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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①, 1부 발포를 거부하다
평화로웠던 5·18 전야
안호재 | 2021-08-09 10:39:5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평화로웠던 5·18 전야

안병하 전라남도 경찰국장(이하 ‘국장’ 혹은 ‘도경국장’ ‘전남도경국장’)이 관사로 돌아온 것은 5월 17일 저녁 9시쯤이었다. 12일 만에 처음으로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전남 경찰국은 도청 정면의 본관 뒤쪽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본관과 경찰국 건물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사각형으로 보이는데 양쪽은 복도와 회랑으로 연결돼 있다. 경찰국장 관사는 도청 정문 앞 분수대 광장의 맞은편에 있는 상무관 뒤쪽이다. 관사에서 도청까지는 채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지척의 거리지만 안 국장은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군용 간이침대에서 전투복 차림에다 전투화를 신은 채 매일 밤 새우잠을 잤다. 갈아입을 속옷은 아내가 전속 부관 편을 통해 보내 주었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었다. 부하 직원들이 고생하는데 자신만 편하게 집에서 발 뻗고 잘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남 각 군 지역의 경찰서에서 차출한 병력들도 며칠씩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밤이면 광주의 친인척이나 지인, 혹은 값싼 여인숙 등에서 잠간씩 눈을 부친 뒤 아침이면 시위진압에 나서곤 하는 상황이었다. 국장도 이들과 함께 보조를 맞춰 행동한 것이다. 안 국장의 이런 모습은 젊은 시절 군에 있을 때부터 늘상 해오던 행동이었다.

안 국장의 아내 전임순은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바깥 상황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편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모처럼 밝아보였다. 그는 지금 아내가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평소 밖에서 일어난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아내에게 거의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여느 때와 달랐다.

“여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 앞으로 당분간 학생들이 집회를 자제한다고 하니 오늘밤은 모처럼 다리 뻗고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소. 그간 지방에서 올라온 경찰들도 대부분 돌려보냈어요. 기동경찰들에게도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최소 인원만 남기고, 이번 주말부터 외출을 허가했소.”

아내 전임순은 무척 기뻤다. 엊그제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 가운데 부상자들이 생겼다는 소식 때문에 마음을 쓸어내리던 참이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경찰국장 관사를 담당하는 전속 부관이 왕래하며 수시로 바깥소식을 전해줬기 때문에 경찰국 분위기는 대충 알고 있었다. 5월 중순 들어 긴장이 높아지더니 며칠 전부터는 경찰과 학생의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경찰이나 학생 가운데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마치 자신의 식구가 다친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괜히 책임자인 남편이 잘못해서 그런 것처럼 생각돼 경찰가족들에게는 미안하기도 했다. 그날 밤 남편은 여느 때와 달리 묻지도 않은 말도 스스로 털어놓았다.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의 방문

“거 참, 어제는 박관현이라고 하는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날 찾아왔는데 그 친 구 참 똑똑합디다. *1 날더러 학생 시위를 허락해달라는 거요. 경찰이 시위를 강제로 해산시키면 충돌이 발생할 것이고, 폭력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니 도청 앞 집회를 경찰이 막지 말아달라는 거요. 경찰이 강제로 막지만 않는다면 학생들 스스로 자율적으로 질서를 지키겠다면서. 학생들의 민주화 주장을 국민과 정치권에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지 경찰과 싸우기 위해 시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오. 학생들 때문에 경찰이 고생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면서 서로 약속만 지키면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운 시위가 될 것이라고 나를 설득합디다. 듣고 보니 진전성이 느껴져서 ‘그렇게 하자’고 허락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내 전임순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푹 내쉬었다. 내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집에서 가끔씩 전속부관이 전해주는 바깥소식은 불안하기만 했었다. 특히 5월 14일 오후 전남대 학생들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처음 교문 밖으로 진출할 때 여러 명의 경찰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했었다. 그 후 연속 3일간 도청 앞 분수대에서는 광주시내 여러 대학 학생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다행히 첫날 이후 경찰과 학생들 간에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그래도 매일 시위가 이어지자 가슴이 조마조마하던 터였다. 그날 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남편의 이야기를 듣자 마음이 푹 놓였다. 남편은 워낙 입이 무거워 여간해서는 밖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 와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날만은 달랐던 것이다.

학생운동의 전통이 깊은 광주에서는 3월에 들어서자 어느 집단보다 학생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3~4월 동안 유신시절 학도호국단을 해체하고 각 대학에서는 총학생회 부활, 어용교수 퇴진, 병영집체훈련 거부 등으로 부산했다. 5월 초부터는 정치적인 문제로 학생들의 관심이 빠르게 옮겨 갔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점차 커졌다. 그때만 해도 시위는 주로 학교 안에서만 이뤄졌다. 그러다 5월 14일부터 전남대생들이 학교를 벗어나 광주시내 중심부인 전남도청 앞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14일 오후 도청 앞 분수대에서 열린 첫 집회는 5천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는데 그 이전 어떤 시위보다 규모가 컸으며 언론과 시민들의 주목을 크게 끌었다. 특히 총학생회장 박관현의 연설은 시민들 사이에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비상계엄 즉각 해제’, ‘휴교령 거부’, ‘정부주도 개헌공청회 중지’ 등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유창한 언변은 청중의 마음을 삽시간에 사로잡았다. 분수대 주위에서 학생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빙 둘러서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1 박관현(1953년생)은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전남 영광군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 1978년 전남대 법학과 입학. 1979년 들불야학 참여. 이듬해 4월 전남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 1980년 5월 16일 ‘민족민주화대성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횃불집회 당시 옛 전남도청 분수대 앞 단상에 올라 토해냈던 연설은 광주시민들 사이에서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횃불집회에서 전두환·신현확·최규하 등 민주화를 가로막는 인사들을 화형에 처한다는 아이디어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 5월 17일 오후 5시께 서울지역 총학생회장단들이 연행되고 잇다는 소식을 듣고 피신을 결정한다. 여수에서 숨어 있다 5·18 이후 서울로 가서 소금장사, 막노동, 섬유공장 생산직 노동자로 수배를 피해 생활하다 1982년 4월 5일 경찰에 체포됐다. 내란죄 등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광주교도소에서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40여 일간의 옥중 단식 끝에 같은 해 10월 12일 새벽, 전남대 병원에서 숨졌다. 1988년 나의갑 기자가 병상의 안 국장을 만나 인터뷰할 때 박관현의 옥중 사망소식을 전하자 그는 오랜 시간 우울해 하면서 “우리나라의 아까운 인재를 정부가 죽였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안 국장의 가족들은 1993년 명예회복 과정에서 고 박관현의 누나 박행순을 만났고, 이후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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