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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25
수색 방해 공작 ④김현희가 블랙박스를 대신한다!
강진욱  | 등록:2021-03-02 15:56:52 | 최종:2021-03-02 16:17: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25
- 11월 26일 방송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25. 수색 방해 공작 ④김현희가 블랙박스를 대신한다!

앞에서 칸차나부리 추락설을 퍼뜨리고 최종 교신 지점을 속인 것이 잔해 수색 방해 공작 1단계, KAL 구명보트 발견설은 그 2단계라 했다. KAL 858편 여객기를 폭파시킨 자들이 벌인 잔해 수색 방해 공작은 모두 3단계에 걸쳐 완성된다. 3단계 공작은 보상 및 장례 협의. 3단계 공작 기간도 열흘이었다. 이렇게 1.2.3 단계 각각 대략 열흘 씩, 블랙박스가 자체 신호를 발신하는 한 달을 흘려보냄으로써 저들은 KAL 858 사건의 내막을 미궁으로 처박는데 성공했다. 2단계 공작 마무리 작업부터 보자. 

[KAL 858편의 구명보트 등 잔해 13점이 17일 오후 5시 버마에서 수색작업을 마치고 귀국한 대한항공 조중건 사장에 의해 우리 정부에 인계됐다. 조 사장은 김포공항 도착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구명보트는 실종기의 천장 부분에 있던 4개 중 하나인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보트 안에서 발견된 펌프의 플라스틱 부분과 쇠손잡이 부분이 45도 가량 휘어져 있어 폭발 사고를 당한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KAL 구명보트 등 부유물 13점 인수」<동아일보> 1987.12.18)

쇠손잡이가 휘어져 있으니 폭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구명보트가 KAL 858편 여객기에서 나온 것인지 정밀 조사해 보겠다”가 정답이었다. 그는 분명 누군가가 이미 내린 섣부른 결론을 그 누군가가 시키는대로 발설한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이틀 뒤 교통부도 그렇게 결론을 내 버렸다. “공중폭발해 전원 사망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문제의 구명보트 위치를 다르게 전했다.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이 버마 화물선에 의해[?] 수거된 구명보트 등 사고기 잔해를 인수받아 17일 오후 귀국했다. 조 사장은 이날 공항에서 “지난 13일 버마 화물선이 수거한 구명보트는 사고기 1번 출구 입구 맞은편에 탑재돼 있던 것으로 ... ] (「KAL 잔해 어제 도착」<조선일보> 1987.12.18)

( 1987.12.18 조선일보)

아무튼 이렇게 출처 불명의 구명보트를 ‘공중 폭발 전원 사망’의 근거로 조작하는 것으로 2단계 공작을 마무리한 뒤에라도 블랙박스를 포함한 비행기 잔해를 찾는 노력은 계속됐어야 했다. 구명보트를 들고 귀국한 조중건 KAL 사장도 말은 그렇게 했다.

[조 사장은 “동체를 찾기 위해 미 공군이 첨단 장비를 이용해 블랙박스를 찾고 있으나 수심이 깊고 해역이 넓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현재 인도와 버마 해.공군이 KAL 직원들과 함께 공중과 해상에서 수색 작업을 계속 중”이라고 말했다.] (「KAL 구명보트 등 부유물 13점 인수」<동아일보> 1987.12.18)

미 해군까지 동원돼 대대적으로 잔해 수색 작업을 벌이는 것처럼 떠벌렸지만 3단계 공작이 진행되는 열흘 동안은 미군이 블랙박스를 찾고 있다는 말은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잔해를 찾는 시늉조차 없었음은 물론이다. 조 사장은 누군가 시키는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 틀림없다.

돌이켜보면, KAL 858편 여객기가 실종된 뒤 전두환네가 미국 또는 미군에 블랙박스 수거를 위한 지원 요청을 한 적이 없다. 주한미국대사가, 미 해군이 무슨 부유물을 발견했다는 ‘썰’을 풀 때에야 비로소 ‘한국 정부가 미국에 잔해 수색 지원을 요청했다’는 생뚱맞은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왔을 뿐이다. 이마저도 신뢰할 수 없었다.

수색대를 산으로 끌고 다니고 엉뚱한 곳에서 난데없는 부유물을 찾았다고 떠벌린 뒤 정체불명의 구명보트가 발견됐다며 유족들의 혼을 쏙 뺀 자들은 곧바로 보상 문제를 앞세워 잔해 수색을 열망하는 유족들의 한을 유린했다. 조중건 KAL 사장이 문제의 구명보트를 가져온 지 하루 만에 교통부가 이 구명보트를 근거로 내세워 ‘공중 폭발, 전원 사망’을 발표한(12월 18일) 바로 다음날의 일이었다.

[대한항공 858편기의 실종 사실이 정부 측에 의해 공식 발표됨에 따라 사고기 탑승객 115명에 대한 1차 보상협의가 19일 오후 3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사고대책본부 2층 회의실에서 있었다. 이근수(李根秀) 대책본부장과 권귀옥(權貴玉) 씨 등 12인 가족대표 등이 참석 ... 가족 측은 1인당 보상최고한도액인 13만 달러와 보상금의 50%에 해당하는 위로금 등 총 1억5천여만 원 상당을 일률적으로 지급해 줄 것을 요청 ... 이날 협의에서는 또 장례 절차에 대한 논의도 ... 가족대표들이 전체 가족과 논의한 뒤 20일 중으로 결과를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유족 보상 문제 협의 KAL기 사고」<조선일보> 1987.12.20)

대한항공 측과 실종자 가족 측은 12월 19일부터 21일까지 세 차례 보상 문제를 협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또 21일 오후에는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3층에 탑승자 가족 100여 명이 몰려가 출국장을 점거한 채 대한항공 측의 성의 있는 피해 보상을 요구하다 기물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리다 경찰이 1개 중대 150을 투입해 이들을 강제 해산한 일도 있었다. 이날의 과격 시위와 농성으로 대한항공 출국장 입구의 대형 유리창과 출국장 내 X-레이 투시기 2대, 칸막이 유리 7장 등이 부서졌다.

이때 당시 유가족들은 ‘충분한 보상’을 바라며 하루빨리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자는 측과, 잔해와 시신이 나오기 전에는 보상이나 장례 문제를 협의할 수 없다는 측으로 나뉘어 있었다. 전두환 정권이 사건을 조작하고 사후 처리를 농단하는 상황에서 전자는 부지불식간에 저들의 의도에 말려든 셈이다. 이 전자 그룹은 전 정권이 요구하는대로 소복 차림으로 관제 궐대회에 나가 ‘북괴를 규탄’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에 반해 후자 그룹은 사건의 진상 규명이 먼저라고 여겼고, 하루빨리 잔해를 찾고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소복 차림으로 ‘북괴 규탄 궐기대회’에 나가는 일도 삼갔다.

전두환 정권은 ‘충분한 보상’을 앞세우는 전자 그룹을 적극 이용했고, 사건의 진상 규명과 잔해 및 시신 수습을 요구하며 보상이나 장례 문제 협의에 응하지 않으려는 후자 그룹을 감시하고 탄압했다.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도 일부 유족들은 대한항공 사고대책본부로 몰려가 보상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고(<조선일보> 1987.12.26), 12월 28일 아침에도 희생자 가족 50여 명이 서울 중구 서소문동 KAL 영업본부빌딩 앞 인도를 점거하고 “회사 측은 탑승객 1인 당 1억 2천만원 씩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2시간 동안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또 대한항공 측이 “사고 발생 한 달이 다 지나도록 사고기의 동체도 찾지 못하는 등 사고 수습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조선일보> 1987.12.29).

( 1987.12.26 조선일보)

이렇게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는 일부 유족들의 과격 시위와 농성이 연일 보도되는 가운데 시나브로 열흘이 지나가버렸다. 보상 이야기가 나온(12월 19일) 이후부터 꼭 열흘이었다. 블랙박스가 자체 신호를 발신하는 30일 시한이 종료되고 이제 전두환 정권의 시나리오대로 사건을 종결할 때가 온 것이다. 블랙박스 이야기는 차라리 ‘희망 고문’이었다.

[실종된 KAL기는 기체 수색과 수사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발생 한 달을 맞았다. 공중 폭발에 의한 해상 추락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어 여타 대형 항공사고가 그랬던 것처럼 이 사건도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KAL기 실종 ... 보상금 둘러싸고 지리한 입씨름」<경향신문> 1987.12.29)

[【방콕=연합】사고대책본부의 한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블랙박스 수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히고 “블랙박스는 바다에 떨어지면 염수에 의해 스스로 발전, 2마일 범위 내에 30일 간 신호를 보내도록 돼 있으나 29일로 이미 1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그 위치를 알아내 수거한다는 것은 거의 절망적”이라고 설명했다.] (「블랙박스 발견 절망적 - KAL기 추락 한 달... 어제 발신 기한 넘겨」<조선일보> 1987.12.30)

애초부터 블랙박스를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모든 것을 ‘김현희의 입’ 즉 ‘안기부의 KAL 858 공작 플랜’ 대로 꿰맞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저들은 사고기 잔해 수색을 방해하기 위해 수색대를 산으로 보낼 때부터 이미 김현희를 가리켜 ‘살아 있는 블랙박스’라고 불렀다.

[‘북한이 양성한 프로 공작원’ ‘장발의 미녀’ ‘자살도 불사한 대담한 테러리스트’ ‘살아 있는 블랙박스’인 그녀가 ...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때는 과연 언제일까.] (「‘살아 있는 블랙박스’ 마유미 묵비(默祕)」<경향신문> 1987.12.7)

( 1987.12.7 경향신문)

수색대를 산으로 보낼 때부터 이미 김현희를 가리켜 ‘살아 있는 블랙박스’라고 불렀다면, 저들은 처음부터 잔해를 수색할 마음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랬으니 사고기의 마지막 교신 지점을 속이면서까지 열흘을 날려보내고, 무슨 부유물이다 구명보트다 하며 또 열흘을 흘려 보낸 것이다. 그런 뒤 저들은 블랙박스 대신 ‘살아 있는 블랙박스(김현희)’를 전면에 내세우는 수순을 착착 밟은 것이 분명하다. 

[‘살아 있는 블랙박스’가 남아 있어 향후 그녀에 대한 수사 진척에 따라 사고 내용이 일거에 드러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을 뿐 ... ] (「KAL기 실종 ... 보상금 둘러싸고 지리한 입씨름」<경향신문> 1987.12.29)

실제로 저들은 KAL 858편 여객기 사건의 ‘모든 것’을 ‘김현희의 진술’(사실은 안기부 각본)대로 꿰맞췄음을 우리는 잘 안다. 먼 훗날, 사건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법공작의 귀재’ ‘법비’ 소리를 김기춘 씨가 한 말도, 저들이 KAL 858 사건을 기획할 때부터 이미 ‘살아 있는 블랙박스(김현희)’를 활용할 구상을 갖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 2005.2.4 서울신문. 글 말미에 김기춘의 코멘트가 실려 있다. KAL 858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해 온 신성국 신부도 김기춘의 인터뷰를 예시하며 “김현희를 싸고도는 세력들이 KAL 858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 신부 등이 쓴 책『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107∼108쪽에도 김기춘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이렇게, 블랙박스를 심연에 묻어버리고 ‘살아 있는 블랙박스’를 살려 그 입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조작하려는 3단계 공작이 완료된 다음 수순은 ‘공중 진혼제’(1988.1.9)였다.

[【방콕=이혁재 특파원】실종된 대한항공 959편기 탑승자 기내진혼제가 9일 사고기 추락 추정 해역인 벵골만의[?] 안다만해 상공에서 거행됐다. 유가족 157명(외국인 2명 포함)과 대한항공 관계자 등 197명의 진혼단(단장 최영원(崔永源) 한진그룹 상무)은 이날 낮 12시(한국시각)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방콕을 출발, 사고기의 항로를 거슬러 타보이-어디스-코코제도에 이르는 안다만 해상을 저공 선회하면서 ... 희생된 탑승자들의 넋을 달랬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진혼제는 법성(法成) 스님(조계사), 서병주(徐丙柱) 목사(석교교회), 송광섭(宋光燮) 신부(천주교서울대교구)의 독경과 기도 순서로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가운데 거행됐다.] (「KAL기 추락 해상서 기내 진혼제 거행」<조선일보> 1988.1.10)

( 1988.11.29 동아일보. 진혼제를 지낼 당시에는 이 사진이 공개되지 않다가 11개월이 지난 뒤에야 공개됐다.)

‘공중 진혼제’ 엿새 뒤인 1988년 1월 15일 안기부는 “북한 공작원 마유미가 ... ” 어쩌고 하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수사 결과를 만들어 놓고, 그 결과에 맞춰 증거를 조작하고 진혼제까지 연출한 뒤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수법! 이렇게 놀라우리만큼 치밀하고 간교한 연출기법으로 사건을 종결한 뒤 저들은 한가로이 김현희를 안기부장 특보실(특보 박철언)로 불러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역시 김현희를 ‘살아 있는 블랙박스’로 활용하는 각본이 짜여 있었음을 의심케 한다.

( 박철언 책『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1』291쪽. 박 씨는 “(안기부장) 특보실에서 KAL 858기 폭파범 마유미(김현희)를 면담한 후(1988년 2월 5일, 왼쪽부터 강근택 강재섭, 김현희, 필자(박철언), 김용환)”이라는 사진설명을 붙여 놨다.) 

( KAL 858 사건의 유족 한 명이 2006년 1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의 집 앞에서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박철언 등이 김현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있다. 2006.1.17 오마이뉴스)

전두환네는 이렇게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사건 발생 1년 뒤 유족들의 한 맺힌 절규는 계속되고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해외 건설노동자 등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명확한 진상을 밝혀달라는 유족들의 요구가 사건 발생 1년째인 오늘도 계속되고 ... 유족들은 북한공작원 김현희 등이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비행기를 공중폭발시켰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김현희의 자백에 의한 발표만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이제까지의 수색 일지 등 수색 과정 공개 △죽음의 증거가 될 수 있는 유품의 제시 및 재수색 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3월 창립된 이래 여러 차례 당국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진정, 탄원, 질의를 해 온 ‘대한항공 858기 탑승자 유족회’(회장 권기복.62)는 “정부가 올해 안으로 명확한 진상 규명을 해 주지 않으면 정부와 대한항공 쪽을 사체 유기 혐의 등으로 사직 당국에 고발하는 등 법정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정부가 안다만 해역에서 수거했다는 구명보트. 약품 등은 파괴되지 않은 채 있는 데 그 많은 유품이 흔적조차 없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의문을 제기 ... 유가족들은 정부가 정책 차원에서 폭파범 김현희를 공소 보류하거나 불구속기소 등을 통해 사면할 것이라는데 크게 반발, 지난 21일 청와대, 법무부, 검찰청 등에 진정서를 보내 김현희를 공개재판에 붙여 법정최고형으로 엄중 처벌해 줄 것을 요구 ... 권 유족회장은 “정부가 사면 결정을 하는 데 한 번도 유족의 뜻을 물어 본 적이 없다”며 “정부가 이같은 조치를 내린다면 이번 사건이 12.16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어난 조작된 사건이라는 일부의 의혹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라고 말했다.] (「“의혹 풀어달라 ... 김현희 자백만으론 미흡” - 유족들, 물증 요구」<한겨레신문> 1988.11.29)

(26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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