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11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11. ‘최중화 사건’을 조작한 이유

‘최중화 사건’은 ‘1983 버마 사건’의 선행 공작이었지만 처음부터 버마 테러를 목적으로 ‘최중화 사건’을 조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전두환네와 미국이 애초에 ‘최중화 사건’을 조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정치적 사건을 조작한 이유 및 그 배후(범인)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사건이 일어난 역사적 맥락과 그 맥락 속에서의 역사적 주체들(정권, 조직, 개인)의 움직임, 그 사건으로 인한 상황(세력 판도) 변화를 면밀히 살피면 된다. 문제의 사건으로 ‘덕 본 넘’을 찾고 사건 전후 그의 행적을 확인하는 범죄수사 원칙은 국가조작사건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전두환 정권 시기 저질러진 테러 사건들이 전두환 정권과 미국의 자작극이었다는 결론 역시 그 원칙에서 출발한다.)

우선 전두환 정권 내부의 동인(動因).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 정권과 그 배후인 미국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날로 커지고 있어 이를 무마할 묘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북을 ‘극악무도한 집단’으로 만들고 전 정권과 미국이 그에 맞서 국민의 안위를 수호한다는 이미지를 연출하는 이상의 묘안은 없었다.

이 내부적 동인은 ‘최중화 사건’(1981.1∼1982.2)과 ‘버마 사건’(1983.10.9) 및 이 사건의 예비적 음모였던 ‘대구 미 문화원 앞 시한폭탄 테러’(1983.9.22)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저들은 ‘광주학살 피해자인 척 하는 사람들’(최중화 씨 훗날 증언)을 동원해 최중화네와 만나게 했고, 대구 미국문화원 사건은 1980년 12월 광주 미 문화원을 시작으로 민주화운동 진영이 벌인 일련의 미 문화원 방화.점거 투쟁을 패러디한 역공작이었으며, ‘1983 버마 사건’ 역시 ‘최중화 사건으로 시작된 북한의 광주학살 응징 테러’(라종일『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의 완결판이었다.

또 미국과 전두환 정권은 이북(북한)의 평화통일 공세를 무마하려 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전두환 정권 초기 저질러진 위 두 건의 자작테러에도 해당되지만, 무엇보다 ‘최중화 사건’의 가장 강력한 동인이다. (*북측이 늘 평화통일 공세를 펴고 미국이(또한 남측이) 이를 거부하고 훼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입증이 가능한 ‘남북분단체제적 법칙’이지만,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학자.연구자.전문가들은 이 역사적 사실을 한사코 외면한다.)

박정희 정권을 용도폐기하고 전두환 정권을 세워 남북분단체제를 더 공고히 하려는 때, 북측은 6차 당대회(1980.10.10)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남측 민주 진영 및 해외 교포 지식층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등 대대적인 홍보전에 나서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중남미 비동맹 국가들을 상대로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북측이 초청장을 보내며 손짓하는 해외 - 특히 미주 지역 - 교포 그룹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북측의 비동맹외교에 기여하고 있었던 이가 바로 최중화의 부친 최홍희 씨였다. 1955년 이승만 정권 시절 태권도를 창시하고 1966년 세계태권도연맹(ITF)를 창설한 그는 베트남전에 태권도 교관단이 파견된 것을 계기로 자유.공산 진영 각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있었다. 박정희의 미움을 사 - 친한 이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 미국으로 망명한(1973) 뒤에도 여러 나라에 태권도를 보급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그런 최홍희가 1979년 9월 28일부터 한 달간 태권도 시범단 이끌고 방북한데 이어, 1980년 9월 20일부터 열흘 간 아들 최중화와 태권도시범단 10명을 이끌고 또 방북했다. 이때 김일성 주석을 만났고 평양을 나오면서 고려민주연방제 통일 방안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미국과 전두환 정권이 비동맹외교를 강화하면서 - 미국과 남한의 비동맹외교는 1970년대 말 박정희 정권 때 이미 시작됐다 - 해외 교포들을 상대로 한 역공작의 타깃으로 최 씨 부자를 정조준한 이유였다.
(*이남에서 퇴출당한 최홍희는 결국 태권도 보급에 필요한 자금력과 조직력이 필요해 이북과 손을 잡았고, 북측은 그의 명성과 태권도를 비동맹 외교에 활용했다. 만일 박정희 정권이 최홍희의 태권도 보급을 적극 후원했더라면 그는 외국으로 망명하거나 이북과 손잡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 ‘태권도 한류’의 산술적 효과는 BTS 등 지금의 이런저런 한류 효과의 최소 수 십 배에 달했을 것이다. 참조 :『태권도와 나 -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회고록』)
실제로 전두환 정권의 치안본부는 최중화네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서 시종 최 씨 부자의 친북 행적을 침소봉대했다.

[최중화는 ... 최홍희(崔泓熙, 64, 전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의 아들로서 캐나다 경찰의 수사가 본격화되자 유럽을 경유 ... 현재 북괴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최홍희는 육군 제2훈련소 소장 제○군단장을 역임한 후 62년 3월 예편, 말레이시아대사, 대한태권도협회회장 등을 지냈으며 72년 1월 캐나다로 이민한 후 반한 인사인 최덕신(崔德新.[동백림 사건 당시 주독대사]).임창영(林昌栄.[이승만 정권 시기 유엔대사]) 등과 79년 3월 유신독재 타도 및 조국 민주 발전 기여를 표방한 ‘배달군인회’를 창설 ... 80년 9월 태권도 시범단 10명을 데리고 북괴에 들어가 김일(金一) 둥과 회담했으며 함북 화태군 용원리에 사는 친형 최붕희(전 북괴 공업성 운영지도국 부국장)와 접촉했으며 이후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 ...그해 9월 29일 김일성과도 만나 “남한에는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 통일이 안 된다”는 발언을 했으며 9월30일 평양을 출발하면서 성명을 발표, 북괴 통일방안인 남북연방제를 찬양했다. 최는 지난해[1981년] 9월 28일에도 태권도 시범단을 인솔, 평양을 방문, 김일성을 찬양하고 충성을 다짐하는 등 캐나다에 이민 간 이래 북미 지역 교포를 규합, 극렬한 반정부 활동을 해 왔다.](<연합통신> 1982.2.26)

신문들도 사건의 초점을 ‘친북괴 최 씨 부자’에 맞췄다.

( 동아일보 1982.2.26 / 사진 설명 “[허정숙과 나란히 선 최홍희] 지난 11월 빈에서 열린 친북괴모임인 ‘해외한국인 기독자회’에 참석했던 최홍희(서 있는 남자들 왼쪽에서 3번째). 그 옆 안경 쓴 여자가 허정숙(許貞淑, 북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 서기국장). 허의 오른쪽 두 번째 남자가 최덕신”)

북측의 고려민주연방제 통일 방안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지금 가늠하기 힘들지만, 미국과 전두환네가 그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해 ‘북한의 테러’를 연작한 것을 보면 그 위력이 만만찮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4.19 국면에서의 남북통일 열기가 재연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1979년 박정희 정권을 무너지고 아직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 앉지 못한 당시 남측의 정치 지형은 1960년 미국이 이승만 정권을 용도폐기하고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전 상황과 비슷했다. 1980년 10월 북측이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시하자 미 국무부 한국과, CIA 한국지부, 주한미국대사관 등은 즉시 1960년 4.19 넉 달 뒤인 8.15에 즈음해 북측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시했을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저들은 새로 나온 고려민주연방제 통일 방안이 자칫 통일의 불씨를 살린다면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 하는 식의 통일 열기가 다시 분출할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북측이 고려민주연방제 통일 방안을 제시하기 두 달 전부터 남한에서는 ‘연방제 통일 방안’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 출범을 위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김 씨가 1973년 제창한 3단계 통일방안을 1960년 8.15 광복절에 북측이 처음 제시한 남북연방제와 같은 것이라고 몰아세우려다 빚어진 논란이었다. 

[김대중 피고인은 “고려연방제를 주장한 것은 지난 73년 3월 일본 동경 외신구락부에서 한 것이고 그 후 3개월 후인 6월 23일 김일성이 체코 북괴방문단 환영 연설에서 고려연방제를 주장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3개월의 시차가 있다”고 ... 검찰관이 60년 8월 14일 자 모 일간지에 난 김일성의 연방제 주장 관계 보도를 보여주고 “당시 민주당 강원도당 부위원장으로 있던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박 ...그는[김대중] “동경 외신구락부에서 주창한 연방제는 남북이 연방제를 만들면서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자는 것으로 60년 김일성이 이야기했다 해도 그 연방제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진술 ...] (<동아일보> 1980.8.27)

어쩌면 전두환 정권의 조작질로 촉발한 연방제 논란이 북측으로 하여금 20년 만에 연방제 통일방안을 재정립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10일 오후 북괴 노동당 제6차 대회 ...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국호로 한 한반도의 비동맹 중립국가화를 제의 ... 남북한 간의 군사적 대치 상태를 해체, 쌍방 병력을 10만∼15만 명 선으로 줄이고 이른바 민족연합군을 창건하여 양측의 공동관리 하에 두자고 ... 주한미군 철수, 대미평화협정 체결, 이른바 두 개의 한국 정책 철회,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폐기 등 종래의 상투적인 주장들을 되풀이 ... ] (「김일성, 고려연방제 되풀이... 비동맹 중립국가화 주장」<동아일보> 1980.10.11)

북측이 밝힌 고려민주연방제 통일 방안 등은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통일 방안이었지만 전두환네는 즉각 이를 폄훼하고 나섰다. 남북조절위 서울 측 대변인 이동복(李東馥)이 ‘대북괴 성명’을 발표, “북측의 소위 연방제 통일방안은 두 개의 본질적으로 상이한 정치제도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뒤섞고 있는 원칙적으로 비현실적인 발상”이라고 폄훼했다. 궤변이다. 남북이 각각 상이한 정치제도를 유지한 채 교류와 협력의 폭을 넓혀 나가자는 것을 ‘남과 북의 상이한 체제를 뒤섞는다’고 왜곡한 것이다.
(* 이 씨의 이런 행위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국이 조선의 즉각적인 독립에 반대해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을 소련이 주장한 것처럼 <동아일보>가 왜곡 보도한 반민족적.반통일적 행위와 비슷하다. 이동복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거의 해체되다시피 할 때도 국장급 직책을 유지했으며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남북분단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이들이기 때문이라고 앞글에서 지적했다. 이 씨는 1991년 남북대화 때 남측 대표단 대변인으로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협의와 관련된 훈령을 조작해 사업을 파탄시켰고, 지금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친북좌파정권이라고 매도하며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부정한다. 이동복 같은 이들에게 6.15선언 2항은 마른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았을 것이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이동복은 북측이 과거 ‘고려연방공화국’ 주장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주장으로 바꿔 놓고 새로운 평화통일방안인 것처럼 선전했다며 “이는 늑대의 몸에 양의 가죽을 입혀 세상의 이목을 속여 보려는 흉계”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이후 신문들은 사설 등을 통해 연일 북측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놓고 비현실적이니 허구적이니 하며 매도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폄훼하고 매도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북측은 매우 공격적으로 통일외교 공세를 펴고 있었다.

[【서울=내외】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지난날의 상투적인 연방제 주장을 개명, 분식한 제의를 내놓은 이후 대대적인 위장평화공세를 펼치고 있는 북괴는 지난 20일 그들의 남북통일전선 조직인 ‘조국전선’ 명의로 한국의 각계 인사 150여 명 앞으로 이에 호응할 것을 선동하는 내용의 편지를 발송한 것으로 발표한데 이어 지난 24일 또 다시 이와같은 내용의 편지를 해외 각국의 200여 교포들에게도 발송한 것으로 북괴 방송들이 25일 보도했다.] (「재외교포 200명에 북괴 또 편지 발송」<동아일보> 1980.11.26)

이런 ‘편지 외교’가 뭐 그리 대단했을까 싶지만 당시 미주 교포 사회 내 반정부(반전두환) 정서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미국으로 도망쳐 박 정권의 온갖 비리를 폭로한 지 불과 3년, 누군가 그를 파리로 유인해 살해한 지 불과 1년 밖에 안 됐을 때다. 또 김형욱이 동백림 사건을 조작할 때(1967) 독일대사였고 박정희의 유신 직후 미국에 망명한 최덕신(崔德新)이 최홍희와 의기투합하고 있었다. 반북적대전선을 구축하려는 전두환 정권과 미국에게는 매우 달갑잖은 일이었을 것이다.

또 1970년대 말부터 미국과 캐나다 교포들이 한국전쟁 때 헤어진 부모 형제를 찾아 몰래 북한에 다녀와 북녘 소식을 전파했고, 전두환 정권은 이를 막기 위해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난관을 뚫고 북녘을 다녀온 이들이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한창일 때인 1988년 앞 다퉈 ‘북한 방문기’를 펴냈다.『분단을 뛰어넘어 : 북한방문기-1』도 그 중 하나. 노태우 정권은 즉각 이 책의 판매를 금지했다.)

(사진 좌: 책 표지 / 사진 우 : 한겨레신문 1988.6.26)

급기야 전두환 정권과 미국은 ‘북괴 제압 외교’를 선언하며 북측이 제시한 고려민주연방제 무력화에 나선다.

[외무부는 최근 격화되고 있는 북괴의 대남 고립화책동을 견제하고 나아가 이를 제압할 수 있는 기반 조성 작업으로 진용 정비와 함께 대(對)비동맹관계 강화에 중점을 두어 새해에는 더욱 박차를 가할 것 ... 외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25일 “북괴는 금년 중반 이래의 대남 공세를 최근 세계 도처에서 더욱 격화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하고 “정부는 단순히 북괴의 이같은 책동에 대응하는 외교 자세를 지양하여 북괴 제압 외교 기반을 다져 나갈 것”이라고 ... 이 당국자는 [강조]“정부는 최근 북괴가 현실성이 전혀 없는 ‘고려연방제’ 안과 대미 단독 평화협정 체결을 세계에 선전하고 다니는 사실을 주시, 이같은 북괴의 선전 책동을 분쇄할 충분한 대안을 마련[강조]하는 등 작업도 벌이고 있다”고 ... ] (「새해 비동맹외교 강화」<동아일보> 1980.12.25)

북측은 이런 ‘편지 외교’ 외에도 7∼8월 중 외상 허담(許談)을 시켜 비동맹 교섭 목적으로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7개국을 순방하게 했고, 10월의 제6차 노동당대회 대표단 유치를 위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장엽(黃長燁) 등을 동남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에 보냈으며, 1980년 12월에도 외교부 부부장 김충일.김형우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순방하는 등 비동맹외교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과 미국은 북측의 이런 외교공세가 1981년 2월 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비동맹 외상회의를 겨냥하고 있다고 판단, 1980년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대통령 특사 5개 반을 30개 비동맹국에 파견하는 등 ‘맞불’을 놨다. 외무장관 노신영 팀이 가봉 등 서부 아프리카 6개국을, 보사부장관 천명기 팀이 케냐 등 동부 아프리카 6개국을, 제1무임소장관 최광수 팀이 인도 등 아중동 6개국을, 총무처장관 김용휴 팀이 바하마 등 카리브해 연안 6개국을, 외무장관을 지낸 박동진이 브라질 등 중남미 6개국을 각각 순방, 각국의 대통령 또는 외상 등 정부 고위 당국자들과의 접촉했다(「새해 비동맹외교 강화」<동아일보> 1980.12.25). 이어 1981년부터 1983년까지 내리 3년 간 동남아와 서아프리카, 서남아-대양주를 상대로 한 비동맹국가 순방 일정을 짠 것이다. 

1981년 벽두부터 전두환 정권이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을 짐짓 제안한 것도 북측의 연방제 통일 방안을 무력화시키려는 ‘맞불’이었다. 전두환은 1981년 1월 12일 국정연설에서 남북한 최고책임자의 상호 방문을 제의한 것을 시작으로(1.12 제의), 6월 5일 이를 재탕해 ‘제3국에서라도 만나자’고 다시 제의했으며(6.5 제의), 1982년 국정연설(1.22)에서 또 남북한 최고책임자가 만나 헌법적 통일 절차를 마련하자는 내용으로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을 제시했다.

( 조선일보 1981.1.12)

나름 합리적인 구석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사전에 실무회담 한 번 열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나서 ‘남북 최고책임자가 만나자’고 말한 것은 통일 의제를 선점하고 북측의 연방제안에 쏠리는 관심을 차단하려는 꼼수였다. 1.12 제의로부터 이를 재탕한 6.5 제의가 나오기까지 전두환네와 미국은 연일 이북을 공격했다. 1.12 제의 2주 뒤 전통(全統)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전두환 대통령은 [2월] 3일 南北韓 최고 지도자들의 상호 방문을 위한 자신의 1.12제의를 재확인 ... 全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 “초청이 있으면 기꺼이 北韓을 訪問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全대통령은 그러나 北傀의 호전성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北傀는 世界에서 가장 폐쇄되고 통제된 국가라 말하고 ... ] (「“김일성 초청 있으면 기꺼이 북한 가겠다”...전 대통령 회견」<연합통신>1981.2.4)

전통이 미국에 다녀온 지 한 달 뒤.

[【워싱턴=강인섭 특파원】북한은 ... 고려연방제 통일론을 국제사회에 선전하고 해외교포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 ①각종 국제학술회의 적극 참가 ②친북한 교포들을 중심으로 한 토론회 개최 ③각종 국제회의 및 국제기구를 통한 선전 활동 등 다각적인 침투공작을 전개 ... 고려연방제를 주제로 한 재미교포 중심의 심포지엄 개최 계획이 좌절 ... 토론토의 아시아 학회 총회는 개막 첫날인 13일 브루스 커밍스 미 워싱턴대 교수의 사회로 남북한 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통일 문제에 관한 토론을 벌일 예정이었는데, ... 캐나다 정부의 입국 사증(비자) 발급 거부로 북한 측 대표가 참석하지 못했으며, 14일부터 이틀 동안 워싱턴에서 열 예정이던 ‘고려연방제 심포지엄’도 ... 현지 반공단체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몇[차례] 회의 장소를 옮긴 끝에 주최 측이 스스로 심포지엄 개최를 단념 ...] (「북괴 해외선전 책동 캐나다 미국 곳곳서 좌절」<동아일보> 1981.3.13)

미국과 캐나다 교포사회를 겨냥한 공작이 이 정도였다면, 그 중심에 서 있는 최홍희 부자를 타깃으로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며칠 뒤 <경향신문>이 사설에서 고려연방제를 교포 사회 분열 공작이라고 폄훼했다. 통합 공작을 분열 공작이라고 말하는 이 어리석음!

[북괴는 최근 해외 여론과 교포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선전공세와 공작 활동을 전개하고 있어 ... 북괴의 이같은 일련의 대외 공세를 종합해 보면 대남 통일노선인 고려연방제를 선전하는데 급급 ... 상투적인 위장평화 공세에 대한 국제적 호응을 얻기 위해 각종 국제학술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친북괴 교포를 중심으로 한 토론회를 적극 유도 ... 북괴는 국민적 화합 속에 제5공화국이 순조롭게 탄생하게 되자[?] 10.26 이후 끈덕지게 펴 온 대한 교란 책동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판단하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다시 해외 여론을 오도케 하여 한국에 대한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려 ... 고려연방제 통일론이란 북괴의 기본 목표인 대남적화혁명 전략의 한 가닥이며 ... ] (「북괴의 교포 사회를 겨냥한 새로운 반한 책동」<경향신문> 1981.3.20)

앞에서는 남북한 최고당국자회담을 제의하고 뒤로는 북측의 고려민주연방제 통일 방안을 폄훼하고 매도하면서 ‘친북 캐나다 교포 일당이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각본을 짠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 제의를 연발한 기간이 전두환 정권과 미국 등이 ‘최중화 공작’을 벌인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캐나다]왕립경찰과 온타리오주 경찰청의 공동발표문은 캐나다인들이 지난 1월 1일 이후 이번 주까지 수 명의 북한인들과[?] 전 대통령 위해 음모를 꾸몄으며 ...] (「전 대통령 위해 북괴 음모 적발 - 캐나다 경찰 발표 - 캐나다인 3명 고용 모의 6개월」<동아일보> 1982.2.26)

위에서 ‘지난 1월 1일’은 ‘지난해 1월 1일’의 오기다.
 
[이 사건은 작년[1981년] 1월 재(在)토론토 친공분자인 최홍희가 북괴로부터 전 대통령 암살 지령을 받았고, 최는 아들 중화에게 이를 시행토록 지시했다는 ... 최중화가 평소 친구로 지내는 캐나다의 지하조직원인 무기밀매상 찰스 야노버(36)와 상의, 야노버로 하여금 ... 제롤을 포섭토록 ... 이어 장물 취급을 전문으로 하는 상습 사기범 클레저만(52)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고 ... ] (「“북괴 거액 공작금 주고 지령” - 캐나다 경찰이 밝힌 전모」<조선일보> 1982.3.2 / 최중화가 야노버를 꼬드겼다는 이 기사는 날조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정보당국과 연계된 이들 이스라엘계 캐나다 마피아 패거리들이 최중화를 ‘전두환 살해 음모’에 끌어들였음은 앞글(10편)에서 밝혔다.)

이처럼 전두환이 1981년 1월 12월 난데없이 ‘남북한 최고책임자 상호 방문’을 제의한 때 ‘최중화 공작’이 시작됐고 이듬해인 1월 22일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이란 것을 제의한 지 한 달 만에 캐나다 경찰 당국이 ‘최중화 공작 전모’를 발표한 것이다. 야노버 등의 ‘필리핀에서의 전두환 살해 모의’ 시점이 ‘1.12 제의’를 재탕한 ‘6.5 제의’ 직후인 점도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캐나다 당국에 체포된 찰스 야노버와 알렉산더 제롤 등이 “81년 5월 북괴 공작원으로부터[?] 50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전 대통령을 암살키로 계약을 맺었으며 그 후 마카오에서 현찰을 건네받았고”(<경향신문> 1984.2.18), “6월에는 마카오에서 북한으로부터 착수금조로 미화 1백불 짜리가 가득 담겨져 있는 가방을 두 개 받았[고]... 북한이 81년 7월에 야노버에게 전 대통령이 곧 필리핀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통보”(<연합통신> 1991.3.14)한 것처럼 각본을 짰다.

6.5 제의는 1981년 3월 급조된 ‘평통자문회의’ 개막식에서 전두환이 한 개회사였다. ‘남북한 최고책임자의 상호 방문’을 주장한 1.12 제의를 상기하면서 ‘상호 초청이 어려우면 제3국에서라도 만나자’고 거듭 촉구하는 내용이었지만 실제로는 북측의 연방제에 대한 악선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정부는 ‘6.5 제의’에 대한 홍보와 함께 북측이 소위 평화통일방안으로 내건 고려연방제가 36년 간의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야기된 극심한 불신과과 대립을 도외시한 것으로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임을 각국에 주지시킬 방침이다.] (「6.5 재의 실현 외교 노력 박차, 북괴의 고려연방제 허구성 홍보」<연합통신> 1981.6.6)

( 동아일보 1981.6.5)

6월 24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서울시내 반공연맹 전 회원과 알반 시민, 예비군, 학생, 공무원 등 약 2백만 명을 모아 놓고 ‘북괴 재침 흉계 분쇄 및 6.5제의 수락 촉구 궐기대회’를 열고, 이틀 뒤인 6월 26일 부산과 인천에서 똑같은 행사를 벌인 것은 1.12니 6.5니 하는 것들이 모두 북측의 평화 제의에 어깃장을 놓기 위한 심리전 공작이었음을 웅변한다. 이런 대북 공세는 아시아 5개국 순방 중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도 계속됐다.

[【자카르타=OOO특파원】전두환 대통령은 26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부터 영빈관 2층 회견장에서 42분 동안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 당국은 우리의 1.12, 6.5 제의에 대해 아직까지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계속 인내심을 갖고 우리의 평화통일정책을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 “그러나 만일 북한이 오판해서 다시 남침한다면 우리는 북한의 중요한 모든 시설을 완전히 파멸시킬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고 ... [강조]“북한 당국이 주장하고 있는 고려연방제는 기만에 불과하고 ... 이념적 정치체제가 같지 않고 경제사회체제가 다르며 상호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와 협조가 선행되지 않고 있어 기본적인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것”[강조]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전 대통령 기자회견 “고려연방제는 한국 적화 위한 기만 ... 재남침땐 파별 할 막강 전력 보유”」<연합통신> 1981.6.27)

( 조선일보 1981.6.27)

북측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폄훼하면서 동시에 북측이 어떤 일을 벌일 것이라며 긴장된 분위기를 조장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중화 공작’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전통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는 중공 인민해방군 부참모장이 북한의 남침을 말리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동경=연합】중공은 북괴가 남침을 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남한을 제압할 수 있으나 곧 반격을 당해 오히려 전세가 역전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일본의 정통한 관계 소식통이 7일 밝혔다. 중공의 이같은 판단은 지난 5월 12일 평양을 방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吳振宇) 등 북괴군 실력자들과 일련의 회담을 갖고 귀국한 중공 인민해방군 부참모장 오수권(吳修權)이 분석한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은 ... 판단의 구체적인 근거에 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피했으나 오 부참모장의 북괴 방문이 최근 중공과의 사이에 미묘하게 벌어진 북괴의 군사력을 살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 ] (「“북괴 남침 승산 없다... 장기전서 패배” 중공 부참모장 분석」<조선일보> 1981.7.8 / 위 기사는 <연합통신> 도쿄 특파원이 쓴 기사를 <조선일보>가 제목만 바꿔 전재한 것이다. 글에 등장하는 ‘일본의 정통한 관계소식통’은 99.99% 일본에 나가 활동하는 안기부 해외공작관이거나 이들과 연계된 조직이다. 마치 일본의 고위 정부 인사가 중공 군 당국자에게서 들었을 법한 이야기를 기자에게 전한 것처럼 썼지만, 남한 기자가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직접 전해들을 개연성은 제로(0)다. 위 기사는 중공 인민해방군 부참모장이 북한을 방문해 인민무력부장을 만나고 돌아간 팩트에 허구적 이야기를 뒤섞어 만든 전형적인 대북심리전 찌라시다. 당시 <연합통신> 도쿄특파원이 쓴 이북 관련 기사 중에는 안기부와 연계된 현지 한글 매체 등의 말과 글을 베껴 전달하는 찌라시 수준의 글이 많았다.)

( 조선일보 1981.7.8)

위 기사에는 현재 북한에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중공파’, 남한에서 광주사태와 같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날 경우 두 번 다시 기회를 잃지 말고 남침을 해야 한다는 ‘소련파’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둥 소설 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1980년대 특히 1980년대 초반은 레이건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일방적으로 소련과 북한을 벼랑으로 몰아세우는 고강도 군사작전을 전개한 때로, 북측은 경제 발전과 건설에 여념이 없었다. ‘북한의 남침’ 운운은 100% 거짓 심리전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 시기 전두환이 수시로 ‘북한의 파멸’ ‘궤멸’을 입에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전두환 정권과 미국은 ‘이북이 남침하려 한다’거나 ‘중공이 이를 말리고 있다’는 둥 없는 이야기를 마구 지어내면서까지 남북 간 긴장의 파고를 높이려 했고, 이 와중에 육사 12기들이 주도했다는 북파공작 계획인 ‘812 계획’이 나온다. 이때도 이북의 고려연방제를 폄훼하고 매도하는 언사가 빠지지 않았다.

[북괴는 26일 공해 상공을 정찰 비행 중이던 미국의 최신예 고공정찰기인 SR-71 블랙버드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또 다시 한반도에 긴장을 몰고 왔다. ... 지난 12일 북괴의 미그-21기 2대가 대낮에 우리 영공인 서해의 백령도 상공을 침투 비행한 지 불과 2주일 만에 자행 ... 기회 있을 때마다 ‘고려연방제’니 ‘평화통일 4원칙’이니 하는 위장평화통일을 대외에 선전 ... 무엇보다도 이같은 도발은 북한 내부 사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 체제 내의 불안을 외부로 발산시켜 북한 주민 및 반대 세력의 불만 등을 무마하거나 불만의 대상을 호도하려 ... ] (「백령도 침공 2주 만에 자행 - 세습 불만 가리려는 저의」<경향신문> 1981.8.28)

위 인용문 말미가 의미심장하다. “체제 내의 불안을 외부로 발산시켜 북한 주민 및 반대 세력의 불만 등을 무마하거나 불만의 대상을 호도하려 ... ” ‘이북이 내부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남침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통(全統)은 “올해(1981)와 내년(1982) 북괴가 불장난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떠벌렸다.

[전두환 대통령은 4일 북괴가 미 정찰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그들이 이미 전쟁 준비를 마친 증거라고 지적, [강조]올해와 내년이 북괴가 불장난을 저지를지도 모를 가장 위험한 고비라고[강조] 말했다.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경남북 지방의 수해 지역을 시찰한 뒤 경북도청 회의실에서 대구시 및 도 내 기관장을 비롯, 유지 등 80여 명과 만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 [강조]북한은 세습체제에 대한 자체 내의 불만과 경제, 외교적인 어려움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최근 잇단 도발을 자행한 것[강조]으로 본다고 설명하고 ... ] (「북괴 도발 올-내년이 고비」<조선일보> 1981.9.5)

“북한은 세습체제에 대한 자체 내의 불만과 경제, 외교적인 어려움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최근 잇단 도발을 자행한 것으로 본다.” 전두환의 이런 언설은 1980년 10월 10일 조선(북한)이 6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일 총비서를 ‘후계자’로 낙점한 이후 시작된 자기기만적 망상의 단면이었다. 남측은 이 후계자 승계를 ‘부자 세습’으로 규정하고 ‘북한 내부의 불만 폭발’을 단정한 뒤 ‘북측이 이 내부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대남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자기기만적 망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김일성은 북괴 노동당 제6차대회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그의 아들 김정일을 사실상 후계자로 등장시켰다. 공산 정권에서는 유례가 없는 세습 왕조 창설에 합법성을 부여 ... 김정일이 취할 가능성이 높은 강경정책과 통제강화 노선은 주민들의 불평불만을 누적,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 ... 주민의 저항의식이 노출되고 세력 간의 정책 대립이 빚어지며 권력 암투가 노골화될 것이란 추측도 ... 김정일의 지위도 오래 못 갈 것 ... 김일성 격하 운동도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이란 전망 ... 과격한 성격인 김정일은 체제 구축을 위해 대내적으로는 극도의 긴장을 조성하고 대남 면에서는 [강조]내부의 취약점을 덮어두려는 속셈에서 강력한 선전과 도발 공세를 취할 것[강조]이란 견해가 ... 남한 정국은 물론 한반도 주변 정세를 최대한 이용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는 것 ... 극동문제연구소 강인덕(康仁德) 소장은 ... “그들로서는 대남적화통일정책을 계속 추구할 것이 분명 ... ”] (「세습 북한 앞날 험난 - 내부 취약 감추려 남북 긴장 최대 이용 예상」<동아일보> 1980.10.14)

( 동아일보 1980.10.14)

김정일 총비서가 ‘과격하고 잔인해서’ 극심한 내부 혼란이 조성될 것이고, 그 혼란은 곧바로 대남 도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잿빛 전망은 당시 남한 사회에서는 거의 정설이었다. 이런 망발은 1년 뒤 <경향신문> 사설에도 있었다.

[독재체제가 계속되는 한 주민들의 불평 불만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고 군부 내 무력 충돌과 같은 제2.3의 자중지란은 얼마든지 속출될 소지가 있는 것 ... 결국 [강조]북괴는 이와같은 대내적인 갈등과 폭발 요인을 은폐, 호도하기 위해 또다시 대남 도발을 자행할 지도 모른다[강조]는 점을 명심 ...] (「김일성 세습 체제의 내부 갈등과 폭동 요인」<경향신문> 1981.10.26)

전두환네는 이처럼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자기네 상상만으로 빚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실제로 사건화할만큼 잔인했다. 실재하지 않는 ‘북한의 도발’을 실재하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최중화 사건’을 조작하면서 동시에 저들은 ‘북괴의 지령을 받는 재일동포 간첩 사건’을 조작하고 있었다. 

[국가안전기획부는 미국과 일본에 거점을 둔 북괴 공작원에게 포섭돼 간첩 교육을 받고 국내에 잠입, 학원가에 침투하거나 산업 기밀을 탐지하는 등 간첩 활동을 해 온 재미교포간첩 홍선길(洪善吉. 50. 기계기술공)과 재일교포 2세 간첩 진이칙(陳利則, 23, 서울대 재외국민교육원 학생, 휴학 중)과 기술 연수 차 일본에 갔다가 포섭된 간첩 김장길(金長吉, 39) 등 3개 간첩망 일당 9명을 검거, 검찰에 송치했다고 6일 발표했다. 안기부는 이들 간첩망이 모두 북괴의 해외공작과 연계돼 우회 침투, 국내 연고자들을 포섭해 해외 여행 또는 이민 주선 등의 방법으로 제3국을 통해 북괴 방문을 유인하거나 학원 소요 등을 배후 조종하고 사회 불안을 획책했으며 군사.산업 기밀을 탐지하는 등 암약해 왔다고 밝혔다.] (「안기부 발표, 재미 교포 간첩 등 3개 망 9명 검거」<경향신문> 1981.11.6 / 1981∼1983년 기간에만 7건의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이 조작돼 위 기사에 언급된 이들을 포함해 10여 명의 교포 2세들이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

( 경향신문 1981.11.6)

저들은 또 한편으로 이동복 같은 이들을 내세워 연일 이북의 연방제 통일 방안에 재를 뿌렸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조선노동당 6차대회 이후 ‘고려연방’안을 봉남평화 공세의 중심 내용으로 활용, 우리 국민과 미국 등 서구 지역의 해외 동포들과 우리 정부를 이간시키려 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비동맹국과 우리 정부를 이간시키려는 선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측의 고려연방안은 우선 남북한이 이 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대화 상대방으로 우리 정부 당국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들고 나오고 ... 실현 가능한 평화적 통일방안이 될 수가 없다. ... 북한 측이 최근 고려안방안을 더욱 맹렬히 거론하고 있는 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1.12, 6.5 제의를 거부하려는 저의에서 나온 태도임이 분명 ... [강조]김정일 시대의 북한은 ... 모험적은 아닐지라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강조]] (「북괴 전략과 고려연방제 ... 이동복, “연방안은 대남적화 술책”」<경향신문> 1981.11.23)

( 경향신문 1981.11.23)

북측이 1980년 10월 제시한 고려민주연방제 통일 방안을 무력화할 목적으로 1981년부터 1.12, 6.5 제의를 잇달아 내 놓고 거꾸로 이야기하고 있다. 왜곡과 전도의 전형이다. 이런 자기기만적 망상은 “김정일 시대의 북한은 ... 과격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자기최면과 동전의 양면이다.
이런 과격하고 극단적인 언사를 남발한 뒤 캐나다 경찰과 치안본부를 시켜 ‘북한이 캐나다 교포를 시켜 전두환을 살해하려는 극단적 행동을 했다’고 떠벌리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그렇게 대북 적대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다 급기야 ‘1983 버마 아웅산 묘소 테러’라는 자해극을 벌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P.S.

이북의 지도자가 ‘과격하고 잔인해서’ 내부에 극심한 혼란이 조성될 것이고, 그 혼란은 곧바로 대남 도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망상은 지금도 유령처럼 남녘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이 땅 남녘 주민들이 항시 반북적대감에 치를 떠는 정신 상태를 지니도록 은연중 세뇌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북녘 지도자는 과격하고 잔인하다’는 이미지를 씌우는 일이다.

1980년과 1981년 집중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조작한 이유는 1980년 10월 이북의 노동당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 총비서가 새 후계자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런 더럽고 치사한 여론 조작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측의 새 지도자가 됐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3년 그가 고모부인 장성택을 총살하도록 명령했다는 ‘썰’을 유포하더니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그가 이복형인 김정남을 살해한 것처럼 사건을 만들었다. 김정일 총비서에게 ‘과격.잔인’ 이미지를 씌운 뒤 전두환 정권 7년 동안 무려 네의 자작테러를 벌였듯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그 이미지를 씌워놓고 4년 뒤 김정남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기에만 네 건의 자작테러를 저질러 놓고 그 때마다 그 책임을 북한에게 뒤집어씌운 것과 마찬가지로, 미 CIA와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등이 공모해 김정남을 살해한 사건을 두고 저들은 정치권과 언론, 각계각층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과격하고 잔인한 김정은 위원장이 이복형을 살해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렸다.

남북 분단체제는 남녘 주민들을 대북적대의 원소(元素)화하는 더럽고 추잡한 음모와 공작, 이런 더럽고 추잡한 음모와 공작의 진상을 모르는 아둔한 친미반북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유지 보수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입증이 가능한 법칙’이다.

아, 한 가지 더. 더럽고 추잡한 음모와 공작, 아둔한 친미반북 이데올로그들의 ‘떼창’ 외에 저들이 남북분단체제를 유지 보수하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망나니의 칼과도 같은 국가보안법이 그것이다. 음모와 공작, 거짓 선전과 선동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감히 남과 북의 화합과 공생 공영, 평화적 통일을 위해 어떤 경위로 북측과 연락이라도 취했다가는 어디선가 바람처럼 튀어나와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를 만나게 된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닌, 따라서 “역사적으로 이미 입증됐다”고 말할 수 있는 ‘분단체제의 법칙’이다.
(1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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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파르티쟌  2021년6월5일 10시19분    
강진욱 기자님 항상 좋은 분석글 잘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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