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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2
김현희와 이동복의 ‘콜라보’
강진욱  | 등록:2020-12-31 11:45:38 | 최종:2020-12-31 19:12:1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2
- 11월 26일 방송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12. 김현희와 이동복의 ‘콜라보’

앞글에서 한 교수의 편리한 망각증을 지적했다. 1988년 3월 엉뚱한 사진을 들고 나와 ‘화동(김현희)의 기품이 남달랐다’고 떠벌린 하기와라가 훗날 또 사진 한 장을 들고 나온데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망각증은 중요한 사실을 논해야 할 때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꼭 말해야 하지만 말하지 않으려는 의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사진이 나왔죠. 그런데 보니까 화동으로 있는 게 맞네요. 요 얼굴에는 김현희 얼굴이 있잖아요. 뭐 .. 확대해 보니까 귀 모양도 ... 비슷하고 ... 요게 김현희예요. 김현희가 자기라고 했었던 두 번째 소녀는 여기에 있고, 이 소녀가 장기영 조절위원장한테 꽃다발을 줬으니까 .. 요 세 번째가 김현희란 말예요.]

(<월간조선> 2001년 11월호에 실린 하기와라의 사진)

김현희가 한 때 자기라고 우겼던 사진 속 화동은 정희선이고 정희선 바로 뒤에 서 있던 “세 번째 화동이 바로 김현희”라면서 뒷말을 흐리고 있다. 그가 생략한 뒷말은 ‘김현희에게서 꽃다발을 받은 것은 장기영이 아니라 바로 나’라고 주장한 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남북회담 훈령조작 사건’의 주인공 이동복이었다.

‘장기영의 대타’ 이동복의 등판은 자신의 이름으로 주간지에 기고하는 ‘원맨쇼’여서 별로 시선을 끌지는 못했지만, 엎어졌다 뒤집어지고 또 자빠지고를 반복한 ‘김현희=화동’ 이야기의 대미(大尾)가 된다. 조작질의 대미!

이는 생략하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이동복 씨의 이력. 1992년 9월 일어난 ‘이동복 훈령 조작 사건’은 1990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시작으로 남북기본합의서 서명을 거쳐(1991.12.13 / 5차 고위급회담) 급속 화해 무드로 전환되던 남북관계를 일거에 파탄시킨 사건이었다. 이 씨가 안기부장 특보로 재직하면서 남북 고위급회담 남측대표단 대변인을 맡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훈령조작 사건’ 놓고 15년 만에 또 논쟁」<오마이뉴스> 2008.6.2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33380
/「[길을 찾아서] 남북회담 대통령훈령 조작 은폐에 경악」<한겨레신문> 2012.7.29,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4725.html).

이 사건이 문제가 돼 그가 안기부장 특보자리에서 물러난 지(1993.11.26)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은 때, 그의 조작질 이후 급속히 높아지던 남북 간 긴장이 다시 누그러지기 시작할 때인 1994년 5월 갑자기 자기가 김현희의 꽃다발을 받았다고 나발을 불었다. 그 해 5월 5일 자 <뉴스메이커>(<경향신문> 자매 주간지)에 쓴 해괴한 글「“이동복 전 안기부장특보의 비망록 - 내가 만난 북한 사람들”(제2화)」을 통해서였다. 글을 나눠서 본다.

[1972년 11월2일 오전 11시 06분. 남한 측 대표단을 태운 두 대의 소련제 군용 MI-8 헬리콥터가 개성으로부터 40분간의 비행 끝에 착륙한 곳은 대동강 남쪽 역포였다.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 ... 평양에서 처음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회의(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제2차 회의) ... 남쪽 대표단은 李厚洛(이후락·중앙정보부장) 공동위원장, 張基榮(장기영·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부위원장, 崔圭夏(최규하·뒤에 대통령. 당시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 필자(李東馥 대변인), 그리고 보도진 등을 합쳐 25명 ...]

이 씨는 자신을 남측 대표단의 주요 인사들 중 한 명로 묘사하고 있다. 아니었다. 남측 대표단의 평양 장도 소식을 전하는 신문들은 ‘이후락 부위원장의 대변인’ 이 씨에게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사진 좌 : 1972.11.1 경향신문) (사진 우 : 1972.11.1 동아일보)

위 두 신문 모두 이후락 위원장(남측 부위원장) 사진을 크게 싣고 그 아래 장기영.최규하.강인덕, 정홍진 등 4명의 사진을 게재했다. 정홍진은 이후락 부장이 평양에 가기 전에 먼저 평양을 방문했던 중앙정보부 ‘회담조정국장’ 직함을 갖고 있었다. 먼 훗날 통일부장관이 되는 강인덕 씨는 당시 ‘중정 9국장’ 명찰을 달고 갔다.

이 씨는 장기영.최규하 다음에 ‘필자 이동복’을 쓸 것이 아니라 ‘강인덕’과 ‘정홍진’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필자 이동복을 비롯한 보도진 ... ”이라고 썼어야 했다. 강 씨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자기 이름을 떡하니 올리면서 마치 자신이 ‘이후락 +3 그룹’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위세를 떤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가 김현희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고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려면 우선 자기도 꽃다발을 받을 위치에 가 있어야 한다. 

(‘KAL 858 대책위’ 제공(좌), 북측이 88년 3월 제시한 사진(우). 어떤 사진에도 이동복이 꽃다발을 받는 사진은 없다. 이 씨 자신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자신도 꽃다발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도통 믿을 수 없는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여학생들이 앞으로 나와 남쪽 손님들을 한 사람씩 맡아서 목에 붉은 색 스카프를 걸어 매어주고 한 묶음씩의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 “꽃이 참 예쁘구나. 그런데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이지?” 그러나 북측 여학생의 반응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세 걸음을 뒤로 물러섰고 그 자리에 부동자세로 서서 필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조선 사람이면서 조선 꽃도 모릅네까?” ... 그로부터 꼭 15년 뒤인 87년 겨울, 필자는 그때의 씁쓸했던 기억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에 접하게 되었다. ... 대한항공 여객기 858편이 ... 서울로 온 김현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다. 그녀가 바로 필자에게 ‘조선 사람이면서 조선 꽃도 모릅네까’라고 퉁명스럽게 반문했던 바로 문제의 그 여학생이었던 것이다.]

“꽃이 예쁘다”느니 “조선 사람이 조선 꽃도 모르냐”느니 하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진작 김현희의 입을 통해 널리 퍼졌을 것이다. 안기부가 그 멋진 ‘카피’를 그냥 묵혔을까. 이 씨는 또 과한 해설로 ‘김현희의 기억’을 은근히 조작하려 한다. 그러나 매우 조심스럽다. 대놓고 남의 기억을 조작할 수는 없을 터이다.

또 “서울로 온 김현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다”면서도 뭘 밝혔다는 말은 못 하고, “그녀가 바로 필자에게 ‘조선 사람이면서 조선 꽃도 모릅네까’라고 퉁명스럽게 반문했던 바로 문제의 그 여학생이었다”고 쓴다. 마치 김현희가 직접 그렇게 밝혔다는 듯이. 문장 구성력이 이 정도면 안기부장의 훈령 문건 조작쯤이야 이여반장(易如反掌)이다.

[그녀는 그때 자신이 꽃다발을 건네주고 붉은 스카프를 매어주었던 남쪽 인사가 장기영 씨였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된 일이 있다. 사실은 그녀가 장기영씨를 기억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헬리콥터에서 ‘두 번째로 내린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두 번째’라는 표현 때문에 국내 보도기관들이 그 사람을 남쪽 대표단의 제2인자인 장기영씨로 혼동한 것이다. 1∼2년 전 서울에서 만난 김현희에게 당시의 일을 얘기하는 가운데 ‘그 때 김 양이 꽃다발을 건네주었던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 같다’고 말하면서 잠시 웃음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녀는 1972년 11월의 그 날 역포에서 그녀가 꽃다발을 건네주던 ‘남조선 사람’으로부터 ‘이 꽃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해 ‘조선 꽃도 모릅니까?’하고 반문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상대는 바로 필자였던 것이다.]

김현희는 자신이 꽃다발을 건네주고 붉은 스카프를 매 준 남쪽 인사를 장기영 씨로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된 일이 있다”고? 김현희의 기억을 ‘재조직’하려 무진 애를 쓴다. 김현희가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줬다고 기억하는 것을 ‘착각’이라 하고, 그녀의 착각은 언론 보도의 잘못 때문이라는 말이다. 김현희는 ‘장기영’을 거명하지도 않았는데 기자들이 혼동했다는 것.

그러나 김현희가 자기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말은 극구 삼간다. ‘김현희가 단지 꽃 이야기만 기억하고 있더라.’ 놀라운 절제력, 교묘한 문장력이다. 자기가 했던 말을 김현희가 기억하고 있더라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그녀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것은 자기라고 주장하는 솜씨! ‘문장력’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김현희는 ‘장기영’을 거명하지도 않았는데 기자들이 혼동해서 장기영으로 잘못 알려졌다는 해괴한 주장이 나오기 4년 전 그 전조(前兆)가 있었다. 노태우 정권의 ‘특별사면’(1990년 8월) 직후부터 김현희가 자기는 장기영을 거명한 적이 없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기 시작한 것. 특별사면 넉 달여 만인 1990년 12월 27일 KBS-1TV 인터뷰에서였다. 화동 얘기는 스쳐 지나가듯 아주 짧게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에게 선발돼 화동(花童)을 했습니다. 첫 남북적심자회담 때 남한 사람이 왔을 때 누군지도 모르고 꽃다발을 걸어주었습니다(장기영 전 부총리를 지칭한 듯).](<경향신문> 1990.12.28 / “장기영 전 부총리를 지칭한 듯”은 <경향신문>의 기자가 덧붙인 것이다.)

( 1990.12.28 경향신문 / 훗날 국회의원이 되는 이계진 아나운서와 대담하는 김현희.)

안기부는 이때까지 3년 동안 김현희가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줬다고 ‘뻥’을 쳐 놓고 이런 식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간 것이다. 김현희의 꽃다발을 받은 이는 장기영이라고 했다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잘 모른다’고 해 놓고 4년 뒤 이동복이 ‘짠’하고 나타나 ‘그건 바로 나야’라고 주장한 것이다. 저들에게는 국민이란 ... 아무 때고 수시로 말을 바꿔 이랬다저랬다 해도 괜찮은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한 교수는 드라마틱한 ‘대타 이동복’의 등판 과정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김현희가 이 씨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만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그 다음에 ... 이게 뭐냐 하면 ... 나중에 김현희가 편지를 보냈는데 ... (화면 : 조갑제 책『김현희의 절규』) ... 뭐 진실화해 ... 뭐 법원의 3심, 국정원의 4심, 국정원이라는 것은 국정원 과거사 위원회 ... 진실화해위원회에서 5심을 당하고 있다. 좌파 언론과 노무현의 합작으로 김현희에 대한 인민재판을 진행 중이다 ... 뭐 김현희가 ... 2008년 9년도에 이런 황당한 얘기들을 떠들고 다녔습니다. .. 그러면서 여기 ... 김현희의 왼쪽에 앉은 사람이 이동복이라고 ... 훈령 조작 사건이라는 아주 유명한 사건 있죠 ... 극우세력의 대표 격인데 ... 그 사람에게 아주 .. 어마어마하게 긴 장문의 ... 원고지 100장이 넘을 만한 ... 어마어마한 긴 편지를 보냈어요 ... 거기에 보면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 대해서도 한참 나오고 ... 거기 제 이름도 나옵니다. 제 이름도 ... 저도 거명을 해서 ... 그러니까 .. 친북 성향의 ... 뭐라고 했나 ... 그렇게 거명을 했구요]

한 교수는 김현희가 이상 행동을 장황하게 이야기하면서 이 씨에 대해서는 “훈령 조작 사건의 주인공”이라고만 ‘짧게’ 언급하고 만다. 또 제대로 설명해야 할 김현희의 편지 내용은 중동무이다. 2008년 10월 말(김현희의 편지 말미에 적혀 있다) 김현희의 편지는 14년 전 이동복의 <뉴스메이커> 글의 후속타였다. 14년 전 안기부의 일타쌍피 동시패션 시즌 투!
‘장기영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이야기를 14년 만에 상기하는 것은 어떤 필요성, 어떤 불순한 목적이 있어서였다(글 후반부에 논함). 이 씨는 2008년 11월 말 김현희의 편지를 공개했다. 갖은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은 북한이 범행을 부인하는 가운데 국내의 친북ㆍ좌파 세력에 의한 끈질긴 조작 시비의 대상이 되었다. 이 와중에서 필자[이동복]는 엉뚱한 일로 김현희 문제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것은 김현희가 1972년 11월 4일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공동위원장(이후락ㆍ李厚洛) 일행의 평양 방문 때 이들 일행이 탑승한 북한군 M18 헬리콥터가 평양 대동강 남쪽 역포의 간이 착륙장에 착륙했을 때 영접을 나왔던 화동(花童)의 하나로 바로 필자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또 필자의 목에 붉은 스카프를 걸어준 소녀였음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김대중(金大中) 씨가 이끄는 좌파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 때는 필자 또한 좌파세력에 의해 858기 폭파사건 조작 시비의 입방아 질에 오르내리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김현희로부터 온 편지(全文)」, 2008.11.25, https://blog.naver.com/huangguihe/140058595155)

1994년 5월 <뉴스메이커> 기고에서 이미 선보인 궤변의 연장이다. “(국내 친북.좌파가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에 대해 조작 시비하는)이 와중에 필자[이동복]는 엉뚱한 일로 김현희 문제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현희가) 바로 필자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또 필자의 목에 붉은 스카프를 걸어준 소녀였음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와 김현희의 인연은 KAL 858 사건에 대한 시비와 아무 관련이 없다. 단지 이 씨 자신이 김현희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것은 자기라고 떠벌렸을 뿐이다. 밝혀지긴 뭐가 밝혀져, 그의 뜬금없는 주장에 김현희나 안기부.국정원은 14년 동안 일언반구도 안했는데. 14년 만에 ‘김현희가 이동복에게 보내는’ 해괴한 편지가 나타났을 뿐이다.

( 김현희가 이동복에게 보낸 편지 / 이동복 씨는 이 편지를 KAL 858 사건 21주년을 며칠 앞둔 11월 말 공개함으로써 유족들을 분노케 했다. --> 「“김현희 편지,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짓”」<통일뉴스> 2008.11.29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1647)

[저는 KAL 858기 폭파사건의 장본인인 김현희입니다. 저는 대표님을 1972년 11월 남북조절위 남측 사절단으로 평양에 오셨을 때 화동으로 참석하여 처음 뵈옵고, 서울에 와서는 대표님께서 안기부 특보로 계실 때 두 번째 뵈었습니다. ...  저는 대표님께서 2003년 11월 MBC 교양제작국의 PD수첩 “16년간의 의혹,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 프로그램의 최진용 책임 PD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사실이 있습니다. 최PD가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건네 준 소녀가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 것에 대한 대표님의 정중한 반론이었습니다.](「김현희로부터 온 편지(全文)」, 2008.11.25,
https://blog.naver.com/huangguihe/140058595155)

교묘하다. 이 씨의 원맨쇼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장기영이 아니라 내가 받았어’라는 이 씨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긍정한다. 김현희의 글이 아닐 것이다. 안기부 조작 문건을 베껴 진술서를 쓰다 한 줄을 빼먹고 덧쓰는 솜씨로는 어림도 없다.

“저는 대표님을 1972년 11월 남북조절위 남측 사절단으로 평양에 오셨을 때 화동으로 참석하여 처음 뵈옵고 ... ” 그 시각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말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2003년 이 씨가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건네 준 소녀가 김현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지적한 ‘최PD’에게 반박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를 자기가 읽었다. 1994년 <뉴스메이커> 글을 읽은 것도 아니고, 아마도 이 글 내용에 의문을 제기했을 최PD에게 이 씨가 보낸 편지를 보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신이 이동복에게 꽃다발을 준 화동임을 뒤늦게 알았다는 뜻이지만, 대놓고 말은 안 한다. 안기부-국정원은 공식적으로는 이동복 대타론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요리 빼고 조리 빼는 식으로, 김현희 명의의 편지를 만들어 그 대타론에 힘을 실어준다. 거짓 정보를 마구 뿌려대며 진실이 저절로 은폐되도록 만드는 수법이다.    

이것이 바로 ‘이동복에게 보내는 김현희의 편지’ 속에 감춰진 내막이다. 한 교수는 이런 설명을 했어야 하지만, 애초부터 그는 KAL 858 사건의 내막을 추적할 의지가 없었다. 다시 그의 ‘맥락’없는 해설.

[맨 오른 쪽은 조갑제 ... 아시겠죠? .. 요 사람이 누구냐 ... 하기와라 료에요. 이 사진을 찍은 ... 이 사람이 ... 그 일본의 공산당 기관지 기자로 ... 아주 골수 공산당원이었는데, 나이가 든 다음에 전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인제 ... 조갑제같은 사람하고 잘 어울리면서 ... 인제 그렇게 지내면서 ... 여기 와서 <조갑제TV>하고 좌담도 하고 인제 ... 그렇게 했었어요.]

( 김현희.이동복.하기와라.조갑제 / 한홍구tv)

김현희-이동복의 콤비플레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입도 뻥긋 않더니, 하기와라가 1988년 3월 안기부와 짜고 가짜 김현희 사진(정희선 사진)을 제시하며 국민을 우롱한 사실도 모른 체 한다. 그러고는 하기와라가 “조갑제같은 사람하고 어울린다”고 한 마디 보탠다. 이게 바로 한 교수의 역사 해설에 ‘맥락’이 없는 이유다. 이런 저런 개별 팩트(사실)들을 중구난방 나열할 뿐 그 각각의 팩트의 연관성을 외면하다 결국 별 의미 없는 결론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1988년부터 안기부와 한 패가 돼 엉뚱한 사진을 갖고 김현희라고 우긴 하기와라, 안기부와 김현희는 그 사진을 보고 “어머, 얘가 바로 나예요”라는 그럴듯한 카피를 조작해 국민을 우롱하고, 그래도 김현희가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줬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자, 국정원장 훈령을 조작했던 이동복이 나타나 자기가 김현희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고 우기고, 이렇게 ‘난리 부르스’를 때리던 김현희와 이동복, 하기와라 3인조가 안기부-국정원과 늘 함께 움직이는 조갑제 씨와 어울렸잖나. 그러면 이 4인조의 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야지!  

2011년 7월 12일 이뤄진 네 사람의 만남은 흡사 ‘김현희 팬 미팅’이었다. 그 ‘팬미팅’의 목적은 KAL 858 사건은 김현희의 작품이라고, 재차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기 위함이다. <조선닷컴> 블로그에 「39년 만의 만남」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1972년 남북조절위 대변인으로 평양 근교 헬기장에 내린 이동복 前(전) 의원, 그에게 꽃다발을 증정한 북한 화동 김현희 씨, 현장 사진을 필름에 담은 전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 평양특파원 하기와라 료 씨가 조갑제 기자의 주선으로 7월12일 오후 한 자리에 모였다. 코리아나호텔에서의 이날 만남으로 KAL858기 폭파가 남한의 조작이라는 북한 김정일 정권과 종북 세력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씨의 원맨쇼에 국정원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국정원은 ‘비공식적으로’ 그 원맨쇼를 인정한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당시 안기부는 김씨가 ‘남북조절위 회담을 위해 평양에 온 남측대표단에게 두 번째로 꽃다발을 건넨 적이 있다’고 진술한 것을 믿고, 사진 자료를 뒤지던 중 북한 소녀로부터 두 번째로 꽃다발을 받은 이가 장기영씨로 확인돼 이를 공개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여러 군데서 사진 속의 소녀는 김현희가 아니다는 주장이 제기돼 다시 확인해보니 김 씨는 두 번째가 아닌 세 번째로 우리 대표단(이동복씨)에게 꽃다발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는 “원래 북한 소녀들은 두 줄로 서 있었고 김 씨는 뒷줄 첫 번째에 있다가 두 번째로 꽃을 주기로 돼 있었으나 남측 대표가 헬기에서 내리기 직전 한 줄로 바꿔 서면서 두 번째가 아닌 세 번째로 이동하게 된 것”이라며 “그러나 김 씨는 당시 두 번째로 꽃다발을 줘야 한다는 것만 강하게 의식하고 있어 사실과 다르게 진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행히 우리는 한 줄로 늘어선 북한 소녀의 사진을 갖고 있는데 그 중 세 번째 소녀의 모습을 확대해 보면 지금 김 씨와 가장 흡사한 것으로 판명된다”고 덧붙였다. ](「[위클리포인트]72년 장기영씨에게 꽃 준 소녀 김현희 아니다」<주간동아> 413호 pp 12~13, 2003.12.3)

앞글(11편) 서두 제시했던「국정원 답변서」(2004.3.15)가 ‘김현화=화동’설만 인정할 뿐 이동복을 거명하지 않은 것과 비교된다. 한 교수가 <월간조선> 2001년 11월호에 실린 하기와라의 사진을 가리키면서 하려던 말도 바로 ‘세 번째 화동 김현희’였다.

[요게 김현희예요. 김현희가 자기라고 했었던 두 번째 소녀는 여기에 있고, 이 소녀가 장기영 조절위원장한테 꽃다발을 줬으니까 .. 요 세 번째가 김현희란 말예요.]

이동복이 ‘요 세 번째 화동 김현희’(?)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고는 말을 안 하지만, 결국 그 말이 그 말이다. 한 교수는 이 씨가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안기부가 ‘비공식적으로’ 추인하는 헛소리를 사실로 믿고 있는 것이다. 한 교수는 그냥 안기부 대변인을 하면 참 잘 할 사람이었다. 안기부-국정원이 하는 짓거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고 안기부에 대해 다 아는 척을 하니 그만한 적임자가 있을까.

‘이동복은 세 번째 화동 김현희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는 것은 헛소리다. 1972년 11월 2일 평양에 도착한 남측 대표단은 2차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회의를 마치고 4일 귀경했다. 그 전에 김일성 수상과 박성철 부수상 등 최고지도부를 만나 기념촬영을 했다.

( 1972.11.4 경향신문)

김일성 주석 좌우에 이후락과 장기영이 섰고, 강인덕과 정홍진은 각각 좌우 양단에서 세 번째에 섰다. 북측은 남측 신문에 발표된 대표단 명단 서열에 따라 기념촬영을 한 것이다. 만약 이동복 씨가 화동의 꽃다발을 받았다면 그 순서는 빨라야 다섯 번째여야 한다. 아, 다섯 번째 화동을 빨리 찾으면 되겠네! 그런데 김현희를 닮은 화동일지 걱정이다. 

특기할 것이 있다. 이동복이 김현희의 꽃다발을 받은 것은 자기라고 주장한 ‘때’와 김현희가 이동복에게 ‘좌파 정권이 날 탄압했어요’ 하며 장문의 편지를 보낸 것은 ‘때’에 대한 것이다. ‘때’는 사건의 통시적 맥락을 구성한다. 한 교수가 늘 피하는 그 ‘맥락’. 두 ‘문제적 인물’이 하필 왜 이때 이런 행동을 했을까.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동복 씨가 ‘장기영이 아니라 바로 나야’라고 주장하는 글을 쓴 때는(1994년 5월 5일 자 <뉴스메이커> 기고) 그가 안기부장 훈령 문건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안기부장 특보에서 떨려난 5개월 여 만이다. 이때는 바로 ‘1차 북핵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다 북미 간 물밑 접촉으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막 찾은 직후였다. 한 달 여 뒤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평양에 가 김일성 주석과 만나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들고 오기 40일 전이고, 하네 마네 하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영변 핵 사찰이 시작되면서 북미 간 대타협 분위기가 고조될 때였다.

실은 이때도, 2008년 말 ‘이동복에게 보내는 김현희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김현희와 이동복의 ‘콜라보’ 연출이 있었다. 이동복의 <뉴스메이커> 글이 나오기 한 달여 전인 1995년 3월 말 김현희가 책을 낸 것. 제목은『김현희 고백록 - 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였다. 그리고 뻑적지근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기부 책 전문 출판사 ‘고려원’ 출간이었다. 안기부가 책도 내고 일본 기자들도 모아 ‘한 판’ 벌인 것이다.

[대한항공(KAL)기 폭파범으로 특사[특별사면]를 받은 김현희 씨(33)는 북한에서 공작교육을 받을 때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이은혜(李恩惠)’(납치된 일본 여성으로 추정)를 구해달라고 강력히 호소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4월] 1일 보도했다. 김 씨는 [3월] 31일 서울에서 아사히(朝日), 산케이(産經)신문 및 NHK-TV등과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 국민들은 마음을 합쳐서 송환 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은혜는) 일본에서 은밀히 끌려온 그녀는 일본에 남기고 온 어린 아이를 생각하며 곧잘 눈물을 흘렸다”면서 “일본 사람들은 그녀가 유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빨리 망각해 버리느냐”며 “이은혜 문제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정의도, 양식도 없다”고 강조했다.](「김현희, “이은혜를 구해주오”」<연합통신> 1995.4.1)

( 1995년 3월 김현희 이름으로 나온 책 - 일본어로도 출간됐다.)

“일본 국민들은 마음을 합쳐서 송환 운동을 벌여야 해요.” 같잖다. 김현희는 안기부가 까는 좌판에 따라 어느 때는 인권운동가 행세를 하고, 또 어떤 때는 ‘하느님의 은혜로 살아난 테러리스트’ 행해를 한다. 일관된 것은 반북 적대적 언사다.

이북을 겨누던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서서히 이완의 조짐을 보이고 남북 간 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무르익을 때, 이 분위기를 깨뜨리고 다시 긴장의 파고를 높이려는 수작질이 필요할 때, 안기부 전문 출판사에서 김현희 책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한 달여 뒤 이동복이 “내가 김현희 꽃다발을 받았다!”고 떠벌린 것이다. 김현희와 이동복을 앞세운 안기부의 ‘일타쌍피 동시패션’쇼는 ‘KAL 858 폭파 테러’를 상기시켜 누그러지려는 남측의 대북적대감을 다시 고조시키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김현희의 꽃다발을 받은 이가 장기영이 아닌 다른 누구라고 내세울 이유도 없었다. 김현희가 자기라고 떠벌리던 화동이 다른 사람으로 밝혀졌다 해도, 국정원은 계속 김현희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온 국민이 다 속아주고 있는데 뭐 어렵겠나.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준 화동이 김현희건 아니건, ‘김현희는 화동이었다’는 주장만 견지하면 될 일이다. 또 대타가 필요했다면 당시 꽃다발을 받는 장면이 찍힌 최규하 당시 박정희 대통령 특보를 내세우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아, 이건 안 된다. 최규하는 분명히 꽃다발을 받았으니, 김현희 꽃다발을 받은 것이 최규하라고 떠벌리면 북측이 즉각 관련 사진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영의 대타’는 꽃다발을 받는 사진이 어디에도 없는 이여야 한다. 이동복은 꽃다발을 받지 않았고 따라서 그의 ‘원맨쇼’는 장기영의 대타가 필요해서라기보다 남북 간 화해 무드에 어깃장을 놓으려는 어떤 조직의 못된 짓이었음이 분명하다.

김현희가 ‘좌파 정권’을 시비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문의 편지를 이동복에게 보낸 2008년 10월 하순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첫 해 소위 진보 진영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될 때였다. ‘좌파 정권’에 대한 공격의 정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2009.5.23)였다.

김현희 편지 얘기를 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논하는 것이 한 교수에게는 너무 생소할 지도 모르겠다. 한국현대사는 미국과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이 지탱하는(했던) 분단체제를 그 토대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니 ... 남북관계에 장애를 조성하거나 남북대화의 흐름을 깨뜨려야 할 때면 난데없이 정체불명의 괴선박이 나타나 고기잡이하던 남한 어선에 총격을 가하고, 또 ‘수상한 간첩들’이 붙잡혀 ‘북괴의 남침 야욕’ 운운하시고, 또는 휴전선에서 해괴한 사건이 일어나는 ‘분단의 공식’ ...

2008년이 그랬다. 이 해 2월 26일 이북은 미국 뉴욕필을 초청해 남북한을 비롯해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멋진 공연을 선보이며 선린교류의 메시지를 전했고, 6월 27일에는 각국 기자들을 초청해 영변 냉각탑을 폭파하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냉각탑 폭파 보름여 만인 7월 11일 금강산관광을 갔던 남한 관광객이 동료들이 곤히 잠든 이른 새벽에 가서는 안 될 곳을 무단 침입했다 북한 경비병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이 줄곧 시비질하던 금강산관광이 결국 중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북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됐다. 10월 11일.

그러자 안기부-국정원이 움직였을 것이다. 북한에게 ‘테러국가’의 이미지를 덧씌운 사건이 바로 KAL 858 사건 조작이었으니, 미국이 이북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은 자칫 KAL 858 공작이 무효화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급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건의 주인공으로 행세하던 김현희 명의의 편지를 조작해 남북관계의 난봉꾼 이동복에게 보내는 쇼를 연출했을 것이다.

김현희의 편지만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곧바로 국정원은 감청영장까지 발부받아 통합진보당을 밀착 감시하기 시작했고(6년 뒤인 2014.12 통진당 해산), 8월에는 KBS 정연주 사장 퇴출 공작이 시작됐다(비교할 것은 못 되지만 필자도 이 해 11월 지금 일하는 언론사 편집국에서 떨려나 “기사를 쓸 수 없는 곳으로”(당시 사장의 지령) 가야 했다). 분단적폐 세력은 이처럼 공수의 때를 놓치지 않는다. 70년 동안 분단체제를 관리하는 솜씨다. 이동복의 원맨쇼(1994)나 김현희의 편지(2008)는 저들이 34년째 KAL 858 사건의 내막을 은폐하고 조작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숱한 조작질의 일환일 뿐이다.

P.S.

1.
김현희의 편지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김현희가 1972년 11월 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2차 부위원장회의 때 실제로 화동이었을 개연성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방송사들은 화동 사진의 귀를 문제 삼아 물고 늘어지며 제가 1972년 11월 남북조절회담시 평양 근교 역포에 임시로 마련된 착륙장에 화동으로 참석하였다는 진술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 당시 저는 그 자리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저의 화동 참석 진술이 먼저였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2차적으로 수사관들이 사진을 구해왔습니다.](「김현희로부터 온 편지(全文)」, 2008.11.25, https://blog.naver.com/huangguihe/140058595155)

“귀가 칼 귀면 어때! 나 화동이었어. 나 이북 출신이야!” 이 말이다. 앞글(11편)에서 KAL858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이들을 함정에 빠뜨린다고 지적한 바로 그 말. 안기부의 전가의 보도. 이 칼을 넘어서야 KAL 858 사건의 진상에 접근할 수 있다.

2.
이동복 씨는 1994년 5월 5일 자 <뉴스메이커> 기고 후 두 달여 만인 그 해 7월 말 어떤 조직 또는 누군가의 배려로 통일원 산하 민족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으로 임용됐다.

[청와대 훈령 조작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켜 공직에서 물러났던 이동복 전 안기부장 특보가 최근 신공안정국 바람을 타고 ... 지난달 25일 통일원 산하 민족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으로 임용 ... 통일원은 이 씨가 오랜 대북관계 경험을 통일정책 연구에 활용하기 위한 조처라고 이유를 밝혔다. ... 그럼에도 ... 임용 경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 ... 통일원의 공식 설명과 달리 이 씨 임용은 ... 외부의 ‘지시성 권고’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 청와대의 정치적 배려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관측이 가장 유력 .. 한 관계자는 “통일원 쪽에서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청와대가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훈령 조작 물의 ‘강경파’ 이동복 씨, 신공안 바람 타고 국책기관 ‘입성’」<한겨레신문> 1994.8.7)

이동복 같은 이가 통일정책을 연구하면 그게 통일정책이겠나 분단정책이겠나. 그의 임명이 청와대의 결정이었을까? 이 땅의 분단적폐의 본진은 한낱 행정부의 수장에 지나지 않는 대통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3.
이동복 씨가 강인덕 씨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슬쩍 끼워 넣었다고 지적했다. 그보다 더 중한 문제가 있다. 이후락 남북조절위 남측 부위원장의 자문단 3인 중에 강인덕 씨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진 좌 : 1972.11.1 경향신문, 사진 우 : 1972.11.1 동아일보 - 세 번째가 강인덕 씨.)

강 씨가 먼 훗날 김대중 정부 초대 통일부장관에 발탁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1968년 ‘1.21 사건’(일명 김신조 사건)이 일어나기 서너 달 전부터, 김형욱네 중앙정보부 북한국 과장으로 모종의 ‘준비작업’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있을까. 그랬던 인물이 1972년 남북대화의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이는 있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강 씨의 이런 숨겨진 이력을 알기나 했을까. (1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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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stevan  2020년12월31일 16시44분    
"노무현 대통령 서거(2019.5.23)" 중 연도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분단적폐의 본진"의 정체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진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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