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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32
<부록>-1 버마행 특활비 20만불 누가 먹었을까?
강진욱  | 등록:2022-07-05 11:16:25 | 최종:2022-07-05 11:17: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32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32. <부록>-1 버마행 특활비 20만불 누가 먹었을까?

지난 31편 글(‘아웅산 테러리스트 = 강민철’의 생사)로서 ‘1983 버마 사건’의 실체 논증은 일단락됐다고 본다. 본고는 최 전 대사가 책에서 밝힌 전두환의 버마 행각 관련 외무장관 특활비 20만 달러의 행방을 살펴본다. 이 돈이 ‘증발’했다는 사실을 밝힌 이는 그가 처음이고 유일하다. 모두들 쉬쉬하며 감춰온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가 말하는 “외무부 역사상 유례없는 고액의 공금 횡령 사건”(최병효 책 151쪽)을 보자.

[2019.6월에야 처음 들은 것이지만, 버마로 출발할 때 이범석 장관은 외무부 예산에서 특별활동비 20만 불을 인출하여 이를 이지송 비서관이 들고 갔다고 한다. 사건 후 외무부에서는 그 돈의 행방을 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버마에 도착한 후 이를 이계철 대사에게 맡겼다고 진술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 대사는 현장에서 사망하였으므로, 그 돈의 소재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 돈은 장관이 필요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이를 이계철 대사에게 맡겼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최근 송영식 참사관에게도 문의하니 당시 20만 불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그 경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한다. ... 이 책을 쓰며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2020.7월 하순, 당시의 감사관실 직원에게 다시 확인하니 ... 장관이 특별활동비로 가지고 간 돈 20만 불이 행방불명되어 안세훈 감사관(주 쿠웨이트 대사 역임)의 지시로 장관실 관계자들과 주버마대사관에 문의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고  ... 감사관에게 이를 보고한 후 조사 중단 ... 외교기밀비와 관련된 사건이라 외부 기관에 수사 의뢰를 할 수도 없었다고 ...] (최병효 책 149-150쪽)

돈이 없어져 감사실까지 나서 조사했지만 돈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면 끝인가. 아니다. 전두환의 버마행 관련 문건을 직접 작성했고,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사건의 진행 경과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그라면 이 돈이 어떤 자(者)의 주머니로 들어갔는지 능히 추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특활비 20만 달러가 없어져버렸다는 사실 만 알뿐, 이 돈이 누구 손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사유를 거부한다.

앞글들을 탐독한 독자라면 이 돈 이야기를 들으면서 퍼뜩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오간 대화를 떠올릴 것이다. ‘1983 버마 사건’ 조작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장면! 사건 당일 오전 숙소에서 곧바로 아웅 산 묘소로 가기로 돼 있었던 이계철 버마대사를 영빈관으로 불러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끈 뒤 그에게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딸려 아웅 산 묘소로 보내는 장면!

( 장세동『일해재단』91쪽)

( 장세동『일해재단』92쪽)

“버마 측 영접요원들에 대한 격려 선물을 이 대사를 통해 전달하면 대사가 일하는데 여러 가지 도움 되는 ... ” 마치 이계철 대사를 생각해 버마 측 인사들에게 선물을 주려 했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뜬금없고 황당하다.『전두환 회고록』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두환 회고록-2』498쪽)

역대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방문국 영접 요원들에게 ‘격려 선물’을 준다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일까. 전두환은 이처럼 수상하기 짝이 없는 지시를 내렸고, 장세동 경호실장이 이계철 대사를 불러 그 지시를 전달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선물을 자신들이 “떠난 후에 대사가 직접 전달하라고 지시” 했단다. 모두가 행사 준비에 경향이 없는 시각에, 누구보다 빨리 현장에 가 있어야 할 대사를 불러 이런 황당한 지시를 내릴 이유가 없다. 5공 정권의 1.2인자의 수상한 언동을 한 꺼풀 벗겨보자. 라종일 씨의 해설.

( 라종일 책『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116쪽)

“이번 행사에 수고한 버마 측 인사들에게 약간의 성의 표시를 할 생각이었다.” 장 씨와 전 씨가 말한 ‘(격려) 선물’이 ‘성의 표시’로 바뀌었다. 보통 ‘성의 표시’하면 ‘촌지(寸志)’ 즉 약간의 돈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 씨나 장 씨가 사비로 촌지를 준비했을 리 없을 터. 그 ‘성의 표시’는 바로 ‘외무장관 특활비’를 염두에 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돈이 없어졌다.

“버마로 출발할 때 이범석 장관은 외무부 예산에서 특별활동비 20만 불을 인출하여 이를 이지송 비서관이 들고 갔다고 한다.”(최병효 책 149쪽) 버마 참극 이후 외무부가 감사실까지 동원해 20만 달러의 행방을 조사할 때 이지송 비서관은 ‘버마에 도착한 후 이를 이계철 대사에게 맡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대해 최 전 대사는 “그 돈은 장관이 필요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이를 이계철 대사에게 맡겼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사건의 전후 정황을 토대로 돈의 행방을 추리해야 한다. 이범석 장관 명의로 20만 불의 장관 특활비를 갖고 버마에 왔고, 전두환이 장세동을 시켜 버마 영접 요원들에게 수고한 대가로 “성의를 표시하라”했고, 장 씨가 이 대사를 직접 불러 이 지시를 전달했다는 것은 팩트(로 보인)다. 그러면 돈은 실제로 이지송 비서관의 말대로 이 대사에게 전달됐을 수도 있다. 그랬더라면 대사관 어딘가에 그 돈이 있어야 하고, 송영식 참사가 이를 모를 리 없으며, 사후 감사에서 돈의 행방이 밝혀졌어야 한다.

그런데 돈은 사라졌고 ‘돈을 쓰라는’(“성의 표시 하라”) 지시만 남았다. 이 대사가 써야 할 돈이었는데 그가 죽고 없으니 그 돈이 지시대로 쓰였을 리 없다. 그러면 돈은 이 대사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누군가 ‘꿀꺽’ 해 먹은 것이다. 우선 이 씨가 그 “돈을 이계철 대사에게 맡겼다”고 말한 것부터가 매우 수상한 일이었다. 현지 대사가 2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직접 받을까? 그럴 리 없다. 당시 최병효 전 대사는 ‘의전팀이 맡기고 간 출장비’ 30만 달러를 버마 대사관에 맡겼다가 귀국할 때 찾아왔다고 밝혔다.

[나는 사건 직후 특별기를 타고 서울로 귀국하는 외무부 의전팀으로부터 받은 현금 30만 불을 계속 들고 다니다가 틈을 내어 대사관에 가서 총무직원으로 하여금 대사관 금고를 열도록 하여 그곳에 보관해 두었다. 이후 서울로 귀국할 때 이를 찾아서 들고 왔다. 나는 당시는 물론이고 작년 여름까지도 장관이 따로 20만불을 가지고 출국했었다는 사실도, 또 사건 후 돈의 행방을 노재원 차관(외무부장관 대리)까지 나서서 조사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 ] (최병효 책 150쪽)

이지송 씨가 20만 달러를 ‘이계철 대사’에게 인계했다면, 최 전 대사처럼 현지 대사관에 맡겼어야 하고 인수증을 받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는 사후 감사에서 그는 ‘대사관에 근무하는 누구누구에게 맡겼고 인수증은 여기 있다’고 진술했을 것이다. ‘버마에 도착한 후 이를 이계철 대사에게 맡겼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진술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의 진술은 거짓말이다. 실제로 당시 외무장관 특활비는 안기부가 관리하고 있었다. 사실상 안기부 쌈짓돈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외무부 외교활동비의 상당 부분은 정보활동비 명목으로 안기부 예산에 편성된 것을 안기부로부터 받아서 사용하였다. 이는 안기부가 외무부의 활동을 철저하게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 .. 안기부는 ... 외무부와 모든 재외공관의 활동에 대한 감사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 감사원이나 외부 수사기관의 조사는 법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공금 20만불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더욱 극비로 취급되어 나도 몰랐었다.] (최병효 책 150-151쪽)

이랬다면 외무장관 특활비 20만 달러는 안기부 출신 이지송 비서관이 인출해 들고 갔다 ‘안기부 수중’에서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당시 감사는 형식적이었고 ‘버마에 도착한 후 이를 이계철 대사에게 맡겼다’는 그 빤한 거짓말조차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 세계 공작사에 한 획을 그었을 희대의 국가조작극 뒤에서 국고 20만 달러가 털린 사건은 그렇게 유야무야된 것이다. 이 씨의 사후 행적을 보면 ‘20만 달러 증발 사건의 핵심 고리’인 그의 역할에 대한 의심이 더 커진다.

[사건 후 서울로 돌아온 그는 한국을 영원히 떠나고 싶으니 LA총영사관에 영사로 보내달라고 외무부에 요청하여 머지않아 LA로 떠났다. 원래 별정직으로 장관 비서관에 임명된 것이니 장관 사망 후 공직에서 자동 퇴임해야 하나 사정을 감안하여 다시 특별채용된 것 ... 그는 LA에서 임기가 끝난 후에는 현지에서 사표를 내고 정착 ... 내가[최병효] 2006.3월 LA 총영사로 부임하였으니 현지 동포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이를 알고 있었을 터인데 아무 연락이 없었다.] (최병효 책 149쪽)

“자동 퇴임해야 하나 사정을 감안해 특별 채용” 형식으로 LA총영사가 됐다는 말은 그가 매우 특별한 배려를 받았다는 말이다. 이지송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는 어쩌다 이범석 외무장관 비서관으로 채용된 것일까. 최 전 대사는 그가 “해군 대령 출신으로 안기부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 이범석의 외무장관 취임 후 곧바로 이 장관의 수행비서관(별정직 4급)으로 채용됐다”고 밝혔다. 또 “평양에서 이범석 장관과 한 동네에서 살다 전쟁통에 남하해 군인이 됐다”고도 했다(최병효 책 149쪽).

최 전 대사의 이런 해설은 이범석 장관이 이지송 비서관과 매우 친했고 그를 신뢰해 장관 비서관으로 채용했다는 말로 들리지만 곡해 소지가 많다. ‘한 동네’에서 살아도 모르는 사이일 수 있다. “한 동네에서 살다 전쟁통에 남하해 군인이 됐다”는 표현은 이 장관과 이지송의 친분을 조작 또는 과장한 누군가의 전언이었을 것이다.

이지송은 십중팔구 월남 후 미군 특수부대에 소속돼 대북공작원으로 일하다 중앙정보부(또는 그 전신인 육군방첩대)를 거쳐 안기부 대공 조직으로 흡수됐을 공산이 크다. 대지주 집안의 귀한 아들로 태어나 일제와 미 군정기에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범석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다. 이 장관이 그를 비서관으로 채용했다는 최 전 대사의 해설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또 이범석의 장관 기용 전의 행적, 특히 통일원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소신껏 일하다 전두환 정권 내부자들과 심한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앞글 5편), 이 씨의 비서관 채용은 이 장관의 뜻이 아니라 이 장관을 감시하려는 전 씨 내부자들의 뜻이었을 공산이 매우 높다.

실제로 이범석이 아낀 절친한 후배로, 오랜 기간 이범석의 비서로 일했던 이는 따로 있었다. 이범석이 버마로 떠나기 전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이. 정성근(鄭誠根). 허영섭이 지은『초강 이범석 평전』(2018)은 정성근을 “고대 재학 때부터 가까이 지냈고, 튀지니와 인도 대사로 나가 있을 때도 서울에서 처리해야 하는 잔심부름을 도맡아 처리해 주었던 후배”라고 소개했다(517쪽). 정성근은 자신과 이범석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30년 간 비서처럼 이범석 장관을 가까이 모셨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때부터 비서관으로 들어갔지만, 그 전에 고려대학교 선후배로서 형님과 아우같은 사이였다. ... 이 장관은 광복 후 누님 댁에서 고학을 하다시피하며 대학에 다녔는데, 후배를 워낙 좋아하던 분이었다. 6.25가 터진 후 부산 피난 갔을 때, ... 남포동 거리에서 이 장관과 우연히 마주쳤다. ... 이 장관은 지갑을 꺼내 ... 이후 내가 군대에 가느라고 한동안 이 장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장관은 그 후 외무부 의전실장을 거쳐 튀니지 대사로 발령 ... 정부는 ... [남북]적십자회의를 열고자 ... 그때 수석대표로서 가장 적격자로 지목된 것이 바로 이 장관이다 ... 군대 생활을 마치고 중앙정보부 한 연구기관에서 연구요원으로 일하던 내게 어느 날 이 장관이 전화를 ... “너, 나 좀 도와줄 수 있겠냐?” ... 다음날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 사무실로 가자 이 장관은 나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그렇게 나는 비서실장이 되어 평양도 네 번이나 갔다 오는 등 인연을 이어갔다. 남북적십자회담에 이어 이 장관은 인도 대사로 ... 전두환 대통령 아래서 통일원장관이 되었고, 나도 통일원장관 비서로 가게 되었다. 이 장관이 다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갔다가 외무부로 오게 되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날 그만 놔 주십시오. 다시 적십자로 가겠습니다.” 이 장관이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결국 허락을 받아 나는 다시 적십자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일주일에 한 번쯤은 이 장관을 뵈러 갔고, 공적인 일이든 개인 일이든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특별한 관계였고, 그만큼 이 장관은 매사에 날 무척 신뢰해 주셨다.] (『초강 이범석 평전』후기 545-546쪽)

이렇게 이범석가 가까웠던 정성근은 왜 자신을 “그만 놓아 달라”고 말했을까? 그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이 정말 적십자 일을 하고 싶어서였을까? 그 적십자 일이 장관 비서관 일보다 나을까. 아닐 것이다. 누군가 이범석을 외무장관 자리에 앉히면서 그의 곁을 지키는 정성근을 떼 내고 월남한 군 출신 안기부맨을 붙인 것이다. 정 성근은 또 이범석이 버마로 떠나기 전날 자신을 부른 이야기를 한다.

[장관실로 찾아뵈었을 때 이 장관은 평소처럼 당근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이발을 하러 간다고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장관들만 타는 그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자고 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나를 꼭 껴안는 게 아닌가. “나 이번에 가기 싫은데 말이야. 어쨌든 잘 다녀올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이 장관이 돌아가신 후 가족을 제외한다면 가장 억울한 사람은 나일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옆이 허전한 것은 바로 이 장관의 그 큰 빈 자리 때문일 것이다.] (『초강 이범석 평전』546쪽)

허영섭은 이범석과 정성근의 마지막 이별 이야기를 좀 더 실감나게 전한다. 이범석이 주스를 마시고 나서 이발을 하러 가야 한다며 일어선 뒤.

[그날따라 어딘지 분위기가 달랐다. 국무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자며 이범석이 정성근의 팔을 슬며시 잡아끌었던 것이다. 그 전에는 그가 정부청사로 외무부를 방문하더라도 국무위원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깔린 복도의 빨간 카페트 앞에서 헤어지곤 했다. 외부 방문객은 일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이범석은 평소답지 않게 초조한 표정이었다. 뭔가 미련이 남아 있는 듯도 했고 아쉬운 듯도 했다. “이번에는 정말 가기 싫다”는 말도 했다. 마침 엘리베이터 안에 다른 사람이 없었기에 생각대로 불쑥 내뱉은 말이었을 것이다. 정성근도 “아무 걱정 말고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건네면서도 찜찜한 기분이긴 마찬가지였다.] (『초강 이범석 평전』517쪽)

이렇게 이범석의 마지막을 전송한 정성근은 자신이 이범석 곁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밝혀야 하지 않을까.

P.S.

전두환네의 버마 행각 당시 누군가 국고에서 빼 먹은 돈은 20만 달러 말고 더 있을지도 모른다. 이범석 장관의 부인 이정숙 씨는 1994년 펴낸 사부곡『슬픔을 가슴에 묻고』에서, 전두환이 버마에 도착한 뒤 ‘난데없이’ 이범석 장관에게 50만 달러 상당의 안과병원을 지어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 이정숙『슬픔을 가슴에 묻고』241)

( 이정숙『슬픔을 가슴에 묻고』242)

외무부가 일체 모르는 일을 대통령이 외무장관에게 지시할 수 없다. 이는 ‘버마 영접 요원들에게 성의를 표시하라’는 지시만큼이나 황당한 이야기다. 전두환의 지시는 아마도 수출입은행의 해외원조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돈 역시 안기부 예상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1984년에도 외무부 공금 횡령 사건이 있었다. 최 전 대사의 회고.

[내가 1984.3월 말 런던의 우리 대사관에 부임한 지 두 달여 만에 내부적으로 밝혀져 문제가 된 대사관 총무담당 행정직원 이창원 등 3등서기관의 횡령액도 20-40만불 ... 본부에서 온 감사관들이 쉬쉬하며 조사하였기에 정확한 액수는 모르고 소문으로 20-40만불로 알려졌다. ... 국내 행정부에서 전입해 온 직원 ... 이창원 ... 미국으로 도주해서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우리 정부가 미국에 그를 공식적으로 소환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최병효 책 151-152쪽)

(3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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