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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맘대로 방문’ 박근혜, 오만방자하다
[정운현칼럼] 봉하마을-전태일재단 ‘전격 방문’, 고인에 대한 모독이다
정운현  | 등록:2012-08-29 10:00:26 | 최종:2012-08-29 10:19: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며칠 전, 고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를 찾아뵙고 한 시간여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김 여사님은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유족 원호사업 차원에서 마련해준 강남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홀로 기거하고 계셨습니다. 올해 86세이신 김 여사님은 장 선생이 졸지에 세상을 떠나신 후 지난 40년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여사님은 마치 소녀처럼 해맑고 구김없는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맞았습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김 여사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씨가 김 여사님 댁을 방문한 얘기가 나오게 됐습니다. 당시 언론에는 박 씨가 장준하 선생 유족에게 정중한 사과를 했다는 투로 보도됐었습니다. 그래서 김 여사님께 당시 박 씨의 사과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한번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김 여사님은 사과는 무슨, ‘보상운운 하길래 듣다못해 너희 아버지 때문에 우리 가정이 파괴되었고, 또 아이들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그걸 무엇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이냐고 한 마디 쏘아붙였다고 하시더군요. 

김 여사님에 따르면, 당시 박근혜 측에서 한번 찾아뵙고 싶다고 연락이 왔더랍니다. 그래서 온다는 사람 오지 말라고 하기도 뭣해 허락했더니 와서 한다는 말이 장 선생님과 제 부친(박정희)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서로 달랐을 겁니다그러더라는 겁니다. 적어도 장 선생 유족에게 사과를 하려고 찾아갔다면 설사 입에 발린 소리였다고 해도 제 부친이 집권하던 시기에 장 선생님께서 비극적인 일을 당하셔서 참으로 죄송하게 됐습니다.’ 뭐 이런 정도의 얘기는 했어야하는 것 아닐까요?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김 여사님은 아주 불쾌해 하셨습니다. 

▲ 쌍용차노조 조합원 등이 박근혜 후보의 전태일재단 방문을 가로막자 박 후보가 발길을 돌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어제(28)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전태일재단을 찾았습니다. 박 후보 측은 이날 오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씨의 1주기를 맞아 빈소에 헌화·조문하고 재단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었습니다. 이어 전태일 열사 동상을 서 있는 청계천 다리를 둘러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박 후보 일행은 전태일재단 사무실 앞에서 결국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쌍용차노조 조합원과 민주열사추모연대 회원 10여 명이 재단 입구를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아직은 박 후보가 찾을 곳이 못된다는 얘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전태일 열사의 두 동생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길로 와야 한다, 너무 일방적인 통행이다, (박 후보를)맞이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며 박 후보의 재단 방문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또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 민주당 의원은 전날 낸 성명에서 지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쌍용자동차 희생자와 유가족들, 용산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먼저 찾고 가장 나중에 전태일을 찾아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재단 방문이 무산된 후 박 후보 측은 향후에도 박 후보의 광폭 행보는 계속될 것임을 내비쳤습니다. 이상일 대변인은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박 후보가 재단을 방문하려 한 것은 산업화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시대의 그늘에서 고통을 겪었던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며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대변인은 이날 박 후보의 재단 방문 좌절을 두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의 방해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 후보의 이른바 광폭 행보는 그가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예견됐습니다. 박 후보는 수락연설을 통해 국민 대통합의 시대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는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는 당일 오후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 전격적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였습니다. 봉하마을 방문은 이날 오전 서울 현충원 참배 도중에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노 전 대통령 유족들에게는 방문하기 불과 3시간 정도 전에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에 분향하는 박근혜 후보

앞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통해 보면 박 후보는 상대편의 입장이나 상황은 안중에 없고 그저 자신이 필요를 느끼면 일방적으로 방문을 강행하는 스타일 같습니다. 그러니 방문지에서 환대를 받았을 리 만무합니다. 봉하마을 참배를 두고 보수신문들은 통합의 정치요, ‘광폭 행보운운하며 박 후보를 찬양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건 실책 같아 보입니다.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도 박 후보에 대해 찾아줘서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괘씸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했으며, 모르긴 해도 봉하마을의 권양숙 여사도 박 후보의 돌연한 방문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전태일재단에서는 아예 문전박대를 당했구요. 

대선후보로 뽑힌 후 박 후보가 보인 일련의 행보에도 진정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색이 집권당의 대선후보인 그가 국민통합에 대한 구상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순서와 절차가 있는 것입니다. 박 후보가 평소 노동자의 권익보호에 관심을 가졌고 또 투쟁현장 같은 곳을 방문했었다면 어제 전태일재단에서 문전박대를 당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용산참사 희생자 빈소도 용산 대로변에 있었고, 쌍용차 희생자 빈소 역시 덕수궁 대한문 앞 대로변에 있습니다. 박 후보가 방문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이미 수십 번이라도 다녀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태 박 후보는 단 한 번도 그곳엘 들르지 않았습니다. 

서울 현충원에서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 참배 후 봉하마을을 방문에 앞서 박 후보는 대한민국의 한 축을 이루고 계신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참배를 드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3주기가 지나도록 단 한번도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한 적이 없는 박 후보가 대선후보가 되고 나서야 봉하마을을 참배한 것은 누가 봐도 속보이는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용산참사와 쌍용차 사태 건도 마찬가집니다. 그들 역시 이 땅에서 세금 내고 산 국민이었을진대 집권당 유력자로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희생자 빈소에 참배하고 또 유족들을 위로했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전격방문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박 후보의 일련의 광폭 행보는 제가 보기엔 제 맘대로 방문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면 상대방의 입장이나 심기는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전화 한통 넣고는 불쑥 찾아가는 무례함, 그 자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형태의 방문이 과연 국민 대통합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이런 행보가 박 후보 자신의 판단인지, 아니면 측근들의 조언 결과인지는 몰라도 제가 보기엔 하수(下手)의 정치같습니다. 박근혜 캠프에 사람이 차고 넘친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런 걸 정확히 판단하고 과감히 조언하는 참모는 없나 봅니다. ‘불통얘기가 그냥 나온 얘기만은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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