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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④
‘권력 찬탈 ’ 자체에만 관심을 가진 ‘군사반란자’
耽讀  | 등록:2014-02-04 08:06:54 | 최종:2014-02-06 10:00:0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④  
‘권력 찬탈 ’ 자체에만 관심을 가진 ‘군사반란자’


"박정희 때가 좋았지, 요즘 젊은 것들은 자기 마음대로야."
"젊은 것들이 노무현을 찍어 나라 꼴이 이렇게 된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때가 가장 좋았어."
"김대중, 노무현이 들어선 후에 나라꼴이 엉망이야. 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젊은 것들이 정신을 바로 차려야 해."
"할아버지 박정희 전두환때가 좋았다구요?"
"암 그렇지"
"그 때는 민주주의도 없었고, 군인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어쩔 수 없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국군이 국민을 죽일 수 있나요?"

조금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대화입니다. 지난 2007년 8월 여름이었습니다. 남강 둔치에 갔다가 어르신들 대화에 잠깐 끼어들었습니다.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이었습니다. 노무현을 욕하면서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했습니다. 급기야 군사반란까지 정당화 시키는 것을 보고 아연질색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때는 황군장교로, 해방 직후는 '남로당 가입' 그리고 숙군작업이 진행되자 동지를 팔았습니다. 이것 하나만 봐도 박정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회주의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군사반란자입니다.

▲ 5·16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군사반란을 일으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혁명 지휘관은 장도영입니다. 하지만 실질 지도자는 박정희입니다. 박정희는 군사반란을 성공하자 공약을 제시합니다. 핵심은 공산주의에서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서 군사혁명 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 혁명 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民生苦)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 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육군 중장 장도영
(혁명공약 전문)

공산주의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군사혁명을 일으켰다는 주장은 박정희와 함께 군사반란을 일으킨 자만 아니라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대통령마저 그렇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 '5.16군사쿠데타'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당시 나라가 혼란스런 상황이었고 남북간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구국의 혁명'이라는 말입니다. 지난 2012년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5.16 당시로 돌아가서 볼 때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세계에서 끝에서 두번째로 가난한 나라였고 안보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 후의 나라 발전이라든가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5·16이 초석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바른 판단을 내리셨다"

민주헌정을 무너뜨린 것을 "바른 판단"이라고 한 것입니다. 충격입니다. 민주공화정에 대한 기본 인식을 조금이라도 있다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 그가 민주공화국 대통령입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준비한 군사반란은 1961년이 처음이 아닙니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몇 번 계획했습니다. 박정희는 1952년 육군 본부 이용문 작전국장의 쿠데타 모의에 깊숙히 참여합니다. 물론 그 때는 대령이었기 때문에 주동자는 아닙니다. 당시 군사반란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이종찬 참모총장 반대 때문입니다. 군사반란 계획 동참보다 더 충격은 그 때는 한국전쟁 중이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전쟁을 하고 있는 와중에 군인이 군사반란 계획에 동참한 것입니다.

박정희는 1960년 1월 6관구 사령관(서울지역을 관할하는 오늘날의 수도방위사령관)에서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초대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군사반란을 계획합니다. 거사일은 5월 8일입니다. 그 때도 박정희는 자신이 앞서지 않고, 이종찬 장군을 앞세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4월 혁명 때문에 좌절됐습니다. 박정희는 <부산일보> 황용주 주필과 자주 대화를 했는데 "아이고 학생놈들 때문에 다 글렀다"고 했습니다.-『한국 현대사 산책:1960년대편 1권』(인물과사상사, 2004년 9월)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월 혁명 마저 자신의 군사반란 걸림돌이 되자 비판했습니다. 박정희 뇌리속에는 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과 전쟁 중에도, 민주혁명까지 자신이 가려고 하는 목적에 걸림돌이 된다면 가차없이 비판한 것이 박정희입니다. 박정희에게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어쩌면 10년 후 '10월 유신쿠데타'는 이미 예견된 일이지 모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대중 자서전>(1권)에서 다음과 같이 '5·16'은 '군사쿠데타'라고 단정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30년이나 후퇴했다고 말합니다. 탁월한 판단입니다.

"'5·16'은 '혁명 공약'이나 그 후 그들이 취한 권력 다툼을 보면 명확한 이념과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진행된 혁명이 아님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무리 미화해도 애당초 혁명은 될 수 없었다. 무력을 동원한 권력 탈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민주주의 싹을 무력으로 잘라 버렸다. 정당 정치와 의회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군부는 정치적 패권을 장악한 특권 집단이 되었고. 이후 정치군인이 득세했다. 5·16 군사 쿠데타로 우리 민주주의 역사는 30년이나 후퇴했다.(145쪽)

박정희는 나라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던진 것이 아니라 '권력 찬탈' 자체에만 관심을 가진 군사반란자입니다.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①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②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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