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의인’ 박노정 선생의 타계를 애도함

사람에겐 때론 우연, 아니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는, 뭔가 생각지도 못한 예지몽 같은 것이 일어날 때가 더러 있다. 며칠 전 오랜 기간을 잡고서 해오고 있는 집필작업의 일환으로 ‘진주 형평운동’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게 됐다. 약술하면 형평운동이란 일제 때 진주지역에서 백정들의 신분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일어난, 일종의 민간 인권운동이다.

‘진주문화를 찾아서’ 시리즈 제3권으로 출간된 ‘형평운동’ 표지

형평사 제6회 정기 전국대회(1928년) 포스터

한동안 역사에 묻혔던 이 운동이 다시 세인의 기억에 복기된 것은 ‘진주의 의인’ 박노정 선생 일행의 노력 덕분이다. 언젠가 진주엘 갔다가 지인의 소개로 박 선생을 한번 뵌 적이 있다. 며칠 전 바로 그 박 선생의 부음을 접했다. 며칠 전 형평운동 책을 손에 잡은 그 무렵에 선생이 돌아가신 게 아닌가 싶다.

박 선생의 다양한 지적, 사회적, 공익적 활동을 여기서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다. 다만 대표적인 두어 가지를 소개하자면 우선 <진주신문>을 창간해 지역사회에 건전한 여론조성과 감시자 역할을 했으며,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논개 영정 철거운동을 벌이면서 벌금 500만원을 노역으로 대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형평운동과 같은 ‘진주의 얼 되살리기’ 운동에 앞장선 공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이야 진주의 위세가 많이 위축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진주는 서부경남의 머리이자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진주를 진주답게 가꾸고 빛낸 분 가운데 한 분이 바로 박노정 선생이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척박한 지역사회도 겨우 유지되는 법이다.

‘진부의 의인’ 고 박노정 선생의 생전 모습(사진-경남도민일보)

박 선생은 멋과 운치를 아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요, 의롭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분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의인은 가도 그 향기로운 발자취는 오래도록 남는다.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문상도 가지 못한 몸이지만 여기 선생의 행장을 몇 자 기록해 추억하기로 한다. 다시한번 선생의 타계를 애통해 하며 삼가 영전에 머리 숙입니다.

2018. 7. 9
정운현 삼가 씀

(* 아래는 박노정 선생의 부음소식과 의로운 삶을 소개한 경남도민일보 기사임)
http://m.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70326#06wC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230 









      



모바일 기기에서도 댓글 작성이 가능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현재 아이폰 기기까지 테스트 완료하였습니다.)


닉네임  비밀번호  114687  (스팸등록방지:빨간숫자만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