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국땅에서도 ‘KAL기사건’ 못놓는 까닭

(1987년 대선을 20일 가량 앞둔 그해 11월 29일 오후 2시 1분, 바그다드에서 출발하여 승객 115명을 태운 KAL 858기가 미얀마 안다만해역 상공에서 방콕과 최후로 교신한 뒤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바레인 현지조사를 마친 후 정부는 12월 7일 “북한의 88서울올림픽 방해공작”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듬해 1월 15일 한 여성이 TV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은 ‘김현희’이며, 김정일의 사주로 88올림픽 방해와 대통령 선거 혼란 야기, 대한민국 내 계급투쟁 촉발을 위해 KAL858기를 폭파했노라고 발표했습니다. 얼마 뒤 검찰은 김현희에 대해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하여 재판이 진행됐는데 1990년 3월 27일 대법원은 김현희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였으나 불과 보름만인 4월 12일 사면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그로부터 7년뒤인 1997년 말 김현희는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해 새 삶을 시작했으며, 책 출간과 외부강연도 종종 갖고 있습니다.  

한편, 정부의 수사결과 발표와 관련해 사고 항공기의 블랙박스 및 사망자 시신이나 유품이 거의 발견되지 않은 점, 안기부의 급속한 사고처리 등을 들어 조작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가 이 사건을 두 차례에 걸쳐 재조사를 실시해 “안기부 조작사건이 아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KAL 858기 가족회’나 이 사건을 추적해온 사람들은 여전히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성국 신부(50)가 최근 김현희 씨의 방송출연을 계기로 그간 자신이 수집한 자료와 증언 등을 토대로 KAL 858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겠다며 그 ‘서론’ 격으로 아래 글을 보내왔습니다. 본지는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해소 노력의 일환으로 신 신부의 글을 연재할 방침이며, 반론도 기꺼이 수용할 것임을 밝혀둡니다. 참고로 신 신부는 청주교구 소속으로 공군 군종 신부를 역임했으며, 현재 캐나다에서 사목 활동 중입니다... 편집자)

 ▲ 18일 밤 TV조선의 토크쇼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 북한에서 공작원으로 선발된 과정 등을 설명하는 김현희 씨. ⓒ TV조선 화면캡쳐


‘KAL858기 사건’은 내 삶의 중심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다. 엊그제(18일)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가 <TV조선> ‘오늘의 시사토크 판’에 김현희가 출연하였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만감이 교차하였다. KAL858의 진실을 찾아 사투하며 살아온 천주교 신부의 운명과 진실 뒤에 숨어버린 의혹의 여인 김현희와의 숨바꼭질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공개출연이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이 주신 좋은 기회로 삼고 싶었다. 김현희의 <TV조선> 출연 동기와 내용들이 대선 정국과 맞물려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생겼지만 무엇보다도 ‘KAL858기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한 사회적 관심의 기회로 삼고 싶은 마음이 은근히 생겨났다. 김현희가 <TV조선>에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가 남긴 ‘서약서’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858기 희생자 유족회에 드리는 말씀]
“본인 현희는 평생을 유가족과 함께 서로 도우며 살아가기를 노력하겠습니다.
1987년 12월 23일 김현희”

‘서약서’를 되씹어 보면서 김현희가 15년 전 희생자 가족들에게 했던 이 약속은 과연 지켜졌을까? KAL858기 가족회에 확인해본 결과 약속은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에 단 한 번도 가족들과 만남이 없었다니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김현희는 법정에서, 그리고 자기의 진술서를 통해 자기의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유족들에게 깊이 반성하고 참회하고 속죄한다고 진술한 적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김현희의 이러한 참회와 속죄를 받아들이고 역사의 증인으로 삼겠다고 하여 1990년 4월 12일에 대통령 특별사면을 단행하였다. 대법원 확정판결 15일만에 단행된 사면은 세계 사법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현희의 진심어린 참회와 속죄를 믿는 희생자 가족들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에 공개적으로 발표된 김현희의 참회와 약속들은 실제로는 허구였으며 오히려 가족들의 마음에 불신과 더 큰 상처만 남긴 사기행각이 되고 말았다.

내가 ‘KAL858기 사건’과 인연을 맺은 것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5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KAL858기 가족회 임원들을 만났다. KAL858기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어머니들의 외침은 내 양심을 뒤흔들어 놓았다. 남편을 잃고, 남동생을 잃고, 딸과 아들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피눈물을 흘리며 15년을 살아온 그들의 슬픔과 아픔이 나를 진상규명 활동에 끌어들인 결정적인 동인이었다. 또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넘어 한반도 분단이 가져온 민족적 비극과 불행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된다는 시대적 고민도 한 이유였다. 

사건 진상규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참으로 곡절도 많았다. 2003년 10월 초순에 국정원 직원 두 명이 나를 찾아와 이 일에 손을 떼라고 강요했다. 그 다음으로는 교회 내부로부터 강한 압력이 들어왔다. 그러나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찾으려는 나의 의지와 노력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힘겹고 외롭고 고달픈 일이었지만 신앙인으로서 내가 믿는 절대자에게 끊임없이 기도하고 의지하며 인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3년여 동안 KAL858기 희생자 가족들 곁에서 혼신을 다해 일했고, 나름대로 성과도 거두면서 보람도 많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교회에서 나를 돌연 해외(미국)로 발령을 낸 것이다. 그로 인해 국내에서의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활동은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 이후 현재 캐나다에 3년째 체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새로운 차원의 진상규명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사건 진상규명 활동에 결정적인 큰 소득과 반전의 계기를 꼽는다면, 2007년 10월에 법원의 정보공개 청구에서 승소하여 ‘KAL858기 사건’ 관련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 김현희 진술서 등을 확보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사건 발생 20년간 수사기관이 공개하지 않은 수사 관련 자료들을 입수한 후 사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분석작업을 거치면서 안기부와 검찰의 숱한 거짓들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었다.

 ▲ KAL 858기 가족회가 지난 2006년 1월 17일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858기 실종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해명해야 할 사람들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오른쪽 끝이 신성국 신부. © 사람일보

우선 김현희 진술문과 수사 기록들은 한국 수사기관이 얼마나 많은 거짓과 조작으로 국민들을 속였는가를 명백하게 입증하는 증거물이 돼 버렸다. 파면 팔수록 끝이 없는 거짓의 기록을 들추며 나와 KAL858기 가족회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미리 말씀드려 둘 것은 오늘 이 글을 시작으로 <진실의 길>을 통하여 그들이 숨기고 감춘 범죄의 실체를 하나하나씩 밝힐 것을 독자여러분께 약속드린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김현희는 남은 여생을 희생자 가족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은 거짓이었고 오히려 그들을 배신하고 외면하였다. 또한 자신의 범죄를 속죄하고 참회한다고 대국민 약속을 하여 대통령 특별사면까지 받아 혜택을 누렸던 자가 지금 다시 TV에 나와 자기가 무슨 영웅인양 행세하는 모습은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을 모독하고 우롱하는 후안무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TV에 출연하여 세상 밖으로 나와 공개활동을 시작한 김현희에게 이 자리를 빌어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진실과 화해·상생을 위하여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피해자 가족들 및 일반인들과 공개토론회를 요청한다. 공중파 방송 또는 언론을 통하여 공개토론회 자리를 마련하여 25년 동안 만남을 원했던 피해자 가족의 의혹과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이제라도 15년 전의 약속을 지키고 동시에 ‘KAL858기 사건’을 둘러싼 국민적 의혹을 깨끗이 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바란다.

이번처럼 특정 방송사 ‘시사토크’ 프로에 김현희 씨 혼자 출연하여 일방적으로 ‘KAL858기 사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진실의 목마름과 욕구를 채워줄 수 없다. 오히려 불신과 의혹만 증폭시키는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25주기의 특별한 의미를 살리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공개석상에서 먼저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만나서 진심으로 대화하고 진실의 실체를 찾아 궁극적으로 화해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김현희 씨가 약속한대로 KAL858기 가족들을 돕는 사랑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을 김현희 씨가 받아들여 성사된다면 25년간 응어리진 가족들의 슬픔과 원한도 풀리고 김현희 씨도 더 이상 세상과 등지며 숨어서 살 필요 없이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KAL858기 가족회는 김현희 씨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릴 것이며, 만일 김현희 씨 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경우 진상규명 활동에서 발견된 결정적 거짓들을 가감 없이 공개해 나갈 것이다. 스스로 불행을 자처하지 말기를 당부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이 내민 진실과 화해의 손짓에 화답해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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