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CMS후원
2021.03.05 16:38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세계  |  미디어  |  칼럼  |  서팡게시판  |  여행게시판
 
뉴스홈 > 정치

[연재]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6
안기부-국정원의 ‘리은혜 스토리’ 조작 ④
강진욱  | 등록:2021-01-19 15:28:08 | 최종:2021-01-19 15:36: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16
- 11월 26일 방송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16. 안기부-국정원의 ‘리은혜 스토리’ 조작 ④

2004년 12월 ‘동면’에 들어야 했던 김현희. 그가 거의 4년 만인 2008년 10월 말 이동복 씨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좌파.친북 정권’(노무현 정부)에 대한 공격과 동시에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이북을 제외(2008.10.11)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앞글에서 밝혔다.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문제가 처음 공개리에 거론된 때는 2007년 말이었다. 안기부-국정원은 아마도 이즈음 ‘김현희라는 칼’을 빼들 준비를 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 김현희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못했겠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을 것이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를 끝으로 소위 진보 정권 10년이 종언을 고하고 일개 장사치가 대통령이 되자 저들은 만면의 웃음을 띄며 서서히 그 칼을 빼들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청와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납치문제담당상’ 나카야마 교코(中山恭子)가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간 2008년 9월 16일 쯤 김현희 편지를 작성하지 않았을까.

나카야마는 자신이 만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데니스 와일더 )으로부터 미국이 선선히 대북 대화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 말을 듣고 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만난 다른 미 관리들도 미국이 북핵과 납치 문제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도 했다. 반북적대 조직의 ‘꼬붕’이 ‘오야붕’의 동의를 구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다.  

이처럼 미.일 대북적대 진영의 야합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 총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가 9월 물러난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뒤를 이어 북일 수교 교섭 의지를 보이던 후쿠다는 이 해(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의 책임을 지고 아소 다로(麻生太郞)에게 총리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후 북일 교섭은 ‘올스톱’된다.

[일본 정부가 아소 다로 정권 출범 직후 북한에 대해 일본인 납치 피해자 재조사에 조속히 나설 것을 요청... 일본과 북한은 후쿠다 야스오 내각 시절인 8월 중국 선양(瀋陽)에서 국교정상화 실무회의를 갖고 북한이 납치 피해자 재조사 위원회를 구성해 가능한 한 올 가을까지 결론을 내고 일본은 북한이 재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시점에서 대북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한다는데 합의[했으나]... 지난달[9월] 후쿠다 당시 총리가 돌연 사임... 북한이 납치 피해자 재조사를 보류한 상태 ... ](「아소 정권, 일본인 납치 피해자 재조사 촉구」<파이낸셜뉴스> 2008.10.8)
 
아소 내각이 들어서자마자 ‘일본인 납치 문제’를 들고 나온 것 역시 북한이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일본 관방장관 (가와무라 다케오. 河村建夫)가 10월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즉각 제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은 이와 관련해 일본과 좀 더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08.10.10). 아마도 이즈음 안기부-국정원은 김현희 편지를 미국 정부에 보내 이북을 테러지원국 명부에 계속 올려놓으라고 간청하지 않았을까?

워싱턴포스트(WP) 및 폭스뉴스 등이 이날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보도하자 서둘러 기자회견을 열었을 것이다. 이즈음 일본 외상(나카소네 히로후미. 中曾根弘文)은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검증 절차가 여전히 남아있다”며 “북한의 핵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유효한 검증 절차의 확보”라고 떠들며 역시 미국의 대북 접근에 쐐기를 박으려 했다(히로후미는 아웅 산 묘소 테러(1983.10.9) 직전인 1982년 11월부터 KAL 858 테러(1987.11.29) 직전인 1987년 11월 6일까지 총리를 지내며 전두환.레이건과 손발을 맞춰 미.일.한 3국의 대북적대 공생체를 심화시킨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의 아들이다). 일본이 납치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과 미,일.한 3국이 걸핏하면 ‘북핵 문제’를 시비하는 것은 북한의 선린외교를 막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목적에서다. 

일본 내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10월 11일 미 국무부가 매년 발표하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뺐다. 북측이 6월 27일 영변 냉각탑을 폭파하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과시한 효과였다. 냉각탑 폭파 후 보름여 만인 7월 11일 남한의 금강산관광객이 북한 경비병이 쏜 총에 맞아 죽는 수상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이북을 뺐다는 것은 매우 놀랄 일이었다. 어쩌면 미국은 남한 주민 피격 사건으로 인해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것에 만족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를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이북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에 대해 일본은 즉각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명단 해제 사흘 뒤인 10월 14일 일본 총리(아소 다로)가 나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대북 경제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 일본 관방장관(가와무라 다케오)도 이날 기자 회견을 통해 “납치 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대북 지원에 응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日 “납치 문제 해결 안 되면 대북 지원 불가”」<연합뉴스> 2008.10.14).

이즈음 일본 신문과 방송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면서 일본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미국 정부에 납치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일본 외교의 패배라고 연일 정부를 공격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안기부-국정원이 김현희 명의의 편지를 조작해 한.일 양국 국민들에게 끔찍한 기억을 상기시켜 대북 적의(敵意)를 키운 것이다. KAL 858 사건 21주년을 며칠 앞두고 이동복이 김현희의 편지를 공개한 것은 그 ‘통증 효과’를 배가시켰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면 대북 적의가 배가되리라는 것을 저들은 잘 알고 있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계속 올려놓으려는 한.일 양국(및 미국 내) 냉전 세력의 농간은 일단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땅의 분단체제를 70년간 지탱해 온 저 세력이 순순히 물러날 리 없다. 해가 바뀌어 2009년 새해 벽두부터 저들은 ‘김현희라는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김현희는 안기부-국정원이 붙여준 NHK 기자에게 “한국에서는 과거 5년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진상이 왜곡돼, 나와 나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보도가 있었다”며 “내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야에코가 북한에 있는 것을 증명하고 납치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떠벌렸다.

그러면서 다구치 야에코의 장남(이즈카 고이치로, 飯塚耕一郞)를 거명하며 “눈이 닮았다. 훌륭하게 자란 것을 보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격했다. 만나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싶다”고 읊어댔다. 또 “야에코가 지금도 살아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며 “납치문제 해결에 힘이 될 수 있다면 야에코 가족을 만나 ‘희망을 가지라’고 호소하고 싶다”고도 했다(「김현희 “KAL기 폭파사건 진상 왜곡 움직임”」<통일뉴스> 2009.1.16).

예전의 김현희가 아니었다. 비록 4년의 동면기가 있었지만 이미 3단계에 걸친 안기부의 ‘리은혜 스토리’ 조작 공정이 끝나 ‘리은혜=다구치 야에코’라는 등식이 완성된 상태. 이후 김현희는 ‘납치된 일본 여인 리은혜의 증인’을 넘어 납북자들의 구원을 외치는 투사가 된다. 북측이 이미 사망을 통보한 다구치 야에코가 살아있다고 떠든 이유다.

2009년 초 김현희의 NHK 인터뷰는 다구치 야에코의 가족들과 김현희를 결합시키는 한.일 협잡을 의미했다. 처음 김현희와 안기부의 ‘리은혜 스토리’에 긴가민가했던 일본 정부가 이제부터는 아예 안기부-국정원과 한 패가 된 셈이다.
(이 대목에서 불현 듯 ‘을사5적’이 떠오른다. 2009년 일본과 손잡고 ‘김현희 협잡’을 벌이는 한국 내 분단적폐 세력과 99년 전인 1910년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 다를까? 일본의 냉전세력과 결탁해 분단의 비극과 고통을 연장하는 것은 국권을 일본에 팔아넘긴 것과는 어떤 점에서는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본 내 극우 냉전세력과 한 패가 돼 내 이웃과 내 동족을 핍박하는 것은 똑같다.) 

아니나 다를까 김의 NHK 인터뷰 닷새 만인 1월 20일 일본 정부가 공식 반응을 보였다. 일본 외상(나카소네 히로후미)이 김현희와 다구치 야에코 씨 가족의 만남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 일본 정부의 호응에 기고만장한 김현희는 또 일본 극우지 <산케이신문>에 편지를 보내 “한일 양국 정부의 권유로 다구치 씨 가족과의 만남이 가까워져 기쁨이 넘친다”며 “이 만남이 개인적인 기쁨에 끝나지 않고 한일 양국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공간으로 확대될 것으로 믿는다”고 떠벌렸다(<연합뉴스> 2009.3.5). 안기부와 김현희라는 끈을 통해 한.일이 대놓고 야합하고 협잡하는 모양새다.

드디어 3월 11일 김현희와 다구치 씨 가족의 면담이 부산 해운대 벡스코(BEXCO)에서 이뤄진다. 김현희는 이날 다구치 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32) 씨, 오빠이자 ‘일본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70) 씨와 만났다(조카인 다구치 씨 아들과 성이 같다. 다구치 씨의 아들은 부모의 이혼과 모친의 실종 뒤 삼촌의 성을 따랐다).

이날 검은 정장 차림으로 경찰특공대의 호위를 받으며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현희는 연신 손과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감격적 해후’를 연출했지만 과공비례(過恭非禮). 김현희와 다구치의 아들 고이치로의 모습이 영 어색했다.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던 ‘리은혜’가 다구치 야에코임을 강변하려는 과한 몸짓 때문이었다.

( 김현희는 다구치 야에코의 아들 고이치로와 팔짱을 끼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나 김현희의 손이 고이치로의 팔 바깥으로 쑥 삐져나와 있다. 손목으로 팔을 잡아끄는 모습이 어색하다.) 

김현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다구치 야에코가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다구치에 대해 김씨는 “제가 1987년 1월부터 10월까지 북한초대소에서 생활하며 들은 것은 ‘다구치를 어디로 데려갔는데 어디 갔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사망한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간 것으로 생각했고, 86년에 결혼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북한에 의한 또 다른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와 관련해 “저의 공작원 동지인 김숙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고, 87년에 남조선 사람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는 얘기도 들었다”면서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현희 “KAL기 사건은 북한, 난 가짜 아니다”」<중앙일보> 2009.3.11)

안기부-국정원은 이때부터 다구치 야에코에 이어 요코다 메구미까지 활용할 심산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미 사망했다고 북측이 일본에 통보한 두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일본 내 반북 적대 여론을 키우려는 것이었다. 희망고문 뒤의 절망과 그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는 불문가지.

김현희가 다구치 야에코 유족들과 만난 지 한 달 뒤 김현희가 다구치 유족들의 안부를 묻는 편지가 <산케이신문>에 보내졌다. 유족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왜 하필 극우 매체에 보낼까? 이는 김현희의 ‘안부편지’가 안기부-국정원의 ‘공작 문건’임을 의미한다. 안기부-국정원은 김현희를 일본에 보내려 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일 양국 국민들을 상대로 하는 대북 심리전이니 김현희가 일본에 가야 그 효과가 높아진다.

한 달여 뒤에는 다구치 야에코의 아들이 5년 전 김현희에게 보내려던 편지가 김현희에게 전해진다. 2004년 건네려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수령을 거부했다는 편지. 일본 대사관 관계자가 4월 하순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김현희를 만나 전했다 한다. 김현희의 방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일 양국 공안세력이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김현희의 방일은 쉬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그가 일본에 가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김현희가 다시 NHK에 나와 “다구치가 아직 살아 있을 것”이라는 애드벌룬을 또 띄운다. 김현희는 2009년 11월 20일 방영된 NHK와의 인터뷰에서 “1986년 사망한 것으로 북한에서는 알려져 있으나 내가 한국에 입국했던 1987년까지도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떠벌렸다. 3월 11일 부산 기자회견에서 했던 이야기의 재탕이었다. 그때 했던 요코다 메구미(横田めぐみ) 씨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 했다. 그는 “북에서 함께 공작원 훈련을 했던 김숙희 공작원으로부터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메구미씨가) 연령도 비슷하고 얌전한 성격이어서 친하게 지냈다. 둘 다 동요를 좋아해 자주 함께 동요를 부르기도 했다’고 들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메구미’니 ‘숙희’니 하는 말은 2004년 12월 ‘리은혜 스토리’ 조작 3단계 공정의 대미를 장식한 <산케이신문> 기사의 연장이다. 앞글(15편)에서 한일 공안 세력이 ‘제2의 김현희’ ‘제2의 리은혜’를 만들려 했다고 지적했다.

김현희의 NHK 인터뷰 나흘 뒤인 2009년 11월 24일에는 김현희가 다구치 야에코 씨의 장남에게 또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현희를 일본에 보내기 위한 선무공작이 활발하다! 한일 공안 세력은 아예 김현희와 이즈카를 ‘대북 적대의 기치를 함께 든 모자(母子)’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24일 교도(共同)통신에 따르면 김 씨는 일본어로 쓴 6장의 편지에서 지난 3월 부산에서 이즈카 씨를  만났던 것과 관련, “면회가 실현돼서 기뻤다. 당시의 감동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 “언젠가 다시 만나서 어머니(다구치씨)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만약 내가 고이치로 씨의 옆에 있다면 어머니로부터 배운 샤부샤부, 춘권, 크로켓 등을 만들어 주고 싶다” ... 이즈카 씨는 지난 7월 김 씨에게 편지를 보내 “(3월의) 면회를 생각할 때마다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 “한국의 어머니, 그럼 다음에 또”라고 썼다고 통신은 전했다.](<연합뉴스> 2009.11.24)

이런 온갖 가식과 위선, 협잡에도 불구하고 김현희의 방일은 8개월 뒤인 2010년 7월 20일에야 이뤄진다. 사전에 치밀한 각본이 만들어졌다.

[김 씨는 방일 첫날에는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준 다구치 야에코(북한 이름 이은혜[?]) 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33) 씨와 친오빠 이즈카 시게오(72) 씨를 만나고 이튿날인 21일에는 일본인 납북피해자의 상징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는 요코다 메구미 씨의 부모를 만난다. ... 김 씨는 방일 중 나카이 히로시(中井洽) 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대책본부장과도 면담할 예정... 일본 언론은 김 씨가 이번 방일에서 요코다 씨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내놓을지에 주목...](「김현희 첫 방일... 삼엄.파격.흥분」<동아일보> 2010.7.21)

( 7월 20일 오전 일본 정부 특별기편으로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한 김현희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일본 카메라 기자들이 근접 촬영하고 있다.)

다구치 야에코와 요코다 메구미 유족들을 만나는 것은 보나마나 이들의 생존설을 퍼뜨리기 위함이었다. 이들의 생존설을 퍼뜨려 이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작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생존설을 믿을 만한 정보는 없었다.

[일본 신문들은 21일자에 일제히 “새 정보는 없었다”는 제목으로 김 씨와 다구치씨 가족의 만남을 보도 ... 다구치 씨의 오빠 이시즈카 시게오(72)씨와 장남 아이쓰카 고이치로(33)씨는 “김씨는 ‘다구치 씨가 반드시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김씨와) 신뢰관계를 쌓은 것은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다구치 씨 가족과의 만남이 새로운 정보 없이 끝나면서 김 씨의 일본 방문이 이벤트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사히TV나 후지TV 등 민방은 이날 오전 보도프로그램에서 “김 씨의 일본 방문은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김현희 만난 납북 피해자 가족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조선일보> 2010.7.21)

김현희가 다구치 야에코 씨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 씨에게 “어머니는 반드시 돌아옵니다”라는 글을 적어준 것은 놀라운 연출이었다.

( 김현희가 다구치 야에코의 아들에게 써 준 메모)

이때 한국 납북자단체 대표 최 모 씨도 일본인 납북자의 생존설을 주장했다. 이 역시 한일 양국 공안 세력의 협잡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 씨는 2010년 7월 21일 <연합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구치 야에코(54) 씨가 살아있고 요코타(橫田) 메구미 씨는 숨졌다는 정보를 ‘믿을 만한 북한 정보원’으로부터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다구치 씨가 평양 만경대구역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 정보를 일본 정부 관계자에게 전달했다고도 했다.

김현희와 최 모 씨가 퍼뜨리는 ‘다구치 생존설’에 나카이 히로시 일본 납치문제담당상도 즉각 화답했다. 나카이는 김현희를 만난 다음날인 7월 22일 오전 국가공안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구치 씨가) 6.7년 전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며 “이런 정보를 가족들에게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본 정부가 파악한 다구치씨의 생존 정보는 한국 납북자단체 대표 최 모 씨의 정보와는 별도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2010.7.22).  

이쯤 되면 당연히 ‘살아 있는 사람을 데려오라’는 요구가 나오게 돼 있다. 다구치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는 “(최 씨가 말한 ‘지금도 살아있다’는 정보를) 일본 정부가 확인하고, 귀환을 요구하기 위해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고, 곧바로 일본 관방장관(센고쿠 요시토, 仙谷由人)가 화답했다. 그는 7월 23일 기자회견에서 김현희 씨의 방일에 대해 “납치 피해자 가족이나 관계자에게 용기를 준 것은 의미가 크다”며 “인권이나 국가 주권 침해에 대한 분노와 관심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연합뉴스> 2010.7.23)

이후 2020년에 이르기까지 10년 내내 일본은 북측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일본인 납치자들의 생존 확인 및 생존자 귀환을 위한 공세로 일관된다. 남한과 미국이 일본의 이런 대북 공세를 측면 지원했음은 물론이다. 2013년에는 이병기 주일대사(박근혜 정권 국가정보원장)가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을 면담하고, 2014년에는 다구치 야에코의 오빠를 유엔 인권위원회 단상에 세워 북한을 공박했다.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은 이후 미국 조야를 찾아다니며 납북자 귀환을 촉구했고, 급기야 일본에서는 ‘북한의 일본인 납북자 납치’를 다룬 영화 ‘메구미에 대한 맹세’를 제작 중이다. 1990년 안기부가 제작한 김현희 영화 ‘마유미’의 속편 쯤 되겠다.

( 2014년 7월 27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주미대사관에 한.미.일 3국 정상이 사이좋게 앉아 포즈를 취했다.)

(17편으로 계속)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5084&table=byple_news 









    




모바일 기기에서도 댓글 작성이 가능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현재 아이폰 기기까지 테스트 완료하였습니다.)


닉네임  비밀번호  186431  (스팸등록방지:빨간숫자만입력)

13751 [집콕잡담-1] 도올 김용옥과 설민...
12079 기후와 생명 - 메뚜기의 폭발적 발...
10169 [오영수 시] 부활과 윤회
10158 도널드 트럼프의 위험한 거짓말
7620 [기고] 한 해외동포의 평양 일기 1
7373 유럽 국가들, 영국 변종 코로나 확...
6242 [데스크에서] 조선일보·서울경제 ...
5276 추미애 장관이 인간의 도덕성에 관...
3216 ‘기업보호법’으로 노동존중사회...
3127 “그때는 그랬지?”
                                                 
[여인철의 음악카페] 들녘이 황금...
                                                 
[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홍콩...
                                                 
철학 없이 살아도 된다고요?
                                                 
김사복, 5.18 진상을 세상에 알리...
                                                 
왜 당신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시나...
                                                 
공기업 적자, 정치인-자본-관료의 ...
                                                 
미 유엔 대사 “북한은 세계에 심...
                                                 
도널드 트럼프의 위험한 거짓말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는 여섯 번...
                                                 
청소노동자의 외침 “차별받아도 ...
                                                 
포스코, ‘리튬 뻥튀기’로 ‘사면...
                                                 
윤석열 사퇴, 국민의힘이 손해인 ...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백기완 선생의 추억
                                                 
거짓말 연습, 공갈 검사
                                                 
[이정랑의 고전소통] 人物論 진짜 ...
                                                 
전두환 비서출신 이용섭 사건 재정...
                                                 
“귀환” KAL858기 사건 33주기 추...
                                                 
안병하 공직자 바로 세우기 운동본...
                                                 
[오영수 시] 중국에 고함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여의도파라곤 930호 (주)민진미디어 | 발행.편집인:신상철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마기선 | 등록번호: 서울 아01961
등록일 2012.02.02 | 발행일: 2012.02.15 | 이메일: poweroftruth@daum.net | 사업자번호: 107-87-60009 | 대표전화: 02-761-1678 | 팩스: 02-6442-0472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방침 | 광고/사업제휴문의 | 기사제보 | 칼럼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