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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발(黃髮)과 백구(白鷗)란 정도령의 별칭....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asd | 2021-09-11 23:41:51 | 57     

황발(黃髮)과 백구(白鷗)란 정도령의 별칭....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s://cafe.naver.com/godnjf12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dkdehd63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guriever.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평해황씨(平海黃氏) 해월종택 해월헌(海月軒) :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으로 풍수학상 강릉 이남 최고의 명당(明堂)

 

 

 

 

경고(鏡古)의 추별(追別)편을 보면,


『時則利在弓弓 ......
  卽黃躬道士 寄語人間 超道士 須從白虎(兎) 走靑林是也』
 

라고 하였다. 

이로움이 궁궁(弓弓)에 있으며, 황(黃)이라는 사람 본인 자신(躬)이 도사(道士)인데,
세상 사람들에게 말을 전해 주노니(寄語人間), 이 황(黃)이라는 도사(道士)는 [보통 도교(道敎)에서 이야기하는 도사(道士)가 아닌] 초도사(超道士)로서, 모름지기 백토운(白兎運)에 오시는, 즉 서방(西方) 기운이 동방으로 몰려오는 때에 나타나는 청림도사(靑林道士)이니 그에게 달려가라고 한 것이다.
 

즉 그 청림도사(靑林道士)가 바로 황(黃)이라는 사람이며 초도사(超道士)라고 하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말을 전해 주노니,이 황씨(黃氏) 성(姓)을 가진 도사(道士)가 세상에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청림도사(靑林道士)이니, 달려가라고 우리의 선각자(先覺者)들이 당부하는 말인 것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말인 것이다.
여기서 궁(躬)자란, 몸(身), 자신(自身), 몸소, 활(弓)이란 뜻이다.

 

 

또한 초창록(蕉窓錄)을 보면,

 

問曰 鄭氏之運 興於術 曰然大抵 鄭氏之運 鬼神世界

  儒彿仙三家合爲一家 佛爲主 無相戮之事

 
정씨운(鄭氏運)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니, 대저 정씨운(鄭氏運)이란 귀신세계(鬼神世界)를 의미하며,유불선(儒佛仙)을 합(合)하여 하나로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반계(磻溪) 류형원 선생이 천인(天人)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말인데, 바로 정씨세계(鄭氏世界)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 2권 임인(壬寅: 1902년)편 5절을 보면,


『曰我世난 造化之世오 鬼神之世也니라』
 
증산(甑山) 상제께서는 나의 세상(世上)은 조화의 세상이오, 귀신(鬼神)의 세상이라고 하였다.
 

“증산(甑山) 상제께서 김형렬(金亨烈) 수제자에게, 잘 보관했다가 후일에 전(傳)할 사람에게 전(傳)하라고 한 문건(文件) 중,유서집(遺書集)의 후사자유서(後嗣子遺書)에는 무엇인가 상제 대(代)를 이을 사람을 밝히는 아주 중요(中要)한 단서(端緖)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잘 좀 설명하여 주십시오.” 라고 한 사람이 말하자 

 

 

명산 선생(明 선생님)은 설명을 시작하였다.


“증산(甑山) 상제께서 일찍이 4폭 병풍(屛風) 한 폭을 손수 만드시고, 앞면과 뒷면을 친필(親筆)로 글을 써서
재종숙(再從叔) 성회(聖會) 씨에게 주셨다고 하였다.
 
병풍(屛風)의 이면(裏面)에 쓴 글의 내용을 보면,


경계(警戒)하여 가르치니 학문(學文)을 하여서는 입신(立身: 수양하여 제 구실을 할 수 있게 되는 일)을 하고,
먼저 힘써서 해야 할 것이 효제(孝弟: 부모를 섬겨 효도를 다하고 형을 받들어 순종하는 일)이고, 기쁘게 부모님과 어른들을 받들어 모신다면, 어찌 감히 교만(驕慢)하여 남을 얕보겠는가?

경계(警戒)하여 가르치니 학문(學文)을 하여서는 녹(祿)을 구하고(여기서는 天佑를 바람) 삼가 부지런히 도예(道藝)에 힘을 쓰고, 일찍이 여러 성인(聖인)들의 격언(格言)을 들어 배우고 넉넉한 즉, 출사(仕)를 하고 경계하여 가르치나니 치욕(恥辱)을 멀리하고, 공손(恭遜)히 예(禮)를 가까이 하고, 스스로 낮추고 남을 받들며,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은 뒤를 따를 때, 온 세상 사람들이 기쁘게 받들어 모시게 될 때는 또한 그 의기(意氣)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받들어 모실 자를 알지 못하면, 다만 기쁘게 사랑하여라.

이상은 기본적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할 것을 경계(警戒)하신 말씀으로 볼 수가 있다.

 

 

표면에 쓴 구절을 보면 

 

「만사이황발 잔생수백구(萬事已黃髮 殘生隨白鷗)」라 하였다.



이 말은 만사(萬事)가 황발(黃髮)에서 끝내게 되어 있으니,

앞으로 남은 목숨(殘生)은 모름지기 백구(白鷗: 흰 갈매기)를 따르라.


안위(安危: 편안함과 위태함)함이 대신(大臣)에게 있으며, 하필(何必)이면 눈물이 크게 흐르는가
영원(靈源: 神의 根本이 되는 분)이 나타나게(出: 태어나게) 되는구나 라고 하였다.

 

  만사이황발(萬事已黃髮) 잔생수백구(殘生隨白鷗)
증산 상제 친필 후사자(後嗣子) 병풍유서(屛風遺書) 부분

 

 

 

우리가 이 글에서 주의 깊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만사(萬事)가 황발(黃髮)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끝맺게 되어 있으니, 남은 인생을 백구(白鷗), 즉 흰 갈매기를 모름지기 따라야 한다는 구절인 것이다.
안위(安危)가 그 대신(大臣)에게 있으니, 신(神)이며 근본(根本)되시는 분이 태어나게 되어 있다고 증산(甑山) 상제는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증산(甑山) 상제의 글 속에서 황발(黃髮)이라는 말과 백구(白鷗)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分明)히 안다면 이 모든 말이 풀리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황발(黃髮)이 모든 일을 이루어서는 끝맺는 사람이라는 것과 또한 분명히 사람들이 따라가야 할 사람이 바로
백구(白鷗)란 것을 지적해서 전(傳)하는 말인 것이다.

한 마디로 후사자(後嗣子)가 황발(黃髮)이요, 백구(白鷗)라고 증산(甑山) 상제께서는 밝히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뜻하는지는 알 수가 없는 말인 것이다.


그러니까 황발(黃髮)과 백구(白鷗)란 말은 이 병풍(屛風)에 쓰여진 구절(句節)의 핵심(核心)이 되는 숨겨진 말,
즉 은어(隱語) 또는 매명(埋名)인 것이다.
이 두 마디의 말만 안다면 모든 것은 쉽게 풀리는 말이다. 굳이 두 마디가 필요 없는 것이다.

한 가지만이라도 분명히 알 수만 있다면 둘 다 풀리는 것이다. 즉 같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황발(黃髮)이란 말은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 속에 자주 나오는 말이나, 차후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우리가 분명히 따라가야 할 사람인 그가, 신(神)이요, 만물(萬物)의 근본(根本)인 사람으로 나타난다는 즉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백구(白鷗) 즉 흰 갈매기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확실(確實)히 알기 위해,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를 보도록 하자.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1권 30장 154편을 보면,

 

         괴원 최래 음시혼원경원(槐院 催來 吟示渾元景元)

 

 

창파만리백구신(滄波萬里白鷗身)   우락인간만목진(偶落人間滿目塵)

 

천달광명비천칭(天達狂名非薦稱)   인의취어류경진(人疑醉語類驚陳)

 

정란번처환생학(情瀾飜處還生壑)   세로기두경유진(世路岐頭更有津)

 

진동고인휴박촉(珍重故人休迫促)   장부심사임천진(丈夫心事任天眞)



창파만리(滄波萬里)에, 백구신(白鷗身: 흰갈매기)이,
마침내 티끌이 가득한 인간 세상에 떨어졌구나.

백구(白鷗)란 하늘이 결단하여 어쩔 수 없이 내려보낸 사람으로,

사람들이 천거(薦擧)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당황하며 놀라서 말하기를, 취중에 하는 말(醉語)로 여기지만,

자세히 사정(事情)을 말한다면, 물결치는 바다에 환생(還生)한 사람이다.
세상의 기로(岐路)에 선, 두목(頭)에게 전(傳)할 것이 있나니,
귀하게 여겨야 할 아이(珍重: 임금)이니 고로, 사람들은 핍박과 재촉을 하지 말지어다.
장부의 심사(心事)에는, 천진(天眞)이 있느니라.
 

 

이 시(詩)는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선생이 1585(乙酉, 선조18)년에 대과에 급제하여,
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궐내에 근무하고 있을 때, 그의 종제(從弟)인 혼원(渾元)과 경원(景元)을 불러서는 시(詩)를 지어 보여 준 시(시)이다.
 
시(詩) 속에는 증산(甑山) 상제께서 친히 병풍(屛風)에 숨겨서 전한 흰 갈매기,

즉 백구(白鷗)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正確)히 구분하여 밝혀 전하는 시(詩)인 것이다.
이 시(詩)를 보면, 푸른 파도가 치는 넓은 바다에 사는 흰갈매기가,

마침내 뜻밖에도 티끌이 가득한 인간 세상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즉 인간(人間)으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흰갈매기(白鷗)란 하늘이 어쩔 수 없이, 하늘이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낸 사람을 지칭(指稱)하는 말이지,
사람들에 의하여 추천(推薦)된 사람을 칭(稱)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흰갈매기(白鷗)라는 말을, 술이 취해 헛소리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떠들겠지만,

진정으로 자세하게 사정을 이야기한다면,
물결이 치는 바다에 환생(還生)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갈매기란 원래 바다에 사는 새이지만,
이 바다에 사는 새가 파도가 치는 바다에, 다시 환생(還生)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즉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난 곳이, 파도가 치는 바다라고 하였다면, 그것은 어떤 가문(家門)을 이르는 말인 것이다.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을 보면,
 
非不勝 治世耶 捕此黃 海降門』***
 
십승(十勝)인 정도령이 세상(世上)을 잘 다스리지 못할 사람이 아니니 그 황(黃)을 찾아라.
바다(海)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가 강림(降臨)한 가문이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질문했다.
 
“하나님 아들이 인간으로서의 성(姓)이 황(黃)씨인 것은 알 수가 있지만, 어느 황(黃)씨 가문(家門)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자

 

명산 선생(明 선생님)은 다시 설명을 시작하였다.


“황씨(黃氏) 가문(家門) 중에서, 바다를 뜻하는 글자가 들어 있는 가문(家門)을 찾으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격암(格菴) 선생께서 밝히는 말인 것이다.” 라고 하자 주위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황(黃)씨라면, 먼저 장수, 창원, 우주, 평해를 말하자,
사람들은 그 평해(平海)가 바다 해(海)자가 들어가는 바로 그 해(海)자가 아니냐며 웅성거렸지만, 

 

 

명산 선생(明 선생님)은 계속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이미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십승(十勝) 정도령이 해월(海月) 선생의 후손(後遜)으로 태어나게 되어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해월(海月) 선생의 성(姓)은 황(黃)씨이고, 본관이 어디이냐 하면, 바로 평해(平海)인 것이다.

그는 평해(平海) 황씨(黃氏)인 것이다.

 

평해(平海)란 넓고 넓은 바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평해 황씨(平海黃氏) 가문(家門)에 태어난다는 것을, 이와 같이 파도가 치는 바다에 인간으로 다시 환생(還生)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그가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기로(岐路)에 처해서,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지 모르고 어려워하는데, 해월(海月) 선생께서는 그 두목(頭目)인 자신의 후손(後孫)에게 전(傳)해 줄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어려움을 뚫고 건너갈 수 있는 나루터가 있다고 하였다.

그 전(傳)해 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시피 하나님의 편지인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의 글 속에는, 해월(海月) 선생 자신의 후손(後孫)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대두목(大頭目)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뜻이 담뿍 담긴 글들이 주옥(珠玉)같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백구(白鷗)인 두목(頭目)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며 이르는 말이다. 또한 그를 괴롭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하여야 할 보배(珍重) 즉 아기장수이니, 사람들이 그 아이를 핍박(逼迫)하고 재촉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였는데, 이는 결국(結局) 모든 사람은 그 아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말인 것이다.
 

대장부(大丈夫) 즉 그 아이가 하는 일(事)과 그의 마음(心) 속에는 천진(天眞)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 천진(天眞)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전적(辭典的)인 의미로는 인간의 본성(本性),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참된 마음, 타고난 그대로의 성품(性品)이라고 한다.
태진(太眞), 현진(玄眞), 천진(天眞), 금(金), 황금(黃金), 황정(黃庭)을 의미하는 말이다.
또한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내편(內篇)에서는, 현진(玄眞)을 옥(玉) 또는 백옥(白玉)이라고 하였다.


사람을 늙지 않고 죽지 않게 하는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라는 것이다.


또 선도(仙道)에서는 이 황금(黃金)이 태양의 정기(日之精)를 뜻하며, 임금(君)이며, 또한 이것을 먹은즉,
신(神)과 통(通)하게 되고, 몸은 가벼워진다(服之通神輕身)고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해월(海月) 선생의 후손(後孫)으로 태어나는 이 아이가, 그렇게도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진인(眞人) 정도령이라는 말을, 백구(白鷗) 즉 흰갈매기라는 말로 바꾸어 전한 것이다.

 

만일에 해월(海月) 선생의 글에서, 정도령이라는 글자로 표현했다면, 누구나가 다 해월(海月) 선생의 문집을 예언서(預言書)로 알겠지만, 해월(海月) 선생은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진, 누구나가 눈치챌 수 있는 정도령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증산(甑山) 상제께서는 자기의 후사자(後嗣子)로 점지한 사람을 백구(白鷗) 즉 흰갈매기라는 은어(隱語)로 유서(遺書)에 남겨 전하였으니,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백구(白鷗)란 말하자면 하나님 아들의 암호명(暗號名) 같은 호칭(呼稱)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이런 참 의미를 알겠는가? 

그러나 증산(甑山) 상제께서는 모든 일을 이 백구(白鷗)한테 맡겼으니,
앞으로 남은 목숨(殘生)을 모두 백구(白鷗)에게 바치라고 충고(忠告)하는 것이다.

 

또한 내용을 알기 전의 행위(行爲)는 문제(問題)를 삼지 않으니, 이후에는 정성(精誠)을 다하고 따르라며 당부(當付)하는 말의 의미도 들어 있는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그 갈매기가, 즉 그 아기가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를 흉중에 갖고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이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를 주어 보낸 사람이니, 구박하고 핍박하고 왜 자꾸 늦어지느냐고 재촉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重)자란 무겁다는 뜻과 어린아이라는 뜻, 임금, 곡식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라고 하자 곁에
있던 한 사람이 말을 가로 막으며 한 마디 하였다.
 
 
“격암유록(格菴遺錄) 궁을도가(弓乙圖歌)를 보면


『東西多敎 來合하소 弓乙外는 不通일세
  어서오소 피난차로 不老不死 仙境일세』
 
동서양(東西洋)의 수많은 종교(宗敎)들아 이제는 돌아와서 합(合)하라며, 궁을(弓乙) 이외는 불통(不通)이라 하였습니다.

이 글이 뜻하는 바는 한 마디로 궁을(弓乙) 정도령과 통(通)하는 길만이 정통(正通)이요, 직통(直通)이라는 말로 

도통군자(道通君子)가 될 수 있는 정도(正道)요, 지름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궁을(弓乙) 정도령과 통하는 길 이외의 길은 모두가 사도(邪道)라는 말이며, 또한 새로 대도(大道)인 궁을(弓乙) 정도(正道)가 나타나니,
이제는 사도(邪道)에 빠져서 때를 모르는 철부지(節不知)가 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까?“ 라고 하자

 

명산 선생(明 선생님)은 조용히 황정경(黃庭經)을 펼치면서 다음 말을 이었다.

 

 

다음은 황정경(黃庭經)에서 천진(天眞), 즉 현진(玄眞)에 대하여 알아보자.


황정경(黃庭經) 25장 오행장(五行章)을 보자.

 

『三明出於生死際 洞房靈象斗日月 父曰泥丸 母雌一,  ***
  三光煥照入子室 能存玄眞萬事畢, 一身精神不可失
 
삼명(三明) 즉 세가지 밝음이,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際: 이어지는)라는 것이다. 

동방(洞房: 단전)의 신령한 모습(靈象)이,북두칠성(北斗七星) 해(日)와 달(月)인 것이다.
아버지는 니환(泥丸)이고, 어머니는 자일(雌一)이다.
삼광(三光: 北斗七星과 日月)이 자실(子室: 아들의 방)로 들어가는데,

능히 현진(玄眞) 즉 천진(天眞)이 있으므로, 만사(萬事)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일신(一身)의 정신(精神)은, 잃을(失) 수가 없는(不可) 것이니라.


  
삼명(三明)이란 하늘의 해(日)와 달(月)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고 하였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이 삼명(三明)에 달려 있는데, 삼명(三明)의 작용(作用)이 지극히 중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삼명(三明)을 얻으면 살고, 잃으면 죽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이 삼명(三明)이 어디에 있고, 누가 갖고 있는지를 보자.

사람 몸에 있어서 머리 부분인 니환(泥丸)을 아버지(父)라 했다. 

즉 도부(道父: 도의 아버지)가 되고, 아랫배인 신장(腎臟)을 도모(道母: 도의 어머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삼광(三光)인 해(日)와 달(月)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이, 도(道)인 아들의 방(子室)으로 들어가게 되니,
이 삼광(三光)인 현진(玄眞) 즉 도(道)를 손에 넣은 아들이, 바로 만사(萬事)의 끝맺음(畢)을 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이 삼광(三光)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 
동학가사(東學歌詞) 중의 삼연경세가(三然警世歌)에,

 

『日月星合 如意珠는 天上地下 第一寶라
  無窮造化 있거니와 萬古以後 처음이로다.』
 
바로 삼광(三光 : 日月星)이란 여의주(如意珠)를 의미하며, 천상지하(天上地下) 즉 하늘과 땅에서 제일 가는 보배로
무궁조화(無窮造化)를 이룩하는 것인데, 만고이후(萬古以後)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현(玄)이란 하늘(天) 또는 도(道)란 말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한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무궁조화(無窮造化)를 일으킬 수 있는 여의주(如意珠)를 갖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그 천진(天眞)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천진(天眞), 즉 현진(玄眞)이 있음으로써
만사(萬事)를 종결(終結)짓게 된다고 한 것이다.


이 만사(萬事)를 종결(終結)짓는 하나님의 아들을 해월(海月) 선생과 증산(甑山) 상제께서는

다같이 백구(白鷗),즉 흰갈매기라는 말로 표현(表現)한 것이다.“라고 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말하였다.

“아 ~ 그러니까 증산(甑山) 상제께서 병풍에다 밝힌 만사(萬事)가 황발(黃魃)에서 끝난다는 말은,
결국 천진(天眞) 즉 황(黃)을 뜻하는 말이군요.”라며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였고, 다시 

 

 

명산 선생(明 선생님)의 설명은 이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험악(險惡)한 세상(世上)에 오고 싶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오시는 것이다,
세상(世上)이 혼탁(混濁)하고 어지러워져서 그대로 놓아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즉 이와 같이 사방(四方) 팔방(八方)이 모두 꽉 막히고 혼란하여서 도저히 헤쳐나갈, 소통시킬 방도가 전혀 없는 비색(否塞)인 상황 즉 비운(否運)이 닥쳐온다는 것이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글 속에는 그러한 상황이 닥쳐올 때, 

 

하늘이 양백(兩白)을 보내어,

즉 동방(東方)의 우리나라에 태어나게 하여서, 모든 문제를 소통(疎通)시키고 해결하며,

또한 이 양백(兩白)이 천자의 위(位)를 이어받게 된다고 밝혔던 것이다.

 

 

이 하나님의 아들을 해월(海月) 선생은 백구(白鷗) 즉 흰갈매기라고 표현했으며, 그가 하는 일(事)과 그의 마음 속에는 천진(天眞)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 천진(天眞)이란 바로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인 단(丹)이요, 

황(黃)이요,

황금(黃金)이요, 

황정(黃庭)이요,

금(金)이요,
북두칠성(北斗七星)이요, 

해(日)와 달(月)이요, 

 

또한 

도 (道) 자체(自體)라고 하는 것이다.

그가 만사(萬事)를 풀어서 해결(解決)하여 끝맺는 사람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만사(萬事)를 끝맺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아니면 불가능(不可能)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제발 그를 괴롭히고 핍박(逼迫)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술이 취해서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며, 풀어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다음은 

 

【※】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1권 20장 100편의 시를 보면,

엽엽성홍조객정(葉葉猩紅照客程) 사양이영도계명(斜陽移影倒溪明)  ***

 

인간지유서생냉(人間只有書生冷) 괴피추천허금병(怪被秋天許錦屛)  ***

 

붉은 단풍나무잎은 선명히도 나그네의 길을 비추고,
기울어지는 태양은 해 그림자를 옮기는데, 계곡은 오히려 밝구나.
인간 세상에는 다만 서생만이 맑고 깨끗한데,
괴이하게도 가을 추수기에 하늘이 병풍을 맡긴 사람이구나.
 

이 시(詩)는 해월(海月) 선생이 단풍나무를 읊은 시(詩)인데, 이 시(詩)를 지어서 자기의 종제(從弟)인 혼원(渾元)에게 보여 준 시(詩)이다.
이 글 속에도 여러 가지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즉 여러 가지 상징성(象徵性)이 있는 글이다.
우선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단풍(丹楓) 나무인 것이다. 

단순히 아무 데나 심어져 있는 단풍(丹楓)나무를 의미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단풍나무가 빨갛게 물이 들어 나그네가 가는 길을 밝게 비추고 있다고 하였다. 

즉 밝게 빛나고 빛나는 것이 단풍(丹楓)나무라는 말이다.
또한 해는 점점 기울어져 그림자를 더욱 길게 옮기는데, 계곡은 오히려 거꾸로 밝게 비친다고 한 것이다.

다만 인간 세상에서는 서생(書生) 즉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만이 홀로 맑고 깨끗하다 라고 하였다.
기이(奇異)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서생(書生)이 가을 추수(秋收)기에 하늘이 병풍(屛風)을 맡긴, 즉 허락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만일에 증산(甑山) 상제의 병풍(屛風)이 없었다면, 해월(海月) 선생의 시(時)에서 말하는 하늘이 약속한 병풍(屛風)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증산(甑山) 상제의 그 병풍(屛風) 속에는, 백구(白鷗)와 황발(黃髮)이라고 하는 말도 마찬가지로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가 아니라면, 또한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병풍(屛風)을 받을 사람, 즉 후사자(後嗣子)가 바로 인간 세상에서 다만 조용히 공부만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유독 가을 추수기이고 해는 점점 저물어 가는데, 다시 말하자면 세상(世上)은 점점 컴컴하게 어두워만 가는데, 오히려 선명하게 밝게 비치는 것이 단풍나무(楓)이고, 계곡(溪)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인간(人間) 속에는 맑고 깨끗한 사람은, 단지 서생(書生) 한 사람이며, 그가 하늘의 병풍(屛風)을 허락한 바로 그 병풍(屛風)의 주인(主人)이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단풍(丹楓)나무와 계곡(溪谷)과 서생(書生)은 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인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단풍(丹楓)나무는 말 그대로 신(神)을 상징(象徵)하는 나무이고, 단(丹)을 뜻하는 말로서, 하나님 아들을 뜻하는 나무 중의 하나인 것이다.


  
또한 계곡(溪谷)이란  격암유록 은비가(隱秘歌)를 보면,
 
「화우고계 선원천(畵牛顧溪 仙源川)」이란 구절이 있는 것이다.
 

그림 속에 소(牛)가 돌아보고 있는 곳이 계곡(溪)이며, 또한 선원(仙源) 즉 신선(神仙)이 있는 곳이 바로 천(川)이라고 한 것이다.


소(牛)와 신선(神仙)이란 정도령을 의미하는 말이며, 그 소(牛)가 있는 곳이 계곡(溪)이라고 하였다.

 

 

또한 말을 바꾸어 신선(神仙)이 있는 곳을 천(川)이라고 한 것이다. 

 

즉 계곡(溪谷)을 천(川)이라고 돌려서 설명하는 말인 것이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천(川)이란 인천(仁川)이며, 그 곳에 그 신선(神仙)이 은거(隱居)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집에는 단풍(丹楓)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가 거기에서 다만 문(門)을 닫아 걸고 공부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가 바로 하늘이 약속한 후사자(後嗣子)로서, 병풍(屛風)의 주인공(主人公)이라고 밝히는 글인 것이다

 

 


           ✱  증산(甑山) 상제님이 자기의 후사자(後嗣子)로  택(擇)하는 사람은 

 

대순전경 초판 기유년 2(증산천사공사기 (甑山天師公事記)-9)에

 

천사(天師)께서 가라사대 내가 사람을 쓰되 향리(鄕里)에 있어 롱판('멍청이'의 방언)의 칭호(稱

  呼)를 듣고 외론(外論)으로 군자(君子)와 천진(天眞)이라는 칭호(稱呼) 듣는 자(者)를 택(擇)하노

  라.』  라고 하였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33장 135편을 보면,

 

 

배종초불계년령(陪從初不計年齡일반분산공조경(一半分山共釣耕)

추흥아전단계동(秋興我專丹桂洞하량공와벽운정(夏凉公臥碧雲亭)

사호인만유리색(沙壺引滿琉璃色분곡개당금수병(粉鵠開當錦繡屛)

도재안전번일몽(都在眼前飜一夢각파인사등신성(却怕人事等晨星)

 

(初: 하나님)을 따라 다녔지만 나이를 알 수 없었고,

산을 반()으로 나누어(), 더불어 낚시하고 밭도 갈았네.

깊은 가을에 나는 단계동(丹桂洞)독차지 하였고,

매우 시원한 벽운정(碧雲亭)에서귀인은 쉬었는데,

물가의 술병을 들어 잔이 차도록 따르니,

술빛은 유리색(琉璃色)이구나.

하얀 고니가아름다운 병풍(屛風)을 열어 펼치니,

눈앞에 번뜩이니 모든 것이 한바탕의 꿈과 같구나.

문득 두려워 바라보니인사(人事)와 새벽별(晨星)에 대한 글이로구나.

 

이 시()는 해월(海月선생께서 1594년 광해6년 갑인(甲寅)년에 지은 시()이다이 때는 창원부사(昌原府使)로 있다가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서공자(孔子)가 지은 춘추(春秋)를 좋아하여 손수 그 춘추(春秋)의 도리(道理)와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는 책 두 권을 쓰셨는데그 책 이름이 인경연의(麟經演義)이다.

또한 울진에 효자(孝子)로 이름이 있는 주경안(朱景顔)이 사망하자 그에 대한 제문(祭文)을 쓰셨고그에 대한 주효자전(朱孝子傳)을 지으셨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에는 그 효자(孝子)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그 이후에 쓴 시()가 바로 이 시()인 것이다.

 

 

 

 

 

정명리(正明里)의 명계서원(明溪書院) 현판과 전경

 

 

 

울진 정명리의 
대해(大海) 황 응청(黃 應淸)과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의 

위패를 모신 명계(明溪)서원

 

 

 

 

 

 

소 재 지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正明81

배향인물황 응청(黃 應淸황 여일(黃 汝一)

창건연도: 1671(현종 12)

향 사 일: 2월 중정(中丁)

 

 

연 혁

1671년(현종 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대해(大海) 황 응청(黃 應淸)과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881년(고종 18)에 서원 유지(遺址)에 강학소를 세우고 향촌의 교육을 담당했다. 1982년에 지방 유림에서 서원과 대해·해월선생을 모시는 사당인 덕유사(德裕祠)를 복설하였다.서원은 강당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에는 대해와 해월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강당인 상교당(尙敎堂)은 유림 회합과 학문 강론장소로 사용한다. 산을 등지고 경사면을 이용해 건축하였다. 남향으로 정명천을 끼고 넓은 들을 마주하고 있다.

 

 

배향인물

 

1)황 응청(黃 應淸, 1524~1605)

 

황응청은 평해 인으로 자(字)는 淸之(청지), 호(號)는 대해(大海)로 당시 평해군 지금의 기성면 정명촌(正明村)에 살았다.1552년(명종 7)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뒤 1560년(명종 15)에 세자의 입학을 경축하는 별시문과에 응시하였다가 책제(策題)에 좋지 않은 말이 있음을 보고 과장을 뛰쳐나왔다. 그 후 두문불출하고 산림에 묻혀 유유자적한 삶을 살면서 행실을 더욱 바르게 하고 절조를 닦았다. 부모와 형제 사이에 효제(孝悌)의 도리를 다하여, 양친이 돌아갈 때마다 각각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이 같은 지행고절(知行高節)과 효성에 감동한 고을 군수들이 관찰사에게 알리어 1578년(선조 11)에 살아 있을 때 정려가 내려졌다.1584년(선조 17) 조정에서 학행지사(學行之士)를 수용할 때 그도 반열에 들어 예봉사 참봉(禮奉寺 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다시 개성 연은전(延恩殿) 참봉에 제수되었는데, 일단은 명을 받들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사직하였다.1594년(선조 27) 조정에서 장원서 별제(掌苑署 別提)로 그를 불렀다. 당시는 왜란을 치르고 있을 때였는데, 마침 선조가 의주로 몽진하였다가 환도하였다.이에 신하의 의리로 끝내 자신의 지조만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여 대궐로 나아가고 아울러 시폐(時弊) 4조를 논한 상소를 올렸다. 선조가 그의 상소문을 가납하고 그를 진보현감에 임명하였다. 진보현감으로 부임하여 포용력 있는 정사로 다스리다가 2년도 채 안 되어 정명리로 돌아와 버렸다.낙향 후 후학을 가르치며 독서와 사색으로 사상의 경지를 넓혀갔으며 월천 조목(月川 趙穆, 1524∼1606)이나 대암 박성(大菴 朴惺, 1549~1606)과 편지를 주고받고,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1538~1609)등 당대 지성들과의 교류를 갖다가 1605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1671년(현종 12) 기성면 정명리에 있는 명계서원(明溪書院)에 봉안되었다.

 

 

2)황 여일(黃 汝一, 1556~1622)


창주(滄州) 황 응징(黃 應澄)의 아들로 중부(仲父)인 대해(大海) 황 응청(黃 應淸)에게 수학하였다. 그 뒤 퇴계 문하 학봉(學峰) 김성일(金誠一)의 제자가 된다. 더구나 해월은 학봉의 중형(仲兄) 되는 귀봉(龜峰) 김수일(金守一)의 사위가 된다.

1576년(선조 9)에 진사가 되고 1585년 개종계별시문과(改宗系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겸춘추관기사관(藝文館檢閱兼春秋館記事官)을 시작으로 경상도어사(慶尙道御使), 1592년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맡았다.
임진왜란이 나자 지략을 발휘해 함경감사 윤탁연(尹卓然)의 종사관이 된다.

1593년 형조정랑(刑曹正郞), 병조정랑(兵曹正郞)을 거쳐 1594년 형조정랑이 되고, 곧 도원수 권율(權慄)의 종사관으로 행주대첩에서 많은 공을 세운다.

1598년 명나라와 국교가 위태롭자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를 정사(正使)로, 해월은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가서 외교에 공을 세운다.

1601년 예천군수를 거쳐 1611년 길주목사(吉州牧使), 창원부사(昌原府使), 1615년에 동래부사, 공조참의 벼슬에 오른다. 1622년(광해 14)에 졸하였다.

1758년 고을 사람들이 기성면 정명리의 명계서원(明溪書院)에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과 배향하였다.

 

건축물

 

명계서원은 원래 현재의 위치보다 조금 아래쪽에 있었으나 홍수 등의 재해로 지금의 위치로 1758년 옮겨 세웠다.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기 전에는 강당과 사당, 동재인 솔성재(率性齋), 서재인 수도재(修道齋), 전사청, 영방루(盈放樓)와 대문간 채가 있었다.1982년 지방 유림에서 서원과 덕유사(德裕祠)를 복설하였다.건물은 강당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형에 따라 고저의 차이는 있지만, 건물의 축은 일직선상에 두었다.사당은 정면 2칸, 측면 한 칸 반의 맞배기와집으로 단청을 하고 측면에 풍혈판을 달았다. 3량가에 겹처마를 하고, 전열의 기둥만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강당은 담장을 두르지 않은 것에 비하여 사당 영역은 담장을 두르고 한 칸의 사주 문으로 출입문을 내어 건물이 지니는 의미와 위계성을 보여준다.강당은 ‘상교당(尙敎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3량 구조에 홑처마로 꾸몄다. 중앙의 2칸은 마루이며, 좌우에 방을 들였다. 마루의 전면으로도 각각의 칸마다 공간의 성격을 달리할 수 있도록 했다. 방은 모두 한 칸 반의 규모인데, 서쪽 방에는 ‘격치재(格致齋)’, 동쪽 방에는 ‘독역재(讀易齋)’라는 현판을 달아 동서재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마루와 방의 전면으로 모두 툇마루를 두었으며, 방들의 툇마루 아래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방은 측면으로도 문을 내어 통풍과 채광에 유리하도록 하였다. 전면으로는 두 짝의 여닫이문을 달았다. 기둥은 전열만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경내에는 덕유사(德裕祠), 격치재(格致齋), 독역재(讀易齋)라는 현판과 비석 1기가 있다.1868년(고종 5)에 훼철되기 전에는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이 쓴 명교당(明敎堂), 영방루(盈放樓), 솔성재(率性齋), 수도재(修道齋) 현판이 있었다.

 

 

1758년 명계서원 이건공사 기록

 

1758년에 거행된 명계서원 이건 행사는 당시 초헌관을 맡았던 복재(復齋) 이춘룡(李春龍, 1701-1770)의 일기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개인이 기록한 일기 형식으로 지역의 18세기 서원의 모습과 일하던 정황을 잘 묘사하여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마치 동영상을 보는 듯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건 일기는 이춘룡의 후손인 이태호씨가 보관하고 있는데, 중요 부분의 대략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서원은 1671년(현종 12)에 창건하였으니 그 터가 심히 낮아 지금의 우측 백호자락이 끊어진 끝머리로 두 하천이 합류하는 목이다. 앞은 촉박하고 뒤는 억누르고 있어 큰 규모로 시설할 수 없다. 다만 옛 석축의 섬돌 위에 조그마하게 열었다. 사당은 마치 다락(樓堂) 같으며 사당의 동서 모퉁이에 두 재실을 지으니 건물 배치 법도에 미흡했다.

그 후 정해(丁亥) 및 을축(乙丑)년의 큰 홍수에 대문이 떠내려가고 재소가 물에 잠겼다. 어찌할 겨를도 없이 탄식만 할 뿐 황류(黃流) 물결이 누(樓)의 계단까지 올라오고 둑이 거의 파여 나가는 급한 형편이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이건하기로 논의하였으나 서원의 재력이 적어 큰일을 도모하는 것은 어려웠다.

정인년에 동규(洞圭 : 마을원로) 황종하(黃宗夏)가 40전(錢)을 희사하였고, 다음 해에 또 곡식 십 두(十斗)를 기금으로 세워 여럿이 각각 분담하자고 말하기를 “우리가 함께 힘을 다하면 반드시 하나로써 열을 얻어 준공할 수 있을 것이라” 하고 취지문을 돌려 알리고 재원이 모이도록 기다렸다. 재원으로 돈과 곡식이 수백을 헤아리게 되었다.

(중략)

봉안(奉安)과 추향(秋享)하는 대례(大禮) 날이다. 옷깃을 여미고 제단을 성대하게 마련하니 싱그러운 바람과 맑은 달이 서로 교감하는 듯하였다.

아! 이건(移建)하고자 함이 여러 해였으나 이루지 못했다. 합향(合享)을 옛 좋은 시절에 행하지 아니하였음은 돌아보니 우리가 쇠잔하고 세상의 도(道)가 떨어져 그전에 능히 행할 수 있었던 여러 해 동안 이루지 아니한 바를 이제 거행코자 함은 소위 때를 기다렸음이 아닐까?

사묘(祠廟)를 전의 모습을 따라 반듯한 강당으로 점점 넓혔고 전에 없었던 별채 누사(樓舍)를 증축하였다. 옛 법식에 의한 건물 배치로 모두 동규(東規 : 주자강학소의 서원 규정)의 건설에 따른 것이다. 비록 백록동 서원의 모습에는 모자라지만 사당과 누대(樓臺)는 오히려 옛날의 단출함보다는 나아졌다. 또한 전에는 서재에 현판이 없었고 다만 누대 중에 서원의 이름 편액 하나만 걸려 있었다. 새롭게 선사(仙槎 : 울진)의 원남면 매화의 윤사진(尹思進)의 글씨로 현판을 새겼다.

윤사진의 서법은 인근 군·읍에서 명성이 높았다. 당을 명교(明敎)라 하고, 누(樓)를 영방(盈放)이라 하였다. 동·서재 이름을 동을 솔성(率性), 서를 수도(修道)라 명명하였다. 글자에 분(粉)을 칠한 현판을 정연하게 걸고 보니 한 인물이 난다.

선비는 지혜로 경영하고 양민들이 호응하였다. 매일 열심히 공역함에 선비들은 수고로움을 잊고 양민들은 또한 원망하는 자 없었다. 이는 덕(德)을 존중하고, 의(義)를 즐기는 인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같기 때문이다. 서고(書庫) 책임에 장응한(張應漢), 물자 관리에는 을선(乙先), 노비의 인솔에는 강영(江永)으로 하였다.

선임 노비들로 하여금 모든 노비들을 관리, 목수들의 일을 도왔다. 재목도 공교하게 다듬고 벽을 바르는 일 등에 손이 갈라 터져도 꺼리지 아니하였으며, 피곤해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하였다. 선현을 추모하는 정성과 천륜의 떳떳함을 잊은 바가 없었다.

도목수는 우천명(禹千命)이고 김중구(金重九)와 남윤찬(南允贊)이 보좌했다.
춘룡(春龍)은 특출하지 않으나 도간역(都幹役)을 맡아 사람들을 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 준공을 마쳤다. 나는 비록 일개의 임무이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어찌 허물없이 마치리요?

이에 전말을 서술하여 일기책 머리에 적는다.
上之三十五年 戊寅秋日 李春龍 謹敍(1758년, 영조 34)

 

■ 정월

- 무인(戊寅, 1758) 정월(正月) 6일 계축 비 조금 내림, 사당 터 사역 처음 시작함. 서원 인부 약간 명. 지휘도감 우천명(禹千命).
- 24일 신해 맑음. 정명동과 인근 마을 모두 참여.
- 25일 임자 맑음. 신곡동 여러 명, 사동의 젊은 유생 차례로 참여.
- 27일 갑인 맑음. 주담, 엄곡 두 마을 여러 명 참여.
- 28일 을묘 맑음. 상사동 여러 명 참여.
- 29일 병진 맑음. 하사동 여러 명 참여.


■ 2월

- 1일 정사 맑음. 황보동 여러 명과 전일 미참자 여러 명 참여.
- 3일 기미 맑음. 황보동 미참자, 모두 참여하여 지금까지 500명 정도 참여하였다.
- 4일 경신 이슬비 내림. 비량동 여러 명 참여. 별감 이인춘(李仁春)은 그 마을 어른 지위로서 함께 나와 장정들이 각각 모래와 나무 1속, 또 마을 쌀을 점심 양곡으로 내어 공역자들을 독려하는 등 본소의 일을 도왔으며, 이날 많은 사람이 돌을 날라 석축을 쌓아 명교당 터를 다듬어 가장 낮은 곳이 높아졌다.
- 6일 임술 맑음. 사동 황상하(黃尙夏) 집 뒤 소나무를 목재로 벌채 후에 사당을 넓히는데 사용.
- 11일 정묘 맑음. 사당 합향에 대해 논의하여 유사 황사하(黃師夏)에 서신을 지참시켜 단양부사에게 질의하다.
- 14일 경오 맑음. 재목, 서까래 나무 등을 각처에서 벌채. 이후 사당의 상량을 하였음.
- 21일 정축 맑음. 오시(午時)에 사당의 상량을 함.
- 22일 무인 맑음. 골마동 여러 명 참여. 읍내 거주 관원 손광억(孫光億)이 스스로 나와 장정들과 우차로 판자를 실어 날랐으며 종일토록 사역하였다.
- 23일 을묘 비 옴. 월야동의 매입한 집에서 벌목함. 그 마을 인부들이 깨어진 기와를 정리했다.
- 26일 임오 맑음. 정명동에서 나머지 사람 참여하였다 본동의 일이라 하여 특히 열심히 하였음.

 

■ 3월
- 4일 경인 맑음. 사당의 기와 올림. 신곡의 여러 사람 참여.
- 11일 정유 맑음. 범밭(虎田), 熊淵(곰못) 두 마을에서 함께 나와 명교당 공역을 시작함.
- 12일 무술 이슬비, 정명동 여러 명 참여, 명교당 초석을 놓음.
- 29일 을묘 맑음, 화구동 여러 명 참여. 공사 시작 후 참여자 거의 1,000명이다.

 

■ 4월
- 8일 계해 맑음. 명교당 기와 올릴 공역을 하였으며 서원 유생 또한 모여 공사를 독려함.
- 9일 갑자 맑음. 황보동 여러 명 참여, 월야동의 파옥 후 남은 재목 운반.

 

■ 5월
- 24일 기유 맑음. 합향의 일로 이향복(李享福)을 관찰사에게 보내어 회답을 받아 실행하기로 함에 따라 더위를 무릅쓰고 황사하(黃師夏)와 함께 보냄.
- 26일 신해. 우천명(禹千命)이 단청하고자 하였으나 연로하여 불가하므로, 향청의 선임 노비 김덕룡(金德龍)이 경주의 채색을 사오니 서울의 문채를 도입하게 되었다.

 

■ 6월
- 8일 임술 맑음. 다천동 여러 사람이 나왔음.
- 9일 계해 맑음. 남아동 여러 사람이 나왔음.
- 11일 을축 맑음. 원주에 글을 올린 유생들이 허락을 받아 돌아왔다. 즉시 군수에게 보이니 군수가 전에 했던 바를 믿었다.
- 13일 정묘 맑음. 7월 초 3일 봉안택일을 각 읍에 통문했다.
- 14일 무진 맑음. 달면동 여러 사람이 나왔음. 봉안 준비 절차를 논의하여 이달 30일에 해월선생 위판을 본 서원 임시 안소(安所)에 봉위한다는 뜻을 관아에 고하였다.
- 18일 임신 맑음. 황종하(黃宗夏)가 친히 매야의 윤사진(尹思進)에게 편액 글씨를 청하여 허락을 얻었다. 누판(樓版)은 이윤시(李允時)가 새기고 그 나머지는 황수하(黃受夏), 황응한(黃應漢)이 새겼다.
- 27일 신사 맑음. 관가로부터 제수와 각 종류의 물건 보내와 실로 기대했던 이상이었다. 이로 제향이 흡족했다. 봉안 시 모든 절차를 아는 황수하를 도감으로 하여 동재의 입재자로 각종 일을 감독하게 하고 서재에서 일을 보는 이는 많으므로 정 위치에 두도록 도감이 친히 배치하고 각 노복과 사환을 불러 시켰다. 황상하(黃尙夏) 일가에서 전문십우(錢文十雨), 백미 2석과 각종 물건수단을 보내왔고 또 문중에서 백미 1석, 명고정사 및 사동, 노동, 소곡의 세 서당에서 각각 백미 5두. 원생(院生) 각각 땔나무 1태(駄), 그리고 호장(戶長) 이동혁(李東赫)이 관가 관원으로부터 삼결(三結)과 땔나무. 근처의 노은동에서 황일청(黃一淸)이 전일관(錢一貫) 보내오니 고을에서 드문 일이다.
- 29일 계미 맑음. 향로(鄕老) 및 유생들이 일제히 서원으로 돌아갔다. 봉안하는 날이 7월 초3일이기 때문이다. 해월(海月) 선생의 위판(位版)은 이달 30일에 서원 재실에 옮기기로 하였다.
- 30일 갑신 맑음. 새벽에 고유하다. 향사(鄕社) 참판 정공(정담). 해월 신위전 고유문/영해부사 정옥이 지음. 제관 장동준(張東浚) 집례 ㅇㅇㅇ, 祝 이향원(李享遠), 봉향 남수희(南壽禧), 봉로 장동욱(張東旭) 행사를 마치고 이봉(移奉)하다. 해월공위판(海月公位版)을 모셔올 때에 관청에서 정한 관리가 나와 창(唱)을 하고 길을 인도하는 순라 1쌍(2명), 북, 장구, 피리, 해금, 태평소 1쌍, 길안내 4명, 일산 1명으로 갖추었다. 오시(午時)에 명계에 도착하여 동재에 우선 봉위하다.

 

■ 7월
- 1일 을유 맑고 바람. 영해부사 백사윤(白思潤) 참례 및 유생 3명, 울진 유생 3명 같이 왔음. 울진 매야(梅野) 윤원장(尹院長) 사근(思近)이 치하문과 동일관(銅一貫) 보내옴. 노은동 황일청(黃一淸), 황용하(黃龍河) 서간문과 동일관(銅一貫) 보내옴. 울진 유생 9명 오후에 옴. 서울 거주하는 유생 黃○이 옴. 영외(嶺外) 유생 1명도 오지 않았다. 이는 필시 너무 더운 날씨 탓이라 한(恨)스러웠다. 타읍의 유생들도 오지 못한 고로 정한바 대로 되지 못하였다. 영해교장 이인숙(李仁塾), 장의 권무령(權武齡)과 유생 1명이 저녁에 도착하였다. 저녁에 영방루(盈放樓)에 자리를 열고 도집례(都執禮)에 영해 교장 이인숙으로 하여 읍례를 마쳤다.
- 2일 병진 흐리고 가는 비 오다 맑음. 새벽에 도집례 수하 사람으로 하여금 북을 치게 하고 자리에 위치하도록 외침. 초헌 이춘용, 아헌 영해 백사윤, 종헌 영해의 이인숙 이하 생략.
- 3일 정해 맑음. 행사 시에 집사는 건복(巾服)을 하였고 건복하지 않은 유생들도 다 참배하니 도산(陶山)의 예이다. 예(禮)를 마치니 아침 해가 떠올랐다. 제관과 집사는 명교당(明敎堂)에서 음복하고 유생들은 영방루에서 음복하였으며 이날은 잔치로 마치니 실로 우리 고을에서 드문 일로 성대하고 위대한 행사였다. 

 

참고-한국국학진흥원 편󰡔경북서원지󰡕, 2007.

󰡔울진군지󰡕(울진군지편찬위원회, 2001)

신종우의 인명사전 http://www.shinjongwoo.co.kr/

디지털울진문화대전 http://uljin.grandculture.net/

월간 울진 신상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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