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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5
안기부-국정원의 ‘리은혜 스토리’ 조작 ③
강진욱  | 등록:2021-01-14 12:07:09 | 최종:2021-01-14 12:34:0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5
- 11월 26일 방송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15. 안기부-국정원의 ‘리은혜 스토리’ 조작 ③

(※14편 글 전반부의 추리가 김현희의 실체를 더 모호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었다. ‘리은혜 몽타주’와 ‘다구치 야에코 사진’에 얽힌 추리는 김현희가 ‘평양에서 온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김현희가 실제로 리은혜에게서 일본어를 배웠다면 그것은 평양이 아니라 일본에서였을 것이다. 1983.4년 KAL 858 파괴 공작이 기획될 때 김현희는 일본 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들고 유럽과 아시아 각국을 오갔다. 출국도 입국도 모두 나리타(成田)공항이었다. 1987년 11월 14일 KAL 858 공작의 첫 여정도 나리타공항 출국이었다. 1981년 7월부터 1983년 3월까지 1년 8개월 동안 김현희가 평양 동북리초대소에서 ‘리은혜’로부터 일본어를 배웠다는 안기부 발표는 모두 거짓말이다. <필자 주>)

안기부가 ‘리은혜 = 평양에서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일본 여인’이라고 던져 놓고(1988.1), 보름여 뒤 ‘리은혜 몽타주’를 제시한 것이 ‘리은혜 스토리’ 조작 1단계, 다시 3년 3개월 만에 ‘리은혜=다구치 야에코’라고 떠벌린 것이 그 2단계였다. 이때로부터 4년 뒤인 1995년 3월 안기부는 김현희의 두 번째 책을 출간한다.『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 이번에도 ‘김현희 책 전문 출판사’ 고려원이었다. 1991년『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 - 1.2』를 낸 곳이다. 안기부는 이렇게 ‘리은혜=다구치 야에코’ 등식을 완성했다.

이때부터 김현희는 일본 납북자의 구원자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다구치 야에코를 비롯한 다른 납북 일본인들의 귀국을 촉구하기 시작한 것. 도구의 쓰임새가 커진 것이다. 안기부가 이 해 3월 2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삐까번쩍하게 연 기자회견에서 김현희는 “지난 78년 강제 납북된 이후 17년 동안 억류돼 있으면서 모진 고통을 당하고 있을 이은혜가 하루빨리 일본으로 송환돼 가족의 품에 안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고백록을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김현희의 등장은 1993년 6월 TV 출현 이후 1년 9개월 만이었다.

( 김현희 기자회견)

( 1995.3.18 경향신문)

안기부가 1년 9개월 만에 김현희를 다시 공식석상에 내세운 것은 1992년 말로 종을 쳤던 북일 수교 교섭이 재개될 조짐을 보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북일 수교 교섭의 중단은 1992년 10월 한.미 양국이 이 해 초 중단했던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공언한 것과 동시였다. 미.일.한 3국은 대북적대전선에서 늘 한통속으로 움직인다는 ‘분단의 공식’! 그렇게 높아진 한반도 긴장의 파고는 1차 핵 위기로 이어졌고 이후 2년 동안 한반도는 미국이 주야장창 떠벌리는 ‘외과수술식 타격’에 의한 전쟁 일보 직전의 위기를 겪는다.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북측이 이 위기를 돌파한 결과물이 바로 1994년 10월 21일 역사적인 북미 제네바합의였다.

북미관계가 방향을 틀면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재설정되는 것은 당연지사. 1992년 중단된 북일 수교 협상이 재개된 것은 1994년 1월 하타 쓰토무(羽田孜) 일본 부총리 겸 외상이 관계정상화 회담을 제의하면서부터였다. 일본은 북미 제네바합의가 타결된 직후 재차 북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제의했다. 이번에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부총리 겸 외상이었다.(지난해까지 아베 내각에서 외상을 지냈고, 현재 스가 내각에서 행정개혁담당상이 된 고노 다로(河野太郎)의 부친). 

이처럼 또 한 번 한반도 분단체제와 동북아 냉전체제가 이완될 조짐을 보이자 이 더러운 체제에 안주하는 세력은 북일 수교 협상을 파탄내기 위해 ‘김현희라는 칼’을 빼든 것이다. 김현희의 책이 나온 이유다. 김현희가 책을 내기 직전 북측은 김용순(金容淳) 노동당비서 명의로 일본 자민당과 사회당 등 연립여당 의원들에게 방북 초청장을 발송했고, 북미 제네바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미 북핵담당대사도 “북일 수교 교섭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3월 말 북일 수교 협상이 막 재개됐을 때 김현희가 책 출간에 즈음해 한국과 일본에서 여러 매체들과 인터뷰를 한 것은 안기부의 치밀한 작전이었을 것이다. 김현희의 등장은 곧 ‘리은혜=다구치 야에코’의 등판을 의미하며 ‘리은혜 문제’는 일본의 대북 접근을 봉쇄한다는 사실을 안기부 등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북일 수교 교섭은 ‘리은혜 문제’에 다시 가로막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후 1998년까지 어렵사리 북일 수교 교섭이 이어졌지만 ‘리은혜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북일 수교 협상이 다시 재개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북측이 1998년 8월 31일 소위 ‘대포동 미사일’(인공위성)을 발사한 뒤, 미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의 보고서(‘페리 보고서’)가 나오고 미국이 대북 관계 개선에 나선 뒤였다. 그 후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 공동선언이 나오고 북일 수교 교섭 재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북일 수교 교섭이 중단됐다 재개되는 것은 어느 때일까? 미국이 북측과의 관계를 개선할 조짐을 보일 때에야 비로소 일본이(남한도 마찬가지) 대북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 ‘똘만이’는 ‘오야붕’이 움직여야 쭐레쭐레 따라나서는 것이 ‘분단이라는 골목 세계’의 이치. 그러면 대북적대 패거리의 오야붕(미국)은 언제 이북과 대화를 시작할까? 이북의 군사력 특히, 핵과 미사일 능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인식할 때다. 이 ‘분단의 공식’은 이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유효하다.)

북일 수교 교섭은 남북공동선언이 나온 이듬해인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난 직후 재개될 수 있었다. 그러면 안기부 등은 다시 김현희를 활용할 것이나. 고이즈미 총리를 만난 김 위원장이 “일본인 납북자들이 있다”고 폭탄선언을 해 버리자 저들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리은혜 스토리’ 조작 3단계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좌)과 고이즈미 총리)

당시 김 위원장은 일본이 주장해 온 11명의 납치피해자 가운데 4명은 살아 있고 6명은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남한 언론은 “김 위원장이 이은혜의 납북 사실을 시인했다”고 미친 듯이 떠들어댔다. 오랜 기간 ‘리은혜=다구치 야에코’라는 등식이 세뇌돼 있던 탓이다. 그만큼 심리전 공작이 무서운 것이다. 그런대로 똑똑한 기자들을 속이는 것는 식은 죽 먹기다. 국회의원이란 작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성홍(崔成泓) 외교장관은 1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일본 측에 행방불명자 조사결과를 확인해 준 다쿠치 야에코가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가 언급한 ‘이은혜’와 동일 인물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본 측 설명”이라고 말했다. 최 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의 외교부 국감에서 “북한이 이은혜 납치를 인정한 만큼 우리 정부가 북측에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다쿠치-이은혜 동일 인물 미확인」<연합뉴스> 2002.10.1)

다행히 한국 외교부장관이 일본 정부로부터 사실을 확인한 뒤 “둘은 동일인으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변한 것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그렇게 말했다.

[외교통상부 한 관계자는 "북한은 이번에도 이은혜라는 인물은 없다는 것이 공식입장"이라고 전했으며, "김현희의 증언이 유일한 물증인데 북한이 시인하는 증거를 내놓기 전에는 추정할 수는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다쿠치 야에코는 이은혜인가? -
김현희 말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통일뉴스> 2002.10.2)

당시 관방부장관으로 고이즈미 총리 방북 때 동행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도 이은혜가 다구치 야에코인자 확인된 것은 아니라고 시인했다. 아베는 10월 2일 일본 정부조사단의 방북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북한 측이 ‘이은혜’라고 불리는 일본인 여성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北, ‘이은혜’ 존재 부인」<연합뉴스> 2002.10.2).

( 아베(좌)와 고이즈미)

일본 정부는 이어 다구치 야에코에 대한 북측의 해명을 전했다. 다만, 아베 관방부장관은 납치자들의 사망 여부 및 그 경위에 대해서는 “북측의 해명일 뿐”이라는 토를 달았다.

[▲다구치 야에코, 하라 다다아키 = 78년 6월 미야자키시 해안에서 공작원이 신 위장을 위해 대상자를 물색하던 중 다구치가 ‘사흘 정도면 북한을 관광하고 싶다’고 말해 연행했다. 84년 10월 하라 다다아키와 결혼했으며, 1986년 7월 30일 승용차로 귀가 중 트럭과 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이은혜’와는 관계없다. 하라 다다아키는 공작원에게 일본 호적등본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대가로 100만 엔과 북한 입국을 약속했다. 1986년 7월 19일 간경변으로 사망했다.](「일본인 피랍자 납치 및 사망 경위」<연합뉴스> 2002.10.2)

이처럼 한일 양국 정부는 일단 안기부와 국정원이 지속적으로 퍼뜨려 온 ‘리은혜=다구치 야에코’ 설을 부인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일 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미.일.한 공안 세력이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리은혜=다구치 야에코’ 여론몰이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베의 발표가 나온 지 사흘 뒤 역공이 시작됐다. ‘김현희가 그렇다고 했다니까!’라는 역공.

[김현희가 91년 일본 수사관의 사진 대조 조사에서 일본인 납치피해자 다구치 야에코 씨가 ‘이은혜’와 동일 인물임을 확인해 준 적이 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5일 보도했다. 당시 일본 경찰청 외사 1과장은 서울 시내 모처에서 김현희에게 여성들의 얼굴 사진을 하나씩 제시했으며, 7번째 사진이 제시됐을 때 김현희가 얼굴 표정을 바꾸더니 “이은혜 선생이 틀림없다”고 말했다는 ... 일본 경찰은 91년 당시 ‘이은혜’를 다구치 씨로 단정 ...](「“김현희, 다구치-이은혜 동일인 확인”」<연합뉴스> 2002.10.5)

이때 ‘리은혜 문제’는 ‘북핵 문제’와 연동돼 있었다. 한쪽에서는 ‘김현희=다구치’라는 여론을 조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북핵 문제를 들쑤시며 반북여론을 조작하고 있었던 것. 미.일.한의 대북적대 공생체가 살아가는 방식 즉, ‘남북 분단체제의 공식’이 이와 같다.

실제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으로 북일 수교 교섭이 급진전된 2002년 10월은 미국이 북측에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한 약속 (1994 제네바합의)를 파기시킬 목적으로 “북한이 우라늄 정제 방식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여론을 조작할 때였다. 고이즈미 총리 일행의 방북에 이어 일본 정부 협상단이 2002년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직후인 10월 3일,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일행은 평양에 갔다 온 뒤 곧바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고농축우라늄(HEU)을 시인했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당시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현 국정원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시인한 것은 아니다”라고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과 한 통속으로 노는 정부 내 일파와 야당 및 기레기 패들은 당장 대북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갔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급진전된 남북 화해와 교류 및 협력의 틀은 이렇게 2년여 만에 와해되고 있었다. 이처럼 한.미 양국이 ‘북 핵 문제’를 전면에 띄우는 상황에서 북일 수교 교섭이 순조로울 리 없다.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회담은 ‘리은혜=다구치 야에코’ 여론 조작에 떠밀려 궤도를 이탈했고, 이해 10월 2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2차 회담을 끝으로 북일 수교 협의는 중단된다.
 
[최근 수교협상을 둘러싼 북한과 일본의 대립 양상은 북한의 핵개발 문제라는 변수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10년 전의 제8차 수교회담 본회담과 닮은꼴 ... 92년 11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북일 수교 본회담은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인 이은혜 문제로 결렬 ... 양국 간의 수교회담은 완전히 중단 ... ](「북-일 수교교섭 난항 10년 전과 닮은 꼴」<연합뉴스> 2002.11.05)

12차 북일 수교회담이 종료된 뒤 ‘납치자 문제’는 거대한 빙산이 서서히 하부를 드러내듯 점점 커져만 갔지만,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고 수교 교섭을 재개하려는 노력은 계속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평양선언 발표 1년 8개월 만인 2004년 5월 22일 하루 일정으로 다시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평양선언’(2002.9)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고, 11월 8일 일본 정부 협상단이 5박 6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해 북일 수교 협의 재개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별무성과. 이번에도 역시 ‘리은혜 등 납치자 문제’가 암초였다.

이렇게 된 데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분노와 고이즈미 정부에 대한 반발심리 외에 누군가 북일 수교 교섭으로 동북아 냉전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악성 여론을 퍼뜨리며 문제를 키운 탓이 있었다. 남북관계가 평화적으로 발전할 때마다 출처 불명의 악성 정보를 기사화하는 <신케이신문>이 그 마각을 드러냈다. 아예 ‘제2의 김현희’ ‘제2의 리은혜’를 만들려는 낌새였다.

[납북됐다 돌아온 지무라 후키에(地村富貴惠. 49)씨가 가짜 유골로 판명 난 요코다 메구미(77년 실종당시 13세)씨는 북한에서 ‘숙희’라는 여성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11일 보도 ... 북한 간첩 중에 숙희라는 이름의 공작원이 있는 것으로 미뤄 요코다에게서 일본어를 배운 ‘숙희’라는 인물도 공작원일 것으로 분석되고 ... 지무라 씨는 지난 8월 납치피해자가족과 만난 자리에서 ‘숙희’라는 이름을 언급했다. 지무라 씨는 앞서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실종 당시 22)도 ‘옥화’라는 여성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고 밝힌 바 있다. ‘옥화’는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의 가명 ‘김옥화’와 같은 이름이다. 산케이는 지무라 씨의 증언과 김현희 수사기록 등을 종합하면 요코다도 북한에서 간첩요원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메구미, 북한서 일본어 가르쳤다” -산케이」<연합뉴스> 2004.12.11)

<산케이신문>은 다른 일본 신문들이 전혀 보도하지 않는 ‘숙희’(= 제2의 김현희?)를 들먹이면서, 안기부와 김현희가 일방적으로 떠벌려 온 ‘리은혜’를 실존 인물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증언했다’고 못 하고 ‘증언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흔히 가짜 뉴스를 퍼뜨릴 때,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수법이다. “지무라 씨는 앞서 다구치 야에코도 ‘옥화’라는 여성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고 밝힌 바 있다.” 안기부와 김현희의 말이다. 지무라 씨가 그런 말을 했다면 다른 일본 신문과 방송들도 모두 보도했을 것이다. 지금도 다른 일본 매체들이 보도하지 않은 이야기를 <산케이신문>만 보도하는 경우 현지 한국 특파원들은 ‘99% 거짓말’로 치부하고 거의 무시한다(어쩌다 한 번 특종이 되는 수도 있을 수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2004년 12월 13일 자가 전한 요코다 메구미의 말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 뿐이었다.

[북한에 납치됐다가 귀국한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 47)는 자신이 1986년부터 1994년까지 평양 외곽의 한 초대소에서 요코다 부부와 함께 살았다면서 “요코다는 1990년대 들어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호소하듯 했으며 초대소를 무단이탈하기도 해 데려온 적이 있다”고 일본 당국에 증언했다. 하스이케의 증언은 북한 당국이 1994년 4월 자살했다고 주장해 온 요코다가  북한에서 결혼했으며 적어도 1994년의 어느 시점까지는 생존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요코다 메구미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 호소” - 요미우리」<연합뉴스> 2004.12.13)

‘리은혜=다구치 야에코’이기를 바라는 자들은 위 인용문에서 이어지는 기사 후반부를 주목했다.
 
[역시 납북됐다 귀국한 지무라 후키에는 자신이 요코다를 비롯, 다구치 야에코 등과 1984년부터 3년간 평양 외곽의 같은 초대소에서 지냈으며 다구치는 1986년 7월 다른 초대소로 옮겼다고 증언했다.](「“요코다 메구미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 호소” - 요미우리」<연합뉴스> 2004.12.13)

지무라 씨는 단지 “1984년부터 3년간 다구치와 함께 지냈다”고 밝혔을 뿐이지만, 이 말을 전한 한국과 일본의 기레기들이 공연히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이은혜 ... ” 어쩌고 하는 말을 덧붙인 것이다. 김현희를 ‘북한 공작원’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과 허구가 결합되면 새로운 허구가 만들어진다.

“후키에는 자신이 요코다를 비롯, 다구치 야에코 등과 1984년부터 3년간 평양 외곽의 같은 초대소에서 지냈으며 다구치는 1986년 7월 다른 초대소로 옮겼다”는 증언은 오히려 안기부와 김현희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반증한다. 후키에 씨는 요코다 메구미든 다구치 야에코든 자신들끼리 지내던 초대소에 북한 공작원들이 있었다거나 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증언이 있었다면 마땅히 <요미우리신문>이 전했을 것이다. 김현희가 일본어를 배웠다는 리은혜는 평양에 있었던 다구치 야에코가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북한이 일본에 넘긴 납치자 신상 정보 가운데 북한에서의 다구치의 행적과 김현희가 ‘리은혜’라고 증언한 인물의 북한 행적이 일부 다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동일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었다.](<연합뉴스> 2004.12.14)

아무튼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총리가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한 때 안기부-국정원의 ‘리은혜 스토리’ 조작 3단계 공정이 완료된다. 1988년 1.2월 ‘일본어 교사 리은혜’ ‘리은혜 몽타주’로 시작해 3년 뒤인 1991년 ‘리은혜=다구치 야에코’라는 등식을 띄운 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의 납치 시인을 기회 삼아 ‘리은혜가 평양에 있었다고 북한이 시인했다’는 결론을 조작한 것이다.

그렇게 완결된 안기부의 ‘리은혜 공작’은 2004년 말부터 잠시 휴지기를 거쳐야 했다. 2004년 12월 17일 노무현 정부가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워크숍을 가진 것을 계기로 KAL 858 사건을 ‘국정원 의혹 사건’의 하나로 부각되고 김현희는 긴 ‘동면’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동면 기간은 김현희가 2008년 10월 말 ‘좌파 정권이 나를 탄압했어요~’로 시작되는 장문의 편지를 이동복 씨에게 보낼 때까지 4년.

이 기간 동안 안기부는 김현희를 내세울 수 없었고, 따라서 ‘리은혜 문제’가 부각될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나름 미국의 부시 정권의 대북적대정책의 틈새에서나마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갖고 있었고 북일 수교 회담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남북관계나 북일관계나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다. 굳이 안기부-국정원이 김현희를 내세울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안팎의 난관을 뚫고 정권 말년인 2007년 10월 평양을 방문해 또 하나의 역사적인 ‘10.4 선언’이 나왔고, 이즈음 북일 양국도 중국 선양(瀋陽)에서 극비 접촉했지만, 한반도에는 이미 역풍이 불고 있었다. 이 해 말 대통령선거로 소위 진보 정권 집권 10년이 막을 내렸고, 나름 북일 수교에 적극성을 보였던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도 서서히 정계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다가오는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김현희가 4년의 긴 동면에서 깨어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16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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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人物論 진짜 ...
                                                 
전두환 비서출신 이용섭 사건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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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하 공직자 바로 세우기 운동본...
                                                 
[오영수 시] 중국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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