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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평전 17. 3부 군인에서 경찰로
출생 및 유년시절, 진취적인 교육자 집안에서 성장
안호재 | 2021-07-16 12:16:1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 대한민국 ‘경찰영웅 제1호’

문재인 대통령, “안병하 치안감은 위민정신의 표상”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 친화적인 경찰을 구현하라고’고 주문했다. 하지만 경찰은 선배들이 이뤄낸 ‘민주경찰’의 성과를 드러내거나 경찰조직의 명예회복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떳떳하지 못했던 과거를 들춰내고, 그 동안의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기가 필요했다. 독재정권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승진과 출세를 거듭했던 시절 안병하 같은 인물은 우리 경찰의 역사에서 흔치 않았다. 2017년 6월 15일 청와대로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260여 명을 초청했을 때 안병하 국장 미망인 전임순 여사도 포함돼 있었다.

2017년 8월 22일 경찰청은 안병하 국장을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했다. 이때 처음 만든 ‘올해의 경찰영웅’ 제도로 말미암아 경찰청은 그 후 대상자를 매년 1~2명씩 선정하고 있다. 안병하 국장이 ‘경찰영웅 1호’로 선정된 것이다. 그해 11월 22일 전남경찰청에 경찰영웅을 기리기 위하여 안병하 추모 흉상이 세워졌다. 이날 추모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은 “숭고한 희생정신과 참고 견뎠던 혼은 이 민족과 세계에 빛과 용기와 희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국회의원 박지원, 표창원, 이개호 등과 5·18 관련 3단체장, 그리고 안병하 국장이 그토록 아꼈던 후배 경찰들이 참석해서 함께 추모했다.

뒤이어 11월 27일에는 사후 29년 만에 1계급 특진에 따라 치안감에 추서됐고 임명장이 수여됐다. *222 이에 앞서 10월에는 정부가 경찰공무원 임용령을 개정하여 경찰관이 재직 중 사망했을 때뿐 아니라 퇴직 후 숨진 경우에도 공적이 인정되면 특진 일자를 퇴직일 전날로 소급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특별 진급된 날짜는 ‘1980년 6월 1일자’다. 2018년 3월 10일 오후, 국립현충원에서 고 안병하 치안감의 추서식이 열렸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고 안병하 경무관의 치안감 추서식이 오늘 국립현충원에서 열렸습니다. 안병하 치안감은 5·18 민주항쟁 당시 전남 경찰국장으로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하였습니다. 시민의 목숨을 지키고 경찰의 명예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전두환 계엄사령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고, 1988년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그 뒤 오랫동안 명예회복을 못했던 안 치안감은 2003년 참여정부에서 처음 순직판정을 받았습니다. 2006년에는 국가유공자가 되었고, 2017년 경찰청 최초의 경찰영웅 칭호를 받았습니다. 위민정신의 표상으로 고인의 명예를 되살렸을 뿐 아니라 고인의 정신을 우리 경찰의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그 어느 순간에도 국민의 안전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습니다. 시민들을 적으로 돌린 잔혹한 시절이었지만 안병하 치안감으로 인해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치안감 추서가 이뤄져 기쁩니다. 그동안 가족들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병하 치안감의 삶이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223

이후로도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안병하 치안감을 경찰이 본받아야 할 상징적인 인물로 언급했다. 추서식 사흘 뒤인 3월 13일, 충남 아산의 경찰대학에서 열린 ‘2018년 경찰대학생 및 간부후보생 합동 임용식’에 참석해서는 축사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경무관으로서 전남 경찰국장이었던 안병하 치안감은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하고 부상당한 시민들을 돌봤다. 보안사령부 고문 후유증으로 1988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정의로운 경찰의 표상이 됐고, 그가 있어 30년 전 광주시민도 민주주의도 외롭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같은 해 10월 25일에도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제주4.3 당시 상부의 민간인 총살 명령을 거부하고 수많은 목숨을 구해낸 문형순 성산포서장, 도산 안창호의 조카딸로 독립투사였다가 해방 후 경찰에 투신한 안맥결 총경, 80년 5월 광주에서 신군부의 시민 발포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치안감이 명예로운 경찰의 길을 비춰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2019년 8월 23일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에서는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구 선생의 ‘애국안민’ 정신이 우리 경찰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경찰에 참여했던 안맥결, 전창신, 최철룡 등 선구자들의 정신이 80년 5월 광주 안병하 치안감으로 이어졌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안병하 치안감’에 이토록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국가의 권력구조 개편 결과 경찰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는 것과 관련이 깊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은 직접 기소할 수 있게 되었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왔으며, 자치 경찰제 시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경찰의 권한이 크게 확대되는 만큼 “수사의 공정성이나 전문성은 물론 특히 안보사건의 경우 피의자, 피해자, 참고인 등을 수사할 때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224

안병하 치안감의 비망록에 새겨져 있는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세야말로 과거와 달리 경찰의 역할이 훨씬 커지는 상황에서 경찰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222 대한민국 관보 제19140호, 2017. 11. 27. 이 날짜 관보에는 ‘내무부 치안본부 경무관 안병하(安炳夏), 치안감에 추서함(1980. 06. 01. 자), 2017. 11 .16.’라고 기재되어 있다.
*223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2018. 3. 10.
*224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백서』(2017. 11.)는 ‘경찰의 발전방안’을 인권의식 혁신, 정치적 중립성 확립, 기록물관리 개선‘ 등 3가지 방향에서 제시했다.

【안병하 평전-3부 군인에서 경찰로】

출생 및 유년시절

안병하의 유년시절은 평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어린 시절이나 성장과정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지는 않다. 다만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에 제출한 서류 *225 가운데 첨부된 ‘호적부’를 살펴보면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지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

안병하는 아버지 안형근(安亨根, 1908. 10. 27.~1990년대 중반)과 어머니 박씨(朴都以伊, 창씨개명으로 추정, 1904. 4. 12~1988. 9. 2.) 사이에서 1928년 7월 13일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고향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사율리 57번지다. 할아버지 안승태(安承泰)는 순흥(順興) 안씨로 강원도 양양군 양양면 남문리 178번지에서 살았다. 이 할아버지의 주소는 안병하 때까지 동일하다. 이로 미루어 최소 3대 이상은 이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어머니는 양양군과 인접하여 동해안의 북쪽에 위치한 고성군에서 출생한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강원도 사람들이었다. 할아버지는 평생 글을 쓰고 책을 집필한 학자였다고 한다,.

안병하의 아버지 안형근은 일제 때 원산에 있는 전문학교에서 서무과 직원으로 일했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가 학문에만 뜻을 두다보니 아버지 때도 재산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끼니를 거를 만큼 어려운 형편도 아니었다. 부친은 한문과 일본어에 능통해서 한때 일본어로 된 『노자』를 한문의 원본과 비교해 우리말로 번역을 한 적도 있었다. 집안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법이 없어도 살 만큼’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대쪽 같은 선비의 모습을 유지했다. 아버지의 이런 성품은 장남인 안병하에게도 유전됐던 것 같다. 그는 군과 경찰 등 공직 생활 전반에 걸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청렴결백한 자세를 유지했다.

안병하가 태어난 곳은 현재 양양의 현산공원 바로 아래 도로변 양양등기소 평이다. 태어난 집터에서 보면 앞산이 현산공원이고 군청 앞을 지나 2~3분 거리에 그가 다녔던 양양보통공립학교가 있었다. 어릴 적에는 남대천에서 친구들과 함께 물장구 치고 고기를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졸업 후 중학교는 국내가 아닌 일본 도쿄 인근 시라오카현의 제국중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안병하는 스스로 유학에 필요한 서류를 알아보고 준비해서 부모의 허락을 받아 홀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중학생을 동경으로 유학 보낸다는 것이 강원도 바닷가의 시골마을에서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 장남의 뒷바라지를 했다. 안병하 역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 고달픈 생활을 하면서 공부했다. 일본에서 안병하의 유학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225 광주민주화운동 보상심의기록은 개인정보공개청구 절차에 의해 유가족의 동의 아래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람.

진취적인 교육자 집안에서 성장

청년 안병하는 18세 때 해방을 맞았다. 해방이 되자 일본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 있는 ‘광신상업고등학교’*226 6학년으로 편입했다. 서울에서는 누나 집에 기거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해방 직후 혼란기라 아직 교육기관의 체제가 채 정비되지 않은 시기였다. 이 학교에서 동문으로 인연을 맺게 된 중요한 인물이 한 명 있었다. 1979년 계엄사령관 직에 올랐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다. 정승화는 1929년 2월생으로 나이는 1928년생인 안병하 보다 1년 아래였지만 광신상고의 1년 선배였다. 물론 고등학교 다닐 때는 서로 몰랐다. 군 생활을 마치고 5·16 이후 정승화는 군인의 길로, 안병하는 경찰의 길로 나아가면서 이런저런 모임에서 만나 고교 선후배라는 것을 알게 됐고, 가족끼리도 친해졌다. 한때는 정승화 사령관이 안병하의 아들 혼사에 주례를 서주기로 약속까지 했을 만큼 서로 가까웠다. 그러나 정승화는 1979년 ‘12·12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의해 연행, 구속 수감된 뒤 이등병으로 강등됐다. *227 1983년 안병하가 투병생활 중 고향인 강원도 양양을 찾았을 때 그곳에 정승화 부부가 찾아와 서로 ‘동병상린同病相燐’의 회포를 푼 적도 있었다. 12·12와 5·18이라는 서로 동일한 맥락의 역사적 사건에서 톱니바퀴처럼 얽혀진 운명의 주인공들이었다.

안병하 부모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는 이후 자녀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안병하는 4남매였는데 위로 누님 한 명과 밑으로 두 명의 남자 동생이 있었다. 안병하를 제외한 3명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 가 LA에서 살았다. 그의 누님은 결혼 후 운수업을 했던 매형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바로 아래 동생도 미국에서 목사 생활을 했고, 막내 동생 역시 중앙대를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가서 정밀기계 분야 미국회사에서 근무했다. 안병하 치안감이 5·18 이후 고문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미국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 살고 있던 누님과 동생들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도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사망했다.

●226 현 광신상업정보고등학교 전신
●227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1979년 12월 12일 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보낸 보안사 허삼수 대령에 의해 체포 연행된 후 이등병으로 강등됐다. ‘12·12군사반란’ 때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일당이 눈엣가시로 여겼던 인물이다. 당시 군 사조직 ‘하나회’에 대한 여론이 군부 내에서 좋지 않자 하나회를 이끌던 보안사령과 전두환을 정승화 참모총장이 동해안경비사령부로 보내려 했다. 이 정보를 사전에 눈친 챈 전두환이 미리 선수를 쳐서 보안사 참모들과 함께 군대를 동원하여 정승화 사령관을 불법적으로 체포 연행했던 것이 12·12사건이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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