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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램지어Mark Ramseyer 논문은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계약론’을 검증한다
김종익 | 2021-05-31 12:50: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마크 램지어Mark Ramseyer 논문은 무엇이 문제인가?
-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계약론’을 검증한다 -


요시미 요시아키 吉見義明
中央大學 명예 교수.
일본 근현대사 전공. 일본 민중 의식과 일본군 ‘위안부’ 제도 연구.
『매춘하는 제국』 『종군 위안부』 『불타버린 곳에서의 민주주의』 등의 저서가 있다.

※ (   )는 저자가, [  ]은 역자가 붙인 ‘주’다.

램지어의 논문 「태평양 전쟁에서 성행위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

이 논문은, 일본 공창(창기), 조선 공창, 가라유키상唐行きさん, ‘위안부’ 계약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지면 관계로 ‘위안부’론에 한정해 문제가 되는 점을 논하고자 한다(이 소론은 올해 3월 14일에 개최된 Fight for Justice 공개 세미나에서 강연 원고를 가필한 것이다. 논문 전체를 논평한 논고는,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지의 요청에 따라 3월 말에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에 제출했다).

먼저, 문제가 된 논문의 요지를 봐주시기를. ○안의 숫자는, Ramseyer의 요지에 이은 논자(요시미)의 기술과 대응하기 위해 표기한 것이다.

John Mark Ramseyer

태평양 전쟁에서 성 행위 계약(요지)

아래는 John Mark Ramseyer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의 요지다.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Volume 65에 게재 예정으로 2020년 12월 1일 온라인 공개된 버전을 바탕 삼아, Fight for Justice 및 요시미 요시아키 씨의 협력하에 편집부에서 작성했다. 또한, ( ) 안은 원본 논문의 章 ·節 번호다.

이 논문은, ‘위안소’로 불리는 전시 매춘업소에 대해, 매춘업소 주인과 매춘부의 계약 관계를 검토한다. 양자의 계약 관계는, 게임 이론이라는 ‘신뢰성 있는 commitment’가 성립한다.
여성들은, 소득에 대한 불안으로, 급여의 많은 부분을 선지급할 것 및 戰地라는 위험성을 감안해 단기 계약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매춘업소 주인은, 그녀들이 열심히 일하는 인센티브를 만들어내는 계약 구조를 필요로 했다.

그 결과 양자는, 매춘업소는 매춘부에게 많은 액수의 선급금을 지급하고, 최장 계약 기간이 1년에서 2년일 것, 매춘부는 최장 계약 기간보다 빨리 폐업 가능할 것, 이라는 두 가지 점을 요건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공창과 비교해 ‘위안부’의 급여는 높고, 계약 기간도 짧았다. (여기까지 abstract, 4.)

위안소는, 戰前 일본의 공창제하에서 매춘 산업이 고안해 낸 이른바 공창제의 해외 군대 버전이다. 공창제하에서 매춘부들은, 고용주에게 불만이 있으면, 도망하거나 제소하는 게 가능했다. 업자가 여성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반해 매춘에 종사하는 것은 부모가 딸을 판 경우에 한정된다. ‘가라유키상唐行きさん’은,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해외 매춘업소에서 일본인 남성을 상대한 여성인데, 그녀들도 내용을 이해한 다음 계약에 동의하고, 충분한 대우를 얻고 무사히 귀향했다. (2.1.,2.2.)

위안소는, 일본군 병사의 성병 예방을 위해 만들어졌다. 일본군은 군 위생 기준에 따라 매춘업소에 면허를 내주고, 위안소라고 이름을 붙이고 영업하게 했다. 그 대가로 군은 위안소 업자를 위해 병사가 다른 매춘업소로 가는 것을 금지했다.

내무성은 지령을 통해, 고용과 渡航 허가 조건을 정비했다. (3.1.,2.4.)

조선 반도에서는, 여성이 사기 등의 방법으로 강제적으로 해외 매춘업소로 이송된 경우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일본 정부와 조선의 일본 정부 기관이 강제한 것이 아니라, 사기를 친 조선인 업자와 일본군이 협동한 사실도 없었다. (2.4.)

여성과 위안소 계약은 통상 2년이었다. 수입의 2/3가 선급금 변제에 충당되고, 나머지가 급여로 여성들에게 직접 지급되었다. (3.2.,3.4.)

여성은 각자, 본인 명의 계좌에 저축할 수 있고,많은 액수의 수입을 얻은 위안부도 있었다. (3.5.)

여성들은 선급금 변제가 완료되든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폐업할 수 있었다. (3.4.)
전쟁 말기에는 ‘위안부’ 동원이 심했다고 이야기되지만, 실제는 그 반대다. 물자 부족 속에, 조선인은 여성도 포함해, 공장 등에 동원되어, 매춘업소 영업은 축소되었다. (3.6.)

■ 대등한 계약 관계가 존재했을까?

요지①에 대해, Ramseyer 씨(이하 호칭어 ‘씨’ 생략)는, 창기 계약과 ‘위안부’ 계약에 대해 논하지만, 한 장의 계약서조차 구체적으로 제시·검토하지 못하고 있어, 애당초 논증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또한, 계약은 업자와 여성이 맺었다는 전제도 큰 오류다.

매춘부 계약에서는 통상 여성이 계약의 한쪽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친권을 가진 친족과 업자가 소개업자를 중간에 개입시킨 교섭으로 이루어지는 계약이다. 말하자면, [Ramseyer가] 가부장제 문제를 불문에 부치고 있다. 또한, 한쪽 당사자인 친족 측 입장이 대단히 약한 사실도 고려되지 않았다. 이미 여성이 매춘하는 ‘매춘부’(성매매 피해 여성이라고 해야 하지만) 경우는, 여성의 포주가 교섭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데, 이것도 무시되고 있다.

한층 큰 문제는, 이 계약들이 시민 사회의 통상적 계약이 아니라, 여성의 노예적 구속을 초래하는 범죄적 인신매매 계약인 점이 무시된 점이다. 논의의 전제가 이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왜 일본에서 인신매매가 버젓이 통용되었을까?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戰前 일본(조선·타이완도 마찬가지)의 인신매매 관련 법이 지닌 결함을 Ramseyer가 못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형법에서는, 제224조에서 미성년자의 약취略取(폭행·협박으로 사람을 끌고 가는 것)·유괴(감언·속임수로 사람을 데려가는 것)에, 제225조에서는 영리·외설·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약취·유괴에는 형사 처벌을 하도록 정해져 있었지만, 인신매매죄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겨우 제226조에서 국외 이송 목적의 약취·유괴·인신매매, 被買者 국외 이송은 2년 이상의 징역으로 되어 있었다. 국내외의 비판을 받고, 국외 이송 목적에 한정하지 않고 인신매매죄가 규정된 것은 2005년이다.

인신매매 계약은 민법 제90조(공서양속公序良俗 위반)에 위반하는 것이지만, 매춘부 계약의 무효를 호소하며 제소해도, 법원은 매춘부의 직업[장사] 계약으로서는 무효지만, 금전소비대차계약으로서는 유효하며, 차용금(선급금)은 상환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계약들은 전반적으로 무효라는 판결이 나온 것은 1955년이었다.

戰前 일본에서는, 인신매매를 중개하는 예창기작부소개업藝娼妓酌婦紹介業이 정부에 의해 공인되고 있었다. 1933년, 국제연맹 동양 여성·아동 인신매매 조사위원회에서 소개업의 공인 문제를 지적했지만, 정부는 대처하지 않았다(『근대 일본 사회와 공창 제도』, 小野沢あかね). 1938년, 전쟁에 수반하는 노동 통제 필요로, 정부는 민간의 직업 소개업을 금지했지만, 예창기작부소개업만 금지되지 않고, 존속했다. 이것은 ‘위안부’ 징모徵募가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예창기작부소개업이 금지된 것은 1947년이다.

여성·아동의 인신 거래 금지에 관한 국제 조약(1910년 조약·1921년 조약)을 일본은 1925년에 비준했다. 이 조약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스물한 살 미만의 여성과 사기·폭행·협박 등에 의한 성년 여성의 국외 이송 금지 의무를 비준국에 부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타이완 등 식민지에는 적용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이러한 법적 상황에서 여성의 인신매매와 인신 구속이 버젓이 통용되고 있었지만, Ramseyer는 이 문제를 무시하고 논의한다.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예를 들면 요지⑤다. 여기서 Ramseyer가 말하는 것은, ‘위안부’의 국외 이송에 관한 내무성 경보국장 통첩 「支那 渡航 부녀 취급에 관한 건」(1938년 2월 23일)이다. 이것은 만 스물한 살 이상으로 현재 매춘을 하든가, 그런 전력이 있는 여성으로, 성병 등에 걸리지 않는 자의 국외 이송을 용인한다는 것이다(『종국위안부자료집』 자료5. 吉見 編).

 Ramseyer는 이 통첩을, 성매매에 여성이 동의하는 것을 보증하기 때문에, 스스로 경찰에 신청하지 않으면 도항증명서를 발급하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 점이 무시되고 있다.

첫째, 이것은 내무성이, 조건부로 ‘위안부’ 이송에 국외 이송 목적 인신매매를 적용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둘째, 식민지에는 같은 통첩은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식민지에서는 미성년자와 매춘 전력이 없는 여성도 ‘위안부’가 되었다.
셋째, 군에 의한 정규 허가 없는 자에 의한 徵募와 徵募에는 군의 양해·연락이 있다고 사실을 진술하는 업자를 단속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군 주도의 徵募를 인정하고, 또 그 사실을 몰래 감추려 했다.
넷째, 같은 해 3월 4일에 내려진 육군성 부관 통첩 「군 위안소 從業婦 등 모집에 관한 건」에서는, 업자는 군이 선정하고, 徵募에 즈음해서는 관련 지방의 헌병·경찰과 연대를 긴밀히 하도록 파견군에 지시했다(『종국위안부자료집』 자료6. 吉見 編).

요약하면, Ramseyer는 이 계약들이 모두 인권 침해인 것과 ‘위안부’ 徵募는 군·정부가 주도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 유괴는, 조선인 업자가 행한 데 불과하다는 것인가?

그래서 요지⑥도 오류다. 유괴로 ‘위안부’ 徵募가 있었다면, 그것을 묵인한 헌병·경찰에도 책임이 있다. 업자가 유괴한 여성에게 도항증명서를 발급하면, 정부·총독부 책임이 된다. 그 여성을 이송하고, 군 위안소에 넣으면, 군 책임이 된다. Ramseyer는,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있다. 유괴의 실례를 보도록 하자.

1942년 무렵, 우한武漢 병참에서 ‘위안부’ 성병 검사를 했던 나가사와 겐이치長澤健一 군의관은, 어느 날, 일본에서 위안소로 끌려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젊은 일본인 여성의 성병 검사를 담당했다. 이 여성은 “흐느껴 울면서, 나는 위안소라는 데에서 군인들을 위로해 주는 일이라고 듣고 왔는데, 이런 데에서, 이런 짓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이날 검사는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이 여성은 벌벌 떨면서 성병 검사를 받았다. 선급금이 있고, 또 업자에게 얼굴을 구타당했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나가사와 군의관은 추측한다(『한커우漢口 위안소』, 長澤健一).

이 여성은 계약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계약 주체가 아니다. 국외 이송 목적 인신매매죄와 유괴죄의 피해자다. 그러나 현지 부대도 군의관도, 위안업자를 체포도 하지 않았고, 여성은 해방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군은 인신매매와 유괴에 관련해 큰 책임이 있다.

1938년 말에는 조선에서 중국으로 이송된 송신도宋神道 씨는 열여섯 살 때, 부모의 결혼 강요로 가출해, 대전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중년 여성으로부터 “전쟁터에 가면 나라를 위해 일하기도 좋고, 어쨌든 결혼 같은 건 안 해도 돼”라고 꼬임을 당해 신의주 소개업자에게 인도되어, 우창武昌으로 연행되었다. 그래서 군이 설치한 ‘세계관’이라는 위안소에서 강제로 성병 검사를 받은 후, 먼저 군의관의 성 상대를 강요당했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자 업자에게 주먹으로 맞고 발로 차이는 심한 폭력을 당하고, “너는 빚을 지고 왔으니까, 빚을 갚고 가라”고 질책을 당했다. 빚이란 뭔 말이냐고 물으니, 이제까지 식대와 옷값, 조선에서 우창까지의 뱃삯, 기차 요금 등이 있다고 해서 거부할 수 없었다고 진술한다(『미래에 대한 기억』1, 西野瑠美子·金富子 편). 이것은 국외이송유괴죄에 해당하는데, 군은 이 범죄도 추궁하지 않았다. 이처럼 조선에서 ‘위안부’ 徵募는, 선급금 계약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미얀마로 이송된 스무 명의 조선인 여성들의 실태도 살펴보자. 잘 알려진 미국 전시정보국 심리 작전반의 보고에 따르면, 일본군은 1942년 8월 조선에서 미얀마로 703명의 ‘위안부’를 이송하는데, 여성들은 주선업자의 ‘거짓 설명’을 믿고 해외 근무에 응해, ‘수백 엔의 선급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 ‘役務’의 성격은 명시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병원에 있는 부상병을 돌보고, 붕대를 감아 주고,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하면, 장병을 즐겁게 해주는 데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주선업자들이 사용한 유괴의 말은, 많은 액수의 금전과 가족의 부채를 갚을 좋은 기회, 거기에 편안한 일과 신천지 – 싱가포르 –에서 새로운 생활이라는 미래성이었다.”(『종국위안부자료집』 자료99. 吉見 編).

Ramseyer는 이 자료를 인용하면서, 이 부분을 소개하지 않는다. 이것도 국외이송목적유괴죄와 국외이송목적인신매매죄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이며, 이 여성들은 유괴된 피해자였다.

■ 위안소 설치 주체는 누구인가?

유괴되거나, 인신매매된 여성을 군 위안소에 넣고 부렸다고 한다면, 군의 책임은 매우 중대하다. 요지③과 관련되는데, 군 위안소에는 첫째, 군 직영 위안소, 둘째, 군 전용 위안소, 셋째, 점령지에 있는 민간 매춘업소를 군이 이용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지정하는 위안소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군 직영 위안소와 군 전용 위안소 설치와 운영 주체는 업자가 아니라 군이었다. 군 직영 위안소에서 인신매매되거나, 유괴된 여성이 ‘위안부’가 되었다면, 가장 중한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군이 되며, 군이 주범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군 전용 위안소는, 지명된 업자에게 경영하게 하지만, 군이 감독·통제했다. 위안소 건물부터 식료·의복과 콘돔 등 위생용품까지 군이 제공하고, 이용 규칙과 요금도 군이 정하며, 여성들의 정기적 성병 검사는 군의관 또는 위생병이 행했다(『종군위안부』, 吉見). 여기서도 가장 중한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군이며, 군이 주범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군 지정 위안소의 경우, 지정 기간에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역시 군이다.

오히려 요지④에서 Ramseyer는, 위안소 설치 목적에 대해 성병 예방을 강조한다. 그것은, 군은 업자에게 성병 관리를 요구하는 대신에 병사의 다른 매춘업소 이용을 금지했다는 있을 수 없는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이다. 군은 위안소 업자를 위해 병사의 민간 매춘업소 이용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군인의 성병 감염을 두려워해 금지했다.

■ ‘위안부’는 계약대로 폐업할 수 있었을까?

계속해, 논문의 경제적인 논의를 검토해 보자. 요지②에서 Ramseyer는 ‘위안부’의 선급금은 600엔에서 700엔, 햇수는 2년이 일반적이라고 하며, 급여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논거의 하나는, 고베의 매춘업자 오우치 도시치大內藤七가 1938년 초에, 상하이 파견군 위안소의 ‘위안부’를 2년 계약·선급금 500~1,000엔이라는 조건으로 모집하고, 실제로 2명의 작부를 642엔과 691엔으로 계약했다는 이바라키茨城현 지사의 보고(2월 24일자)다(아시아역사자료센터 A05032040800). 그러나 이 하나의 예로 일본인 ‘위안부’ 선급금과 계약 햇수를 대표하게 할 수 없다.

더욱이 업자가 ‘위안부’에 얼마의 임금을 실제로 지급했는지를, Ramseyer는 전혀 검토하지 않았는데, 요지⑦처럼 단정한다. 또한 요지②의 마지막 한 문장도 문제로, 1925년 매춘부 선급금 금액·햇수와 1937년 이후 ‘위안부’의 그것과 비교라고 하는,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선급금·햇수를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욱 큰 문제는, 선급금과 계약 햇수가 여성을 매매하기(성매매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노예적 구속을 하기) 위한 조건인 사실을 Ramseyer는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요지⑩에서 Ramseyer는 ‘위안부’가 계약에 따라 폐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증거는 있기나 할까. 실제로는, ‘위안부’가 위안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계약이 있는 경우, 첫째, 선급금과 추가 빚 전액 변제 또는 계약 기간 만료에 더해, 둘째, 위안소 업자의 허가, 셋째, 군의 허가, 라는 세 가지가 필요했다.

예를 들면, 군 위안소 조선인 종업원 일기(1944년 7월 9일)에는, ‘위안부’ 가네모토金本 자매가 “이번 귀향을 위해 폐업하고 싶다고 하자, 주인 니시하라西原 씨가 승낙해서 오늘 폐업계를 냈다”는 내용이 있다(『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안병직 편). 말레이 군정감부 「위안 시설 및 여관 영업 준수 규칙」(1943년 11월 11일) 제13조에는 “영업자 및 매춘부의 경우, 폐업하고자 할 때는 소관 지방 장관에게 청원 허가를 받을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아시아역사자료센터 –C14060640400).

사례를 들면, 어느 ‘위안부’는 채무를 모두 상환했지만, 戰況을 이유로 군은 귀국을 인정하지 않았다(『종국위안부자료집』 자료100. 吉見 編). 앞에서 본 미얀마의 조선인 ‘위안부’ 20명은 1년 이하 계약이었다고 하는데, 1942년 8월 랑군 도착 후, 미군 보호를 받는 1944년 8월까지, 해방되지 않는 상태로 이미 2년이 경과하고 있었다. 군 위안소 종업원도, 미얀마에 있었던 두 명의 ‘위안부’는 폐업하려고 했지만, “이번 병참 명령으로 다시 위안부로 긴센칸金泉館(위안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라고 1942년 7월 20일자에 적혀 있다(『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안병직 편).

더욱 큰 문제는, 계약이 아니라 유괴된 경우다. 송신도처럼 기약 없이 구속된 여성들이 많았다. 또한 중국 산시성의 완아이후아萬愛花 씨와 하이난도海南島의 황유리앙黃有良 씨, 필리핀의 Maria Rosa L.Henson 씨, 자바섬 스마랑의 Jan Ruff O'Herne 씨 등, 군·관헌에 의해 폭력적으로 연행된 많은 여성도 계약서 따위는 없고, 언제 해방될지는 전혀 몰랐다.

■ ‘위안부’는 고수입을 올렸을까?

요지⑧에서 Ramseyer는, ‘위안부’는 저금을 하고, 그 가운데 문옥주文玉珠 씨가 가장 훌륭했다고 한다. 그러나 저금통장을 가질 수 있었던 ‘위안부’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다.

덧붙여, 문 씨가 가지고 있던 통장은 야전군사우편저금통장이다. 그것을 ‘위안부’가 가지고, 송금할 수 있었다고 하면, 여성들은 Ramseyer가 말하듯이 민간 ‘매춘부’(성매매 피해 여성)가 아니라, 일본군이 군무원에 해당하는 신분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부언하면, 사네모토 히로지實本博次 후생성 원호 국장은, 1968년 4월 26일 중의원 사회노동위원회에서, 군과 ‘위안부’ 사이에 고용 관계는 없었지만, “전쟁지에서 (군) 시설, 숙소 등의 편의를 주기 위해서는, 뭔가 신분이 없으면 안 되기에, 무급 군무원과 같은 신분을 주어 숙소 기타 편의를 제공했다”라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위안부’도 업자도 민간 영업자가 아니라, 무급 군무원이었던 게 된다. 또한 군은, 1942년 이후는, 위안소 업자·‘위안부’에 대해 ‘軍從屬者’라는 자격을 부여한다(『종국위안부자료집』 자료21·22. 吉見 編).

이야기를 되돌려보자. 요지⑨에 있는 대로, Ramseyer는, 업자는 규모가 큰 선급금을 초과하는 돈을 ‘위안부’에게 지급했다고 하며, 그 근거로 문옥주 씨의 회상과 위안소 종업원 일기를 든다.

Ramseyer는 문옥주 씨의 회상을, 原典이 아니라 한국의 우파 사이트에서 인용한다. 거기에는, 많은 돈을 모아, 1,000엔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랑군에 쇼핑가서 다이아몬드를 샀다고 되어 있어, 마치 업자로부터 받은 돈으로 고수입을 올린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인용한 문장 중에서조차 “나는 팁으로 상당한 돈을 모았다”라고 적혀 있지만, 이것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문 씨는, 회상기에서는 “마쓰모토(업자)는, 우리에게서 표를 받았을 뿐 전혀 돈을 주지 않았다” “(파업했을 때만) 돈을 조금만, 그렇게 1엔인가 2엔만 주었을 뿐이다”라고 하며, 군인들에게서 “조금씩 받은 팁이 모여 큰 금액이 되었기” 때문에, 우편저금을 시작했다, 고 진술한다(『文玉珠』, 森川万智子). 그렇다고 하면, ‘위안부’는 업자와 교섭해 고임금을 벌었다는 Ramseyer설은 근거가 없는 게 된다.

더욱 주의해야 하는 것은, 당시 미얀마에서는 hyperinflation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표1). 미얀마 군정사 연구자인 오다 쓰네죠太田常蔵[1907~1968년. 동양사학자]는, 이 인플레이션을 “1944년 후반 이후의 전황 불리는, 군표 가치를 감소시키고, 1945년 3월 미얀마 중부의 Mandalay가 함락된 후는, 군표는 거의 무가치하게 되어 버렸다”라고 논술한다(『미얀마 일본 군정사 연구』, 太田常蔵).

문 씨의 우편저금 원부에 따르면, 그녀는 1945년 9월까지 합계 25,742엔을 저금하는데, 그 태반인 20,860엔은 군표 가치가 거의 제로가 된 1945년 4월 이후에 이루어진다(『文玉珠』, 森川万智子). 군인·군무원은 군표를 소지하고 있어도 사용 가치가 거의 없어, 팁으로 문 씨에게 건넸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데에도, 군 위안소 조선인 종업원은, 싱가포르에서 폐업한 ‘위안부’의 돈 11,000엔을 1944년 12월 4일에 송금한다(『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안병직 편). 이 금액은, 조선의 엔으로 환산하면 134엔 90전에 이른다. 이것이 약 2년 동안 구속 상태에서 성적 사역을 한 보수였다고 한다면 보잘것없는 액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월 약 5엔 60전).

또한 송금된 엔을 그대로 찾을 수 없었다. ‘위안부’들이 인플레로 팽창된 군표를 모아서 저축해 송금했다고 해도 “외지 송금 인출액 제한·예금 동결 조치로, 매월 규정 생활비 수준을 넘는 액수는 찾을 수 없었다.(『京大 東아시아센터 뉴스레터』555호, 「동아시아 역사 인식의 벽」, 호리 가즈오堀和生). ‘위안부’는 ‘상당한 고수입’이었다는 Ramseyer의 단정이 사실에 반하는 것은 분명하다.

■ 위안소 대우는 좋았을까?

논문 전체를 통해 Ramseyer가 논하는 바의 큰 문제는, 위안소에 있었던 여성들의 상태가 어떠했는가에 대한 검토 결여다.

1926년에 제정된 노예제조약에서 말하는 노예제의 요체는 “사람의 지배이며, 지배란 사람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중대한 방식으로 박탈하는 것이다”라고 이해되고 있다(『전쟁 책임 연구』84호, 「국제법에 있어서 성노예제와 ‘위안부’ 제도」).

여성들은, 위안소의 좁은 자기 방에서 기거하며, 거기서 장교·병사의 성 상대를 해야만 했다. ‘주거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군이 작성한 위안소 규정에 따르면, ‘위안부’는 외출을 금지당하든가, 군의 허가를 받아야 만 외출이 가능했다. 위안소 규정에서는 ‘폐업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고, 계약이 있는 경우에도 ‘위안부’는 전술한 세 가지 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그만둘 수 없었다. 장교·병사와의 성교를 거부할 자유는 없었다. 또한 정기적인 성병 검사를 강제당하고 있었다. 따라서 ‘위안부’ 제도는, 군이 만들어, 관리·운영하는 성노예제도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일본군 ‘위안부’ 제도란 뭔가』, 吉見).

이런 점을 무시하고, 업자와 ‘위안부’의 계약에 관한 교섭을 상정하는 Ramseyer의 논의는, 공상 위에서만 성립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 맺으며

마지막으로, Ramseyer의 계약론에 관한 문제점을 정리해 두자.

첫째, 그는 군과 정부가 ‘위안부’ 제도라는 성노예제도를 만들고, 유지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업자는 주역이 아니라, 군의 수족, 군의 종속자로 부려진 것이다. 위안소 요금조차 업자가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군이 결정했다. 선급금도, 그 전부 또는 일부를 군이 낸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추측되는 점도 부언해 두고 싶다.

둘째, 계약이 있는 경우에도, ‘위안부’는 계약을 체결하는 주체가 아니었다. ‘매춘부’(성매매 피해 여성)가 아닌 여성의 경우, 계약은 친족과 업자 간에 체결되고, ‘매춘부’(성매매 피해 여성)의 경우, 현재 포주인 업자가 교섭에 깊이 관여했다.

셋째, 계약이 있는 ‘위안부’는 많은 일본인 여성과 일부 조선인 여성뿐이었다. 계약도 없이 군과 업자에 의해 약취 또는 유괴되어, 위안소에 구속된 조선인·중국인·타이완인·필리핀인·인도네시아인·네덜란드인·동티모르인 등 많은 여성이 있었다. 선급금도 햇수 계약도 없이 위안소에 구속된 많은 여성에게는 해방 조건은 없었다.

넷째, 계약이 있었던 경우에도, 계약 기간이 지났든가, 선급금을 상환해도 귀국할 수 없었던 여성들이 수많이 있었다.

다섯째, Ramseyer 논문 속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았거나, 제시된 증거는, 반대의 것을 얘기하거나 하는 사례가 몇 개나 존재한다. 그가 멋대로 만들어낸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이 논문은 파탄이 났고, 학술 논문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섯째, 무엇보다 위안소에 구속된 ‘위안부’가 유곽·요리점 등에 구속된 매춘부·작부와 마찬가지로, 성노예제의 피해자였다는 중대한 인권 침해 문제를 무시하고 Ramseyer가 논의의 체계를 세운 것은 치명적이다. 계약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인신매매계약이며, 여성을 성노예제 속에 구속하는 계약이며, 가령 계약 기간이 단 하루라 하더라도, 중대한 인권 침해가 되는 계약이었다.

이렇게 Ramseyer가 논하는 바는, 이제까지 일본에서 유통되던 ‘위안부’=상행위라는 논의의 표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 수정주의의 주장이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誌의 동료 심사를 통과한 사실도 큰 문제다. 이 논문을 재심사한 후에 게재를 철회하도록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誌 에 강력하게 권고하고 싶은 심정이다. (『世界』, 202105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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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불초자  2021년6월2일 13시29분    
주제에서 벗어난 글을 올려 김종익 선생님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대로 끝난다면 대한민국은 소생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붓을 들게 만들었군요.
우리가 정민 군 사건에 분개하는 것은,
그 안에서 제2의 세월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러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모든 분들이 인내롭게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경찰은 성찰해야 한다!
경찰의 불공정함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는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목격자의 진술을 왜곡해 전혀 다른 것으로 수사결과라며 발표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까치발 사진을 찍은 목격자는 정민 군 부친과 경찰, 양측에 동시에 사진을 제보했고, 그 사진을 찍은 경위 역시 설명했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분은 경찰이 발표한 내용이 자신의 진술과 크게 달랐다는 사실을 알고, 왜 경찰이 그런 발표를 했는지 분개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기사 내용을 올린다.
왜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정민 군 부친이 경찰과 각을 세웠는지 여러분도 이제 보았기를 바란다. 이런 식이면 어느 누구도 경찰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함은 당연하다. 언론 역시 조금만 부지런했으면, 이런 사실이 금방 드러날 텐데도 경찰의 내용을 받아, 우리 안방에 그대로 전달하기에 바빴다.

https://news.v.daum.net/v/20210530103627396
(주머니 뒤척인 것이 깨우는 것이라고 말했다고요? 그건 전혀 깨우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그냥 차라리 저랑 한 대화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ㅠㅠ )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것은,
경찰은 실족사에 무게를 두고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결론을 미리 지어놓으면, 아무리 잘된 수사라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진실에서 그만큼 멀어질 위험이 도사리게 된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경찰은 타살의 정황이라고 볼 수도 있는 목 뒤의 자상과 뺨 파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인과는 관련이 없는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만 얘기가 되고 있을 뿐이다.
단 한번의 가격으로도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급소가, 경동맥이 지나는 목 부위에 노출돼있다는 것을 우리는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에서 다시한번 확인한 바 있다. 정민 군의 혈액이 이곳에서 흘러나왔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왜 우리 경찰이 이래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신이 물살에 휩쓸려다니는 상황에서, 시신을 건져올리는 과정에서 이런 상처가 났을 수 있다는 발표가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뺨 근육 파열도 마찬가지다. A군이 정민 군을 깨우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근육이 파열될 정도라면 살인미수에 가깝다. 이것을 전문수사기관이라고 하는 경찰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있는 것이 정말 그들이 수사에 의지가 있는 사람들인지 묻게 된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모든 것을 모른다는 A군에 대해 경찰은 과분할 정도의 태도를 취한다. A군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가 취하지 않았다고 믿게 만드는 정황들이 더 많이 포착된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경찰 발표보다도 CCTV에 집착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경찰의 기본은 의심나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취조한다는 것에 있어야 한다. A군 한 사람만을 놓고 사건을 구성하니 결론은 무혐의로 끝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누가 사람이 들락거리는 장소에서 대범한 행동을 하겠는가!
허나 <조력자>라는 또다른 변수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강력한 변수가 있음에도 경찰은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배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조력자라는 변수를 넣으면 이 사건은 다른 차원으로 전개가 된다. <진짜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A군의 그날의 복장과 동선은 그만큼 자유로워지면서, 그가 머물렀던 시간대와 장소는 더는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우리 경찰이 이런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납득하기가 어렵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이 놓치고 있다는 것은, '검찰의 경찰 죽이기'라는 음모론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는 정상행동이 가능하다며 다른 목소리가 끼어드는 것을 방어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전문가답지 않은 태도였다.
SBS는 그런 상황이라면 프로파일러들이 아닌 알콜 전문가들을 섭외해 정말 그런지 여기에 대한 실험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 <공정>이고 <객관>이고 <공영>이다. 섭외가 편파적이라는 반증이다.
사인을 실족사로 고정하고, <조력자>라는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변수는 외면한 채, 공정한 척 했다. 방송이 비난받는 첫번째 이유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해놓고, 모든 것을 차단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런 경찰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강 의대생 실종사건은 실족으로 인한 익사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점이 많은 사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상적이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정의로움에 조금이라도 눈뜬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이다.
수사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사인을 실족으로 인한 익사로 정해놓은 상태에서, 프로그램의 구성을 짜고, 인원을 섭외하였다는 인상을 방송 내내 주었다.
보통, 평범한 서민들이 진솔한 얼굴모습을 하고 등장해, 평상시 같이 대화하듯 인터뷰를 하고, 그런 인물들이 프로그램 내내 등장하면서, 중간중간 전문가들의 소견들을 효과음과 조명 등의 편집된 영상과 함께 내보내면 사람들은 대개 이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방송언론의 심각성은, 그런 극적 연출을 여러 양식으로 극대화하여, 자신들이 이미 결론을 낸 방향으로 자원을 소집하고 시청자들을 통제한다는 데 있다. 생각할 기회를 주는 듯 싶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생각은 차단당하고, 방송이 끝나면 우리는 계몽인간이 된다.
이런 연출을 보았기에, 앞으로 더 많은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들이 같은 방향으로 결론을 낼 것이다. 만일 효과음, 배경음악, 조명, 화면 구성 등 모든 조작된 연출을 빼버리고, 현장 위주의 방송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방송이 끝나고 시청자들은 대번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 분위기를 타고 반론을 제기하는 프로파일러들도 다수 등장했을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이 대중에게 가하는 착시현상이고, 집단광기를 유발하는 무서움이며, 어떤 권력도 갖지 못한 언론의 파괴적 힘이다. 이 착시현상으로 언론은 무수히 우리 인류를 파괴해왔다.

(북한의 핵 폐기는 말하면서 정작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인 '세상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세상의 비핵화가 제 궤도에 오르면 혈육인 북한도 핵을 가질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는 진리를 외면함으로써, 핵독점으로 인한 더 위험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민 군 아버지 편에서 싸우는 전문가, 목격자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날 초대받지 못했다.
그날 방송은 의도적으로 시위대와 추모객들 가운데서 격정에 사로잡힌 사람들 위주로 인터뷰를 진행해 마치 태극기 부대의 광기를 보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다.
방송의 끝무렵에는 프로파일러를 다시 등장시켜 유튜버들을 공격한다. 악의적인 프로그램 구성이었다. 격노를 그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일개 누리꾼 수사대가 파헤치는 것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금전의 이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유튜버들도 분명 있다. 허나 늘 그렇듯 우리 인간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도 이 점을 계속 놓쳐왔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한 곳에만 집착해 자신들의 신앙을 전파했다. 수상택시 승강장에서의 실험은 예상한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즉 사람들이 가장 의구심을 품는 장소는 여기다!
이 수상택시 승강장은 일부 언론이 이 장소를 실족의 유력한 지점으로 지목하기도 했던 곳이었고, 마침내 이 부근에서 우리는 정민 군의 시신을 강물로부터 넘겨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양말에 벌흙을 묻히고 던지면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므로 대범하게 행동할 수는 없지만, CCTV의 사각지대이기도 하다는 맹점이 있다. 한번쯤 주의깊게 조사해봐야할 곳 중 하나였다.
허나 이를 지적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없었다. 섭외가 공정했다면, 이를 지적하는 프로파일러들이 있었을 것이다.

범죄심리학자라면 이 사건에는 조력자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도 추리해봤어야 했다.
이 사건이 실족사로 자꾸 좁혀지는 것도, 이 <조력자>라는 변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설마 있었겠느냐는 것이 우리 모두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왜 유독 이 사건에서만은 그것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공정수사를 기치로 내거는 경찰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미 온라인 공론장에서는 <조력자>가 유행처럼 번져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경찰과 프로파일러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행해가야 한다.
조력자라는 변수를 대입하면, A군의 복장과 동선이 그만큼 자유로워지면서 그가 머물렀던 시간대와 장소는 무의미하게 된다. A군보다는 그날 그 주변을 아무 이유없이 서성이던 사람들에게 수사의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비로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진짜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수사 영역에서는 불가능하게 여겼던 실족사(만취한 사람이 경사진 뾰족한 돌밭을 단 한차례의 긁힘도 없이 말끔히 통과하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오!)의 해명도 가능하다.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의지가 있다면, 그날 그 시간대, 동선이 미심쩍은 사람들을 조사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다루어야 할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보이는 실족으로 인한 익사(만취한 사람이 경사진 뾰족한 돌밭을 단 한번의 넘어짐도 없이 무사히 통과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오!)가 아니라 그 이전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목 뒤의 자상과 뺨 근육의 파열이 된다. 그것은 타살의 정황이 의심되는, 급소와 무관하지 않은 상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자상과 파열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누구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모른다. 사인과는 상관없는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만 얘기가 될 뿐이다.
그날 방송에서 깊이 패인 자상과 뺨이 파열될 정도의 충격에 집중하는 전문가들은 없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민 군 아버지쪽 사람들이었다면 이 점을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여기에 수사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맹점을 파고드는 것이 소위 프로파일러들의 역할이다. 하나의 결론을 상정하고, 여기에 따라 논지를 정리해 나가는 것은, 전문가답지 않은 태도이다.
범죄행위는 상식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도 완전범죄를 꿈꾸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시청자들은 반론도 듣기를 원했지만, 이런 일반의 범주를 뛰어넘는 가능성에 방송이 열려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지 못했음이 방송이 지탄받는 첫번째 이유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해놓고, 모든 것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조력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이어서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현재의 상황을 반전할 수 있는 얘기가 될 것이다.>>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객관적이지 못했고, 공정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실족으로 인한 익사'라는 점에 집착하고, 방송은 여기에 맞춰 현장실험을 하는 데 그 황금 시간대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알고싶다]는 종영될 때까지 민중사회의 말할 권리와 의미있는 결집을 원천봉쇄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익사가 왜 발생했는지에 관한 더 본질적이고 중대한 탐색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민중사회가 바라는 것도, 익사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임에도 공영방송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익사보다는 정민 군 목 뒤에 나 있는 깊은 자상과 뺨 파열에 대해 더 집중적인 탐색이 있을 줄 알았다. 목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숙이 찔린 것 같은 손가락 두 마디 깊이의 자상과, 뺨 파열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SBS는 다시는 전문가 섭외에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 정민 군 부모님 편에 서서 싸우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들의 말도 들어봐야 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민중사회를 한 편의 감동의 드라마로 잠재울 수 있다고 보았다면 크게 오판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명심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경찰의 수사결과에 수긍하지 못하는 것은, A군과 그 가족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이상하게도, 뭔가를 강하게 밀어버리는 듯한 장면, 취객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상적 통화, 걸음걸이, 일반적이지 않은 반바지 복장 등, 그가 심야 시간대에 벌인 정상적이지 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프로파일러들 역시 이를 두둔하며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정상행동이 가능하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들을 하고 있다. 필름이 끊어진 상태에서의 비정상의 행동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가 없는 그들이 신기할 정도다. 그날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들의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면 알콜 전문가들을 따로 불러 정말 그런지 공개실험을 했어야 했다. 편파의 전형이었다.
늘 그렇듯 우리 인간사에는 두 가지 이상의 측면이 맥동하며 흘러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바로바로 캐내고, 분석하는 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익사가 중요한 만큼, 익사 이전의 폭력 여부를 살펴보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왜 A군이 그 추운 새벽까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지(밤새도록 술을 마실 작정이었다면 긴바지 하나 정도는 챙겨야 했고, 긴 점퍼에 반바지는 사실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이를 추궁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없었다. 물에 들어가도 쉽게 젖지 않는 유일한 복장임에도 이를 놓쳤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실족사에 집착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A군이 계속 만취를 주장하며 모른다고 하기에 우리는 그날 그 시간대에 있던 모든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2차 가해라고 한다면, A군은 먼저 자신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승강장 근처에서 뭔가를 강하게 미는 듯한 장면, 편의점에서의 4인의 수상한 행적 등 많은 평범하지 않은 단서들을 찾았고, 어느 정도 수확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유튜버들의 광기라고 몰아가는 언론과 프로파일러들은 각성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관찰해 본바로, 정의에 목말라하는 유튜버들이 더 많았다.

<<바로 앞서도 말했지만, 놀랄만한 단서가 하나 나왔다. 현재의 상황을 반전할 수도 있는 중대한 단서였다. 역시 이 수확물은 제도권 언론이 아닌, 유튜버들의 광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A군과 그 가족이 이번 일과 무관하다 해도, 그들은 비난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에서조차도 정민 군과 그 부모에게 계속 범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독립운동가와 혁명가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범부였지만 인간이 된 이후 인간으로 계속 살아온 참<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세 유형이 우리 사이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에 목마른 인간 유형(소위 빨갱이),
처음부터 생각이라는 것에 둔감하여 농락당하기 쉬운 보수 유형,
처음에는 생각이라는 것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진보 유형!
물론 세상에 보수와 진보는 없다! 인간(빨갱이)과 비인간이 존재할 뿐, 보수와 진보는 저들이 만든 인간통제의 틀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초반에 있었지만, 늘 그렇듯 양쪽의 타협이 여기서도 역시 재현되었다. '인간유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인간>이 있었지만, 그들은 광기어린 집단으로 낙익찍혀 가고 있었다. 끝까지 생각의 끈을 놓치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구현할 수 없도록 만들어 보수와 진보만이 남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A라는 가족집단이 순간 섬찟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A군과 가족들은 분명 지구의 모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허나 우리는 반격을 시작할 것이다.

<<이미 반격이 시작되었다. 모든 CCTV를 공개하라! 공개하라! 공개하라!>>
<<집과 반포대교의 CCTV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라! 공개하라! 공개하라!>>

그들이 결백하다면 이것 한가지만 해 주면 된다.
A군네는 집과 주변의 CCTV를 공개하고, 경찰은 반포대교의 모든 CCTV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면 된다. 단 한번의 진실된 행동을 외면한 채 무수한 해명만을 남발하는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태도이다.
보수나 진보의 통제 가능한 탈을 벗어던진 우리 정예의 '휴먼<사람>'들은 그렇게 어리석은 종들이 아니다. 언론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장악하는 세상이지만, 속인다고 속일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이 길항의 조화야말로로 인류가 갈등을 반복하면서도 진화를 거침없이 수행하고, 그것으로 역사의 수레바퀴에 힘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하고 의미깊은 무력이다! 우리는 이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
수사기밀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이미 선을 넘은 상태다. 공개해서 이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것이, 기밀을 유지해 혼란을 가중하는 것보다 백배천배 옳은 결단이다.
이것을 못하겠다면, 민중사회는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은 한 청년의 죽음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이미 우리 사회에 타전하고 있다.
이 싸움이 불의에 맞선 응징의 성격이 되지 않기를 우리 민중사회는 호소한다.
떳떳하다면 CCTV를 공개하라, 우리의 요구는 그것뿐이다.
언론도 나서주기를 바란다. 공권력은 그 구조와 성격상 공정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굳어버린 조직이다. 허나 언론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SBS는 다시 [그것이 알고싶다]를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해 안방에 송출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공영'의 참뜻이다!

이 사건은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상적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왜곡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찰과 A군 가족측의 태도이다.
결백하다면, 모든 것을 공개하면 된다. 그런데 그들은 한사코 몸을 사리며, 마치 독사가 또아리를 틀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긍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A군 가족은 우리를 비난하지 말라, 왜 이런 소란스러움이 이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공개하지 않으니, 살인자, 조력자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공개하면 우리도 이럴 이유가 없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A군이 구토하는 CCTV장면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유리한 것은 바로바로 이런 식으로 공개가 되면서, 불리한 것은 독사가 되어 공격형으로 돌변한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 그것은 다른 차원이 된다. 유독 A군과 가족의 모습에서 그것이 계속 보인다.

<<이어서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앞서 말한 조력자와도 관련있는 얘기이다.>>

인내롭게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청년의 죽음의 의미를 이미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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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⑧ 1부 ...
                                                 
[오영수 시] 친정과 시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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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3 [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
6603 “한반도 평화공존 공동번영의 새...
6553 [오영수 시] 한국 검찰과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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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3 “공직사명 짓밟은 윤석열의 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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