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CMS후원
2021.07.24 23:23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세계  |  미디어  |  칼럼  |  서팡게시판  |  여행게시판
 
칼럼홈 > 이정랑

[이정랑의 고전소통] 人物論 망국의 군주, 충정의 장수
[숭정황제와 원숭환] 어리석은 숭정, 충신 원숭환을 죽이다 (下)
이정랑 | 2021-06-02 11:08:0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숭정황제와 원숭환】 어리석은 숭정, 충신 원숭환을 죽이다 (下)

군주가 소인배(小人輩)면 간신이 발호하고 충신은 결국 죽게 된다.

누르하치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황태극(皇太極)이 황위를 이어 청 왕조를 세웠다. 황태극은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물게 뛰어난 재능과 모략을 겸비한 황제였다. 그는 잠시 영원성 대신 조선(朝鮮)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시로는 명과 청 왕조 모두 휴전하고 각자 전열을 가담을 시간이 필요했다. 명군은 성을 축조하고 병사들을 훈련 시켜야 했고, 청군은 조선을 공격하여 재물을 약탈함으로써 자신들의 통치를 공고히 해야 했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원숭환은 황태극에게 화친을 제의했고 황태극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명의 황제와 조정의 대신들은 하나같이 만청이 줄곧 중원의 속국이었으니 황태극은 절대로 화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황태극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조선을 침략했고 원숭환은 성을 축조하고 금주 중좌와 대능하, 소능하 등지에 방어선 구축 공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조선에 지원군을 파병했다. 조선이 너무 빨리 투항해버리면 명군도 요동으로 돌아가 청군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태극은 조선을 침공해 커다란 승리를 거두면서 막대한 재물을 손에 넣었고 안정된 정세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숭환이 성을 보수하고 군마를 훈련 시키면서 세력이 갈수록 강대해지는 것을 보고는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휴전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1627년, 마침내 황태극은 대군을 이끌고 요서 지방의 명군 진영들을 공격하여 대능하와 소능하를 함락시키고 이어서 금주를 공격했다. 5월 11일에서 6월 4일 사이에 장군 조솔교(趙率敎)가 병력을 지휘하여 황태극의 군대에 맞서 결전 끝에 참패를 당했지만, 금주를 빼앗기진 않았다. 황태극은 금주 공략이 여의치 않자 영원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원숭환은 철저한 방비로 대응했고 양군이 대치한 가운데 벌어진 이틀 동안의 격전으로 쌍방이 모두 심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영원성을 함락시키진 못했다. 황태극은 다시 금주를 공격했지만, 성의 수비가 견고하여 청군은 무수한 사상자를 내고도 금주를 손에 넣지 못했다. 마침 폭염까지 겹쳐 병사들이 지독한 열사병에 시달리고 사기가 크게 떨어지자 황태극은 어쩔 수 없이 심양으로 철군했다.

금주 전투에서 명군은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숭환은 한 단계 승진했을 뿐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원숭환이 위충현과 같은 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숭환이 진사에 합격했을 때 주고(主考-과거시험의 최고 심사위원)였던 스승과 그를 요동 수비에 추천했던 사람은 모두 동림당의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에 영원대첩과 금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웠어도 위충현의 호감을 사지 못했다. 오히려 위충현은 원숭환의 기세가 갈수록 커지는 것을 보고 사당을 동원하여 금주를 구하지 못한 것이 원숭환의 실책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원숭환은 사직하고 고향인 광동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해 8월, 목공예에 심취해 살던 희종황제가 사망하자 후사가 없어 친동생 주유검(朱由檢)이 황위를 이어받고 연호를 숭정(崇禎)이라 했다. 당시 숭정황제의 나이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매우 총명하고 능력이 뛰어나 형과는 크게 다른 풍모를 보였다. 그는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조용하게 엄당을 제거한 후 위충현을 자살로 몰아갔고 조정의 모든 독소를 교묘한 방법으로 해소해 나갔다. 위충현이 죽자 그에게 아첨하며 몸을 보전하던 신하들은 모두 주살되거나 군대로 충원되었고, 위충현으로부터 배척당했던 원숭환이 다시 기용되었다.

1628년 7월, 숭정은 낙향했던 원숭환을 불러 요동의 수비에 관해 물었다. 이 대화를 통해 숭정은 원숭환을 신뢰하고 따르게 되었다. 원숭환은 숭정에게 군량과 마초를 충분히 보급해주고 일체의 간섭을 배제할 것을 요구하면서 구체적인 요동 수비의 책략과 원칙을 제시했고 숭정은 그의 제안과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숭정은 원숭환에게 보검 한 자루를 하사함으로써 그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표하고 요동을 잘 지켜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원숭환이 도착하기 전에 요동에서 병란이 일어났다. 원인은 간단했다. 군대에 군량이 부족했다. 당시 중앙이 잠시 무력해진 틈을 타 각급 관원들과 지주들이 재물을 훔쳐 가버려서 국고가 텅텅 비고 군량을 지급할 재원이 없었다. 원숭환은 즉시 황실의 재산을 이용하여 군량을 지급할 것을 건의했지만 재물을 목숨처럼 여기는 숭정황제는 몹시 화를 내면서 원숭환에 대한 태도를 바꿔 더, 이상 그를 신임하지 않았다.

얼마 후 원숭환은 피도 대장 모문용(毛文龍)을 주살함으로써 또다시 숭정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피도는 요동 동남 해안의 작은 섬으로, 북으로는 청과 통하고 동으로는 조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교동반도의 봉래와 등주를 방어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였다. 모문용은 일찍이 청에 대한 항전에서 공을 세운 바 있으나 위충현의 양아들이 되어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청의 황태극에게 산해관을 양보하는 대신 자기에게 산동을 때어달라는 제안을 한 적도 있었다.

원숭환은 요동의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드러나지 않는 화근을 제거한다는 생각으로 숭정 2년(1623) 7웡, 병사들을 매복시켜 모문용을 체포한 다음, 그의 죄상 열두 가지를 공개하고 보검을 뽑아 주살했다. 원숭환이 모문용을 죽인 원인과 경과를 자세히 보고하자 숭정은 몹시 놀라며 다른 속셈이 있을 거라고, 의심했지만 당시로 서는 원숭환의 능력에 의지하여 청군을 막아내고 있던 터라 별다른 문책을 하지 못했다.

청의 황태극은 명과 정면 대결을 하는 것이 역부족임을 깨닫고 줄곧 화친을 요구했지만 오만한 숭정황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숭환이 중간에서 조정에 나섰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러다가 1629년 11월, 황태극은 10만 군사를 이끌고 명을 공격하여 원숭환이 주둔하고 있던 영원을 격파하고, 곧장 북경으로 향했다. 청군의 공격으로 장성과 준화가 함락당하자, 명군은 퇴각하기에 급급했다. 순무 왕원옹(王元雍)은 자살하고 산해관 총병 조솔교도 준화 성에서 전사했다. 준화를 손에 넣은 청군은 곧장 북경을 공격했다. 그러자 원숭환은 급히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지원했고 연도에 흩어져 있던 군사를 규합하여 청군의 퇴로를 막는 데 주력했다.

11월 10일, 원숭환이 계주에 도착했을 때 청군은 이미 계주를 포위하여 서진 중이었고, 이어서 삼하와 향하 등의 성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원숭환은 급히 북경으로 달려가 수도를 지키기 위해 북경광거문 밖에 진을 쳤다.

청군의 맹렬한 공격에 숭정황제는 혼비백산했고, 수도는 한순간에 혼란에 빠졌다. 원숭환이 도착하자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힌 숭정은 그를 크게 치하했지만, 전투에 지친 군사들을 성안에 들이지 않았다. 여전히 원숭환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숭정은 병력을 외성에 주둔시켜달라는 요구마저 받아들이지 않고 청군과의 결전만을 강요했다.

원숭환은 군사들이 몹시 지쳐 있음을 알고도 숭정황제의 재촉 때문에 교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무릅쓰고 적진으로 달려가 격전을 벌인 원숭환은 청군을 남해자 근처까지 내모는 대, 성공했다. 하지만 청군이 아직 멀리 퇴각하지 않은 것을 본 숭정황제는 이들을 추격하여 섬멸할 것을 명령했다.

이때 명군에는 여러 지대의 부대가 남아 있었고 원숭환의 지휘권, 하에 있었지만 아직은 힘을 모울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 밖으로 나가 결전을 벌일, 경우 청군은 배수진을 치고 달려들 것이 분명하기에 북경성 전체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숭정은 원숭환을 의심하여 그의 병권이 막강해질 경우 자신을 제압하고 정권을 빼앗으려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청 군대는 성 밖에서 대대적인 약탈과 폭행을 일삼으며 백성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었다. 태감들은 대부분 수도에 땅과 집을 갖고 있어 자신들의 재산이 파괴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이들은 이러한 불안을 원숭환에게 풀어버리기로 마음먹고 원숭환이 청군을 끌어드려 황제에게 화친을 강요하고 있다고 억지 주장을 했다. 이러한 여론은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았고 모두 원숭환을 ‘민족의 반역자’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 북경성 문에 올라가 원숭환을 매도하는 고함을 지르며 아래쪽에 있던 원숭환의 병사들에게 돌을 던져 부상을 입히는 일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숭정황제의 의심과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청의 황태극은 음모를 꾸몄다.

얼마 전 청군은 명의 황궁에서 파견된 말 사육을 전담하던 태감 두 명을 사로 잡았다. 한 명은 양춘(楊春)이고 다른 한 명은 왕성덕(王成德)이었는데, 황태극은 철수하면서 부장 고명중(高鳴中)과 참장 포승선(鮑承先), 영완성(寧完成) 등을 시켜 이들을 지키게 했다. 이들은 청군에 귀순한 한족 장수들이었다. 저녁이 되자 포승선과 영완성은 황태극이 지시한 밀계에 따라 포로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자네 아나? 이번에 철군한 것은 다 작전이 있어서야. 황태극께서 혼자 말을 몰고 적진에 들어가 밀약을 맺고 왔거든. 황태극과 원숭환 사이에 밀약이 맺어졌으니 조만간 대사가 이루어질 걸세.”

두 명의 태감은 자는 척하면서 모두 듣고 있었다. 다음날 양춘은 적군이 혼란해진 틈을 타서 도망쳤고 자신이 들은 얘기를 곧장 숭정황제에게 보고했다. 숭정은 양춘의 보고를 그대로 믿고 즉시 원숭환을 궁으로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옥에 가둬버렸다. 원숭환의 부하장수들은 사태의 추이를 몰라 성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사흘 후에 황제의 뜻이 전해졌다. 원숭환이 적과 내통하여 모반을 계획했기 때문에 그에게 죄를 묻되 다른 사람들은 문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에 병사들은 몹시 분통해, 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심지어 황제를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형국이었다. 저대수도 비분에 젖어 병력을 인솔하여 금주로 돌아가 버렸다.

저대수가 가버리자 숭정황제는 청군이 다시 공격해올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저대수를 다시 오도록 원숭환에게 편지를 쓰게 하는 한편, 관리들을 보내 설득하기 시작했다. 원숭환은 여러, 대신들의 권고에 못 이겨 국가가 몹시 위중한 상태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저대수는 숭정이 보낸 사자를 적으로 생각하고 죽이려 했으나 그가 내민 원숭환의 친필 서한을 보고는 검을 내려놓았다. 그가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저대수의 모친이 말했다.

“네가 회군하면 원장군의 죄만 중가 시킬 뿐이다. 차라리 병력을 이끌고 가서 일부 지방을 탈환하고 승리를 거둔다면 원장군을 감옥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대수는 모친의 말에 따라 병력을 이끌고 나가 청군이 점령하고 있는 두 개의 성지를 탈환하고 청군의 퇴로를 차단했다.

한편 황태극은 원숭환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그는 이미 북경 이남 20리 지점에 있는 양향을 점령했고 곧장 노구교를 공격하여 거군(車軍)을 격파했으며 4만의 명군을 대파하고 우두머리급 장수들을 생포하거나 사살함으로써 북경을 불안에 떨게 했다. 그러나 저대수가 회군한다는 소식에 퇴로가 차단될 것이 두려워 화친을 제안하는 한편, 산해관을 통해 서서히 병력을 철수했다.

청군이 물러가자 숭정은 다시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기 시작했다. 이때 많은, 신하들과 장수들이 원숭환의 구명을 위한 상소를 올렸고, 손승종도 원숭환을 위한 시문을 바쳤다. 자기가 대신 처벌을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원숭환은 옥중에서 편지를 써서 부하들이 안심하고 청군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독려했고, 반년 후에 명군은 무사히 청군을 장성 밖으로 쫓아낼 수 있었다.

반년 동안 원숭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 형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당분간 그를 살려두었다가 청군이 완전히 물러간 다음에 능지처참한다는 것이었다. 적군의 이간질에 속아 무고한 원숭환을 처형하고 그를 ‘민족의 반역자’로 증오하도록 민심을 호도한 것은 숭정황제의 소심하면서도 완고한 성격의 소치였다.

한편 원숭환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게 된 것도 자신을 보호하는 데 무능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지킬 줄 아는 것이 개인의 신상과 이익을 지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崇禎皇帝와 袁崇煥】 의심 많은 숭정, 충신 원숭환을 죽게 하다 (上)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4&table=jr_lee&uid=227 









      



모바일 기기에서도 댓글 작성이 가능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현재 아이폰 기기까지 테스트 완료하였습니다.)


닉네임  비밀번호  095153  (스팸등록방지:빨간숫자만입력)

 [1/1]   불초자  2021년6월2일 13시30분    
주제에서 벗어난 글을 올려 이정랑 선생님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대로 끝난다면 대한민국은 소생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붓을 들게 만들었군요.
우리가 정민 군 사건에 분개하는 것은,
그 안에서 제2의 세월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러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모든 분들이 인내롭게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경찰은 성찰해야 한다!
경찰의 불공정함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는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목격자의 진술을 왜곡해 전혀 다른 것으로 수사결과라며 발표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까치발 사진을 찍은 목격자는 정민 군 부친과 경찰, 양측에 동시에 사진을 제보했고, 그 사진을 찍은 경위 역시 설명했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분은 경찰이 발표한 내용이 자신의 진술과 크게 달랐다는 사실을 알고, 왜 경찰이 그런 발표를 했는지 분개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기사 내용을 올린다.
왜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정민 군 부친이 경찰과 각을 세웠는지 여러분도 이제 보았기를 바란다. 이런 식이면 어느 누구도 경찰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함은 당연하다. 언론 역시 조금만 부지런했으면, 이런 사실이 금방 드러날 텐데도 경찰의 내용을 받아, 우리 안방에 그대로 전달하기에 바빴다.

https://news.v.daum.net/v/20210530103627396
(주머니 뒤척인 것이 깨우는 것이라고 말했다고요? 그건 전혀 깨우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그냥 차라리 저랑 한 대화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ㅠㅠ )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것은,
경찰은 실족사에 무게를 두고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결론을 미리 지어놓으면, 아무리 잘된 수사라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진실에서 그만큼 멀어질 위험이 도사리게 된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경찰은 타살의 정황이라고 볼 수도 있는 목 뒤의 자상과 뺨 파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인과는 관련이 없는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만 얘기가 되고 있을 뿐이다.
단 한번의 가격으로도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급소가, 경동맥이 지나는 목 부위에 노출돼있다는 것을 우리는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에서 다시한번 확인한 바 있다. 정민 군의 혈액이 이곳에서 흘러나왔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왜 우리 경찰이 이래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신이 물살에 휩쓸려다니는 상황에서, 시신을 건져올리는 과정에서 이런 상처가 났을 수 있다는 발표가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뺨 근육 파열도 마찬가지다. A군이 정민 군을 깨우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근육이 파열될 정도라면 살인미수에 가깝다. 이것을 전문수사기관이라고 하는 경찰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있는 것이 정말 그들이 수사에 의지가 있는 사람들인지 묻게 된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모든 것을 모른다는 A군에 대해 경찰은 과분할 정도의 태도를 취한다. A군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가 취하지 않았다고 믿게 만드는 정황들이 더 많이 포착된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경찰 발표보다도 CCTV에 집착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경찰의 기본은 의심나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취조한다는 것에 있어야 한다. A군 한 사람만을 놓고 사건을 구성하니 결론은 무혐의로 끝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누가 사람이 들락거리는 장소에서 대범한 행동을 하겠는가!
허나 <조력자>라는 또다른 변수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강력한 변수가 있음에도 경찰은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배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조력자라는 변수를 넣으면 이 사건은 다른 차원으로 전개가 된다. <진짜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A군의 그날의 복장과 동선은 그만큼 자유로워지면서, 그가 머물렀던 시간대와 장소는 더는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우리 경찰이 이런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납득하기가 어렵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이 놓치고 있다는 것은, '검찰의 경찰 죽이기'라는 음모론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는 정상행동이 가능하다며 다른 목소리가 끼어드는 것을 방어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전문가답지 않은 태도였다.
SBS는 그런 상황이라면 프로파일러들이 아닌 알콜 전문가들을 섭외해 정말 그런지 여기에 대한 실험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 <공정>이고 <객관>이고 <공영>이다. 섭외가 편파적이라는 반증이다.
사인을 실족사로 고정하고, <조력자>라는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변수는 외면한 채, 공정한 척 했다. 방송이 비난받는 첫번째 이유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해놓고, 모든 것을 차단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런 경찰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강 의대생 실종사건은 실족으로 인한 익사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점이 많은 사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상적이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정의로움에 조금이라도 눈뜬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이다.
수사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사인을 실족으로 인한 익사로 정해놓은 상태에서, 프로그램의 구성을 짜고, 인원을 섭외하였다는 인상을 방송 내내 주었다.
보통, 평범한 서민들이 진솔한 얼굴모습을 하고 등장해, 평상시 같이 대화하듯 인터뷰를 하고, 그런 인물들이 프로그램 내내 등장하면서, 중간중간 전문가들의 소견들을 효과음과 조명 등의 편집된 영상과 함께 내보내면 사람들은 대개 이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방송언론의 심각성은, 그런 극적 연출을 여러 양식으로 극대화하여, 자신들이 이미 결론을 낸 방향으로 자원을 소집하고 시청자들을 통제한다는 데 있다. 생각할 기회를 주는 듯 싶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생각은 차단당하고, 방송이 끝나면 우리는 계몽인간이 된다.
이런 연출을 보았기에, 앞으로 더 많은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들이 같은 방향으로 결론을 낼 것이다. 만일 효과음, 배경음악, 조명, 화면 구성 등 모든 조작된 연출을 빼버리고, 현장 위주의 방송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방송이 끝나고 시청자들은 대번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 분위기를 타고 반론을 제기하는 프로파일러들도 다수 등장했을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이 대중에게 가하는 착시현상이고, 집단광기를 유발하는 무서움이며, 어떤 권력도 갖지 못한 언론의 파괴적 힘이다. 이 착시현상으로 언론은 무수히 우리 인류를 파괴해왔다.

(북한의 핵 폐기는 말하면서 정작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인 '세상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세상의 비핵화가 제 궤도에 오르면 혈육인 북한도 핵을 가질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는 진리를 외면함으로써, 핵독점으로 인한 더 위험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민 군 아버지 편에서 싸우는 전문가, 목격자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날 초대받지 못했다.
그날 방송은 의도적으로 시위대와 추모객들 가운데서 격정에 사로잡힌 사람들 위주로 인터뷰를 진행해 마치 태극기 부대의 광기를 보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다.
방송의 끝무렵에는 프로파일러를 다시 등장시켜 유튜버들을 공격한다. 악의적인 프로그램 구성이었다. 격노를 그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일개 누리꾼 수사대가 파헤치는 것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금전의 이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유튜버들도 분명 있다. 허나 늘 그렇듯 우리 인간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도 이 점을 계속 놓쳐왔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한 곳에만 집착해 자신들의 신앙을 전파했다. 수상택시 승강장에서의 실험은 예상한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즉 사람들이 가장 의구심을 품는 장소는 여기다!
이 수상택시 승강장은 일부 언론이 이 장소를 실족의 유력한 지점으로 지목하기도 했던 곳이었고, 마침내 이 부근에서 우리는 정민 군의 시신을 강물로부터 넘겨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양말에 벌흙을 묻히고 던지면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므로 대범하게 행동할 수는 없지만, CCTV의 사각지대이기도 하다는 맹점이 있다. 한번쯤 주의깊게 조사해봐야할 곳 중 하나였다.
허나 이를 지적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없었다. 섭외가 공정했다면, 이를 지적하는 프로파일러들이 있었을 것이다.

범죄심리학자라면 이 사건에는 조력자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도 추리해봤어야 했다.
이 사건이 실족사로 자꾸 좁혀지는 것도, 이 <조력자>라는 변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설마 있었겠느냐는 것이 우리 모두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왜 유독 이 사건에서만은 그것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공정수사를 기치로 내거는 경찰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미 온라인 공론장에서는 <조력자>가 유행처럼 번져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경찰과 프로파일러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행해가야 한다.
조력자라는 변수를 대입하면, A군의 복장과 동선이 그만큼 자유로워지면서 그가 머물렀던 시간대와 장소는 무의미하게 된다. A군보다는 그날 그 주변을 아무 이유없이 서성이던 사람들에게 수사의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비로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진짜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수사 영역에서는 불가능하게 여겼던 실족사(만취한 사람이 경사진 뾰족한 돌밭을 단 한차례의 긁힘도 없이 말끔히 통과하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오!)의 해명도 가능하다.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의지가 있다면, 그날 그 시간대, 동선이 미심쩍은 사람들을 조사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다루어야 할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보이는 실족으로 인한 익사(만취한 사람이 경사진 뾰족한 돌밭을 단 한번의 넘어짐도 없이 무사히 통과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오!)가 아니라 그 이전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목 뒤의 자상과 뺨 근육의 파열이 된다. 그것은 타살의 정황이 의심되는, 급소와 무관하지 않은 상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자상과 파열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누구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모른다. 사인과는 상관없는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만 얘기가 될 뿐이다.
그날 방송에서 깊이 패인 자상과 뺨이 파열될 정도의 충격에 집중하는 전문가들은 없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민 군 아버지쪽 사람들이었다면 이 점을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여기에 수사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맹점을 파고드는 것이 소위 프로파일러들의 역할이다. 하나의 결론을 상정하고, 여기에 따라 논지를 정리해 나가는 것은, 전문가답지 않은 태도이다.
범죄행위는 상식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도 완전범죄를 꿈꾸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시청자들은 반론도 듣기를 원했지만, 이런 일반의 범주를 뛰어넘는 가능성에 방송이 열려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지 못했음이 방송이 지탄받는 첫번째 이유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해놓고, 모든 것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조력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이어서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현재의 상황을 반전할 수 있는 얘기가 될 것이다.>>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객관적이지 못했고, 공정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실족으로 인한 익사'라는 점에 집착하고, 방송은 여기에 맞춰 현장실험을 하는 데 그 황금 시간대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알고싶다]는 종영될 때까지 민중사회의 말할 권리와 의미있는 결집을 원천봉쇄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익사가 왜 발생했는지에 관한 더 본질적이고 중대한 탐색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민중사회가 바라는 것도, 익사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임에도 공영방송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익사보다는 정민 군 목 뒤에 나 있는 깊은 자상과 뺨 파열에 대해 더 집중적인 탐색이 있을 줄 알았다. 목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숙이 찔린 것 같은 손가락 두 마디 깊이의 자상과, 뺨 파열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SBS는 다시는 전문가 섭외에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 정민 군 부모님 편에 서서 싸우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들의 말도 들어봐야 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민중사회를 한 편의 감동의 드라마로 잠재울 수 있다고 보았다면 크게 오판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명심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경찰의 수사결과에 수긍하지 못하는 것은, A군과 그 가족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이상하게도, 뭔가를 강하게 밀어버리는 듯한 장면, 취객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상적 통화, 걸음걸이, 일반적이지 않은 반바지 복장 등, 그가 심야 시간대에 벌인 정상적이지 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프로파일러들 역시 이를 두둔하며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정상행동이 가능하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들을 하고 있다. 필름이 끊어진 상태에서의 비정상의 행동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가 없는 그들이 신기할 정도다. 그날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들의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면 알콜 전문가들을 따로 불러 정말 그런지 공개실험을 했어야 했다. 편파의 전형이었다.
늘 그렇듯 우리 인간사에는 두 가지 이상의 측면이 맥동하며 흘러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바로바로 캐내고, 분석하는 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익사가 중요한 만큼, 익사 이전의 폭력 여부를 살펴보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왜 A군이 그 추운 새벽까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지(밤새도록 술을 마실 작정이었다면 긴바지 하나 정도는 챙겨야 했고, 긴 점퍼에 반바지는 사실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이를 추궁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없었다. 물에 들어가도 쉽게 젖지 않는 유일한 복장임에도 이를 놓쳤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실족사에 집착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A군이 계속 만취를 주장하며 모른다고 하기에 우리는 그날 그 시간대에 있던 모든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2차 가해라고 한다면, A군은 먼저 자신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승강장 근처에서 뭔가를 강하게 미는 듯한 장면, 편의점에서의 4인의 수상한 행적 등 많은 평범하지 않은 단서들을 찾았고, 어느 정도 수확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유튜버들의 광기라고 몰아가는 언론과 프로파일러들은 각성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관찰해 본바로, 정의에 목말라하는 유튜버들이 더 많았다.

<<바로 앞서도 말했지만, 놀랄만한 단서가 하나 나왔다. 현재의 상황을 반전할 수도 있는 중대한 단서였다. 역시 이 수확물은 제도권 언론이 아닌, 유튜버들의 광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A군과 그 가족이 이번 일과 무관하다 해도, 그들은 비난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에서조차도 정민 군과 그 부모에게 계속 범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독립운동가와 혁명가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범부였지만 인간이 된 이후 인간으로 계속 살아온 참<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세 유형이 우리 사이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에 목마른 인간 유형(소위 빨갱이),
처음부터 생각이라는 것에 둔감하여 농락당하기 쉬운 보수 유형,
처음에는 생각이라는 것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진보 유형!
물론 세상에 보수와 진보는 없다! 인간(빨갱이)과 비인간이 존재할 뿐, 보수와 진보는 저들이 만든 인간통제의 틀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초반에 있었지만, 늘 그렇듯 양쪽의 타협이 여기서도 역시 재현되었다. '인간유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인간>이 있었지만, 그들은 광기어린 집단으로 낙익찍혀 가고 있었다. 끝까지 생각의 끈을 놓치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구현할 수 없도록 만들어 보수와 진보만이 남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A라는 가족집단이 순간 섬찟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A군과 가족들은 분명 지구의 모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허나 우리는 반격을 시작할 것이다.

<<이미 반격이 시작되었다. 모든 CCTV를 공개하라! 공개하라! 공개하라!>>
<<집과 반포대교의 CCTV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라! 공개하라! 공개하라!>>

그들이 결백하다면 이것 한가지만 해 주면 된다.
A군네는 집과 주변의 CCTV를 공개하고, 경찰은 반포대교의 모든 CCTV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면 된다. 단 한번의 진실된 행동을 외면한 채 무수한 해명만을 남발하는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태도이다.
보수나 진보의 통제 가능한 탈을 벗어던진 우리 정예의 '휴먼<사람>'들은 그렇게 어리석은 종들이 아니다. 언론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장악하는 세상이지만, 속인다고 속일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이 길항의 조화야말로로 인류가 갈등을 반복하면서도 진화를 거침없이 수행하고, 그것으로 역사의 수레바퀴에 힘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하고 의미깊은 무력이다! 우리는 이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
수사기밀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이미 선을 넘은 상태다. 공개해서 이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것이, 기밀을 유지해 혼란을 가중하는 것보다 백배천배 옳은 결단이다.
이것을 못하겠다면, 민중사회는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은 한 청년의 죽음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이미 우리 사회에 타전하고 있다.
이 싸움이 불의에 맞선 응징의 성격이 되지 않기를 우리 민중사회는 호소한다.
떳떳하다면 CCTV를 공개하라, 우리의 요구는 그것뿐이다.
언론도 나서주기를 바란다. 공권력은 그 구조와 성격상 공정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굳어버린 조직이다. 허나 언론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SBS는 다시 [그것이 알고싶다]를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해 안방에 송출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공영'의 참뜻이다!

이 사건은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상적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왜곡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찰과 A군 가족측의 태도이다.
결백하다면, 모든 것을 공개하면 된다. 그런데 그들은 한사코 몸을 사리며, 마치 독사가 또아리를 틀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긍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A군 가족은 우리를 비난하지 말라, 왜 이런 소란스러움이 이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공개하지 않으니, 살인자, 조력자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공개하면 우리도 이럴 이유가 없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A군이 구토하는 CCTV장면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유리한 것은 바로바로 이런 식으로 공개가 되면서, 불리한 것은 독사가 되어 공격형으로 돌변한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 그것은 다른 차원이 된다. 유독 A군과 가족의 모습에서 그것이 계속 보인다.

<<이어서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앞서 말한 조력자와도 관련있는 얘기이다.>>

인내롭게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청년의 죽음의 의미를 이미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15) (-6)
                                                 
民草가 주인인 中原, 제3지대를 위...
                                                 
[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홍콩...
                                                 
당신의 투표권 행사 기준은 무엇입...
                                                 
김사복, 5.18 진상을 세상에 알리...
                                                 
왜 당신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시나...
                                                 
공기업 적자, 정치인-자본-관료의 ...
                                                 
세계는 군사법원 폐지 추세… 한국...
                                                 
마크 램지어Mark Ramseyer 논문은 ...
                                                 
[신상철TV] 인민사민 정치처벌법
                                                 
청소노동자의 외침 “차별받아도 ...
                                                 
‘실언’ 파문 윤석열, 지지율 10%...
                                                 
끝없이 추락하는 ‘윤석열’... 출...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지평선
                                                 
후원의 이유
                                                 
[이정랑의 고전소통] 인물론 詩의 ...
                                                 
전두환 비서출신 이용섭 사건 재정...
                                                 
“귀환” KAL858기 사건 33주기 추...
                                                 
[연재] 故 안병하 평전 20, 3부 군...
                                                 
[오영수 시] 한국 검찰과 사무라이...
31898 돈으로 김어준을 쫓아내고 싶다고?
30597 마크 램지어Mark Ramseyer 논문은 ...
26037 2021년 인류 사회의 과제
21349 [오영수 시] 소생(蘇生)
19625 지평선
15633 [오영수 시] 우리의 사랑은 천 년...
12538 文대통령 국정평가, 긍정39% 부정5...
11820 가난은 개인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11463 이스라엘, 연일 가자지구 민간인 ...
8496 [신상철TV] 천안함 가족분께 드리...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여의도파라곤 930호 (주)민진미디어 | 발행.편집인:신상철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마기선 | 등록번호: 서울 아01961
등록일 2012.02.02 | 발행일: 2012.02.15 | 이메일: poweroftruth@daum.net | 사업자번호: 107-87-60009 | 대표전화: 02-761-1678 | 팩스: 02-6442-0472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방침 | 광고/사업제휴문의 | 기사제보 | 칼럼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