홍콩에 돌아왔다. 마치 새로운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듯이 온기와 여명을 느껴지고 보여 진다고 여기었다.

이조선 고문님께 노보특이 조사한 자료를 보내 드렸더니 확인하시고 그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있는 D사를 추천해 주시었다.

중개무역이므로 Documentation이 영어로 완성되어야 하므로 수준 있는 공장과 설계실이 관여될 수 있다고 하셨다.

자료를 정리하고 OFFER를 만가락에 했다. 만가락은 만족스럽게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가격은 기대보다 오히려 약간 저렴했고 완제품 견본 준비가 가능하고 처음부터 SKD공급을 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부터 견본을 접수하여 노보특이 핸드 캐리해서 다시 배를 타고 순덕시로 향했다. 이번에는 부두까지 벤츠는 안 나왔지만 이빙 부장이 자기 자가용을 몰고 마중을 나와 주었다.

만가락의 VIP Room이 아닌 개발실에서 견본을 펼쳐 놓고 상담을 했다. 대체로 만가락의 개발부장, 생산부장 그리고 수석부사장은 만족스러워했다. 그러자 VIP Room으로 자리를 옮겨서 홍콩에서 들어와 있는 회장의 처남이 합석해서 미팅메모를 작성하자는 것이었다. 잠시 후 중국어로 정리된 상담록을 가지고 와서 노보특에게 서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음따까’라는 광동어 대신에 “부훼이”라고 만다린 발음으로 거절했다.

우리는 현재 한국 제품을 한국으로부터 선적해서 홍콩에 도착시키고 홍콩에서 중국 순덕의 공장으로 만가락에 의해서 운송되는 국제무역을 시도하는데 중국어로 된 일체의 무역서류에 한국인인 노보특은 서명할 수 없고 오로지 신용장이 은행에서 영어로 열리듯이 영어로만 상담록이나 계약 및 기술자료 제공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석부사장이 나서서 사실은 공산당에 보고해야 하는 절차이므로 이해하고 서명을 해 달라고 거듭 부탁하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꼭 그렇게 중요한 절차라면 영어로 하고 곤란하다면 옆에 한글로 병기해야 서명이 가능하고 기준은 한글이 된다고 했다. 만가락 측은 그렇게는 안된다고 했다. 노보특도 그렇게는 안 한다고 했다.

결국 상담록은 노보특의 서명 없이 자기들이 중문으로 만들어 보고서로 하겠다고 했다. 드디어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노보특은 미리 준비해간 영어 양식처럼 타자된 내용에 단가 및 수량과 금액만 수기해서 서명하자고 했더니 이번에는 고객인 만가락에서 안된다는 것이었다. 자기 들이 중국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양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노보특은 다시 강조하기를 “만가락은 지금 한국의 LP가스보일러 SKD공급과 기술자료를 모두 영어로 된 신용장에 의해서 선적되고 제공받게 되는데 중국내의 표준계약서 양식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절대로 영어 외의 문서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언어는 문화이고 관습과 법규를 내포하고 있기에 중국의 그것을 모르면서 홍콩중간상인 노보특이 잘 못 이해하면 잘못된 결과가 결국 한국에 의해서 중국 만가락에 전해질 것이므로 노보특의 고객을 해롭게 하는 일이 될 수 있으므로 국제 교역의 기준 언어를 영어로 하자고 거듭 주장했다.

모두 이해하고 노보특이 준비해 간 계약서 CONTRACT에 서명했다. 쌍방 플러스 홍콩의 신용장 개설회사와 운송을 책임지는 회사가 모두 4자 서명을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계약서 금액이 어마어마 했다.물론 계약을 하고 신용장을 안 여는 중국인의 관행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노보특은 안전하게 방어적으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아니 처음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그것도 상식적으로 추운 북부지방이 아닌 난방이 전혀 필요 없는 광동성으로 가스보일러가 수출되고 지속적인 프로젝트라고 여겨져서 속으로 기쁨을 참으며 기다렸다가 밤에 모두 헤어지고 난 후에 한국의 이조선 고문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건 기쁨의 목소리였고 감격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이제 고생 끝이라고 여기며 홍콩으로 돌아왔고 한국에 가서 D사와 계약하고 신용장을 잘 받아서 착실하게 열어주고 선적도 잘 되고 공장 도착도 잘 되고 만가락 공장에서 SKD조립도 무탈하게 잘 되어 제품 창고에 입고된 것까지 확인하고 홍콩에 돌아왔고 앞으로는 이제 매월 신용장 받고 열고 매월 선적하고 Shipping Advice를 보낼 줄로 알았는데 만가락의 주문은 그 첫 선적으로 마지막이 되고 만다.

첫 선적 후에 첫 조립공정을 지도할 겸 이조선 고문님을 명함까지 A-Dragon Corporation 고문으로 준비하여   한국 D사의 사업부장과 함께 노보특이 순덕으로 초대했을 때에 계절이 한국에서는 겨울인데 광동성에서는 춥지 않았기에 D사의 사업부장은 순덕시 호텔 풀장에서 겨울 수영을 하면서 기분도 좋았는데 말이다.

제2차 선적분의 신용장을 열어야 할 일자가 지났는데 조용해서 홍콩의 신용장개설회사에 연락해보니 자기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개발실의 이빙 부장에게 전화를 해 보니 순덕에 들어와 보라는 것이었다. 순덕에 도착하니 역시 이빙 부장이 마중을 나왔는데 조립된 LP가스보일러가 한 대도 못 팔리고 있다고 했다. 계절은 이제 추운 날도 지나가는데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회사에 가서 확인해보자고 했다. 만가락 공장에 도착한 이빙 부장은 제품 출하 창고를 안내하여 창고문을 열어주었다. 지난 달에 보고 갔던 대로 가스보일러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수석 부사장실을 찾아갔다. 매우 난감해하면서 말을 잘 못하고 있었다. 영업 본부에서는 처음 보는 상품이라서 제품을 잘 몰라 못 팔겠다고 하여 팔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공식적인 답변이었고 창고가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추가 발주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 이빙 부장이 자기 방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들려주는 얘기는 부사장들의 알력이 터져나온 것이라고 했다. 결국 회장 밑에는 일곱 명의 부사장이 있는데 그 중에 개발생산 담당이 수석 부사장인데 이 사업이 잘 되면 수석 부사장이 사장이 되게 되어 있었나 보다. 즉, 공산당 서열이 바뀌는 셈이었다. 그래서 No.4인 영업 담당 부사장이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것이다. 영업직원들이 몰라서 못 팔겠다는 데 어쩌겠냐는 것으로 이유가 되고. 노보특은 관계를 유지하게 위해서 다른 부품을 찾아서 소개를 했지만 철저하게 중국인의 꽌시로 회장의 처남이 모든 수입창구가 되어 있었다.

그런 회장과 회장 처남을 홍콩의 중국계 은행개인금고에서 나오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회장의 처남은 노보특에게 ‘우리를 여기에서 봤다는 말은 아무에게 말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니까 중국 공장의 기술제휴의 기술료 지불은 모두 조작이고 사실은 홍콩의 처남회사를 독점중개대리점으로 하고 모든 외부로 나가는 돈은 홍콩의 처남 회사에 보내 지고, 처남의 계좌는 회장의 비밀금고에 쌓이게 되고……
그러다가 회장은 캐나다로 가족 모두를 데리고 이민을 떠나 버린다. 일년 후에 가 보았는데도 가스보일러는 창고에 그대로 있었다.

노보특에게는 고독한 사색의 시간이 길어졌다.

남들도 IMF외환위기라서 어려운 시기라 고는 하지만 그것이 위로의 근거가 되고 해결책이 못 된다고 여기었다. 하는 일마다 당사자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제 삼자에 의한 변화가 불거져서 번번이 일이 바뀌거나 실망되는 상황이 매우 견디기 어렵다고 여기었다. 이제 판단과 선택 그리고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사무실 건물의 대출상환이 문제라고 여기었다. 금융기관에도 소유주가 아닌 월급쟁이 종사자가 근무하는 것인데 내 사정만 강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출 금융사에 찾아갔다. 이제 유차진 향우회 회장님은 안계셨다. 한국으로 귀임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담당 과장에게 그 동안 충분히 혜택을 받았고 고맙게 생각하므로 건물을 포기하겠다고 하고서는 열쇠를 주고 왔다.

나중에 들으니 유차진 회장께서는 직원들에게 당부하길 IMF사태에 자기재산의 건물열쇠를 내어준 사람은 노보특 사장뿐이므로 각별히 대우하라는 당부를 했다고 들었다.

그 다음은 Miss BALI여비서이었다. 성실하게 보스를 챙겨주고 있었으나 불황에 직장 잡기도 어렵겠지만 더 붙잡고 있을 수 없다고 여기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떠나보내고 노보특은 집에서 시험공부 하듯이 노트북 PC 한 대 가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분투를 시작했으나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차올랐다. <계속>

향암 (香庵)

홍콩 2B1 Limited 회장
홍콩 A-Dragon Corporation 창업, 1989.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과학기술산업융합 최고전략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SPARC 수료 논문 [출판시장의 변화와 전자책의 미래연구] 발표로 장영실상 수상, 2018.8.

필명: 향암香庵~작품속 가명 노보특 (Robert영어이름 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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