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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인물론 詩의 천재적 재능으로 詩仙이 되다
이정랑 | 2021-07-21 10:58: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백 李白】 두보와 함께 한시 문학의 양대 거성으로 우뚝서다

이백(李白-701~762)은 성당(盛唐)때 성기(成紀), 지금의 간쑤(甘肅)성 티엔수이(天水) 사람으로 출생지는 오늘날의 쓰촨(四川)성인 촉나라의 창명현(彰明縣) 또는 안서도호부(安徐都護府) 소속의 쇄엽성(碎葉城)에서 태어났다. 또한, 중종 신룡(神龍) 조에 촉의 검남도(劍南道)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鄕)으로 옮겨 산동(山東)에서 살았기 때문에 산동 사람이라고도 전해진다.

자는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적선인(謫仙人)이다.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라 불렀고, 이백은 ‘시선(詩仙)’이라 불렸다. 그 외에 기경인(騎鯨人), 적선인(謫仙人) 또는 벼슬 이름을 따서 이한림(李翰林)이라고도 한다.

그의 선조는 수나라 말에 서역에서 왔다고 한다. 그의 집은 간쑤성 농서현에 위치했고, 이백의 아버지가 중앙아시아에서, 장사하던 무역상이었기에 어린 시절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두보가 몇 번의 퇴고를 거쳐서 완성된 시를 내놓는, 반면 그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마음 내킬 때 몇 줄 내려쓰면 그게 두보에 필적하는 명시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별명은 두보의 별명인 시성(詩聖)과 대비되는 시선(詩仙)이다. 그 둘을 묶어 보통 ‘이두(李杜)’라고 부르며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이미 중국 고전문학계에서는 논쟁을 끝냈을 정도다.

그는 젊은 시절 검술을 배워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사람을 여럿 살해하고 다녔다가 20살 때에 당시 은거하던 이인인 동엄자(東嚴子)와 만나서 개과천선했다고 하며, 그의 시가 신선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것도, 이때부터다. 25살 때는 사천성을 떠나 강남 일대를 유람하면서 살다가 여기저기를 떠돌며 28살 때 운몽호에서 당 고종(高宗) 때의 조상인 허어자의 손녀를 만나 결혼하고 10년 동안을 거기서 살았다고 한다.

야사에서는 이백은 스승에게 글을 배우다가 그만 공부가 싫어져서 멋대로 방랑객이 되어 길을 걷다가 상의산(象宜山) 기슭에서 한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는 부러진 도끼를 열심히 갈아 바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 노파의 모습에서 이백은 포기하지 않으면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음을 깨우쳤고, 다시 마음을 돌이켜 공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여기서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사자성어가 유래했다고 한다.

35살 때는 잠시 낙양을 거쳐 태원까지 유람했고 이때 우연히 명장 곽자의와의 안면을 텄다고도 한다. 야사에서는 곽자의가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쓰자 이백이 구명활동을 벌이고 무죄를 호소하여 풀려났다고 한다. 만일 사실이라면 훗날 곽자의가 이백을 살려주려고 한 것은, 은혜를 갚은 게 된다. 또한, 도술도 이래저래 배우고 다녔다고 한다. 37살 때는 5명의 시인과 같이 공소보(孔巢父), 배정(裵政), 한준(韓準), 장숙명(張叔明), 도면(陶沔) 죽림에 은거하여 조용히 살려고 했으나 시가 너무 유명해져서 도피 겸 여행을 다니다가 장안까지 입성하게 되었고 시험도 쳤으나 당시 시험관이었던 양국충과 고력사의 의견이 충돌하는 바람에 낙방하고 말았다.

유교적 도덕을 바탕으로 시를 쓴 두보와 달리, 그야말로 풍류를 벗하고 풍류를 노래한 인물이다. 그런 삶을 살았기에 역대 중국왕조를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이백보다 두보를 더 높이 쳐줬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중국왕조에서 대대로 푸시를 받은 두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백의 시가 그와 대등하게 평가받고 있으니 그만큼 시의 천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술마시고 노래하는 풍류인 이백 쪽이 인기가 더 높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기는 해도 풍류를 노래하는 정취가 수많은 선비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옛날 이야기에서 달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반드시 이백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두보에게는 천재적인 시인이라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컨셉이나 이미지가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백의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강산의 정취를 노래하기 때문에 놀고 즐길 때 딱이지만, 두보의 시는 시사(詩史)라고 불릴 정도로 당대 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과 풍자를 담고 중국의 고사 비유가 많기 때문에 학구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때에 알맞기 때문이다. 두보는 당시 중국사회의 여러 가지 면면을 살피고, 백성들의 생활고에 슬퍼하고 고뇌하며, 다양한 중국의 고사를 예로 들며 진지한 주제를 제시하는 시가 많은데, 이런 걸 놀면서 즐겼다는 건 좀 지나친 감이 들지 않는가 한다.

그러나 두보의 시의 완성도는 훌륭했고, 이백에게 인기가 밀리건 말건 간에 조선왕조에서는 중국왕조와 마찬가지 이유로 두보의 시를 널리 알리고 크게 권장했다. 당장 훈민정음 창제 이후 훈민정음으로 발간된 대표적인 책 중의 하나가 두시언해였다. 이렇듯 교훈적인 이유로 두보의 시가 장려되었으니, 충분히 조정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이백과 쌍벽을 이룬다는 사실 때문에, 두보의 이미지는 아주 꼿꼿한 기상을 지닌 선비로 곧잘 표현되곤 한다. 그러니까 술도 잘 안 마시고 별로 놀지도 않으며 그야말로 청렴과 검소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었을 거라는, 이미지 말이다. 하지만 두보 본인도 이백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술과 풍류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애당초 둘이 여행도 같이 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그는 발해 사신의 문서를 해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체적으로는 당나라 현종 때 발해의 선전포고를 서신을 받았는데, 조정의 대신들, 중에서 아무도 그것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 하지장(賀知章)이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이백을 입궁하게 했다. 이백은 과거시험에 낙방한 자신이 그 과제를 할 자격이 없다며 거절하자 황제는 그에게 한림학사의 직함과 관직을 주었고, 이백은 대신들, 중에서 자신의 시험관을 찾아 그들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기게 하고 그 문서를 번역했다.

시를 잘 지어 당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았으나 술김에 현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환관 고력사에게 “내 신발 좀 벗겨봐라. 이 고자 놈아!”라며 술주정을 부릴 정도로 호방하게 굴었고 훗날 이 일을 잊지 않은 고력사의 미움을 사서 파면당했고, 그해 여름 낙양에서 두보를 만나 1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여행도 다녔다. 두보가 한 말에 의하면 둘은 밤에는 같은 이불에서 잤고, 날이 새자마자 손을 잡고 떠났다고 한다. 이백이 두보보다 12살 연상이었는데 두보가 이백의 재능에 크게 탄복하면서 그와 더불어 하남, 산동 일대를 유람하면서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54세가 되던 해 강남으로 돌아와서 2년 뒤 영왕의 군대에 참여하나 영왕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처형된 뒤 귀양을 가다 삼협도에서 사면받고 다시 방랑길에 오르고 62세가 되던해, 종숙이던 이양빙의 집에서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2남 1녀를 두었으나 집안을 돌보지 않고 떠돌기만 한 인생이라 자손들은 가난해져 소식을 모르게 되었고, 이백이 죽은 지 60년쯤 지난 후에 어느 관리가 이백의 무덤을 찾은 후 자손을 알아보았는데 농민에게 시집간 손녀 2명만 파악되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중국의 시선 이백이 고구려 민족이 춤추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시가 존재한다. 645년경 당태종이 고구려와 전쟁을 시작 668년 고구려 멸망 후에 많은, 고구려인들이 중국의 황하(黃河) 이남 지방으로 끌려갔다. 이백이 살았던 시기 700년대 초반의 당나라에서는 고구려인들이 전통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시는 무대 위에서 고구려 남자가 백마와 더불어 배회하는 모습을 우아하게 묘사하였고 날아 갈듯한 아름다움을 해동의 새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이 시를 통해 고구려의 웅대한 꿈과 기백을 상상해 보면서 이백은 고구려의 혼을 상념 속에서 그리려 했는지 음미해 본다.

금화절풍모(金花折風帽) 노란 꽃 절풍모를 쓰고

백마소지회(白馬小遲回) 백마를 탄채 잠시 멈추었다 돌며,

편편무광수(翩翩舞廣袖) 펄럭펄럭 넓은 소매로 춤을 추니

사조해동래(似鳥海東來) 바다 동쪽에서 새가 날아온 듯 하구나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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