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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1
‘김현희=화동(花童)론’의 허와 실
강진욱  | 등록:2020-12-28 13:13:10 | 최종:2020-12-28 13:48: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1
- 11월 26일 방송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11. ‘김현희=화동(花童)론’의 허와 실

KAL 858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이 사건을 북한의 소행이고 김현희는 북한이 보낸 공작원이라고 주장하는 안기부-국정원과, 안기부-국정원을 의심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는 일이다. 국정원 발전위원회 같은 것이 꾸려진 목적이 바로 그 대치선을 허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한 교수 등 이 발전위에 들어갔던 소위 ‘민주·진보 진영’ 인사들은 이 대립을 해소하기는커녕 제꺽 안기부-국정원 편에 서 버렸다. 자신들은 이 사건과 관련된 의혹들을 낱낱이(?) 조사한 뒤 그렇게 판단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는 의혹은 모두 지나친 의심에서 비롯된(음모론자들이 꾸며낸?)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교수 등은 식견과 명성에서는 남보다 못한 이들이 아니지만, 우리 분단사에 큰 생채기를 남긴 희대의 초현실적 사건을 다룰 만한 이들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 분단의 역사 반세기에 대한 통찰이 없었다. 분단 적폐의 본질은 ‘남측의 대북적대’라는 사실(끊임없이 사건을 조작해 남측의 대북 적대감을 가중시키며 남북 분단체제를 영속화한다는 사실), 그렇게 쌓인 적폐가 비등점으로 치달은 때가 1980년대였고 KAL 858 사건은 그 비등점에서 폭발한 사건의 하나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런 통찰이 없으니 안기부-국정원이 제공하는 자료만 갖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여객기를 폭파시켰다는 ‘자칭 테러리스트들’의 유치한 행적과 사건 전후 전두환 정권의 수상한 행보 등 사건의 시말이 온통 기괴한 에피소드의 연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처음부터 ‘안기부가 그런 일을 할 만한 조직이 아니다’라는 그릇된 선입견을 갖고 시작했으니 그 결과는 빤했나.

이들은 이 땅의 분단적폐의 온상인 안기부-국정원과의 한 판 싸움을 각오해야 하는 줄은 몰랐기에, 안기부-국정원이 어떻게 KAL 858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있는지는 더더욱 몰랐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들이 휘두를 비장의 무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애시당초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어리바리 진보 인사들이 무슨 조사위원이랍시고 국정원 문을 넘어설 때 저들이 무슨 표정으로 이들을 맞이했을지 눈에 선하다.   

KAL 858 사건 관련 논쟁에서 안기부-국정원이 휘두르는 비장의 무기는 김현희의 어린 시절에 관한 ‘물증(비슷한 것)들’이다. 김현희가 이북에서 중학교 1학년 때(10살)인 1972년 화동으로 뽑혀 남북조절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남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걸어줬다는 것. 저들은 또 김현희가 어릴 적 아역배우로 이북 영화에도 출연했다는 ‘물증 비슷한 것들’을 갖고 있었다. 김현희처럼 보이는 어린 아이의 사진과 필름 등이 그것이다.

KAL 858 사건의 진상 규명 작업의 최후, 최대의 장애물, 안기부-국정원에게는 최고의 방패가 바로 ‘김현희의 어린 시절’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KAL 858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 안기부-국정원이 짰을 KAL 858 공작 시나리오가 아무리 엉성해도, 이 엉성한 각본이 아무리 많은 의혹을 양산해도, 또 그 누군가 이 의혹들을 낱낱이 조사해 그 전모를 밝혀내도, 김현희가 어린 시절 이북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했고 10살 때 화동으로 뽑혀 남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줬다는 ‘물증 비슷한 것’이 있는 한 저들은 “얘 북에서 온 거 맞는데 왜들 난리야”라고 뻗댈 수 있는 것이다. 김현희=화동설에 대한 안기부-국정원의 입장. 한 교수도 100% 동의한다.

[87.12 김현희 조사 시 신원을 특정하는 과정에서 김현희가 72.11.2 남북조절위 제2차 평양회담(72.11.2-11.4) 참석 차 평양에 도착한 남측 대표단 중 두 번째 사람에게 환영 꽃다발을 증정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여 당시 수사팀에서 72.11 남북회담 시 차석대표인 장기영 씨가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는 사진을 입수, 김현희에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진 속의 화동이 자신이 맞다’고 하여 88.1.15 수사결과 발표 시 이 사진을 함께 공개한 사실이 있음.

그러나 그 후 이 화동 사진은 72.11.4 회담 후 평양을 떠나는 장기영 대표에게 화환을 증정하는 사진으로 당시의 화동은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72.11.2 남측 대표 평양 도착 당일 평양 근교 역포헬기장에서 화환 증정을 위해 대기 중인 화동 7명의 사진을 입수(월간조선 2001년 11월호 게재), 김현희에게 확인한 결과 그 중 세 번째 소녀가 김현희인 것으로 확인되었음. 「국정원 답변서」2004.3.15](『KAL 858, 무너진 수사발표』237-238쪽에서 재인용. 줄바꿈은 답변서를 따랐을 것이다.)

( 1988.1.15 매일경제신문. 안기부는 이날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2차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남측 대표단의 일원인 장기영 씨에게 꽂다발을 증정하는 화동 사진을 보란 듯이 공개했다. 이 화동이 김현희라는 것. 그러나 가짜였다.)

( <월간조선> 2001년 11월호에 게재된 사진. 안기부-국정원은 세 번째 화동이 김현희라고 주장한다.)

1988년 1월 15일 수사결과 발표 때 김현희가 자기라고 확인해서 화동 사진을 공개했는데) 그 사진 속 화동은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월간조선> 2001년 11월호에 새로운 ‘화동 사진’이 실렸기에 그 사진을 김현희에게 보여줬더니 또 자신이라고(사진 속 동그라미) 말하더라. 그러니 김현희는 열 살 때 북한에서 화동이었던 게 맞다(고 본다). 이 말이다.

KAL 858 사건의 진상에 별 관심도 없는 이들, 누가 시켜주니 무슨 조사위원이 된 이들은 여기서 멈칫할 수 있다. ‘어, 김현희가 이북에 있었어? 그럼 북한 공작원이 맞는거야?’ KAL 858 사건이 왜 문제인지, 이 사건이 어떻게 조작됐는지를 아는 이들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김현희가 어릴 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KAL 858 사건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현희가 어릴 적 아역배우를 했는지 또 그가 화동이었는지 여부는 이 사건의 진상과 하등 상관이 없다. KAL 858 사건 진상 규명 문제의 본질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KAL 858를 폭파 또는 추락케 했는냐다. 어떤 문제를 푸는 요체인 ‘6하원칙’ 가운데 ‘무엇’(KAL 858 여객기)를 제외한 나머지 5개가 미궁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33년이 흐르기까지 이들 5개 미궁에서 - 아니 그 중 어느 한 개에서라도 -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모두 안기부-국정원이 사건의 내막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5개 미궁에서 빠져 나가는 것이 바로 KAL 858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다(KAL 858 사건 보고서를 갖고 박사학위 논문을 쓴 박강성주 씨도 ‘6하원칙’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안다).

국정원 발전위 민간 조사위원들은 마땅히 이 5개 미궁을 파헤치는 일에 매진했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런 저런 의혹을 거론하는 조사위원들에게 “사실은요, 저희가 비공개 자료들을 몇 가지 갖고 있는데, 그걸 먼저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하며 김현희의 어린 시절에 관한 ‘물증 비슷한 것들’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희가(안기부 시절부터) 확보한 이런 증거로 미뤄보면 김현희가 북한에서 자란 게 맞습니다”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방을 더 먹였을 것이다. “김현희가 자신이 아역배우였고 화동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저희가 무작정 이런 사진이며 영화 필름 등을 찾았겠습니까. 김현희 진술을 듣고 자료를 찾은 거지요.” 이게 안기부-국정원의 주장이다.

[【동경=김세환 특파원】KAL기 폭파범 김현희(26)가 북한 공작원임을 입증 ... 한국 측 수사진에[게] 입을 열기 시작한 김은 자신이 지난 72년 11월 남북조절위원 회담 때 평양을 방문한 서울 측 대표에게 꽃다발을 전해준 일이 있다고 밝힘에 따라 한국 수사당국이 당시 사진을 ...](<경향신문> 1988.1.20)

안기부-국정원에 대한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덤벙거리며 KAL 858 사건의 진상 규명 운운했던 이들은 이 한 방에 ‘넉 다운’됐을 것이다. 안기부-국정원은 반세기 넘게 이 땅의 분단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적폐 세력의 한 축이다. 한 교수같은 어리숙한 이들을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한 교수는 애초부터 ‘KAL 858 사건은 이북의 닭같은 X들이 저질렀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안기부-국정원이 갖고 있는 김현희의 어린 시절에 관한 ‘물증 비슷한 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다. 그랬으니 안기부-국정원의 농간에 놀아날 밖밖에. 그렇게 스스로 무릎을 꿇고는 “안기부-국정원 말이 다 맞아요∼” 하며 안기부-국정원 홍보맨이 돼 버린 것이다.

안기부-국정원의 이런 계략과 술수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하나는 김현희가 김일성대학을 다녔다면서 제가 살던 평양의 시민증(공민증) 번호를 모르고, 자기가 조선노동당원에 가입했다고 말하면서 당원증 번호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김현희가 온갖 것들을 마치 외우듯 기억하면서도(김현희의 국선변호인이었던 안동일은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는 책에서 김현희의 기억력은 천재적이라고 떠벌린다),  평양시민증 번호와 당원증 번호만 모른다는 사실은 안기부가 발표한 것이지만 이 사실을 늘 염두에 두기는 쉽지 않다(안기부는 ‘모른다’가 아니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또 하나는 김현희와 그 일당이, 아니 김현희 따위를 꼭두각시로 부리는 조직이(안기부와 일본 경시청 또는 공안청 등) KAL 858 사건이 일어나기 최소 4년 전부터 일본 모처에서 무슨 일을 꾸미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김현희네가 사건 발생 최소 4년 전인 1983년부터 일본 여권을 갖고 동남아와 유럽 등지를 돌아다녔고 김승일은 한국을 들락거렸다는 사실도 이미 사건 당시 신문 보도 등을 통해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내막을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김현희가 평양시민증과 당원증 번호를 모르고 사건 발생 몇 년 전부터 일본여권을 갖고 유럽과 아시아 각국을 돌아다녔다는 두 가지 사실의 함의(含意)를 아는 이는 더 드물다.

무엇이겠나. 김현희는 어릴 적 이북에서 아역배우였고 화동이었는지는 모르지만(확인 불가), 그렇다 해도 공민증을 받을 나이인 17살이 되기 전에 탈북해(또는 납치돼) 일본 등지에서 청년기를 보냈고(그러니 평양시민증 번호를 알 리 없고 당원이 됐다는 말을 새빨간 거짓말이고), 그의 탈북 후 또는 그 후 일본 공안 및 한국의 안기부 등과 한 패가 돼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안기부가 김현희의 진술을 듣고 사진 자료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KAL 858 공작을 기획할 때부터 김현희 화동 사진 등을 찾아나섰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서 있어야 한다. 만약 한 교수나 국정원 발전위에 들어간 민간 조사위원들이 노다 미네오(野田峰雄) 선생이 쓴 책(『김현희의 파괴공작 - 나는 검증한다』창해출판사, 2004)만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었더라면 ‘일본에서의 수상한 사전 공작’에 대한 감은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김현희의 어린 시절에 관한 물증 비슷한 것을 들이밀며 “김현희가 진술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무작정 얘 어릴 적 사진이며 필름을 찾았겠습니까”하며 속삭이는 안기부-국정원의 술수에 놀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해괴한 ‘닭론’에 사로잡혀 있던 한 교수 같은 이들에게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일 ...  
 
[(한홍구 tv 유튜브 소제목 ‘꽃다발의 소녀는 나다’) 이 이야기는 좀 빨리 나가겠습니다. ...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안기부가 이 사진을 실었습니다. (꽃다발 주는 사진) ... 뭐냐 하면 김현희가 북에 있을 때 ... 얼굴이 이쁘장하게 생겼으니까 ... 누가 오면 꽃다발 주는 거 ... 72년도에 남북대화 한 참 할 때 ... 그때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에 장기영이란 분이 ... 부총리도 지냈고 ... <한국일보> 사주죠 ... 갔을 때 ‘장기영씨한테 꽃다발 준 게 나다’ ... 안기부가 이 사진을 배포했고, 김현희도 ... 기자회견을 할 때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꽃다발의 소녀가 김현희야 ... 그리고 조절위원회 이후락인데... 이후락한텐 딴 사람이 줬고 ... 두 번째로 장기영한테 자기가 줬다. 소녀들 중에서 자기가 두 번째 서 있었다. ... ]

( 한홍구tv / 한 교수는 유튜브 강의에서 장기영을 가리켜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이라고 칭했지만, 당시 남북조절위 남측 부위원장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었고, 장기영은 전 부총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동행했다. 장기영 씨가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부위원장’이 된 것은 이후락 중정 부장이 1973년 12월 3일 - 미국 등의 농간으로 - 떨려난 뒤 그 자리를 물려받으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남측 부위원장 대리’였다.)

안기부가 1988년 1월 15일 수사결과 발표할 때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임을 증명하는 ‘물증’이라며 제시한 ‘화동 사진’ 속 인물은 김현희가 아니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아니면 아무 사진이나 들이밀면 된다고 여겼는지 엉뚱한 사진을 가져다 김현희라고 우긴 것이다. 그 ‘물증’(사진) 속 화동이 김현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바로 ‘칼귀’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사진 속 화동의 귀 모양이 김현희의 칼귀와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김현희의 귀를 먼저 이슈화한 것은 놀랍게도 안기부였다. 수사 발표 닷새 뒤인 1월 20일 나온 기사. “귀를 잘 보세요∼”

[【동경=김세환 특파원】KAL기 폭파범 김현희(26)가 북한 공작원임을 입증한 것은 그녀의 ‘귀’였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19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한국 측 수사진에[게] 입을 열기 시작한 김은 자신이 지난 72년 11월 남북조절위원 회담 때 평양을 방문한 서울 측 대표에게 꽃다발을 전해준 일이 있다고 밝힘에 따라 한국 수사당국이 당시 사진을 보여 준 결과 “이것이 나”라고 말했다는 것. 김현희는 한국 수사관이 이를 믿지 않는 표정을 짓자 “귀 모양을 잘 보라”고 말했으며 이에따라 전문가에 조회한 결과 동일인임이 확인됐다는 것이다.](「“내가 꽃다발 소녀” ... 자백 믿지 않자 김현희 “귀를 잘 보세요”」<경향신문> 1988.1.20)

( 1988.1.20 경향신문)

누군가 김현희의 귀 모양에 의문을 제기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귀를 잘 보라”고 설레발을 친 까닭이 무엇일까. 1988년 1월 15일 수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닷새 만에 ‘자살골’을 날린 이유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허둥대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안기부는 김현희가 1972년 11월 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 2차 부위원장회의 때 화동으로 남측대표에게 꽃다발을 줬다는 이야기를 이미 오래 전 공작팀에 끌어들였을 김현희로부터 들었을 개연성이 있다. 그래서 나름 확신을 갖고 사진첩을 뒤졌을 것이고, 문제의 사진을 찾아내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누군가 이 사진 속 화동이 김현희가 아니라고 지적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사히신문> 기자가 안기부에 정식으로 질의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안기부는 그 기자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김현희에게 다시 확인했는데, 자기 귀를 보라며 맞다고 대답하더라”고 과한 설명을 곁들였고, <아사히신문> 기자는 국정원의 입장을 십분 반영해 글을 썼고, 그 글이 <경향신문> 도쿄 특파원을 통해 국내로 전해진 것이다. 

“귀를 잘 보세요.” 이 자살골은 자기 과신이 부른 참사였을 것이다. 아무튼 ‘긁어 부스럼’이 됐다. 김현희 귀가 사진 속 화동과 다른 칼귀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추측이지만, 아마도 이즈음 위 사진 속 주인공인 장기영 씨 쪽에서 위 사진은 평양 도착 때가 아니라 평양을 떠날 때 찍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을까. “이 화동 사진은 72.11.4 회담 후 평양을 떠나는 장기영 대표에게 화환을 증정하는 사진으로 당시의 화동은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 ”(「국정원 답변서」2004.3.15)

이래저래 안기부는 새로운 사진을 찾아야 했다. 아마도 신문사와 방송사들을 찾아다니며 사진과 필름을 이 잡듯 뒤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한 달 반의 시간이 흐르도록 새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초조했을까.

결국 1972년 11월 2일 평양 도착 때의 화동 사진은 일본에서 나오게 된다. 일본공산당이 발행하는 주간 사진잡지 <그라프 곤니치와> 1988년 3월 6일 자였다. 안기부가 사진을 찾아달라고 요청했을 수도 있고, 일본 쪽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였을 수도 있다. 사진은 1972년 당시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적기(赤旗)>)의 평양특파원이었던 하기와라 료(萩原遼)가 찍은 것이었다.

(‘그라프 곤니치와’에 실린 사진. 제목은 「김현희는 그라프 곤니치와에 게재된 사진을 보고 “이게 나에요”라고 말했다」는 제목(부제.주제)이 붙어 있다. )

안기부는 3월 5일 이 주간지가 나오자마자 보도자료를 뿌렸다. 주간지가 발간되기 전에 일본 공안세력과 정보 교환이 있었을 것이다. 안기부는 문제의 사진을 김현희에게 보여줬는데 김현희는 자기가 틀림없다고 진술했다고 떠벌렸다. 

[김은 72년 11월 당시 <그라프 곤니치와>의 평양 특파원이었던 하기와라 기자가 남북조절위원회 회담 때 찍었던 사진을 수사관이 내 보이자 “이 사진은 당시 내 모습이다. 어떻게 이 사진을 구했느냐”라고 신기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는 것. 김은 또 사진의 뺨 부분이 지금보다 더 통통한 것 같다고 지적하자 “중학교 때는 살이 올라 뺨이 통통했다. 이마, 눈썹, 눈두덩, 귀 등의 모습과 얼굴 윤곽이 지금과 똑같지 않느냐”면서 사진 장면은 꽃다발 증정 전에 헬리포트에 정렬, 남한 대표들의 도착을 기다리던 장면이라고 설명했다고 안기부 수사관계자는 밝혔다.](「일지(日誌) 사진 “틀림없는 내 모습”」<경향신문> 1988.3.5)

(사진 좌 : 1988.3.5 경향신문 / 사진 우: 1988.3.6 조선일보)

그러나 ‘뻥’이었다. 안기부가 또 ‘똥뽈’을 찬 것이다. “이 사진은 당시 내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 사진을 구했습니까?” “중학교 때는 살이 올라 뺨이 통통했습니다다. 이마, 눈썹, 눈두덩, 귀 등의 모습과 얼굴 윤곽이 지금과 똑같지 않습니까?” 안기부가 가증스러운지 김현희가 가증스러운지, 누가 더 가증스러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가 아닌 걸 자기라고 우기는 솜씨가 가히 천부적이다! 이런 놀라운 솜씨로, 온 국민을 현혹하고 세뇌하면서 KAL 858 사건의 내막을 34년째 감추고 있는 것이다. 가증스럽기는 하기와라도 마찬가지였다. 

[오기하라[하기와라] 씨는 “한국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증정하러 가던 소녀 중의 하나가 ‘단정한 얼굴 모습, 유난히 기품이 있어 보이는 분위기로 눈을 끌었는데, 지금 보니 텔레비전 회견 중의 김[현희]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고 말하고 “99% 확신한다”고 동일 인물임을 증언했다.](<조선일보> 1988.3.5)

꽃다발 들고 서 있는 여러 화동을 사이에서 유독 한 아이의 기품을 캐치하시는 놀라운 능력! 뭐, 지금 보니 김현희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아? 이 자도 천부의 사기꾼 기질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안기부는 이렇게 천부적 사기꾼 기질을 지닌 자들과 더불어 KAL 858 사건의 내막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와라와 김현희, 안기부가 한 팀이 돼 폼 나게 찬 볼이 ‘똥볼’로 드러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라프 곤니치와>에 하기와의 사진이 실리고, 안기부가 김현희와 하기와라의 가증스러운 망발을 마구 퍼뜨린 지 불과 열흘 뒤 반전이 일어난다. 김현희가 “어머, 이게 바로 나예요”했다는 그 사진 속 화동이 ‘짠’하고 나타난 것이다. 평양 외국어학원 교원(교사) 정희선(鄭姬善.27)이 그였다.

1988년 3월 15일, 일본 도쿄에서 이북과 가까운 총련(조청련) 측이 주최한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정 씨는 “김현희가 지목한 화동은 바로 나”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하기와라가 찍은 화동들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들고 나와 사진 속 화동들의 이름을 줄줄이 댔다.

( 정희선이 제시한 사진)

1번 소녀는 나옥심, 2번은 남금숙, 3번은 김송희, 그리고 김현희가 자기라고 우기던 4번이 바로 정희선 자신이라고! 당시 화동으로 뽑혔던 아이들의 학교가 달라 화동들 모두의 이름을 대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앞과 뒤 좌우는 알고 있다고 했다(『KAL 858, 무너진 수사발표』249-250쪽).

전두환 정권과 국정원 패거리는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또 이 공작을 도왔을 미국이나 일본의 어떤 조직들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저들은 우선 정희선의 기자회견 소식을 철저히 차단했다. 대서특필했어야 마땅한 사건이었지만, 당시는 안기부 세상, 미국의 대북 적대적 분단체제가 완전하게 작동하는 시절이었다. <동아일보> 5면의 1단 기사가 거의 유일했다. 

[【동경=허태홍 특파원】재일 조총련은 15일 일본공산당 발행 사진잡지 ‘그라프 곤니치와’(3월 6일 자)에 실린 김현희의 ‘소녀 시절로 보이는’ 사진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문제의 소녀는 현재 평양에 살고 있는 정희선(27)이라고 주장했다. 조총련은 이날 문제의 사진과 같은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비롯한 당시의 몇 장의 사진과 정 여인이 자기라고 주장하는 비디오를 갖고 나와 김현희가 그 사진을 보고 자신이 틀림없다고 하는 말을 반박했으나, 일본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본 많은 사람들은 ‘꽃다발의 소녀’가 정 여인과 그다지 닮지 않았으며 오히려 김현희와 더 닮았다고 말하고 있다.](「“일지 (日誌) 사진 주인공은 김현희 아닌 정희선”」<동아일보> 1988.3.16)

( 1988.3.16 <동아일보>)

정 씨의 회견을 부정하는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북측의 주장을 대체로 온전히 전했다. “사진 주인공은 김현희 아닌 정희선”이라는 기사 제목을 단 것도 대단했다.(기자는 시답잖은 사족(蛇足)으로 면피하면서 진실을 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종’이 쓰레기처럼 넘쳐나는 세상에서 영원히 기록될 ‘빛나는 1단’ 기사. 글을 쓴 기자와 제대로 된 제목을 붙여 기사를 살린 편집기자에게 찬사를 보낸다. 허태홍 특파원은 1974년 <동아일보> 노조 창립에 참여했다. 허 특파원 후임으로 1990년 도쿄 특파원으로 나간 이낙연 현 민주당 대표는 무슨 기사를 썼을까 궁금하다.)

기사에는 사진 속 화동이 김현희를 더 닮았다고 했지만, 자세히 보면 사진 속의 귀 모양이 김현희의 칼귀와 다른 동그란 모양이었다. 안기부와 김현희의 사기극이 또 한 번 들통이 나는 순간이었다. 한 교수도 정희선의 회견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 사진 다른 각도에서 찍었는데 ... 여기 귀는 동그란 귄데 ... 김현희 귀는 각이 졌잖아요. 귀는 모양이 안 바뀌죠. 얼굴은 모양이 바뀌어도 귀는 모양이 안 바뀌잖아요. ... 그랬더니 ‘꽃다발의 소녀는 나다’ 하고 북한에서 나타난 겁니다. 무슨 얘기야, 장기영한테 꽃다발 준 건 나야 하고 ... 그 저 .. 총련 쪽에서 나온 신문에서 보면 ... 귀 모양 찍어서 ... 자 어때 귀 모양 똑같잖아 ... 얼굴도 정면에서 찍은 걸 보니까, 정희선이란 사람하고 같은 거 같고 ... 그래서 김현희는 가짜다 하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어요.]

한 교수는 또 김현희가 자기라고 우긴 사진 속 화동의 귀는 정희선의 귀를 닮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면 뭐하나. 한 교수는 개별적 사실들을 잘 알지만 그 뿐이다. 개별적 사실들이 드러나기까지의 전후 상황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각각의 개별 사실들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 연관 속에서 어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법. 아름아름 김현희는 가짜라는 말이 퍼졌을 것이다. 일본 경시청이 먼저 움직였다. 안기부가 도움을 청했을 수도 있겠다. 이북을 겨냥한 더러운 공작에서 한일(韓日)은 늘 공모(共謀)한다(이 말을 못 믿겠거든 ‘김정남 사건’을 보시라.
유튜브 <김정남 살해 : 박근혜 국정원+CIA의 소행이다> 2020.6.21,
 https://www.youtube.com/watch?v=SORk4qFT-Gs 참조).

[【동경=강천석 특파원】일본 경시청은 28일 일본 공산당이 발행한 ‘그라프 곤니치와’에 나온 꽃다발을 든 소녀가 조총련이 주장했던 정희선(鄭熙善)의 사진이 아니라 김현희의 어릴 적 모습이라는 감정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의 과학경찰연구소(한국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감정한 이 사진 판정은 꽃다발을 든 소녀의 얼굴 형태, 얼굴의 윤곽선, 턱 모양, 귀바퀴, 귓밥, 눈두덩의 크기와 형태 등이 김현희와 동일하나, 조총련이 기자회견까지 하며 내세웠던 정희선과는 별개의 인물임이 확실하다는 내용이다. 조총련은 김현희가 ‘그라프 곤니치와’에 게재된 사진이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고 확인하자, 그 사진의 주인공이 지금 북한에 있는 정[희선]이라면서 비디오까지 제시하며 요란한 선전 공세를 벌여왔었다.](「일본 공산당 잡지 ‘꽃다발 소녀’ ... 일본 과학경찰연구소 “김현희” 판정」<조선일보> 1988.3.29)

정희선의 기자회견 내용을 부정하는 악의적 발표를 <조선일보> 도쿄 특파원은 여과 없이 전했다. 앞서 정희선의 기자회견을 국내에 전했던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은 일본 경시청의 발표를 기사화하지 않았다.

한 교수는 분명 정희선의 기자 회견 내용까지 잘 알고 있으면서 정희선의 말을 믿지 않고 일본 경시청의 말을 믿고 안기부의 말을 믿는다. 이때로부터 12년여가 흐른 2001년 11월 <월간조선>에 새로운 화동 사진이 실린 것을 두고 한 교수는 ‘진짜 김현희 화동 사진’이 나왔다고 반긴다. 
 
[그래서 의혹이 증폭됐는데, 문제는 뭐였느냐면 ... 새로운 사진이 나왔죠. 그런데 보니까 화동으로 있는 게 맞네요. 요 얼굴에는 김현희 얼굴이 있잖아요. 뭐 .. 확대해 보니까 귀 모양도 ... 비슷하고 ... 요게 김현희예요. 김현희가 자기라고 했었던 두 번째 소녀는 여기에 있고, 이 소녀가 장기영 조절위원장한테 꽃다발을 줬으니까 .. 요 세 번째가 김현희란 말예요. 이 세 번째가 김현흰데 ... ]

(<월간조선> 2001년 11월호(좌상), <월간조선> 2004년 2월호(좌하) 등에 차례로 게재된 하기와라 료의 사진들 / 한홍구tv)

( 요미우리 2004년 신년호 게재 사진. ‘KAL 858 대책위’ 자료)

하기와라는 1988년 3월 <그라프 곤니치와>에 제공했던 사진 속 화동들을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을 2001년 11월 <월간조선>에도 흘리고 또 3년 뒤인 2004년에는 총천연색 칼라로 찍힌 사진을 <요미우리신문>에도 제공했고, 그 사진이 또 <월간조선> 2004년 2월호에 실린다. 이 사진 속에 김현희처럼 칼귀에 비슷한 얼굴 생김새를 가진 화동이 있었던 것이다).

안기부-국정원은 마침내 ‘아, 김현희가 바로 여기 있었네!’하고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고, 한 교수는 이 환호에 빙의돼 “얘가 바로 김현희에요” 하고 동조한 것이다. 설사 이 사진 속 세 번째 화동이 김현희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얘가 김현희 맞네요’ 할 일이 아니다. 그 말은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이 맞네요’와 같다.

사진 속 화동이 김현희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지만, 설사 김현희라 해도 그것은 KAL 858기 폭파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 교수는 어릴 적 화동이 김현희이고, 그 김현희가 KAL 858기를 폭파했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사건의 전후 맥락을 전혀 모른 채 안기부-국정원이 내린 결론을 무조건 100% 수용해 버린 것이다.

안기부-국정원과 한 패로 놀던 하기와라가 또 사진 한 장을 내놨다면 ‘하기와라가 또 사진을 한 장 들고 나왔죠. 이번엔 제대로 찾은 걸까요’ 하면 될 일이다. 이 사진이 나오기까지 안기부와 김현희 및 하기와라가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한 것이 도대체 몇 번인가.

1988년 1월 15일 장기영 씨에게 꽃다발을 주는 화동 사진을 전격 공개하면서 ‘이 화동이 바로 김현희다’라고 ‘뻥’을 쳤고, 그로부터 하루 이틀 뒤 그 사진을 본 김현희가 “얘 나 맞아요. 귀를 잘 보세요” 라며 가증을 떨었고(위 사진 76), 그로부터 한 달 보름여 뒤인 1988년 3월 5일 안기부가 일본공산당의 사진잡지 ‘그라프 곤니치와’에 실린 색동옷 차림의 화동 사진을 제시하며 “김현희가 틀림없이 자기라고 말했다”고 또 거짓 발표를 했고, 그로부터 열흘 뒤 평양 외국어학원 교사 정희선이 “김현희가 지목한 건 바로 납니다”하고 기자회견을 열고 주변에 있는 동료들의 이름까지 줄줄이 대지 않았나!

한 교수는 한국의 ‘대표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아마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걸어다니는 한국현대사 사전’이라는 혹자의 평가 등 지명도로 치면 아마도 첫 손가락에 꼽힐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가, 또 KAL 858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국정원 발전위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이가 안기부-국정원과 김현희가 벌인 ‘화동 사진 놀음’과  진위 논란을 깡그리 무시하고 안기부-국정원의 입장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한국의 사회(학)적 지력(智力)이 얼마나 저열한지를 웅변한다.

그의 말이 허허롭다. “김현희가 자기라고 했었던 두 번째 소녀는 여기에 있고, 이 소녀가 장기영 조절위원장한테 꽃다발을 줬으니까 ... ” 1988년 3월 <그라프 곤니치와>에 게재된 사진 속 화동을 가리키며 김현희가 “이게 바로 나예요”라고 말했는데 그 화동은 바로 도쿄에서 기자회견한 당시 평양외고 교사 정희선이더라! 이런 에피소드는 그냥 넘어가도 좋지 않겠냐, 뭐 이런 말인가?

국정원이 한 교수에게 했을 법한 말을 생각해 본다. 1988년 1월 15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엉뚱한 화동 사진을 공개했다 망신을 당하고, 사흘 뒤 <아사히신문>에 “여기 귀를 보세요”하며 김현희의 칼귀를 부각시켰다 또 망신을 당하고, 다시 한 달 반 뒤 <그라프 곤니치와>에 새로운 화동 사진이 나와 또 김현희가 “얘가 바로 나예요”했다고 열흘 만에 사진 속 주인공이 나타나 또 개망신을 당했지만, 이에 대해 안기부-국정원은 “이 모든 일들은 김현희가 화동이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팩트의 물증을 찾는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일 뿐입니다” 하지 않았을까? 한 교수는 이미 안기부-국정원의 입장에 빙의된 상태였으니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을 것이고 ... 그렇게 안기부-국정원의 놀잇감이었던 한 교수는 결국 정신착란으로 의심되는 증세를 보인다.

[이 세 번째가 김현흰데 ... 어 그니까 ... 이게 인제 .. 김현희가 왜 자기를 못 알아보고 ... 이거를 갖다가 엉뚱하게 했을까(엉뚱하게 딴 애를 자기라고 했을까) ... 하아 .. 1월 15일 단계까지는 김현희가 ... 그러니까 ... 이건 제 추측입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뭐 ... 아닐 수도 있어요. 아닐 수도 있는데 혹시나 ... 이게 안기부 ... 그니까 ... 살게 되며는 ... 안기부우∼의 수사 발표가 거짓이라고 사람들이 의심하게끔 ... 어 ... 명백한 사실을 잘못 ... 아닌 것처럼 얘기해라 ... 가령.. 인제 ... 저같은 사람이 지금 잡혀들어가서 간첩 사건 수사받으며는요 ... 엉뚱한 정보를 일부러 줄 거예요. 나중에 재심재판같은 데서 풀려나게끔 ... 그래서 공소장에다가 틀린 정보들 .. 예컨대 ... 뭐어 ... 몇 년도에 서울시민회관에서 뭘 했습니다. ... 아니 ... 저 ... 예컨대 ... 뭐 세종문화회관에서 71년도에 무슨 공연을 봤습니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은 예컨대 ... 75년에 세워졌다. 이러면 이게 ... 진술이 안 맞잖아요. ... 또 ... 뭐 롯데호텔에서 뭘 했습니다. 68년도에 ... 어렸을 때 ... 뭘 했습니다 ... 롯데호텔은 74년인가 5년에 지어졌으니까 안 맞잖아요. 이런 식의 ... 인제 ... 이렇게 명백한 사실을 가짜로 예기하면 사람들이 보고 ... 야 이거 김현희 가짜 아니냐 ... 조작 아니냐 ... 이렇게 돼 ... 하 ... 의도적으로 그렇게 진술했을 수 있겠다 싶은데 ... 뭐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착안을 하지 않았는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김현희가 자기를 못 알아보고 엉뚱한 아이를 자기라고 말한 것이 아니고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김현희와 안기부가 지금까지 한 모든 거짓말은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으로서의 임무(거짓 진술 명령을 따름)’를 수행한 결과라는 말이다. 와아 ... 이 말을 들으면서 거의 기절할 뻔했다. 공작과 음모에 이골이 난 안기부맨들도 혀를 내두를 기상천외한 망상! 그의 횡설수설을 좀 더 들어보자. 너무 놀라 자칫 정신줄을 놓칠 수도 있다.

[김현희가 ... 안기부에 협조한 것 같지만, 잘 모르겠어요. 안기부를 조금 ... 그 100% ... 안기부에다가 진술을 제대로 다 해 준 건지 ... 왜냐하면 .. 굉장히 혼란이 일어나게끔 진술을 한 대목들이 많거든요 ... 그게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는 .. 뭐 정확히 몰르겠습니다. 김현희를 저는 만나 본 적이 없고, 또 만나도 그 얘기를 해 주지 않겠지요. 당연히 해 주지 않을 텐데 ... 왜냐하면 ... 김현희도 북에 가족들이 있잖아요. 북에 가족들이 있으니까 가족을 ... 이제 보고하는 그런 장치 ... 북에서 뭐 .. 인제 뭐 .. 어느 정도... 체포됐을 경우를 대비해서 ... 그 .. 김현희는 공작에 성공한 케이스 아녜요? ‘(KAL 858 폭파 공작에) 성공하고 ... 전향을 하며는 .. 요기까지만 지키면은 가족들 문제 없어’ ... 아마 그런 약속을 해 줬을 거고 ... 그게 초기에 안기부에 ... 안기부가 헤매고 혼란에 빠지게 된 데에는 ... 그렇게 의심을 해 볼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 그러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거구요. ... ] 

‘더 이상 언급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았다. 어떤 궤변은 두뇌회전을 급정지시켜 어의를 상실케 함은 물론 신체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 ...
김현희가 이북에 남겨진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고의로, 일부러 거짓 진술을 했고, 따라서 그동안 김현희의 실체를 둘러싼 모든 의혹과 안기부의 온갖 거짓말은 전혀 문제 삼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한 교수는 자기만의 망상에 빠져 김현희와 안기부의 숱한 거짓말을 ‘홀랑’ 집어 삼켜버렸다. 블랙홀! 
... ... 
김현희의 가족이 이북에 있어? 제 부친 ‘김원석’이 ‘앙골라 주재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고 했던 말을 그대로 믿어? 그럼 그의 가족들이 모두 숙청당했다는 말도 믿어야 하나? 공작에  성공한 뒤 전향하더라도 안기부를 헷갈리게 진술하기만 하면 가족들 다 봐 준다며?!?!
... ...
아무리 김현희를 ‘북한 공작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망상을 확대발전시킬 수 있는지 ... 있지도 않은 앙골라 주재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는 자리도 있다고(있을 것이라고) 믿고 ... 국정원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겠다, 한 교수같은 ‘철벽 수비수’를 뒀으니 말이다!     

P.S.

김현희가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지만, 평양시민증과 노동당원증의 번호만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얼마 전까지 KAL 858 가족회 진상규명대책위 총괄팀장이었고 지금은 KAL 858 유족회를 이끌고 있다 신성국 신부는 진상규명 대책위 조사팀장이었던 서현우 씨(소설『배후』작가)가 2010년 펴낸 『KAL858기 사건 종합 분석 보고서』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재판기록에 피고인 김현희 인적사항이 있습니다. 인적사항에 김현희 이름 하나, 생년월일, 주소, 부모 이름이 있는데, 정작 중요한 공민증 번호(주민등록증)가 빠졌습니다.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탈북자들이 인적 사항을 조사받을 때, 기본적으로 공민증 번호부터 밝혀야 합니다. 정말로 북한인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신원과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증 아닌가요? 그런데 김현희의 인적사항에는 신분증 번호가 하나도 없습니다. 김현희는 공민증 번호를 기억 못한다고 진술합니다. 김현희의 국선 변호사인 안동일이 쓴 책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2004년, 동아일보사 발간) 56쪽 내용 “김현희의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한번 암기한 것은 웬만하면 잊어버리지 않았다. 맹세문, 선서내용, 교육훈련 내용까지 대부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시간과 장소, 지명, 대화 내용 등 자세한 부분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어 우리를 경악시켰다” 이렇게 기억력이 뛰어날 정도의 김현희가 공민증 번호를 모르고, 노동당증 번호를 모르고,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 번호도 모른다. 이게 말이 되나요?](「[KAL858기 사건 30주기] ②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진실의 길> 2017.10.7
http://www.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8&uid=64&table=sk_shin)

김현희는 어릴 적 이북에서 살았는지는 몰라도(안기부 주장 확인 불가) 공민증이 발급되는 17살 전에 북한을 이탈해 언제부턴가 안기부 등이 획책한 KAL 858 공작의 들러리가 됐음이 분명하다. (1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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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파르티쟌  2020년12월28일 16시38분    
좋은 분석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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