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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人物論 재상(宰相)은 나라의 기둥이다.
이정랑 | 2021-05-20 07:59: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유기劉基 이필李泌】 닭과 소를 잡는 칼의 쓰임은 다르다

한 나라의 재상을 바꾸는 일은 궁중의 기둥을 바꾸는 일과 같다

관료에게는 인덕과 지위가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 유가의 정치적 이상이다. 이런 이상이 역사적으로 완벽하게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중국 역사를 관통하며 현실 비판의 무기이자 정치 현실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해온 것은 사실이다. 일단 현묘한 원리는 덮어두더라도 여기서 우리는 관도(官道)의 이치를 찾아볼 수는 있다.

사실 관도의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죽일 수는 있지만 닭 잡는 칼로 소를 잡으려 하다간 소를 죽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칼에 사람이 다치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명 태조 주원장이 유기(劉基-원나라 말기의 정치가. 주원장의 모사가 되어 명의 개국에 기여했다)

“그대에게 우승상의 자리를 맡기고 싶은데 그대 생각은 어떻소?”

유기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나라의 대사 가운데 재상을 잘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재상을 바꾸는 것은 궁중의 기둥을 바꾸는 것과 같아 반드시 큰 재목을 사용해야 합니다. 작은 목재를 썼다간 부러지고 말 테니까요. 저는 작은 목재에 불과한데 어찌 재상의 자리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양헌(楊憲)은 어떻소?”

“양헌은 승상이 될 만한 재능은 갖추고 있지만, 승상의 도량은 갖고 있지 못합니다. 승상이라면 모름지기 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고여서는 안 되지요. 양현은 절대로 승상 그릇이 아닙니다.”

주원장이 또 물었다.

“그럼 왕광양(汪廣洋)은 어떻소?”

“그는 도량이 작고 속이 아주 좁아 양헌만도 못합니다.”

“효유용은 어떻소?”

유기가 황급히 머리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는 사사건건 분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므로 수레의 굴대에 금이 가고 바퀴가 부서지는 형국이 되고 말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헌은 남을 모함하다가 죽임을 당했고, 이선장이 재상직에서 쫓겨나자 호유용이 승상으로 중용되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에는 이선장이 죽임을 당했고 호유용도 모반죄로 멸문의 화를 당하고 말았다.

과연 유기는 기인이었다. 재상을 교체하는 것이 기둥을 바꾸는 것 같아 작은 재목을 쓰게 되면 부러지고 만다는 그의 말과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그대로 적중했다.

상나라의 현상 이윤(伊尹)은 저잣거리에서 소 잡는 광경을 보고서 “능력이 없는 사람은 소를 잡는 데 그치지만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나라를 주무른다 下屠屠牛 上屠屠國.라고 노래한 바 있다.” 물론 이윤은 두 가지를 모두 주무를 수 있는 인재였다.
하지만 재상들이 모두 도국지재(屠國之才-능숙한 칼 솜씨로 소를 잡듯 나라를 잘 경영함)인 것은 아니다. 모두가 도국지재였다면 중국 역사에 나라가 망하고 패가망신하는 사건들이 그토록 많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한평원과 이필, 두 명의 재상을 비교하여 재주와 식견, 도량의 차이를 살펴보자.

남송(南宋) 영종(寧宗) 때의 재상이었던 한평원(韓平原)은 북벌에 실패했으면서도 크게 명성을 날렸다. 닭 잡는 칼에 불과했던 그가 소 잡는데 사용된 것이다.

한평원이 현위(縣尉)라는 낮은 관직에 있을 때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다름 아닌 그의 관객(館客-사숙(私塾). 글방이나 서당 등 작은 교육 시설의 선생)으로 식견이 높은 데다 성품이 너그러워 그가 특별히 존경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나중에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서 오랫동안 편지 한 통 주고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평원이 승상이 되어 나라의 대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그를 몹시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한평원을 찾아왔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성과 이름을 바꾸고 오래전에 진사가 되어 있었다. 한평원은 몹시 반가워하며 그를 후하게 예우했고 자신의 관내에 머물게 하면서 여전히 관객으로 모셨다. 하루는 한평원이 그와 술을 마시다가 밤이 깊어 주위가 조용해지자 좌우의 시종들을 물러가게 한 다음 단둘이 무릎을 맞대고 마음속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얕은 학식과 일천 한 재주로 국가의 대권을 맡고 있는데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그러자 관객이 탄식하며 말했다.

“대인은 물론 가족 전체가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소이까!”

자신의 입지가 그 정도까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한평원이 몹시 놀라고 긴장된 표정으로 그 이유를 묻자 관객은 망설임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궁중에서 황후를 세우는 데 대인이 동의하지 않아 황후가 원한을 품게 되었고, 태자를 책봉하려 할 때도 대인이 동의하지 않아 태자로부터 원망을 사게 되었습니다. 대인께서 정사를 맡게 된 이후로 현인군자였던 주희(朱熹)와 팽구년(彭龜年), 조여사(趙汝思) 등 벼슬아치들이 강등되거나 추방당한 사람이 부지기수라 적지 않은 사대부들이 불만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또 금(金)나라와 전쟁하느라 치른 희생이 적지 않아 들판에 나뒹구는 병사들의 시신이 산과 같고, 고아와 과부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으니 군사들의 원성이 상당할 것입니다. 또 변방의 백성들은 여전히 외적에게 노략질을 당하고 있으니 온 백성이 대인을 원망하고 있지요. 이처럼 엄청난 원한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장차 이를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한평원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한참 만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관객은 대답하길 꺼렸으나 한평원이 재삼 재촉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말했다.

“방법은 한 가지뿐인데 이를 받아들이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황제께서는 중병에 걸려있어 제대로 정사를 돌보실 수 없습니다. 이런 기회에 대인께서 고대 요, 순, 우의 경우를 본받아 태자 책봉을 황제께 건의하십시오. 그러면 태자는 대인에 대한 원한을 풀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태후는 황태후로 물러나게 되지만 이미 권력을 잃은 상태가 되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이때부터 대인께서는 새로운 황제를 보좌하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시는 겁니다. 이전에 억울하게 요직에서 밀려난 관료들을 다시 복권 시키고 이미 죽은 사람의 가족들에겐 위로와 동정을 베풀어 그동안 쌓인 원한을 풀고 화해해야 합니다. 아울러 공로를 세운 병사들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유명무실한 조세 항목을 전면 폐지하여 백성들이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지략과 인덕을 겸비한 유생을 골라 승상의 자리를 물려주시고 대인께서는 은거하시면서 산수를 즐기십시오. 그래야만 지금의 위험을 안녕으로 바꾸고 전화위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을 받아들이실 수 있겠습니까?”

한평원은 관객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재상의 자리를 고집하면서 그를 자신의 고문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관객은 자신의 권고를, 받아드리지 않는 한평원의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얼마 있지 않아 한평원은 관객이 예견했던 것처럼 죄명을 얻어 죽임을 당했다. 당사자였던 한평원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당시의 상황에 대한 관객의 판단과 분석은 대단히 정확했고 탁월한 선견지명을 지닌 식견이었다. 애석하게도 이 관객은 은둔 기질이 있어 끝내 밖으로 나서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다.

‘은둔자’ 하면 떠오르는 또 한 명의 재상이 있다. 바로 당나라 숙종과 덕종 시기에 여러 차례에 걸쳐 재상을 지냈던 이필(李泌)이다.

이필은 학식과 인덕을 겸비한 훌륭한 인물로 천하에 명성이 자자했지만, 관직을 거부하여 여러 차례 황제의 부름을 받고도 응하지 않는 강직함을 보였다.

그러다가 안사의 난(安史의 亂-당나라 중기에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 등이 일으킨 반란)이 일어나자 눈앞에 닥친 국가의 위기를 목격한 그는 더 은둔하고만 있을 수 없어 자발적으로 숙종을 찾아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비책을 내놓았다. 그런 다음 위기를 넘기자 또 관직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당 덕종(德宗-742~805, 재위 779~805) 정원(貞元) 연간에 사천의 장연상(張延賞)이 동천 절도사 이숙명(李俶明)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한번은 덕종이 낙곡으로 행차했는데 마침 우기가 계속되자 관리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집으로 도망친 호위병들이 적지 않았다. 이숙명의 아들 이승(李升) 등 여섯 명은 이런 상황에서 폭도들이 어가를 공격하여 황제의 신변을 위협할 것을 두려워하여 서로 돌아가면서 어가를 호위했다. 그렇게 하여 무사히 양주에 도착하게 되었다.

행차를 마치고 장안으로 돌아온 덕종은 이들의 공로를 치하하면서 여섯 명을 모두 금위장군으로 봉하고 후한 상을 내렸다.

장연상은 이승이 고국(郜國) 대장공주(大長公主-당 숙종의 장녀)의 거처를 자주 드나든다는 것을 알고는 그 사실을 덕종에게 고자질했다. 덕종이 이필에게 물었다.

“고국의 대장공주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이승은 아직 젊은데 그들이 자주 왕래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소?”

이필이 대답했다.

“이는 누군가 동궁 태자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기 위해 꾸미는 일입니다. 폐하께 이 사실을 알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런 건 알 필요 없소 짐이 알아서 살펴보도록 하겠소.”

“틀림없이 장연상일 겁니다.”

그러나 덕종은 짐짓 모른 체하면서 다시 물었다.
“어째서 그가 고자질을, 했다고 생각하는 게요?”

이필은 먼저 장연상과 이숙명 사이의 갈등을 설명했다.

“이승이 황은(皇恩)을 입어 금위장군이 되었으니 장연상이 이를 시기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게다가 고국의 대장공주는 태자비의 모친이라 이런 방법으로 태자를 모함하려는 것입니다.”

그제야 덕종은 웃으면서 사실을 털어놓았다.

“정확히 맞혔소. 바로 그자가 보고했소.”

또 한번은 누군가가 대장공주의 행동거지가 음란한 데다가 번번이 이상한 기도 의식을 행한다고 보고했다. 덕종은 대로하여 그녀를 궁중에 가두고 태자를 호되게 질책했다. 이 일로 태자도 덕종의 신임을 잃게 되었다. 덕종이 이필을 불러 이런 사실을 설명하면서 말했다.

“최근 서왕(舒王)이 아주 건실하게 행동하고 있소.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고 인의와 온후함에 있어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구려.”

이필이 물었다.

“폐하의 아드님은 태자 한 분뿐인데 어째서 아드님을 폐하고 조카 서왕을 태자로 세우려 하십니까?”

덕종은 이 말에 발끈 화를 냈다.

“서왕도 내 아들이오. 어째서 우리 부자를 이간질하는 게요? 그런데 서왕이 내 조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소?”

“예전에 폐하께서는 ‘오늘 난 아들 여럿을 얻었다’라고 하시기에 제가 어찌 된 연고인지 여쭈자 ‘주상께서 소정(昭靖)의 아들들도 내 아들로 대하라고 하셨소’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자기 아들은 의심하시면서 어떻게 조카를 아들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서왕이 폐하께 효성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폐하께서 직접 치국에 힘쓰셔야지 조카가 효성과 순종을 다 할 것이라 기대하시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말에 덕종은 몹시 기분이 상했다.

“그대가 감히 과인의 뜻을 어기다니 정말 대단한 담력이오. 그대는 자신의 가족이 귀하지 않소? 멸문의 화가 두렵지 않냐, 이 말이오?”

이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할 말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폐하께서 대로하시는 것이 두려워 거짓으로 참언을 올렸다가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저를 재상으로 중용했는데도 직언을 소홀히 하여 일을 그르친 죄로 제 가족을 몰살하실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미 남은 세월이 아깝지 않은 사람입니다. 만일 제 아들이 죽어 조카가 대신 제 가문을 잇게 된다면 후손이 올리는 제사를 기쁘게 받진 못할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이필은 통곡하며 눈물을 쏟았고 그의 이러한 태도에 감동한 덕종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일이 그런 지경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소?”

“이는 대단히 중대한 사안이라 폐하께서도 신중하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저는 시종 폐하께서 먼저 성덕을 바로 세워 나라 밖의 오랑캐들로 하여 폐하를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따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한데 폐하께서는 어째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태자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자고로 부자가 서로 의심하면 나라와 집안이 온전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전례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폐하께서 평원에 계실 때, 건녕왕(建寧王)이 어떻게 살해됐는지 기억하시겠지요.?”

덕종이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녕왕은 억울하게 죽었소. 숙종(肅宗)의 성격이 너무 급해 앞뒤 가리지 못하고 참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런 슬픈 일이 있었던 것이오.”

“건녕왕이 죽임을 당했을 때 저는 관직을 버리면서 속으로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폐하의 재상이 되어 다시 이런 일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군요. 저도 평원에 있을 때는 건녕왕의 죽음이 억울한 일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다가 관직을 떠나면서 이 일에 대해 생각을 밝혔습니다. 당시에 숙종께서도 제 말을 듣고 크게 후회하셨지요. 폐하의 선제이신 대종(代宗)께서는 그 일 이후로 매사에 항상 신중하셨고 저도 무고한 참언을 막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덕종은 얼굴빛이 풀린 듯하더니 잠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태종이나 현종 때 역시 태자를 교체했는데 어째서 망국의 화를 입지 않았던 것이오?”

“당시에 태종의 태자 승건(承乾)이 여러 차례 국사를 감독하는 동안 그를 의지하고 결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엄청난 병기를 몰래 빼돌려 후군(侯軍)과 함게 모반을 획책했지요. 사태가 발생하자 태종은 장손무기 등의 대신들을 동원하여 수십 차례 조사를 벌였고 진상이 밝혀지자 대신들을 불러 모와 처리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이때 한 대신이 간언하기를 태자의 목숨을 살려줌으로써 인자한 부친으로서의 평판을 잃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습니다. 태종이 그 간언을 받아들여 태자를 폐위하는 대신 죽이지는 않았지요. 지금 폐하께서 숙종의 성질이 급했고 건녕왕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도 훌륭한 일입니다. 신하 된 저로서는 감복해 마지않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 일을 귀감으로 삼아 신중하게 살피고 숙고하셔서 태자 주변에 어떤 음모의 징후가 있는지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 결과 옳지 못한 행위가 있다면 평소 대의에 투철한 대신 두세 명을 부르셔서 의논하신 다음 선례에 따라 서왕을 폐하고 다른 황손을 세우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앞으로 백 대가 지나도 폐하의 자손들이 천하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태자는 대장공주의 일 이후로 줄곧 소양원에 거처하면서 외부인과의 왕래가 없었고 바깥일에 관여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참언을 올린 사람들은 지극히 간교하기에 설사 태자가 무장한 병력을 갖춘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크게 믿을 바가 못 됩니다. 저는 가족의 목숨을 걸고 태자에게 어떠한 음모도 없음을 보장합니다. 제가 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폐하의 뜻에 순종하면서 서왕을 태자로 세우는 일에 동의한다면 이는 장래의 황제를 위해 큰 공을 세우는 것이며, 저뿐 아니라 이전에 양소(楊素)나 허경종(許敬宗), 이임보(李林甫) 등이 폐하의 뜻을 따른 것도 공이 될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은 서왕이 천하를 얻도록 모략을 제공한 공입니다.”

덕종은 이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선뜻 그의 말에 따를 것을 약속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짐에게 하루만 더 생각할 시간을 주구려.”

끝으로 이필은 자신의 홀을 거두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로 호소했다.

”정 그러시다면 궁으로 돌아가셔서 홀로 심사숙고하시되 절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폐하의 의중을 흘리지 마십시오. 주위 사람들에게 발설하시면 그들은 앞다투어 서왕을 위해 공을 세우려 들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폐하께서 위험에 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뜻은 충분히 알겠소.’

다음날 덕종은 이필을 불러 독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의 등을 다독거려주었다.

‘그대의 진실한 충언이 없었다면 짐은 지금쯤 후회막급한 지경에 처했을 것이오. 과연 태자에겐 아무런 음모나 기도가 없었소.”

이필은 머리를 조아리며 덕종의 결단을 경하하고 나서 노령을 구실삼아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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