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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⑧ 1부 발포를 거부하다
안호재 | 2021-09-23 08:29: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휘관의 위치는 진압대열의 선두
  
안병하 국장의 지시사항 가운데 특이한 점은 “시위 진압 시 각급 지휘관이 진압대열 선두에 위치하여 시민 학생들의 안전을 보호”하도록 하라는 지시였다.(목포경찰서 경리계장 최00) 시위진압 현장에서 지휘관이 선두에 위치해서 책임지고 진압 경찰을 통제하라는 뜻이었다. 시위진압을 하다보면 시위대와 몸이 서로 부딪치거나 돌멩이, 심지어는 화염병이 날아오기 때문에 자칫 감정이 격해지기 쉽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진압봉을 강하게 휘두르거나 불필요하게 주먹 혹은 발길질을 하면서 서로 부상자가 속출하기 일쑤다. 안 국장은 이런 점을 염려해서 지휘관들이 선두에서 부대를 지휘함으로써 감정적인 충돌을 방지하라고 세밀하게 지시했던 것이다. 오전 11시경, 금남로 3가 가톨릭센터 앞에 도착한 학생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점거농성 대열 후미에 가톨릭센터에서 지켜보다 나온 수녀들 20여 명도 함께 참여했다. 전일빌딩 앞에 배치된 경찰이 가톨릭센터 앞으로 달려왔다. 주위에서 구경하는 시민들 숫자도 순식간에 늘어나 1백여 명이 넘었다. 경찰 지휘관이 메가폰으로 도로를 점거한 시위학생 500여 명에게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공수부대의 광주진입’ 사실을 알리며 만약 당장 해산하지 않으면 ‘공수부대가 직접 시위진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공수부대가 투입되면 학생들의 희생이 불가피하게 될 터이니 빨리 해산하라”고 설득했다. 그럴수록 학생시위대는 흥분하여 “비상계엄 철폐하라” “김대중 석방하라” “전두환 물러가라”며 목소리를 더 높여 구호를 외쳤다. 경찰 숫자가 시위대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해산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경찰이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우르르 시위대에 달려들어 한 명씩 강제로 대열에서 떼어내 끌고 갔다. 강하게 저항하는 학생들을 제압하기 위해 몸싸움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엊그제 야간 횃불시위를 평화롭게 에스코트하던 데 비해 거칠어진 경찰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러자 누군가 “폭력경찰 물러가라”라고 구호를 바꾸어 외쳤다. 최루탄이 터졌다. 공격적으로 바뀐 경찰의 진압태도에 시위대의 분노가 커졌다. 오전 11시 55분경 안병하 국장은 “시위현장에서 붙잡혀오는 학생들이 다치거나 피해가 없도록 유의할 것”을 현장 지휘관들에게 다시 지시했다.*35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위대열은 급히 금남로를 벗어나 광주공원 쪽으로 향했다. 도중에 충장로파출소를 지날 때 시위대열에서 누군가 파출소를 향해 돌을 던졌다. 그러자 흥분한 시위대의 상당수가 금남로에서 경찰에게 당한 화풀이로 길바닥에 깔린 보도블럭을 깨서 충장로파출소에다 던져댔다. 순식간에 도로 쪽으로 향한 파출소 유리창이 모두 깨져버렸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공원 방향으로 도망쳤다. 산수동 쪽으로 쫓겨 간 학생시위대 20여 명도 산수파출소 곁을 지나다 파출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 20여 장을 깨고 나서 구호를 외치며 도망쳤다. 그러자 안병하 국장은 12시 55분경 “시위 중인 학생을 철저히 검거하라”고 지시했다.

치안본부, 강경 진압 요구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학생회관 골목에 학생 시위대 한 무리가 나타나 갑자기 점심식사를 하던 전투경찰을 에워쌌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경찰이 그 자리를 피하자 시위대는 경찰의 가스 살포차량(페퍼포그 차)에 불을 질러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시위대의 기세가 다시 살아나는 모양새였다. 오후 3~4시 사이에는 동명파출소, 지산파출소, 동산파출소 등지에도 시위대가 투석하여 유리창이 깨졌다.
  
오후에는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경찰의 진압작전을 지원했다. 헬기는 공중에 낮게 떠서 골목으로 피해 달아나는 시위대를 추격했다. 헬기가 경찰 진압부대에 무전으로 골목에서 이동하고 있는 시위대의 위치를 알려줬다. 이 정보에 따라 곧바로 경찰 진압부대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켜버렸다.*36 진압경찰의 기동력이 빨라지자 시위대의 규모도 눈에 띄게 줄었다. 경찰의 진압이 평소보다 강력하게 진행되면서 구경하던 시민들이 자칫 시위대열에 합세할까봐 우려했지만 아직 그럴 낌새는 엿보이지 않았다. 곁에서 구경하던 시민들은 학생들의 구호에 공감하면서도 감히 시위대열에 동참하지는 못했다. 학생시위는 오후 내내 산발적으로 이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뒤쫓는 경찰을 피해 이리저리 분산됐고,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안병하 국장은 직접 시위 현장을 돌며 진압상황을 지켜본 후 작전지시를 내렸다. 시위대를 이끄는 자들 가운데 딱히 주동자라고 보이는 학생은 눈에 띄지 않았다. 실제로 5월 16일까지 도청 앞 시위를 이끌었던 전남대총학생회 지도부는 18일 시위대열 속에 없었다. 17일 저녁 보안사의 사전 예비검속을 눈치 채고 그날 밤 이미 광주를 벗어나 피신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확대와 김대중 연행 등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흥분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시위대를 이끌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안 국장은 시위대가 서로 뭉쳐 규모가 커지지 않게 이런 식으로 현재 상황을 잘 관리하면 날씨가 어두워질 무렵 시위도 자연스럽게 수그러들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치안본부에서는 자꾸 ‘시위를 강력하게 진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안병하 국장은 상부에서 광주의 현장 상황을 구체적으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지시를 내려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경찰이 시민과 정면충돌하여 경찰의 희생이 발생하면 계엄군이 강력한 진압을 위한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찰의 강경진압을 독려하지 않았다.*37 오후 3시 32분, 안병하 국장은 “16시 20분부터 공수단이 투입되어 협동작전을 하게 되니 각 부대장은 현장을 유지하고 가스차 피탈이나 인명피해가 없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38 경찰의 진압작전이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 공수부대를 투입한다는 것은 통상적이지 않았다.*39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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