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복, 5.18 진상을 세상에 알리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부친 김사복씨가 세상에 알려진지도 어느덧 1년9개월째이다. 영화 주인공인 송강호 배역의 만섭씨가 김사복씨로 잘못 표현된 것이 못내 아쉬워 자식 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나름 열심히 뛰며 지낸 정신없는 세월이기도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네티즌의 안티성 발언으로부터 물론 그들은 진실을 알고 난 후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지만, 심지어는 극우단체의 일부 사람들에게 힌츠페터와 그를 도운 부친 김사복은 간첩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어처구니없는 세월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5.18민주화운동 39년째를 맞는 지금도 그날의 항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한 세월이기도 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밀폐된 광주의 실상을 세상에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두 번씩이나 사선을 넘었던 부친 김사복씨, 그 아들인 나는 부친을 선생님으로 부른다. 영어와 일어에 능통한 김사복선생은 외국인 전용 호텔택시를 운영하며 직접 손님들을 모시기도 했다. 언론의 탄압을 받았던 신군부 정권 당시 외신기자들에게 그런 이유로 인기가 많은 기사이기도 했다.

10.26 궁정동 사태로 박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민주화의 봄날을 기대했던 부친 김사복씨, 그 기대감은 잠시, 신군부의 계략에 큰 실망감을 아들인 저에게 전하기도 했다. 전국 계엄령확대 발표가 있던 1980년 5월17일 밤 12시, 긴박하게 상황을 인식한 부친은 독일 방송 ARD-NRD로부터 온 광주 취재 동행을 허락하고 진입할 준비를 철저히 했다 볼 수 있다.

(증거 : 힌츠페터씨와 김사복씨는 1973년에 10월3일 장준하선생 의문사인 포천 약사봉에 함께 했던 사진으로부터 이미 알고 지냈던 사이이었으며 평소와 같이 사전에 주문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힌츠페터 저서로부터 5월19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할 시 밖에서는 김사복씨가 기다리고 있으며 조선호텔로 가는 길에 현 상황에 관한 브리핑이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평소 성품과 같이 준비를 철저히 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광주 30km를 남겨두고 모든 외신기자들은 더 이상 진입 할 수 없었다. 총부리와 탱크는 두려움의 대상으로는 충분했다. 하지만 김사복 선생은 광주의 실상을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자의적인 의지와 소신으로 논밭 길과 산길을 넘어 힌츠페터씨를 광주에 진입시키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두 번을 진입하며 최선을 다한 내 아버지 김사복 선생은 무슨 기반으로 그런 과감한 일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오래전부터 장준하선생의 사상계와 함석헌선생의 씨알의 소리를 접하며 민주의식을 고취 시켰으며 일제 치하에서 배운 일어와 독학으로 쌓은 영어 실력 덕분에 통역 없이 외신기자들로부터 사실만을 전해 듣고 정의와 불의를 구분할 수 있었으며 또한 그 사실들을 민주운동가들에게 전하며 함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증거 :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함석헌선생 외손자인 정현필선생께서 보내 주신 사진자료에 의하면 1974년 1월 김사복선생이 장준하선생과 함석헌선생을 공판장으로 모시고 들어가는 사진자료)

이런 그의 용감한 행동과 소신으로 많은 국민들은 찬사와 존경을 표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에 눈과 귀를 닫은 일부 사람과 집단들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거리에 현수막을 걸어 힌츠페터와 김사복은 반국가 단체와 내통한 불순한 사람으로 폄훼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그로인해 지만원씨를 사자명예훼손의 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급기야는 민의 전당인 국회에서 몇 몇 국회의원을 선동하여 공청회를 가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에서도 그들은 다시금 힌츠페터는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필름을 받아 국민에게 유포했으며, 그를 도운 김사복은 간첩 빨갱이라고 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부친 김사복씨가 광주를 다녀오고 많은 말씀을 전해 들었던 그 당시 내 나이 22살, 전후 상황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그려진 만섭씨의 어린 딸로 인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아이로 둔갑하고 말았다. 심지어 그들은 ‘그 어린 네가 애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도 했다.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명예는 전혀 고려하지 않을뿐더러 그 유족이 그로인해 어떠한 고충을 겪을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어두운 사람들의 무지막지한 욕심으로 모든 고충은 고스라니 우리 유족과 나의 몫이 되고 말았다.

오래전에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 중앙지검으로 송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 진전이 없다. 그 상대인 지만원씨는 광화문 극우대회든, 언론에 끊임없이 등장하며 거짓을 진짜인양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런 이들이 백주대낮에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좀 의아하며 그저 부친이신 김사복선생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광주는 바쁘다. 너무 많은 일들로 치이는 것 같다.
그 날의 큰 아픔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광주에게 나는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광주망월동구묘지 이장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생전에 보고 싶어 하셨던 분들을 함께 모시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너무도 예측을 하지 못해 지금은 힘에 좀 겨운 상태다.   
그저 주어진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몇 몇 소신 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희망을 놓지 않은 체 하나하나 해결해 나아갈 뿐이다.

인권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열망한 김사복선생.
그 소신을 가족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광주에서 열매를 맺으신 부친 김사복선생.
그 어두운 사람들도 인권이 있다는 가르침이 나에게 괴로움을 준다.

이제 더 이상 죄짓지 말며 고해하고 용서를 구하여 민족의 화해를 이루어 후손들에게 좋은 세상을 넘겨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아들 김승필 씨가 공개한 사진 속 힌츠페터와 김사복(왼쪽부터). CBS노컷뉴스 제공

김사복씨 큰아들 김승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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