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 해외동포의 평양 일기 3

한 해외동포의 평양 일기 3           
2010 – 2011 오인동


2010년6월, 무릎과 엉덩이관절수술을 번갈아가며 했다. 수술하기 전에 정형외과 수련의들을 위해 과장 선생들은 환자의 X-Ray Film을 함께 보며 수술의 적절성과 관절기 선택과 수술기법 등에 대한 토론을 한다. 이런 토론회에서 수련의들의 교육이 잘 이뤄진다. 이 과정에 나도 참여해 돕는데 의학용어가 서로 달라서 말이 끊기는 등 재미난 웃음거리도 생기곤 했다.

2010년 6월: 수술대상환자의 관절염상태와 수술에 사용될 관절기의 선택과 수술기범등에 대한 토론회가 과장선생들의 선도로 정형외과수련의들을 위해 진행된다. 나도 참여하고 왔는데. 문제는 의학용어의 차이로 소통의 문제가 생겨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수술을 끝낸 한 오후, 화일 동무 따라 조국해방전쟁(6.25전쟁)시기 김일성 장군의 최고사령부에 갔더니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곳이었다. 은퇴 노병따라 지하로 계속 내려가며 방들도 살펴보니 무시무시한 생각도 들었다. 한참만에 위로 나오니 밝은 햇살과 여군의 미소가 반가웠다. 그녀가 이상한 모습의 큰 나무로 안내했다. 한 뿌리가 둘로 갈라졌다,다시 하나로 합쳐진 것 같은 게 오늘의 남과 북 같기도 해 화일 동무에게 사진 찍으라 했더니 여군이 다가와 내 팔을 끼었다. 나중에 보니 걸작사진 둘이 내 눈에 들었다. 여러분 보기에는 어느 사진이 더 멋집니까? 남에서는 인민군의 모습은 언제나 고약한 얼굴 표정의 모습인데 이 노병은 파안대소하고 예쁜 여군은 박수를 치고있다. “세상에 인민군도 웃을 줄 아나?”로 제목을 달았다.

‘10년6월; 1950년 전쟁시 기지하 최고 사령부 뜰에 있는 ‘이상한나무’ 앞에선 인민군여전사. 한 뿌리가 두 나무로 갈라졌나? 두 뿌리가 하나로 합쳐졌나? 그럼 언제 한 나무로 될 건가? 마치 한나라가 둘로 갈라져 있는 우리 조국의 모습 같기도 했다.

2010년: 1950전쟁시기 인민군최고 사령부에서 남과북 (나는군의관이었다) 군인이 서로 웃다. 남녘에서 그리는 인민군의 모습은 언제나 고약한 얼굴표정의 모습인데 이 노병은 파안대소 하고 예쁜 여군은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을 “인민군도 이렇게 웃을 줄 아나? “ 로 했다.

마지막 날 저녁, ‘2006년 광주에서 만났던 안경호 6.15북 위원장을 평양교외 초대소에서 김관기 국장과 박철 아태위원과 함께 6.15해외위원의 활동에 대해 논의했다. 오래전 재미동포 선우학원, 김동수, 김현환등이 1981년 봄, 워싱톤[해외동포 민족통일회의]에서 유럽동포들과 분단극복을 위해서는 북과도 만나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11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기독자대화]를 했다. 그때 북의 안경호 박사 등 15명의학자/관료들과토론했던 얘기를 들었다. 남북왕래가 없던 북과 남을 방문할 수 있는 해외동포들의 역할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2010년: 해외동포위원회 김관기국장 6.15선언실천북측 안경호위원장.
안위원장과 통일 관련 교수와 전문가들은 1981년 비엔나에서 미국과 유럽의 해외동포학자와 통일운동가들과 함께 통일강연과 토론을 한 첫 역사적 만남이었다.
김관기국장은 1996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북과 해외동포와의 회의에서 강연도 했다.

평양서 북관료들과 만나고 서울로 가서는 대학과 시민단체들에서 강연하며 북의현실도 알려주며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토론하고 언론과의 대담과 글들도 발표 했다. 그러다 보니 2010년 10월, 영문/국문 글을 묶은 나의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밖에서본한반도>와<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을  출판했다. 그래서 ‘08년 출판한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역사의 연원에 대한 <Corea, Korea>와 함께 서울 프레스클럽에서 출판잔치를 했다. 강만길, 임동원. 한완상, 김상근, 백낙청, 이재정, 임헌영, 문정인 등 통일관련 관료, 학자, 운동가인사들 90여 명이 함께 했다. 김영동의 전통음악과 소리꾼 장사익이 참석 못해 보내준 그의 노래도 들으며 저자인 내가 사회하며 참석자들을 소개하는 등 재미난 시간을 가졌다. 끝판에 내일 아침 나는 책 팔러 평양에 간다 하니 모두 놀랐다. 이명박 정권이 북 방문을 금지했다. 평양에서 김관기국장과 만나 김정일 총비서에게 드리는 책에 서명하고 관료와 학자와 의사들에도 전했다.

2010년 10월: 서울 광화문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나의 3책 출간기념잔치.
저자가 귀한 참가자들을 다 소개하고 사회도 한 파격적 잔치마당

2010년10월: 서울 프레스클럽 에서 내 3책 출간기념잔치를 저자 자신이 사회했다.
강만길, 임동원, 한완상, 백낙청, 김상근, 이재정, 문정인등 중에서 건배사를 6.15위원장
김상근목사에 부탁하니 술 축배는 못 하겠다기에 성공회사제 이재정통일장관이 고역의
건배를 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바다의 파격적 잔치였다. 잔치 끝에 남북왕래가 금지된 그 시절 해외동포의 특권으로 나는 내일 아침 책 팔러 평양에 간다는 말로 끝냈죠.

‘10년 10월: 2007년 <Corea, Korea>와 2010년 출간 3책: 서명한 뒤 김정일총비서에게 전했다. 그리고 1992년부터 북에서 만난 관료들과 의사선생들에게 드렸다.

2011년 6월 주말, 고려호텔에서 우연히 LA 발전문의 강모세 선생과 박찬모 평양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을 만났다. 박 총장의과기대에 갔더니 강 선생은 의무실장으로, 박 총장은 대학 운영과 재미동포와 여러나라 교수들이 가르치고 있는 실정도 알려줬다. 학생들은 수재급으로 교내에서 서는 영어회화로 모든 게 진행되고 있었다. 재미동포 김필주 농학교수님은 황해도 여러 농장에서 품종개량사업을 도우며 과기대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박 총장은 교직원의 의료문제를 평양의대병원과 연계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해외동포들의 활약이 다양한 것을 알게 된 것이 대행이었다.

2011년: 평양과학기술대학 박찬모명예총장은 남이나 해외여러 나라의 교수를 모셨다.
학생들은 모두 수재급이라 했고 교내에서의 대화는 영어였다.
왼편부터: 장용진외사국장 박찬모총장과 저자

2011년6월: 평양과학기술대학 에서 박찬모명예총장과 강모세의무실장과대화.
남의 김대중- 노무현정부시절에 남교수들도 많이 참여했단다.
나의 3책도 드렸다.

Corea연구 이래 국호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조선력대국호> 연구를 한 사회과학원 공명성 민속연구소장을 만나봤더니 그는 옛 왕조의 이름들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나라 이름들에 대한얘기를 들었다. 병원 의사들의 관절수술도 익숙해 가던 중 보리밥알도 젓가락 끝으로 짚어 먹는 우리겨레의 손재주는 똑같이 뛰어나서 북 의사들은 수술을 잘 소화해 냈다. 수술뒤 점심은 수술복 입은 채 옆방에서 함께 하는데 박송철 과장이 느닷없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내년에도 꼭 오신다는 약속을 하자며 손깍지를 마주치니 박수에 따라 축배도 들었다. 어깨 비벼가며 단단한 뼈를 전기톺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짜르고 망치로 뚜둘기며 금속관절기를 뼈에 고정시키는 대장간 쟁이들 같은 정형외과의사들의 본태다.

‘10년: 수술일정을 마치고 병원앞 뜰에서 석별의정을 나누는 문상민병원장, 박송철, 우성훈과장. 평양을 떠날 때는 다음 해에 다시 온다는 기약을 해야 떠날 수 있었죠.

2011년: 북의 출중한 역사학자 공명성박사 – 우리나라 고대왕조 이름들의 의미연구.
나는 ‘통일국호조국의이름’ 에 관심을 가져왔다.

무릎관절수술도 잘해내 신이 난 문 병원장이 하루는 수술 끝내고 평양근교 룡악산에서 야외 불고기판을 벌리기로 했단다. 늘 대접만 받는 게 마음에 걸려 마침 중국공항에서 큰 꼬냑 한 병을 사왔었다. 먼저 도착한 과장선생들은 간호원장과 화일 동무도 그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고기들이 익어가는 냄새가 좋았다. 초 여름 야외에서 정형외과팀이 모두 자리에 앉자 문 원장이 나에 대한 감사의 건배사를 하고 나는 답례로 형제 의사선생들과 함께하는 보람은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의 어느 강연이나 수술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명이라며 꼬냑 잔을 함께 들었다.

주식 뒤 단고기 국밥이 나왔다.문 원장이 원래 ‘개국장’이라 불렀는데 수령께서 ‘단고기’로 부르게 했단다.우리 조상들은 개고기가 유난히 몸에 좋아 “오뉴월 복골에는 단고기 국물이 발등에만 떨어져도 약이 된다”하니, 박송철 과장은 “남정네들에게 제일 좋은 거야 개신료리죠”라 했다. ‘개신료리?’ 그게 뭐야..,‘오 선생은 그것도 모르나?’는 말에야 짐작이 가기에 내년엔 그 맛을 꼭 보게 해달라며 술잔을 들었다. 수술 뒤 즐거운 오후였다. 그것도 모두 우리 ‘빨갱이’ 형제들과 ……

‘11: 내년에도 꼭 평양의대병원에 온다는 약속을 하자고 덤빈 박송철외상외과장과 손깍지계약. 아니면 박과장에게 납치될 것 같아 약속을 안 할 수 없었죠.

2011: 수술을 끝내고 평양교외 룡악산 야외불고기판에 꼬냑건배 - ‘단고기국밥’ 맛도 봤다. ‘개신료리’는 남정네들에 좋다는데 ? …… 내년 여름엔 꼭 맛 봐야지

수술을 마친 오후, 내 3책을 받아본 리창덕6.15부위원장이 초록 옷의 예쁜 여인과 함께 찾아 왔기에 곧, “북에선 이런 미녀들과 통일사업을 하는 모양인데 일이 잘 되느냐? ” 물으니 …….. 언론담당 김성혜 위원이래요.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왕래조차 끊겨버려 북과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6.15 북.남.해외측위원들이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할 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마침 서울에 가면 <한겨레통일문화상>을 받게 되어 있어 준비한 수상기념 강연원고를 건네며 북에 쓴 소리도 썼으니 읽어보고 다시 만나자 했다. 이틀 뒤 둘이 찾아왔다.

‘11년6월: 고려호텔로 찾아온 6.15북측 리창덕부위원장과 언론담당 김성혜위원의초록색옷. 한겨레통일문화상수상기념강연원고: “조국의남과북에드리는나의고언” 읽고 온 두 분은 내용은 다 좋은데 우리공화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단 꾸중을 예쁜 여인으로 부터 들었다.

‘대체로 좋은 내용들이 많은데 우리공화국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하다’고 해요. 그거야 너무나 당연한 지적이라며 그래서 내가 북에 더 자주 오려 한다 했죠. 그리고 욕심 같아선 이렇게 7-10일 머무는 게 아니라 한 달쯤 묵고 싶다 했더니 얼마든지 그러시라더군요. 실은 내가 그럴 수는 없는 처지였다. 그 뒤 김성혜가 누군가 하고 찾아봤더니 남의 통일부 차관들과 여러 번 판문점에서 북측 대표로 대좌해온 여장부이더군요. 그 7년뒤 ‘2018년남녘동계올림픽 때 그녀가 북의 김여정 부부장과 청와대에서도 보였다. 그리고 6월, 그녀가 김영철통전부장과 백악관에서 트럼프대통령과 함께한 모습도 보았다. 초록색 옷 그대로의 그녀가 여전히 예쁘고 반가웠다. <4편에 계속>

7년 뒤 , ‘18년6월, 북김영철통전부장과 김성혜가 백악관에서 트럼프대통령과 함께 했다.

오인동 (Indong Oh) 약력

인공관절수술전공의사(은퇴),6.15해외측미국위공동위원장
하버드의대(MGH)교수,미국고관절학회:J.Charnley, F.Stinchfield상
인공고관절기/기구고안 (HD-2, Spectron, Biofit, Tifit System등)
인공고관절논문:70여편,수술법저서:14권, 미국발명특허:11 종

RoKorea - 윤동주민족상 - 윤동주사상선양회 - 2013
DPRKorea - 명예의학박사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2012
RoKorea- 한겨레통일문화상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2011

<밖에서그려보는통일의꿈> - 남북연합방, 다트앤, 서울, 2013
<평양에두고온수술가방> - 의사오인동의북한방문기, 창비, 서울,2010
<통일의날이참다운광복의날이다> - 밖에서본한반도, 솔문, 서울,2010
<Corea ,Korea>- 서양인이부른우리나라국호의역사, 책과함께,서울,2008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table=byple_news&uid=5077 









      



모바일 기기에서도 댓글 작성이 가능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현재 아이폰 기기까지 테스트 완료하였습니다.)


닉네임  비밀번호  214366  (스팸등록방지:빨간숫자만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