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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징용자 배상 판결 ‘해석’을 바꾼 것은 누구인가?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는 글
김종익 | 2019-07-25 07:06: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국 대법원의 전 징용자 호소를 인정한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와 언론 등의 반발이 계속되고, 마침내 최악의 외교 사태까지 이르렀다. 도대체 이 판결의 배경은 뭔가. 개인 청구권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취급되어 온 것일까. 그동안의 역사적 사실 관계를 통해 일본의 표리부동한 처사를 고발하는 일본인의 글을 통해,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필요한 것은 사실 관계 확인이다. 역자 주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후쿠오카 지방 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일본 측의 이상한 한국 비난

2018년 10월30일의 한국 대법원 판결은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의 상고를 기각하고 강제 징용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확정했다.

원고들 중 두 사람은 미성년이었을 때 감언에 넘어가 응모해 오사카에서 현지 징용되어 일본제철 오사카공장에서 생사를 건 위험한 중노동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임금도 지불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외의 원고들도 도망을 기도해 구타당하는 등 가혹한 노동과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피해로부터 70여 년, 일본의 재판소에 제소한 이래 20년 남짓, 여덟 번째 판결에서 드디어 승소가 확정되었다.

살아서 대법원 판결을 들을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인 94세의 원고 이춘식씨는 판결 당일에 서울에서 기자 회견을 했다. 그러나 그것을 일본에서 보도한 것은 통신사의 전송을 받은 몇 개의 지방 신문뿐이었고, 일본의 정치가나 매스컴으로부터 원고들의 오랜 세월 고난에 대한 위로의 말이나 식민지 지배와 가혹한 인권 침해에 대한 반성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는커녕 판결에 대해 아베 수상은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 고노 외상은 “양국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으로부터 뒤엎는 폭거” 등으로 비난하고, 대부분의 매스컴과 ‘지식인’들도 거기에 추수해 한국 비난의 대합창 대열에 동참할 뿐이었다. 이런 것들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50여 년에 걸친 양국 사이의 굳은 약속을 한국이 일방적으로 팽개쳤다고 여겨 분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매스컴도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실은 한일청구권협정의 체결 이후 “청구권협정으로는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역설해 온 것은 일본 정부이며, 2000년도 전후로 피해자를 배신하는 듯한 해석의 전환을 행한 것도 일본 정부인 것이다.

개인 청구권을 인정해 온 일본 정부

한일청구권협정에 선행하는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1956년의 일소 공동선언에도 “그 국민의 모든 청구권을 포기하고…”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것에 대해 히로시마의 원폭 피폭자와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가 일본국을 상대로 보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피폭자와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의 미국과 소련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일본 정부가 조약으로 소멸시켰기 때문에, 일본국은 피해자에 대해 미국으로부터의 배상을 대신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일본 정부는, “조약에 의해 포기한 것은 개인의 배상 청구권을 기초로 한 외국과 교섭할 국가의 권리(외교보호권)일 뿐”이며, “국민 자신의 청구권은 그것에 의해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국은 피해자에 보상할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도쿄지법, 1963년 12월7일 판결 참조).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은 양국과 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 및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게 된 것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체결 당시부터 이것도 개인의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교보호권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반도에 자산을 남기고 온 일본인으로부터 일본 정부가 보상을 청구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당대의 법령』별책, 1966년3월10일호).

1990년대가 되자 한국의 민주화가 진척되고,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피해자 단체를 결성해 일본에 와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되었고, 마침내 이 문제가 국회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시베리아 억류 문제에 대해 일소 공동 선언의 ‘포기’는 외교보호권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며 개인의 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닌 것이지만, 외교 보호권을 포기한 이상 국가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개인이 이것을 행사한다면 소련의 국내법에 따라 행사할 수밖에 없다, 라는 답변이 있었다(1991년 3월26일, 참의원 내각위원회).

이와 같이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를 내친 답변이었지만, 그 후 그야말로 일본 국내법 절차에 따라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이 답변과 모순되는 답변을 해서는 안 되어서,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외무성 조약국장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한일청구권협정에 있어서 양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이지만…이것은 한일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 보호권을 상호간에 포기했다,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개인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 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켰다는 것은 아닙니다”(1991년 8월2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그 후에도 유사한 취지의 답변이 반복되고, 외무성 발행 『외무성 조사월보』에도, 국가가 국민의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문언은 개인의 청구권 포기가 아니라 외교 보호권의 포기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일관하여 취해오고 있다”고 명기되었다.

이와 같은 해석에 따라서, 1990년 이후 한국인 피해자가 제소한 수십 건의 전후 보상 재판에서, 1999년까지 10년간, 일본국은 한일청구권협정 등 조약으로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한 적이 없고, 이것이 쟁점이 되는 일 조차 없었다.

해석을 전환한 일본 정부

그런데 2000년 무렵, 전후 보상 재판의 각종 쟁점에 관해 기업과 국가에 대해 불리한 판단을 하는 판례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일본 정부는 해석을 돌연 변경하고, 모든 전후 보상 재판에서 조약(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한일청구권협정, 일타이완 평화조약, 일중 공동성명)에 따라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피해자로부터 보상 청구를 당했을 때에는 “조약에 따라 포기한 것은 외교 보호권에 지나지 않고, 피해자는 가해국의 국내 절차에 따라 청구할 길이 남아있기 때문에 일본국에는 보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외국인 피해자로부터 배상 청구를 받으면 “조약에 따라 일본의 국내 절차로 청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일본국에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태도를 표변했다.

당초에는 “조약에 의해 해결 완료”라는 결론만을 정해 두었던 걸까, 법적인 설명은 소송별로 각기 달랐는데, 이윽고 국가 쪽 주장은 정리되어 “개인의 실제적 권리는 소멸하지 않지만 소송에 의해 행사할 수는 없게 되었다”라는 내용으로 정리되어 갔던 것이다.

최고재판소도 인정한 개인 청구권

중국인 피해자 사건에 관한 2007년 4월27일 최고재판소 판결은 이와 같은 국가의 주장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여,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 민사 재판상의 권리 행사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틀’이라고 진술했다.

다만 최고재판소도 “여기서 말하는 청구권의 ‘포기’란 것은, 청구권을 실체적으로 소멸시키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당해 청구권에 기초해 재판상 소구할 권능을 상실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하여 개인의 실체적인 청구권은 소멸되고 있지 않는 것을 인정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틀’에 의해 소송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고 하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전제로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도 분명히 같은 해석이 적용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최고재판소 판결 후의 한국인 피해자에 관한 소송에서 국가는 최고재판소의 판결 논리를 채용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청구권협정에 따라 소송으로 청구할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재판소도 이것을 인정했다(도미야마富山 지방법원, 2007년 9월19일 판결 등).

이렇게 하여 한국의 피해자가 일본 법원에서 배상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란 것은 외교 보호권의 포기를 의미하며,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한일청구권협정 해석은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다만, 2000년대에 들어와 “피해자는 권리가 있어도 재판으로는 청구할 수 없다”는 주장이 추가되었던 것이다.

이번 원고들은 그 “소멸되지 않은 청구권”을 한국의 법원에서 행사해 인정받게 된다.

타국의 민주 제도에 대한 오만함

일본 정부와 매스컴은 판례집과 국회 의사록을 보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사실에 입을 다문 채, 한국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것처럼 비난해 이웃 나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정권은 2005년에 강제 징용자에 대한 보상은 한국 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을 인정했다”고 하여, 그것과 대법원의 판단이 어긋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포기된 것은 외교 보호권이며, 개인의 권리는 소멸되지 않는다”라는 견해를 전제로 하여 강제 징용 문제가 한일청구권협정의 대상이라고 인정한 것에 지나지 않고, 배상 책임을 대신한다고 표명했던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이번 판결은 그 이유를 대는 데 있어서 종래의 한국 정부의 견해와 다른 부분이 있지만, 사법부가 행정부와 다른 견해를 표시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상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며, 오히려 민주제 통치 기구가 건전하게 기능하고 있는 증거이다. 이것을 비난한다든지, 정부가 대법원에 대해 ‘대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언설은, 다른 나라의 삼권분립 제도를 존중하려고 하지 않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정부가 다른 견해를 표시하는 사법부를 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재’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반론’은  국제적으로 통용될까?

또한 일본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대한 제소를 검토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양 당사국의 합의가 없으면 국제사법재판소가 수리하지 않아서, 제소는 처음부터 현실적이지 않다.

가령 국제재판으로 다툰다고 하더라도, 소송의 결론을 좌우할 한일 간의 법적인 대립점은, 청구권협정으로 소송에 의한 권리 행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일본 최고재판소 및 정부 견해의 옳고 그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도 한국도 세계 인권 선언과 국제 인권 규약(자유권 규약)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지고 있다.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우선 관계국에서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능한 한 보장하고, 그럼에도 구제가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인권 조약 기관이나 국제재판소에서 구제해 간다는 것이 국제인권법의 사고방식이다. 그렇게 보면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재판에서 행사할 수 없다”는 일본의 주장은 아무래도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이며, 국제 재판에서 인정받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된다.

필요한 것은 피해자와의 화해

최고재판소 판결 당사자였던 중국인 피해자와 니시마츠西松건설은 그 후 화해를 실현해 계속적인 위령 행사를 행하고 있다. 전쟁 당시 미성년이었던 피해자도 90세 전후가 되었고, 이미 거의 뒷북치는 꼴이 되었지만, 본건 당사자인 신일철주금도, 최소한 몇 안 되는 생존자라도 있는 동안에 사죄와 배상을 행하고, 돌아가신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유족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예를 다한 위령과 기념을 행하여, 비참한 인권 침해의 재발 방지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미디어가 거의 보도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생존 피해자 뒤에, 한을 품고 죽어간 수천 명의 피해자가, 또 그 뒤에는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었던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업은 국가 정책에 따라서 징용자를 부렸던 것이며, 정부가 그와 같은 화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추진해야 할 입장이 있다. 현재 일본 정부에는 그와 같은 것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피해자 개인과 민간기업의 소송에 개입해 배상 지불이나 화해를 방해한다든지, 사실을 감춘 채 이웃 나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그런 일만은 멈춰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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