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엘리트 교육과 성적순 판사 임용제가 나경원을 보호하고 있다

판사를 선출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십니까?

​적어도 제가 사는 곳에서 판사가 되려면 10년 이상의 변호사 경력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주민들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즉, 판사는 선출직이란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순회판사, 혹은 지역의 향판 (카운티 법원 판사, 혹은 시 법원 판사)등은 계속 주민들의 판단을 받아야 하고, 선거 때 도전자의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

형사 재판에선 주민들은 배심원 제도를 통해 형사재판의 경우 스스로 심판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판사는 주민들의 평결 verdict 결과를 따라야 하며 스스로는 형량만을 결정합니다. 판사라고 해서 완벽할 수 없기에 남의 인신을 구속하는 재판에선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단, 주 대법원이나 연방 대법원의 경우 판사는 일단 임용되면 종신직입니다. 때문에 조건도 더 까다롭지요. 법관으로서 오래 재직해야 하고 충분한 연구 결과도 쌓아야 합니다. 비록 정치적 입김에 의해 임명될 수 있는 자리이나 일단 임명되면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 없이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나라처럼 성적에 의해 임용되는 판사가 아니라, 스스로 변호사 경력을 쌓고 주민들로부터 판단을 받아 판사가 되어 오래 봉직한 후에 이뤄지는 것이기에, 특정 학교가 판사직을 지배하고 자기들끼리의 카르텔을 쌓아 판사가 판사 출신 정치인을 보호하는 따위의 짓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

나경원에 대해 압색 영장조차 제대로 발부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판사 카르텔이라는 게 참 공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그녀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이들에게 뻔뻔하게 역고소를 제기하는 나경원에겐 그녀 나름으로의 빽, 즉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들의 카르텔이 작용한다고 보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상식적 추론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차제에, 우리나라도 일본 식의 교육제도를 버려야 합니다. 아직도 일제 시대 때의 잔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최후의 보루들이 하필이면 교육 제도라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 교육제도가 보장하는 건 기득권층을 더욱 강화하는 것, 그리고 저렇게 자기들이 학벌을 내세워 정의를 무시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판사도 이곳처럼 오랜동안 변호사 활동을 거쳐 경력을 쌓은 이들이 자천 타천으로 그 자리를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어떨까 합니다. ​

아래에 링크한 기사 안에 링크한 영상에서 킹 카운티 판사에 도전하는 힐러리 매드슨 후보는 한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서투른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소신을 밝힙니다. 주민의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가 주민들의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요? ​

국민이 과거처럼 통제된 정보에 의해 판단을 하지 않는, 그런 시대입니다. 지금의 국민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그 결과물을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유하고 함께 생각하고 판단의 근거를 서로 나누는 그런 시대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판사를 성적순으로 임용한다는, 그런 불확실하고 원시적이며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제도로서 법체계의 근간으로 놔둬야 합니까? 저는 이게 지금 대한민국 법조계가 갖고 있는 모순의 뿌리라고 봅니다.​​

시애틀에서…

권종상 / 서프라이즈 논객

출처: https://www.seattlen.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32902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table=byple_news&uid=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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