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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3
안기부-국정원의 ‘리은혜 스토리’ 조작 ①
강진욱  | 등록:2021-01-07 08:46:42 | 최종:2021-01-07 09:40: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3
- 11월 26일 방송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13. 안기부-국정원의 ‘리은혜 스토리’ 조작 ①

KAL 858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김현희의 어린시절’ 이야기의 허와 실을 정확히 판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난제가 있다. ‘리은혜 수수께끼’다. 리은혜(李恩惠)는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일본 여성의 우리말 이름. 안기부가 그렇게 명명했다.

KAL 858 사건의 내막을 파 본 이들은 안기부의 ‘리은혜 스토리텔링’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 그들의 말을 굳이 믿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은혜 스토리’는 ‘김현희 화동설’과 함께 안기부-국정원이 KAL 858 사건의 진상 규명을 원천봉쇄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한 교수도 ‘리은혜 스토리’를 사실로 믿는다.

[이 사람들 누구냐하면 ... 일본인 납치 피해자 유가족입니다. 납치 사건이 있었는데, 그 ... 김현희가 만날 수 .. 있죠 ... 왜냐하면 ... 김현희에게 일본말을 가리킨[가르친] 게 납치된 일본인이었으니까 ... 뭐 그래서 만날 수는 있는데 ... 김현희가 .. 이게 2009년이니까 ... 북한을 떠난 게 ... 87년 아녜요 ... 만 22년이 됐는데, 마치 자기가 어저께 북한을 보고 온 것처럼, 어제께 북한을 떠난 듯이 얘기하는 거 ... 그것도 말도 안 되고 ... ]

( 2009년 3월 11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벡스코(BEXCO)에서 김현희가 일본인 납북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의 아들을 만나 짐짓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김현희와 안기부는 다구치 야에코가 ‘리은혜’라고 주장하지만 거짓말이다.)

한 교수가 뭘 알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는 KAL 858 사건 재조사에 참여하기 전부터 안기부-국정원 거짓 해설을 100% 수용하는 입장이라 리은혜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리 없다. 그저 ‘북한 공작원 김현희’는 ‘평양으로 납치돼 온 일본 여인 리은혜’에게서 일본어를 배웠을 것이라고 당.연.시.할 뿐이다.

하나의 오류가 또 다른 오류를 낳고 그렇게 파생된 수많은 오류가 덩어리를 이룬 것이 바로 한 교수가 알고 있는 KAL 858 사건인 것이다.『전두환 회고록』에도 안기부-국정원이 퍼뜨린 조작된 수사가 보인다.

[지난 2002년 9월 27일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만났을 때, 1978년 8월 경 도쿄에서 실종된 ‘다구치 야에코(가명 리은혜, 당시 22세)의 납치와 사망 사실’을 확인해 준 일이 있었다. 다구치 야에코는 바로 김현희의 일본인화 교육에 동원되어 김현희에게 장기간 일본어를 가르친 ‘리은혜’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KAL기 폭파 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사례였다. 북한이 다른 납북 사실은 다 시인하더라도 다구치 야에코만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 뜻밖이었다. ... 리은혜가 일본에서 실종된 인물임이 확인됐다는 것은 김현희의 진술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김정일이 ... 확인해 준 이상 이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에 대한 증명이 더 필요 없는 것이다.](『전두환 회고록 2』 552쪽)

안기부-국정원의 퍼뜨린 조작된 언사가『전두환 회고록』에도 버젓이 등장한데 대해 ‘한국현대사’ 좀 함네 하는 이들은 수치를 느낄까? 아닐 것이다. 이 사건은 이북의 소행으로 결론이 났으니 ‘전두환이나 나나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고 스스로 위로할 것이다. ‘현국현대사’를 두루뭉술 얼렁뚱땅 띄엄띄엄 보고 있으니 전두환이 무슨 소릴 하든, 안기부-국정원이 무슨 말을 하든 별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봤다면 단박에 전두환의 말 가운데 헛소리를 짚어 낼 수 있다. 뭐가 틀렸을까?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만났을 때 1978년 8월 경 도쿄에서 실종된 ‘다구치 야에코의 납치와 사망 사실’을 확인해 준 일이 있었다”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구치 야에코가 ‘리은혜’(당시 22세)라고 확인해 준 일은 없다.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리은혜가 “일본에서 실종된 인물임이 확인”된 것은 맞다. 그러나 “김현희의 진술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김현희가 말하는 리은혜는 아마도 KAL 858 공작조에 의해 일본 내 모처에 감금된 상태에서 김현희에게 일어를 가르쳤을 것으로 본다. KAL 858 사건에 얽힌 숱한 의혹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면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김정일이 ... 확인해 준 이상 이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에 대한 증명이 더 필요 없는 것”이라는 말은 교묘한 역사조작이다. 이북의 최고지도자가 확인한 사실을 왜 왈가왈부하냐는 그럴듯한 궤변이다. 이 궤변이『전두환 회고록』에 등장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만  ‘한국현대사’ 분야에서 껌 좀 씹는다는 어떤 이까지 이 수사에 놀아나고 있으니 ... 하긴,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 베일을 벗겨 본 적이 없는 ‘리은혜 수수께끼’를 한 교수가 풀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안기부가 ‘리은혜 스토리’를 조작하는 공정은 10여 년에 걸쳐 3단계 작업이었다. 그렇게 장기간에 걸친 정보 및 여론 조작을 통해 KAL 858 공작이 완성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다. KAL 858 사건을 조작한 안기부-국정원패는 아마도 자신들이 벌인 공작을 세계 첩보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라고 자화자찬할 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한 교수의 헛소리가 떠오른다.

[북한에서도 ... 닭대가리 가진 놈들이 정권에 ... 정부에 있게 마련이고, 그런 놈들이 ... 북한이 그런 짓을 한 게 참 안타깝구요. 그런데 북한 ... 대남사업본부에서는 ‘야호!’ 했을 겁니다. 봐 .. 지금까지도 ... 안기부가 했다고, 전두환이 했다고 믿는 사람이 저렇게 많잖아 ... 그러면서 히히 낙락하고 있는 놈들이 꽤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우선, 안기부 등이 늦어도 1983년 경에는 완성했을 KAL 858 사건 시나리오에는 이미 ‘북한에 납치된 여인(리은혜)’가 들어 있었다. 김현희의 진술을 통해 리은혜의 존재를 안 것처럼 안기부가 발표했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건을 벌인 뒤 미리 짠 각본에 따라 “평양에 납치된 일본 여성 ‘은혜’가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조작된 정보를 마구 퍼뜨렸다. 여기까지가 1단계. 1988년 초까지의 상황.

이후 - 아마도 1991년 시작된 북일 수교 교섭 과정에서 - 납북된 일본 여성들의 신상 정보를 드러나자 안기부는 “그중 한 명인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가 바로 리은혜다”라는 정보를 또 조작했다. 여기에는 일본 공안당국이 공모했을 것으로 본다. 1991년 5월의 일. 이즈음 막바지에 이른 북일수교 교섭을 파탄내기 위한 한-(미)-일 냉전세력이 협잡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2단계.

이때까지만 해도 북측은 일본인 납북 의혹 제기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격하게 반응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 일본인 납북자 문제와 북일수교 교섭은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다 2002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시인’으로 평행선을 달리든 일본인 납북 문제와 북일 수교 문제가 교차 충돌한다. 당시 일본 총리(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가 평양에서 김 국방위원장을 만나 ‘평양선언’에 서명할 때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 했던 일본인 납북 의혹을 11년 만에 이북의 최고지도자가 사실이라고 시인해 버린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북측 지도부는 북일수교 교섭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일본인 납북 문제를 시인했을 것이다. 또 놀라운 것은 안기부가 1991년 5월 처음 거명한 다구치 야에코가 김 위원장이 시인한 납북 일본인 명단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충격은 컸다. 이때까지 북측의 입장을 옹호하던 일본 사회당은 이후 거의 존재감을 상실했다(필자 역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었다. 이때의 충격은 이후 10여 년 동안 남북.한반도 문제에 관한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안기부는 다시 한 번 ‘리은혜 스토리’를 조작할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리은혜 스토리’ 조작 3단계다. 김 위원장이 납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거명한 다구치 야에코가 바로 리은혜라는 과거의 거짓 정보를 다시 들고 나와 “북한이 리은혜 납치를 시인했다”고 떠벌린 것이다. ‘다구치 야에코 = 리은혜’라는 조작된 정보 위에 김 위원장이 다구치의 납북을 시인한 사실을 중첩해 ‘김 위원장이 리은혜 납북을 시인했다’는 조작된 정보를 새로 만든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단지 다구치 야에코라는 일본인 여성이 납북됐다는 사실을 시인했을 뿐이지만, ‘평양에 납치된 일본 여인’이 오랜 기간 뇌리에 박힌 상태에서 북측 최고지도자가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해버리자, 모두들 ‘김현희의 일본어 선생이라던 리은혜가 납북됐던 게 맞구먼’하는 식으로 두루뭉술 얼렁뚱땅 또 속아 넘어갔다.

안기부의 ‘리은혜 스토리’ 조작 공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안기부 등이 1980년대 초 기획했을 KAL 858 공작 개요에는 이미 ‘북한에 납치된 여인 리은혜’가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볼만 한 사건이 있었다. 1985년 2월 말 일본인으로 위장했던 이북의 공작원 신광수(辛光洙)가 체포됐는데, 그가 일본인을 납치해 북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국가안전기획부는 28일 일본인을 납치, 북한에 억류시켜 놓고 그 일본인의 신분으로 대남 간첩 활동을 해 온 북괴 노동당 소속 간첩 신광수(56)와 신에게 포섭돼 국내를 드나들며 간첩 활동을 해 온 재일동포 김길욱(金吉旭, 57, 의료산매상), 방원정(方元正, 50, 도쿄 뉴코리안주점 경영) 등 3명을 검거 ... ](「日人 위장 간첩단 3명 검거 - 안기부, 오사카서 납북한 요리사 행세」<조선일보> 1985.6.29)

안기부는 신광수가 체포되기 전에 이미 KAL 858 공작을 기획했을 것이고, 이 공작조에는 이미 리은혜도 포함돼 있었겠지만, 1985년 2월 신광수가 체포되고 그가 일본인을 평양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리은혜 스토리’ 조작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신광수 사건에 저들은 아마 쾌재를 부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KAL 858 공작조가 리은혜를 다구치 야에코와 동일 인물로 취급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안기부는 1988년 1월 15일 KAL 858 사건의 수사결과라는 것을 발표 하는 날 ‘납치된 일본어 교관 은혜’라고만 밝혔다.

[김[현희]은 일본인화 교육을 받을 때 자신을 가르친 일본인 여교관(31)이 “자신은 일본에서 북괴 요원들에게 납치돼 교관 생활을 하고 있으며, 김정일의 은혜를 입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의미로 ‘은혜’라는 한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그곳에는 같은 처지의 납치된 일본인 교관 2명이 더 있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납치한 일녀(日女) 시켜 일본인화 교육 - 수사관들이 밝힌 조사과정 일문일답」<조선일보> 1988.1.16)

( 1988.1.16 조선일보)

안기부는 어떻게든 ‘일본인 여자 공작원’의 일본 이름을 밝혀야 했지만, 그렇다고 김현희와 함께 일본 모처에 억류돼 있었을 리은혜의 실명을 밝힐 수는 없는 일이다. 안기부와 김현희는 자신들이 일본에 데리고(억류하고) 있었을 리은혜의 신원 정보를 기를 쓰고 감추려 했을 것이다.

[김현희는 지난주 방한했던 일본 외무성의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북동아과장과의 면담에서 자신에게 일본어를 교육시킨 ‘은혜’는 키가 160cm 정도였으나 일본 어디서 살았는지는 모르며 바레인에서 음독자살한[?] 김승일이 일본에 거주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고 27일 일본 매스컴들이 보도했다.](<경향신문> 1988.1.27)

이처럼 안기부는 실제 리은혜의 신원 정보를 감춘 채 남북된 일본 여인의 신원 정보를 수집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일본도 이미 ‘신광수 사건’으로 일본인의 납북 사실을 인지한 상태여서 여러 실종자들의 신원 정보를 안기부에 제공하며 협조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은혜가 되어야 할 납북된 일본 여인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자 안기부는 신광수를 다시 불러 조사했다. 그에게서 납북된 일본 여성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려 했을 것이다.

[수사당국은 20일 일본인으로 위장해 간첩 활동을 하다 85년 국내에서 구속된 신광수(체포 당시 56세)가 지난 78년 잇달아 발생한 일본 남녀 실종 사건과 관련됐는지의 여부에 대해 재조사에 나섰다. 당국은 특히 ... 신(辛)이 ‘은혜’를 납치, 북한으로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에 대한 수사도 함께 벌이고 있다. 수사당국은 또 일본 공안당국이 ‘은혜’의 신원 파악을 위해 수사관을 파견, 신과의 면담 등을 요구해 올 경우 이를 허용하는 한편, 한일 간 공조수사체제를 갖추는 것도 검토 ... ](「80년 일 요리사 납치 월북 신광수 재조사 - 일인 ‘은혜’ 실종 추궁」<조선일보> 1988.1.21)

신광수는 1986년 7월 9일 대법원에서 간첩죄로 사형이 확정됐으나 형이 집행되지 않아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그는 1999년 말 밀레니엄 특사로 풀려나 이듬해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에 끼어 북송됐다). 이때 안기부가 신광수로부터 납북된 일본 여인 관련 정보를 알아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안기부가 신 씨를 조사한 직후 리은혜의 몽타쥬만 공개한 것을 보면 리은혜가 되어야 할 납북 여인을 특정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 안기부가 1988년 2월 8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리은혜 몽따쥬)

[김현희(26)가 일본인으로 위장, 폭파 공작을 할 수 있게 북한에서 일본인화 교육을 시켰던 일본인 여인은 지난 79년 일본 해변가에서 북괴 공작원에 의해 강제 납북된[?] 일본인 이혼녀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안전기획부는 7일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이같이 밝히고, ... ‘은혜’라는 ... 여인은 외국인 대접을 받으면서 지난 81년 7월부터 83년 3월까지 21개월 동안 평양 동북리 3호 초대소에서[?] 김현희와 함께 지내 일본어 및 일본인의 생활관습, 노래 등을 가르쳤다. 김현희에 따르면 이[은혜]는 현재 30-31세로 지난 79년 피랍 당시 일본의 동경 지방에 거주했으며 당시 아들(3세)와 딸(1세) 등 두 자녀를 둔 이혼녀라고 ... 해변가를 산책하던 중 북괴 공작원에 의해 강제로 배에 실려 납북돼 왔다는[?] ... 눈이 크고 쌍꺼풀이 져 얼굴이 서구적이라는 것. 북괴의 김일성과 김정일로부터 은혜를 많이 입었다는 의미에서 이은혜(李恩惠)라는 한국 이름을 갖게 된 이 여인은 북한에서는 평소 외국인 대접을 받아 북한의 외화상점에서 일제 화장품과 영국제 던힐 담배를 구입해 사용했다고 김현희는 수사진에게 밝혔다. 이 여인은 일본에서 고교 졸업 후 결혼했으나 남매를 낳은 후 이혼했으며 동경에는 친척이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평소 술에 취하면 일본에 두고 온 자식 생각을 하면서 ... 잘 울었다는 것.](「“이은혜, 일본 자식 생각, 자주 울었다” - 김현희가 밝힌 일인화 교육, 초대소 생활」<동아일보> 1988.2.8)

리은혜가 “일본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는 김현희(안기부)의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납치됐는지, 가족은 몇이고 결혼은 했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이야기하면서, 또 술에 취하면 눈물을 흘리며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이에 자기 이름을 숨길 이유는 없다.

이처럼 안기부가 떠들썩하게 발표하는 ‘김현희의 진술’에는 늘 결정적인 사항이 누락돼 있다.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고 조선노동당원이라면서 김현희의 평양 시민증 번호와 당증 번호를 밝히지 못하고,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여인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이 “밝혀졌다”고 떠들면서 그 본명을 밝히지 않는다.

안기부와 김현희가 리은혜의 일본 이름을 모른다고 발뺌한 이유는 이북에 납치돼 있은 일본 여성이 리은혜라고 주장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안기부는 사건 초기부터 ‘이은혜=평양에 납치된 여인’으로 정의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국가안전기획부는 8일 KAL 858편 폭파범 김현희를 일본 수사경찰관들이 면담한 결과 김의 일본인화 교육을 담당한 여자 지도원은 그동안 알려졌던 실종 일본 여자 3명이 아니고 지난 79년 북한에 의해 납치된 동경 출신의 북한명 ‘리은혜’라는 제4의 일본 여성이라고 밝혔다. ... 수사당국에 따르면 리은혜는 일본 동경 출신으로 지난 79년 즘 해변을 산책하던 중 북한 공작원들에게 선박편으로 납치됐으며 납치 당시 이혼한 상태로 아들(당시 3세)와 딸(당시 1세) 등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다. ... 김현희의 진술에 따르면 리은혜는 사각형의 넓적한 얼굴이며 165cm 정도의 키에 체중은 56kg 가량이라는 것..](「리은혜는 79년 납치된 이혼녀 ... 해변 산책 중 피랍」<경향신문> 1988.2.8)

그동안 실종된 세 여인을 조사했는데 이들 중에는 리은혜가 없었다. 그런데 제4의 실종자가 1979년 납북됐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것도 김현희의 전언이었을까.

[국가안전기획부는 8일, 지난 2일 내한한 일본 경찰청 외사과 와타나베 다쿠미 경사 등 일본 측 수사진 3명이 김현희를 직접 면담, 사진 제시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은혜는 78년 일본 해안에서 실종된 것으로 보이는 오쿠도 유키코(32), 하마모토 유키에(33), 마쓰모토 루미코(35) 등 3명이 아닌 또 다른 일본 여인임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안기부는 이은혜는 79년 납북될 당시 일본 동경에서 이혼한 상태로 아들(당시 3세)과 딸(당시 1세) 등 남매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해변을 산책하던 중 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김현희 가르친 일본인 여인, 9년 전 일 해안서 납북 - 안기부 발표」<조선일보> 1988.2.9)

( 1988.2.9 조선일보)

위 기사는 주제와 부제가 상충한다. 일본 경찰이 들고 온 실종자 세 명의 사진 가운데 리은혜는 없었다면서 어떻게 리은혜를 ‘일본에서 평양으로 납치된 여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정보가 김현희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했겠지만, 리은혜가 김현희에게 ‘본명만 제외하고 모든 정보를 다 털어놨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김현희는 이 여인으로부터 취중에 “김정일 생일(2월 16일) 만찬에 일본인 여자로 특별히 초대되어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처럼 납치돼 온 일본인 부부도 있었다”면서 “이 사실은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전했다. 이은혜는 그러나 일본 이름을 물으면 사전 교육을 받은 듯 대답을 회피했고 “통일이 되면 일본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것.](「이은혜, 술 취해 울며 “일본에 가고 싶다”」<조선일보> 1988.2.9)

무슨 생일 행사 운운은 리은혜를 북한에 납치된 일본 여인으로 조작하기 위한 안기부의 ‘썰’. “일본 이름을 물으면 사전 교육을 받은 듯 대답을 회피했다”는 말도 마찬가지. “통일이 되면 일본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말은 거짓을 사실로 만들려다 저지른 안기부의 실수. 뱀 그림을 그리다 뱀 다리(蛇足)를 그려버린 것이다. 일본에 납치된 여인이 통일이 되면 일본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할 수 있나.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다. 이는 안기부가 늘 떠벌리던 ‘북괴의 적화통일’의 환유(換喩).

또 눈여겨 볼 것은 위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기사에서 보듯이 안기부는 초장부터 리은혜를 ‘납치된 여인’임을 구체적으로 주장하면서도 그런 정보의 출처를 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안기부 발표의 이런 모순은 안기부 등이 기획했을 KAL 858 공작조에 리은혜가 포함돼 있었음을 반증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 근거 없이 ‘리은혜 = 79년 납치된 여인’이라는 등식을 보란 듯이 주장할 수 없고,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두 달여가 지난 1988년 2월 초에 리은혜에 대해 그토록 상세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

앞글에서, 김현희는 1984년부터 일본 여권을 갖고 동남아와 유럽 각국을 들락거렸고 그의 파트너인 김승일 역시 일본 여권을 갖고 한국을 오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KAL 858 공작팀은 사건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일본 내 모처에 근거지를 두고 암약하며 모종의 공작을 꾸몄을 것이라고 추리했다.

마찬가지로 리은혜는 평양으로 납치된 것이 아니라 김현희에게 일본 여권을 주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들락거리게 만든 KAL 858 공작조에 의해 일본 내 모처로 납치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은혜’라는 여인은 지난 81년 7월부터 83년 3월까지 21개월 동안 평양 동북리 3호 초대소에서[?] 김현희와 함께 지냈다”(<동아일보> 1988.2.8)는 안기부 주장에서 ‘평양 동북리 3호 초대소에서’는 일본 내 모처임이 분명하다. (14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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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지지율 47% 상승세… 민...
                                                 
제주도 오토바이 운전자 폭행 사건...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백기완 선생의 추억
                                                 
‘독립’과 ‘자유’의 타락
                                                 
[이정랑의 고전소통] 人物論 진짜 ...
                                                 
전두환 비서출신 이용섭 사건 재정...
                                                 
“귀환” KAL858기 사건 33주기 추...
                                                 
안병하 공직자 바로 세우기 운동본...
                                                 
[오영수 시] 중국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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