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동 회장의 ‘회고록’을 받아들고서

노인은 ‘살아있는 도서관’이라고 했다. 그가 보고 듣고 몸으로 겪은 것, 그가 숨 쉰 공기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 시대를 산, 그 사람만의 전유물(專有物)인 것이다.

오늘 오후에 반가운 선물을 받았다. 김자동(金滋東)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의 회고록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푸른역사)이 그것이다. 김 회장은 올해 만 90세다. 1928년 상해 임시정부 청사 인근 아이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말 그대로 ‘임시정부의 품’에서 자랐다. 임시정부의 큰 어른인 석오 이동녕, 성재 이시영 선생을 친할아버지처럼 여기며 자랐다. 그의 부친이 백범 김구 선생을 ‘형님’이라고 부른 까닭에 그는 백범을 ‘아저씨’라고 불렀다. 백범은 더러더러 그의 집에 들러 그의 모친이 차려준 밥상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곤 했다.

김자동 회장의 회고록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 표지

우리 나이로 다섯 살 때 김 회장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1932.4.29.)를 겪었다. 그 일까지야 기억할까마는 적어도 임정이 윤 의사 의거 이후 가흥으로 피난을 갔을 때부터는 기억이 난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는 근 7, 80년 전의 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일전에 안중근 의사 집안사람들에 관한 책을 쓰면서 김 회장으로부터 안 의사 조카들 (안미생, 안원생, 안우생 등)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충칭 시절 김 회장은 그들과 아주 가까이 지낸 사이다. 이제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김 회장 한 사람 뿐이다. 시골의 촌부도 살아있는 도서관일진대 그의 일생은 한국현대사, 특히 우리 임시정부 역사의 산증인이자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김 회장의 조부는 동농 김가진 선생이다. 동농은 공조판서, 농공상부대신 출신으로 대동단(大同團)의 총재 및 고문을 거쳐 상해로 건너가 임정에서 활동하였다. 독립문 네거리에 있는 독립문의 ‘독립문’ 글씨도 동농이 썼다. 그의 부친은 성엄 김의한 선생, 모친은 ‘임시정부의 안주인’으로 불리는 정정화 여사다. 부친은 한국전쟁 때 납북됐다. 그의 집안은 2대에 걸친 항일 가문이다. 선대 3인의 묘소는 전부 흩어져 있다. 동농은 상해, 성엄은 북한, 그리고 정 여사는 대전현충원. 파란의 한국 근현대사를 겪어오면서 이런 집안이 어디 한둘일까 마는 이 집안 역시 그런 비극을 비켜가진 못했다.

2013년 광복절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김자동 회장 선대의 독립운동사 전시회 포스터.

그의 선대도 훌륭하지만 김 회장의 삶도 이에 못지않다. 옳지 않은 길을 가지 않았고, 옳지 않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았다. 그의 회고록 곳곳에 그 증거가 있다. 공화당 창당 직후 김 회장은 ‘공화당 선전부장’으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응하지 않았다. 평소 박정희를 싫어했고, 특히 그가 쿠데타로 잡은 권력을 동의하지 않았다. 그가 사양한 그 자리에는 그의 조선일보 후배인 윤주영 씨가 갔다. 이후 윤 씨는 무임소 장관, 칠레 대사,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문화공보부 장관, 제9대 국회의원(유정회) 등을 역임했다. 만약 김 회장이 갔다면 어쩌면 이 자리들은 그의 몫이 됐을지도 모른다.

온화한 성품의 김자동 회장(2016.여름)

격동기 굽이굽이에 그에게도 수많은 유혹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잔꾀 부리지 않았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조상 얼굴에 침 뱉는 일도 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후예로, 언론인으로, 사업가로 산 그의 90년, 크게 부끄러울 것 없이 살았다고 본다. 자애로운 성품에 주변에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도 많으니 인복도 많다. 보청기를 끼는 것 말고는 그 연세에 그만하면 건강도 좋은 편이다. 게다가 지금도 옳지 않은 일은 묵과하는 법이 없다. 이 시대의 노인들이 김 회장처럼만 늙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끝으로, 사족 삼아 한 마디 덧붙일 것은, 이 시대의 젊은 언론인들이 김 회장의 회고록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역사공부도 되거니와 앞으로의 삶에 좋은 좌표가 될 것이기에 하는 소리다.

(* 참고로, 10월 17일(수) 오후 5시부터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김자동 회장의 회고록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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