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33

[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33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33. <부록>-2 ‘저널 프락치’ 싱 후쿠오

‘1983 버마 사건’의 시말과 당시의 정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최 전 대사가 이 사건에 대해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된 데는 잘못된 전거(典據) 탓도 있다. 전거란 말이나 글의 문헌적 근거를 뜻한다. 그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전거 중에는 미국 CIA 또는 다른 정보기관의 끄나풀임이 분명한 외국 기자도 있고, 안기부의 대북 심리전 자료도 있다. 조작 개연성을 의심해야 할 전거를 100% 신뢰하니 오도된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새로운 사실이나 정황은 한낱 음모론 정도로 치부해 버리니 아웅 산 묘소 사건은 그냥 ‘북의 소행’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언론(인)을 같잖게 보는 최 전 대사가 자신의 책에서 유일하게, 그것도 전적으로 신뢰하는 언론인은 외국인이다. ‘싱 후쿠오’(Xing-hu Kuo).

( 싱 후쿠오)

최 씨는 지고지순한 언론인의 참글을 대하듯 겸허한 자세로 무려 6곳에서 ‘싱’을 거명하고 그가 쓴 책을 상세히 인용했다.『아웅산, 피의 일요일 : 김일성 랭군 테러의 전모』(남현욱 역, 병학사, 1985). 역자는 1990년대까지 꽤 활발하게 활동하던 통일원 소속 연구원이었고 나중에는 세종대 교수를 지냈다.『Mord im Mausoleum(묘지의 살인) : Kim Il-sungs Terroristen in Rangun』1984)라는 독일어 원전을 “원저자와 역자와의 계약에 의해”(번역서 속 표지) 한국에서 번역 출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 책 표지)

최 전 대사가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서독에 거주하는 언론인 싱후쿠오 Alex Springer[알렉스 슈프링어] 뉴스서비스 기자”라고 즐겨 인용하는 ‘싱’의 정체부터 살펴보자. 위키피디아(https://de.wikipedia.org/wiki/Xing-Hu_Kuo)에 그의 이력과 행적이 비교적 자세히 소개돼 있다.

[193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생. ...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에서 수학 ... 1956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1년까지 라이프치히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고, 1965년까지 강사 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동베를린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번역가로 일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사회주의를 의심하는 발언을 했고, 지인들을 서베를린으로 빼돌리다 체포돼 재판에서 7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1965). 동독 정보국 슈타지(Stasi) 특별감옥 바우첸-2(Bautzen II)에서 6년을 보내다, 1970년 독방에 감금된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1972년 서독 정부가 동독에 돈을 주고 정치범을 빼내는 ‘자유를 위한 거래’(Freikaufen)에 의해 출소했고, 이후 서독에서 ‘디 벨트’(Die Welt) 신문을 발행하는 악셀 슈프링어(Axel Springer) 미디어 그룹에 정치 담당 편집자로 취직했다. 처음에는 서베를린에서, 1979년부터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일했다. 그는 특별히 북한에 관심을 가졌고 북한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슈투트가르트서 아내의 이름을 딴 아니타 티크베(Anita Tykve) 출판사를 설립해 동독 문학에 관한 책을 전문적으로 출판했다.] (위키피디아)

최 전 대사는 ‘싱’이 독일 최대 미디어그룹인 ‘악셀 슈프링어’ 소속 기자라는 사실만 중시한다. ‘싱’이 동독에서 프락치 노릇을 하다 붙잡혀 6년여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고, 서독이 돈을 주고 그를 빼내 악셀 슈프링어에 일자리를 마련해줬다는 사실을 도외시한다. 아니 몰랐을 것이다.

서방 정보기관이 그를 ‘북한 문제 전문가’로 키운 것은 아마도 그가 출소한 해 남북이 7.4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방해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북한=지옥, 북한 지도자=악마’로 묘사하면서 대북 적개심을 고취하는 것이다. (* 이는 2020년대에도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1972년에는 미국 대통령 닉슨의 중공 방문을 시작으로 남북, 북중, 북일관계가 급속 해빙 무드를 타던 때였다. 일본 수상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도 닉슨에 뒤질세라 중공과 소련을 방문하는 등 동북아시아의 냉전체제가 허물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서방 언론도 이에 동조해 워싱턴포스트 기자 셀리그 해리슨(Selig S. Harrison)이 평양을 방문해 남북 화해 분위기를 북돋웠다.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적임자가 바로 ‘싱’이었다. 그래서 그를 서둘러 동독 감옥에서 빼냈는지도 모른다. 화교인 ‘싱’은 또한 중공에 대한 악선전의 적임자였다. 실제로 그는 중공에 관한 책도 썼고, 중국인처럼 행세했다. 그렇게 ‘북한 전문가’로 키워진 ‘싱’은 1978년 한국 땅을 밟는다. 
 

(사진 3 : <동아일보> 1978.5.8)

[서독 ‘악셀 슈프링거’ 뉴스서비스 언론인인 싱 후 쿠오 씨가 국제문화협회 초청으로 방한 중이다. 인도네시아 태생인 그는 인도네시아 동독 간 학생 교환 계획에 따라 1959년 저널리즘을 연구하러 동독에 갔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7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서독 정부의 주선으로 1972년 자유세계로 송환되었다. 그와의 일문일답

- 무슨 혐의로 체포됐나.
“1965년 1월 31일 오전 동베를린 시내에서 차를 몰고 가던 중 동독 비밀경찰에 의해 갑자기 연행됐고, 기소됐을 때 비로소 내가 미국 CIA와 서유럽을 위해 동유럽 정보를 수집했다는 혐의로 체포됐음을 알았다. 그 후 7년 6월의 형을 선고받아 7년 4개월을 드레스덴주 바우센[바우첸]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 어떻게 서독으로 송환되었나.
“서독은 노예 상태에 있는 동족을 구하기 위해 1인당 2만 달러씩 지불하고 매년 1천5백 명의 정치범을 동독에서 데려온다 ... 1963년부터 시작된 정치범 매매로 2주마다 80명씩 서독으로 넘어온다.”

- 정치범을 매매하는 양독 정부의 입장은.
“서독은 동독에서 고통받는 동족에게 인류애를 발휘하고 돈을 주고 사오는 형식으로 교육 문화 생활 개선에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북괴와 동독 간의 관계는.
“군사적 정치적 측면에서 상당히 우호적 선린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사절단이 끊임없이 오간다. 특히 작년엔 동독의 호네커 수상 호프만 국방상이 북괴를 방문했다. 또 김정일이 1961년부터 2년 간 동독사관학교에서 비행사교육을 받은 적도 있다. 동독의 매스컴엔 김일성의 광고 연설문이 자주 게재된다. 또 동독 베를린의 북괴 대사관은 소련 대사관 다음으로 규모가 크며, 대유럽 공작의 요충이다. 북괴는 이 창구를 통해 세계 테러분자를 받아들여 북한에서 훈련시켜 다시 내보내고 재유럽 한국인을 포헙, 납치 음모를 꾸미며 서방측 생필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다.” ](<동아일보> 1978.5.8)

기사 내용을 보아 ‘독일식 해결’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주창한 ‘동방정책’ 즉 동독 포용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독 정치범을 돈을 주고 사 오는 것도 그 정책의 일부였다. 동.서독은 1973년 9월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1973년에는 상주대표부를 개설하는 등 관계를 개선하고 있었다. 1972년 본격화된 동북아 해빙 무드 속에 남북한도 유엔에 동시가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독일식 해법은 어렵다’는 말은,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 불가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남한만의 단독 가입’이 대세였다.

‘싱’의 방한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를 ‘북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대부분이 그의 개인사에 관한 것이다. 그가 서울에 오기 한 해 전인 1977년, 그가 속한 독일 미디어 그룹의 신문 ‘디 벨트’가 ‘코리아 특집’ 기사를 작성한 적이 있다.

[【파리=OOO특파원】북괴는 주한 미 지상군 철수 발표 이후 무력 증강을 급격히 서두르고 있으며, 동베를린 주재 북괴 대사관은 간첩과 밀수 행위의 근거지인 동시에 북괴로 보내는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교육 아지트라고 서독 최대 일간지 디 벨트가 30일 보도 ... 이 신문은 이날짜 조간에 한국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8명의 기자를 동원, 6페이지에 달하는 한국 특집을 실었는데, 이 특집 기사 중 벨트 동독 주재 트로베 특파원은 북괴가 무력 증강을 서둘고 있는 사실은 “최근 미국의 감시 위성이 촬영한 사진과 전자.도청 장치로 명백히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 1977.12.30)

원문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위 <경향신문> 글로 보아 디 벨트는 당시 미국 지미 카터 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어깃장을 놓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미 군부와 박정희 정권 및 두 나라 정보기관이 공모해 북한 위협론 ‘남침론’을 조작하는 일에 앞장섰다는 말이다. 디 벨트는 지금도 비슷하지만, 특히 1970-80년대에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반소.반중.반북.반공 심리전 도구였다. 이 디 벨트 특집 기획과 이듬해 같은 미디어 그룹에 속한 ‘싱’이 직접 한국에 온 것을 보면, 이즈음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모종의 작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싱’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북한 전문가’로 행세하다 1983년에 조선을 가리켜 ‘극동의 수용소’라고 악선전하는 책을 내며 ‘버마 테러’를 예시했고, 이듬해 이 사건을 북의 소행으로 조작하는 책을 낸 것이다.

(사진 좌 : 책 / 사진 우 : 책)

최 전 대사는 ‘싱’의 이런 이력에 대해 관심조차 없겠지만, 그의 이력과 언동은 ‘1983 버마 사건’ 조작과 그 진상 왜곡에 이르는 일련과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최 씨는 ‘싱’의 정체와 그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의 헛소리를 무슨 금과옥조인양 달달 왰던 것이다. 최 씨가 ‘1983 버마 사건’을 이북의 소행으로 결론짓는 데는, 이 사건 전반에 걸친 ‘싱’의 왜곡된 주장이 큰 몫을 했다. 최 씨는 먼저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이 버마에 와 전두환네 방문 일정을 염탐한 것처럼 썼다. 이북이 테러를 기획하며 정보를 수집했다는 ‘싱’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것이다.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서독에 거주하는 언론인 싱후쿠오(Alex Springer 뉴스서비스 기자)도 그의 저서 ‘아웅산 피의 일요일’에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 등 대표단이 1983.8.7 버마를 방문하여 귀빈 대접을 받으면서 전 대통령의 방문 시 일정과 장소를 점검하였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친북 국가라고 해도 남한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두 달 앞두고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 의회 의장의 방문을 접수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종옥 총리와 양형섭 의장이 1983.3월에 하나의 사절단으로 동시에 방문한 후에, 양형섭 의장이 8월에 별도로 또 버마를 방문했다면, 10.9의 암살폭발사건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니 명확히 밝혀지길 바란다.] (최병효 책 87쪽 / 싱 후쿠오는  최 전 대사의 책이 나오기 3년 여 전인 2016년 7월 독일에서 사망했다.)

또 버마에서의 암살 계획이 실패했을 경우 싱가포르나 인도 등지에서 또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을 것이라는 해괴한 망상도 ‘싱’에게서 차용했다.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제2.제3의 암살 계획을 가지고 있었느냐에 대한 의문 ...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하여 책이나 글을 쓴 대부분의 저자들은 아무런 구체적이 증거가 나온 게 없으니 그런 추가 암살 계획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 ... 오직 서독에서 활동 중인 인도네시아 출신 언론인 싱후쿠오만이 ‘아웅 산 피의 일요일’에서 그 가능성을 제기 ... 그는 김일성이 “버마 아니면 스리랑카가 우리 계획을 실행하기에 가장 적당하다”고 하고 김정일이 이 과업을 실행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는 또 북한군 총사령관을 지낸 강건의 아들인 강창수 인민무력부 정찰국 산하 특수부대장이 버마 암살 테러범 세 명을 훈련시켰으며, 김일성이 1983.8.25 이 부대를 직접 방문하여 공작원들의 영웅적 행위를 극구 찬양하였다고 쓰고 있다.] (최병효 책 107쪽)

김일성 주석이 직접 테러범들에게 전두환을 죽이라고 격려했다는, 미 CIA도 안 하는 헛소리를 ‘싱’이 마구 지껄이면 최 전 대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모양이다. 36년 한국 외교관 경력이 참 초라해 보인다. 알아야 할 것은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외국 언론(인)이 떠벌리는 말은 무조건 믿는 것은 자멸적인 ‘사대의 오류’다. 최 전 대사는 아웅 산 묘소 천정에 폭발물이 설치되는 정황에 대해서도 ‘싱’의 헛소리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범인들이 10.7(금) 새벽 2시에 묘소를 방문하여 ... 강민철과 신기철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폭탄을 설치하였고, 그 전에 묘소 앞 숙소에서 위스키 병을 옆에 두고 취해서 잠을 자던 경비원에게 1만 키야트[짯, kyat]를 주면서 한국의 경호원들인데 비밀리에 사전 점검을 하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하면서 사다리까지 빌렸다는 ...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범인 재판에서 전혀 언급된 점이 없다. ... 상식적으로 보기에는 비밀공작에는 ... 특히 제3자는 직접 관여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잠자는 관리인을 새벽 2시에 깨워 돈을 주며 협조를 구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 너무 순진한 비현실적 발상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새벽 시간에 야음을 틈타서 잘 훈련된 북한 공작원들이 은밀하게 지붕에 올라가서 폭탄을 설치하였다고 봐야 될 것 같다. 묘지 경비원을 1만 키야트에 매수하고자 준비하였으나 경비원이 자고 있어 그럴 필요도 없이 폭탄을 설치할 수 있었다는 싱후쿠오의 설명이 맞을 것 같다.] (최병효 책 112-113쪽)

버마는 외국 정상이 사흘 뒤 헌화식을 할 자국의 성소(聖所)에 비리비리한 경비원을 딱 1명만 배치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가 졸고 있어서 준비한 돈을 줄 필요조차 없었다는 헛소리를 뒤에 또 되풀이한다.

[싱후쿠오는 그의 저서에서 “범인들은 묘소 경비원을 일만 키야트(2년분 봉급)로 매수하려고 계획하고, 남한 경호원인데 사전에 현장을 은밀하게 수색하러 온 것처럼 행동하려고 하였으나 경비원이 자고 있어서 무사히 폭탄 설치를 2시에 종료하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돈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고 기술 ... 재판에서 묘소 관리인이 뇌물을 받고 범인들을 도와주었다는 부분에 대한 검찰 측 기소도 없었고, 범인들도 이에 관해 아무런 증언도 한 바 없었음에 비추어 경비원이 잠든 틈에 범인들이 폭탄을 무사히 설치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병효 책 143쪽)

최 전 대사는 또 사건 발생 사흘 전인 10월 6일 전두환네 경호팀이 아웅 산 묘소 천장에 올라갔다는 버마 외무장관의 말을 직접 옆에서 듣고 기록해 보고까지 했으면서도(26편 글 참조), ‘싱’의 헛소리에 홀딱 넘어간 셈이다.
 
[싱후쿠오는 “묘지 천장에서 폭발물을 발견해내지 못했던 것은 숙명적인 오류와 소홀의 결과였다. 버마의 비밀경찰이 도처에서 폭발물이나 다른 무기를 찾아 헤매었지만 아무도 묘지 들보 위에 그러한 것이 있으리라고는 추측하지 못했다. 또 한편으로 한국의 안전요원들은 묘지의 지붕 위로 기어오르고 싶지 않았다. 믿음이 깊은 국민의 경건심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심에서였다. 왜냐하면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그렇게 기어 올라가는 것은 종교적인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더구나 한국 안전요원들은 초청국인 버마의 동료 요원들이 ‘모든 것이 정상적이다’라고 하는 말을 믿었다”라고 하고 있다.] (최병효 책 144-145쪽)

버마인들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그네들 국부의 묘소 천장에 감히 발바닥을 올릴 생각을 못한 것은 ‘숙명적 오류’라고 ‘싱’께서 말씀하셨단다. 최 씨는 위 인용문에 이어 “그의 저서는 그가 직접 버마를 방문하여 버마 언론인 등과 접촉, 파악한 내용들이라고 하지만, 실제 많은 부분이 우리 정보기관이 제공한 자료에 근거한 흔적이 보이므로 이 부분에 대한 근거가 어느 쪽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곧 최 전 대사도 ‘싱’의 책이 결국은 안기부 각본이었음을 짐작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즉시 ‘싱’의 정체를 의심했어야 하지만 최 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건의 책임이 이북에 있다고 보면, 둘이 한통속이든 아니든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안기부가 1983년 12월 출간한『자멸의 시나리오 : 김일성 폭력 집단의 버마 암살 테러 진상』(자유평론사)이 최 씨 책의 또 다른 전거가 된 이유다.

이 책과 ‘싱’의 책『Mord im Mausoleum(묘지의 살인) : Kim Il-sungs Terroristen in Rangun』1984 / 이 책을 남현욱이 번역한『아웅산, 피의 일요일 : 김일성 랭군 테러의 전모』1985)을 비교해 보시라. 그게 그거다. 제목까지 거의 같다. 최 전 대사는 분명 이를 의심했으면서도, 앞에서 ‘싱’의 것을 옮겨 놓고 뒤에 가서 또 안기부(자유평론사) 책을 옮긴다. 인도에서도 모종의 테러가 일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자유평론사> 책 85-86쪽에 나오자 또 옮겨 적은 것이다.

[[1983] 10.11-14간 예정되었던 인도 방문에서는 북한이 아무런 암살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인지 ...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후과가 심각할 인도와 같은 대국에서보다는 버마나 스리랑카 등 북한이 봤을 때 자기들의 오랜 거점이고 만만한 나라들에서 암살을 도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 동건애국호는 인도에 기항한 흔적이 없다. 그러나 ... 우리 정보기관에서 사실상 집필한 것으로 보이는 ‘자멸의 시나리오’(자유평론사 1983.12.26 발행)에서는 10월 초 전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인도에 대기 근무하고 있다가 급거 귀국한 한 외교관(정보기관원으로 추정)을 인용하여 전 대통령의 인도 방문에 앞서 북한은 공관원 및 기타 요원을 30여 명으로 증강시켰으며, 외교관 신분이 아닌 인물도 두 명이나 포함되었다고 한다. 인도 주재 북한대사관의 평상시 인원은 19명인데, 갑자기 그 인원이 급증한 사실이라던가 정체불명의 요원이 두 명이나 파견된 것은 버마에서의 암살 음모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에 대비한 제2단계의 음모였지 않나 추축된다는 것이다.] (최병효 책 109-110쪽)

‘자유평론사’는 안기부 전신인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이북에 대한 악선전을 목적으로 여러 권의 책을 냈다. <한겨레신문>은 1993년 3월 21일 자에서 “자유평론사는 안기부 전직 간부들이 주로 이사장직을 맡아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 씨가 우러러보는 독일의 악셀 슈프링어 미디어 그룹 비슷한 조직이다.

‘1983 버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에는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조직이 만든 책도 유용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책을 얼마나 비판적으로 독해할 수 있느냐다. 최 씨는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대신 무조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애초부터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기 보다는 시중에 떠도는 결론에 비춰 자신의 경험과 자료를 정리하려 했기 때문이다. 

‘1983 버마 사건’은 미국의 동북아 군사패권 전략이 가장 극악무도한 형태로 발현될 때 빚어진 자작테러다. 이 사건이 일어난 1983년부터, 또 다른 자작테러인 KAL 858편 폭파 테러(일명 김현희 사건)가 일어난 1987까지 4년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즉 남북 분단체제의 모순이 극대화된 때였다.

이들 두 사건 외에 대구 미국문화원 현관문 밖 클레이모아 테러(1983.9.22), 김포공항 청사 현관문 밖 클레이모아 테러 (1986.9.14)까지 포함해 전두환 집권 7년 기간에 무려 4건의 국가조작테러가 일어났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드높여 남북 간 화해와 통일 노력에 재를 뿌리는 자국민 살생 테러가 어떻게 7년 새 4건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미국과 미국의 꼭두각시패가 벌이는 이런 패악질은 정도의 차이를 보일 뿐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 최근 사건이 박근혜가 감옥에 가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일어난 김정남 살해 사건(2017.2.13, 말레이시아)이다.

놀랍게도 ‘2017 김정남 살해 사건’ 때도 싱후쿠오같은 인물이 있었다. 같은 조직이 저지르는 범죄의 유형은 쉬이 바뀌지 않는 법이다. 이 자도 중국계였다. 리여우치(李幼岐).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인 대공보(大公報) 논설위원으로 일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쌔고 쌘 그저 그런 언론인 중 한 명이었다.

( 리여우치)

2009년 그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평화구상’에 대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의로 화답하고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면 남북한은 상호신뢰와 상호지원을 할 수 있게 되고 동북아도 평화를 달성하게 될 것”(<연합뉴스> 2009.8.25)이라고 떠벌렸다. 이 전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한 ‘국제적 지지’ 분위기 조성의 일환이었다. ‘북한 비핵화’는 미국이 부추기는 식상한 주제일 뿐 특별히 공작적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이듬해인 2010년 4월 1일자 논설에서 “리철(李徹.75) 주 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 승계 작업을 돕기 위해 3월 말 북한으로 돌아갔다”는, 매우 고급스런 정보를 발설한 것을 끝으로 <대공보>를 떠났던 모양이다.

그렇게 숨을 돌리고 있던 리여우치는 김정남이 살해되기 아흐레 전인 2017년 2월 4일, 소속 불명의 ‘시사평론가’로 다시 등판했다. 이때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홍콩01’이라는 인터넷 매체에 그의 글이 실린 것이다. 공작 냄새가 풀풀 나는 글이었다. <연합뉴스>는  이 글을 “김정은, 숙부 김평일 체코주재 대사 소환 놓고 딜레마 빠졌다 - 장기 해외 체류 시 제2의 김정남화, 소환 시 권력 쟁탈전 우려”」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리여우치(李幼岐)는 최근 기고한 칼럼에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일가와 김평일때문에 김정은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주장 ... “김정남 부자는 공개적으로 김정은을 비판하는 극소수의 북한인” ... “특히 김평일은 김정은의 숙부라는 신분과 탈북자들의 추앙을 받는 점에서 김정은 체재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 김평일을 계속 외국에 두면 김평일 일가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해 김정남·김한솔 부자처럼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될 것 ... 김평일이 제2의 김정남이 될지 주목되고 있다고 ... 김정남 일가는 주요 후견인인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된 후 의지할 곳이 없어져 ... 동남아시아와 마카오, 유럽 국가를 떠돌고 있다며, 아들 김한솔도 작년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한 뒤 아직 취업하지 못하고 있다고 ... 김정은이 김평일을 강제로 소환할 경우 김평일을 탈북의 길로 내몰아 망명 정부의 지도자로 밀어주는 격이 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연합뉴스> 2017.2.4)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과 이복 삼촌인 김평일이 김정은 체제 안정의 장애 요인이니 북측에서 이들을 어쩌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만약 김정남이 살해되지 않았다면, 위 글은 ‘반북 평론가의 분석’ 정도로 치부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글이 나온 지 불과 아흐레 뒤 실제로 김정남이 살해됐다면, 위 글은 언론(인)의 분석이 아니라 작전 계획(시나리오)에 의한 사전 여론 공작이라고 봐야 한다. 리여우치가 다시 등장할 즈음 김정남과 김평일을 겨냥한 모종의 작전이 개시됐다는 말이다. 실제로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전후로, 미.일.한 3국 정보당국은 수시로 기자들을 보내 김정남의 이동경로를 쫓고 그의 근황을 시시각각 탐지하고 있었다.

리여우치가 ‘망명 정부’ 운운한 것은, 미 CIA 등이 김정남과 접촉하며 그를 북한 지도부에서 이탈시키려 공작을 벌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김정남이 살해된 뒤 그가 말레이시아에서 한국계 CIA 요원과 접촉했다는 정보가 언론에 흘러나왔다. 리여우치와 <홍콩01>이 김정남이 살해된 지 일주일 뒤 ‘김정남 다음은 김평일’이라고 예시한 것은, 사건 발생 아흐레 전 두 사람을 ‘북한 지도부의 걸림돌’로 정의하며  ‘김정은의 처결’을 암시했던 것과 수미일관한다.

[[2017.2] 21일 홍콩 인터넷매체 홍콩01에 따르면 시사평론가 리여우치(李幼岐)는 20일 기고한 칼럼을 통해 “김평일과 김정남은 유사한 점이 있다”면서 ... 세계탈북자대회에서 김평일을 망명정부 지도자로 추대했다는 설(說)이 김평일에게 더 치명적 ... [김평일이] 김정은 정권에 큰 위협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주장 ... 김한솔이 부친 김정남의 복수를 하거나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판하려 한다면 북한 정권이 제거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 ..] (「“김정은 숙부 김평일 北체코대사 다음 암살 표적 가능성 높다”」<연합뉴스> 2017.2.21)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정남이 살해된 지 얼마 안 돼 김평일 대사는 평양으로 귀환했다. 리여우치 따위가, 또는 미 CIA 패거리가 ‘북한 망명 정부’ 운운하며 이북을 흔들어보려 기를 쓰는 상황에서, 차라기 귀국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김한솔 뿐이다. 

최근 안기부와 옛 보안사(현 안보지원사령부)가 조직을 재정비하고 있다. 안보지원사령부는 조직 명칭을 국군첩보사령부 또는 보안방첩사령부로 바꾸려 한다. 명칭은 이념과 철학을 반영하고 행동을 정의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일시 주춤했던 대북공작이 재개된다면 저들의 최고 먹잇감은 김한솔이 아닐까.

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인 이한영을 납치해다(1982년) 15년 만에 살해한데 이어(1997.2), 김정남을 살해했고 그의 아들 한솔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 (이한영 사건에 대해서는 https://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986 등, 김정남 사건에 대해서는 https://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622 참조)
김한솔이 어느 날 갑자기 언론에 등장하거나 유튜브 등을 통해 리여우치가 말한 것처럼 이북 제제를 비판할 즈음 공작이 개시되는 것이다. 그러면 리여우치 또는 그와 같은 자가 또 등판할 것이다. 같은 조직의 범죄 유형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34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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