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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27
강진욱  | 등록:2021-03-17 13:53:18 | 최종:2021-03-17 14:39: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27
- 11월 26일 방송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27. 김현희 송환 : 한.미.일의 협잡

앞글(25편)에서 전두환네 안기부 등 KAL 858편 공작 조직이 블랙박스 등 잔해 수색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면서 ‘블랙박스 대용’인 김현희를 데려오려는데 전력투구했다고 지적했다. 김현희라는 이름이 밝혀지기도 전에, 마유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여인을 가리켜 ‘살아 있는 블랙박스’라고 부른 이유다. 김현희 송환은, 한홍구 교수가 ‘별 거 아닌 것’으로 평가절하했던 그 ‘무지개 공작’의 핵심 사업이었다. 그 실행 과정에서 외무부는 사실상 안기부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이는 당시 김현희 신병 인수 협상을 위해 바레인에 갔던 박수길(朴銖吉) 전 차관보가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나 나눈 대화에서 ... “당시 외무부의 차관급 인사가 안기부에 파견을 나가 있었다. 역시 안기부로 파견된 외무부 직원 가운데 정 모 국장 같은 경우는 그 당시 안기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KAL 관련 정보 등을 바레인 현지에 나가 있는 나와 안기부 수사팀에게 전달해 주는 연락관 역할을 했다. 안기부와 공조가 상당히 잘 이뤄졌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선 전에 김현희 압송”...비밀 외교문서로 본 ‘무지개 공작’」<뉴스타파> 2019.3.31
https://newstapa.org/article/8gQVz
)

( <뉴스타파> 화면 캡쳐)

사건 발생 사흘만인 1987년 12월 2일,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기도 전에 작성한 ‘무지개공작’ 계획에 따라 ‘대북괴 규탄 외교전’을 전개하고 마유미를 국내로 송환하기 위한 뒷공작에 착수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인 여권을 소지한 마유미를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을까? 바레인 현지 공항에서 가짜여권 소지 혐의로 붙들렸다면 일단 일본으로 보내고, 그 뒤 한국으로 다시 데려오든 말든 했어야 한다. KAL 858편 여객기가 어디서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마유미를 북한 공작원이라고 단정해 놓고 그녀를 한국으로 데려온 것은 한.미.일 3국 간 긴밀한 사전.사후 공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선 일본이 마유미를 데려갈 권리를 먼저 포기했다. 2019년 3월 31일 공개된 1987∼88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사건 발생 직후에는 일본 정부도 그녀를 데려가겠다는 입장이었다. 사건 발생 사흘째인 1987년 12월 2일 이규호(李奎浩) 주일한국대사가 외교부에 보낸 전문을 보면, 주일대사관 공사 박련은 도쿄에서 후지타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과 만나 “아국(한국)은 사고 비행기의 소속국으로서 (마유미의) 신병 인도에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이에 후지타 국장은 “(마유미 등이) 일본의 가짜여권을 갖고 있음에 비춰 (용의자) 2명의 국적 등 신원 확인 문제를 일본이 우선 책임을 가지고 신속히 해결해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박련 공사는 전문을 통해 “한일 간에 신병인도 문제를 놓고 경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외교문서] ‘대선前 김현희 데려와라’…87년 KAL기 사건 막전막후」<연합뉴스> 2019.3.31).

여러 정황상 마유미를 일본으로 데려가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처음부터 여권이 위조됐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그녀의 일본 국적을 부인했다.

[김항경(金恒經) 외무부 대변인은 4일 김정기(金正騎) 바레인 대사관 서기관이 3일 상오 9시 바레인 내무부 범죄수사본부를 방문, 음독 남자의 지문과 여권 사본을 입수, 특별외교행낭 편으로 공수해 4일 하오 중 한국에 도착할 것이라며 “이들이 조총련이나 북한과 연계돼 있을 경우 우리 측 조사에 의해 이들의 신원 전모가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문.여권 사본 오늘 서울에 - 북괴 연계 밝힐 단서 될지도”」<경향신문> 1987.12.4)

일본 여권을 갖고 있는 여인을 “신원 전모를 밝힐” 어떤 자료 등이 준비돼 있었다는 말 아닌가. 그저 비행기가 실종됐을 뿐인 상황에서 마유미를 북한 공작원이라고 단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사전에 어떤 시나리오가 준비돼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마유미를 일본 국적을 부인하면서 그녀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과정에는 미국도 개입돼 있었다.

[김 대변인은 또 “이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미국 일본 등 우방국과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다”며 “4일 상오 제임스 릴리 주한미대사는 최광수 외무장관을 방문하고 미국이 이번 사건의 정보 수집 등을 위해 우리와 국교가 없는 유고슬라비아 등에 대해 적극 나서 협력해 주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1987.12.4)

앞글에서도 우리는 KAL 858편 여객기가 버마-태국 접경 산악인 칸차나부리에 추락했다는 거짓 정보를 제공한 인물이 트레버 에번스(Trevor Evans) 주한미국대사관 2등서기관이었다는 사실(22편), 미 CIA 출신인 제임스 릴리(James Lilley) 주한미국대사는 버마 안다만 해역에서 무슨 부유물이 발견됐다는 엉터리 정보를 한국 외무부에 전달해 대한항공 직원들이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헛고생을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24편).

( 제임스 릴리 이임 기자회견 1990.1.3 연합뉴스)

그러면서 미국 측의 ‘부유물 정보’는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을 버마로 보내 정체불명의 구명보트를 갖고 들어오게 만드는 공작의 일환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미국이 일본에서 여권을 발급받은 마유미를 한국으로 보내는 공작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런 미국의 적극적인 방조가 아니었다면 전두환네 외교부가 마유미의 일본 국적을 부정하면서 그녀의 한국 송환을 추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이 일본 국적 소지자라면 신변 안전 및 사후 재판 등에도 대비, 마유미가 자신의 일본 국적을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하고 “지금까지 조사 결과 이들의 국적이 일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만큼 항공기 등록국이자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신병을 인수하는 것이 국제관례상 정당한 것으로 본다”고 ... 정부는 이에 앞서 5일 정해융(鄭海瀜) 주바레인대사를 통해 마유미의 신병을 우리 측에 인도해 줄 것을 공식 요청 ... 최광수(崔侊洙) 외무장관은 ... “신병 인수 문제를 놓고 관할권 경합이 있을 경우 한-일-바레인 3국 간의 외교 교섭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유미 인수 교섭」<매일경제신문> 1987.12.7)

‘마유미’가 자신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밝히지 않으면 일본 국적자가 아닌가? 이런 가공할 궤변에 기가 죽었는지 김현희의 신병 인수권을 갖고 있는 일본이 갑자기 태도를 누그러뜨린다. 주일한국대사관 관계자가 일본 외무성을 다시 방문, “마유미에 대한 수사관할권 문제에 있어 한국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면서 “관할권을 가지고 다툼으로써 진상 규명이 늦어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짐짓 엄포를 놓자, 일본 측은 “한국의 관할권 행사 근거보다 (일본의 근거가) 훨씬 약하다”면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외교문서]“ 대선前 김현희 데려와라”…87년 KAL기 사건 막전막후」<연합뉴스> 2019.3.31).

( 엉뚱한 곳에서 KAL 858편 여객기의 잔해를 수색한다며 시간을 허비하면서 뒤로는 미유미(김현희)를 데려오기 위한 공작을 동시에 벌였음을 알 수 있다. 1987.12.5 경향신문)

일본은 마유미의 신병 인수권을 한국에 양보한데 이어 12월 7일 바레인 정부에 ‘바레인이 김현희를 한국 정부에 인도하기로 결정하면, 최대한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바레인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미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KAL 858편 여객기 가 실종됐는지 아니면 폭파됐는지도 알 수 없는데다, 폭파됐다 하더라도 마유미가 범인이라는 물증이 전혀 없었다.

한국 외무부 문서들에 따르면, 1987년 12월 8일 로널드 포쳐 미국 중앙정보국 바레인 거점장은 마유미 송환을 위해 바레인에 파견된 박수길 외무부 1차관보에게, ‘무바라크 칼리파 당시 바레인 외무장관이 마유미를 한국에 인도할 수 없다고 통고할지 모른다’고 귀띔했다. 이유는 마유미가 깨물었다는 “독극물이 반드시 북괴 제조라고 단언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할 수 없음. 마유미가 KAL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음”이었다.

또 이안 핸더슨 당시 바레인 범죄수사국 국장(영국 국적자. 바레인의 주요 기관 책임자는 모두 영국 국적자였다)은 다음날로 예정됐던 “외무장관 면담 시 한국대사관 직원이 바레인 정부의 동의 없이 마유미 등을 방문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는 것이 좋겠고, “한국 측은 무엇보다 마유미의 신원을 확인하든지 동인이[이 사람이] KAL 사건과 직접 연관되어 있음을 증명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KAL858기 사건 재조사 관련 자료 DA0799654, 25-26쪽 / 박강성주 글 「김현희 대선 전 압송과 미국 -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6)」<통일뉴스> 2017.1.2).

바레인 정부가 김현희의 한국 인도에 대해 미적거리자 미국이 나섰다. 김경원(金瓊元) 당시 주미한국대사는 “12.10 국무부 대테러대사실에 의하면 미 측은 … 동경협약과 몬트리올협약의 관계규정에 따라 금번 KAL기 사건의 용의자에 대해 한국이 바레인 정부에게 범죄인 인도를 요청할 권리가 있고 바레인 정부는 이를 존중할 의무가 있음을 주바레인 미국대사관을 통해 금주 초 바레인 측에 설명”했다고 본국에 전해왔다. 바레인 측은 동경협약이나 몬트리올협약 등에 대해 모르고 있다 미국 측의 설명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도 했다(‘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KAL858기 사건 재조사 관련 자료 DA0799654, 52쪽 / 박강성주 글 「김현희 대선 전 압송과 미국 -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6)」<통일뉴스> 2017.1.2).

마유미의 한국 송환은 이처럼 레이건 정권과 나카소네 정권 및 전두환 정권이 긴밀히 협잡한 결과였다. 정상적인 국가 간 외교로는 그녀를 한국에 데려올 수 없었다는 사실은 한국 정부 관계자도 인정한다. 마유미가 한국에 온 다음날인 1987년 12월 16일 외무부의 이원형(李元炯) 서남아과장은 “범인 인도가 아닌 용의자 인도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번 사건은 국제법적 뒷받침도 있었지만 정치외교적인 큰 사건이었다”고 말했다(<조선일보> 1987.12.16).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 김현희의 송환에 KAL 회장과 사장인 조중훈.조중건 씨의 동생인 조중식(趙重植) 한일개발 사장을 활용하려 한 정황이다.

[12월 12일 외무부의 “초긴급전보” ... “한일개발의 조중식 사장이 현재 젯다[Jeddah, 사우디 제2의 도시]에 체류 … 사우디의 와리드(또는 와지드) 왕자와 잘 아는 처지여서 그를 통하여 바레인에 권고할 예정임. 또한 조 사장은 바레인 수상과도 친교가 있으므로 동 수상에 대해서도 측면 지원 예정임”(73쪽).].(‘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KAL858기 사건 재조사 관련 자료 DA0799654, 52쪽/ 박강성주 글 「김현희 대선 전 압송과 미국 - KAL858사건 과거사위원회 기록 열람(6)」<통일뉴스> 2017.1.2)

KAL 858 공작에는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가 개입한 것이 분명하고, 어디서 사라졌는지 모를 이 비행기의 잔해 수색을 안기부 등이 조직적으로 방해할 때 조중훈 KAL 회장과 조중건 KAL 사장이 그 일익을 담당해야 했다. 조중훈 회장은 버마-태국 접경 산악으로 가 열흘을 헤매다 돌아왔고, 조중건 사장은 미국이 제공한 부유물 발견 소식을 듣고 버마로 갔다 출처 불명의 구명보트를 갖고 돌아와야 했다. 이 모두가 미국의 농간이었음도 앞에서 확인했다. 그런데 김현희 송환 공작에는 또 이들 형제의 동생이 개입했다?

위 기록만으로는 조중식 한일개발 사장이 김현희 송환과 관련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조 사장은 아무 일도 안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일개발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한 미군 관련 시설 공사를 맡은 이력이 있고, 김현희의 한국 송환 공작에 미국이 개입돼 있으며 이미 미국은 KAL의 조중훈 회장과 조중건 사장을 활용해 KAL 858편 여객기의 잔해 수색을 방해한 정황이 드러난 사실에 비춰보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모종의 공작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KAL은 탄생 과정에서부터 미 CIA 및 한국의 KCIA(중앙정보부.안기부) 등이 관여하는 어떤 권력의 카르텔에 종속돼 있었다는 미국 예일대 사회학과의 데이비드 피어슨(David Pearson) 박사의 지적을 또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19.26편 글).

그러면 바레인 정부 또는 바레인 정부 내 어떤 조직은 KAL 858 공작 및 이 공작을 자행한 카르텔과 무관했을까? 만약 KAL 858 사건이 터지고 김현희 일행이 우연히 바레인에 들른 것이라면, 그래서 한.미.일 3국이 바레인 정부와 이때 처음 관계를 맺게 된 것이라면 바레인 측은 이 공작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KAL 858 사건이 전두환네가 떠들듯 정말로 북한의 소행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바레인은 이미 저들의 공작 시나리오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노다 미네오 (野田峰雄) 씨의 지적.

( 미네오 책『나는 검증한다 - 김현희의 파괴공작』382 쪽)

( 미네오 책『나는 검증한다 - 김현희의 파괴공작』382 쪽)

이렇게 되려면 전두환 정권을 바레인과 접.속.하는 즉 관계를 맺고 증진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역시 미국과 전두환 정권이 합작한 1차 버마 자작테러인 아웅 산 묘소 사건(1983.10.9) 직전에도 ‘마구잡이식 교류와 협력’으로 버마와의 접촉면을 늘린 전례가 있다.) 이를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라 한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의 영어식 표현으로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사실은 ‘개입’ 또는 ‘관여’라는 해석이 더 적절하다. 미국과 전두환 정권은 KAL 858 공작을 기획하면서 먼저 바레인을 ‘구워삶기’ 위한 작전을 짰을 것이다. 1984년 4월 정해융 대사가 부임한 직후 ‘한-바레인 무역 증진 및 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한 것이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또 ㈜대우가 4월 1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9개 아랍 및 국제은행단과 4천만 달러 규모의 운전자금차관공여협정을 체결한 것도 한-바레인 관계 증진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관계를 맺은 양국은 이듬해인 1985년 4월 24∼26일 서울에서 제1차 한-바레인 공동위원회 회의를 연다.

[지난해 4월 체결된 한-바레인 무역 증진 및 기술협력 협정에 따라 열리는 이번 위원회에는 한국 측에서는 외무부 윤억섭(尹億燮) 제2차관보와 정부 각 부처 대표 등 11명이, 바레인 측에서는 재무성 알 하마즈 차관보 등 10명이 각각 참석 ... 바레인은 아랍 지역의 금융 교통 및 통상 중심지로 22개 아랍 국가 중 비교적 친한적 태도를 보여왔으며 현재 1천여 명의 한국 근로자가 진출해 있다.] (<동아일보> 1985.4.23)

1976년 한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은 바레인은 36개 섬으로 이뤄진 중동 유일의 섬나라이자 아랍권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석유수출국이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는 하지만 1985년에 양국 공동위원회가 서울에서 열려 양측의 비중 있는 인사들이 회동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례적인 것은 이 뿐이 아니었다. 이 위원회가 개최되기 두 달 전인 1985년 2월 초 한국산 포도주가 바레인에 수출되는 ‘이변’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모를까 당시 국산 포도주가 어떻게 중동 시장에 어떻게 진출할 수 있었을까?

[한국산 포도주가 중동에 첫선을 보였다. 바레인의 한국무역관에 따르면 국산 포도주 마주앙 50상자(6백 병)가 바레인 주류대리점 걸프셀러사에 의해 지난달 시험주문돼 시판에 들어갔다.] (<매일경제신문> 1985.2.7)

또 이 해 2월 12일 치러진 한국 총선과 2.18 개각에 대해 바레인 현지 언론이 상세히 보도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마나마=연합】바레인 언론들은 18일 한국 정부의 대폭적인 개각 내용을 주요 뉴스로 보도 ... <걸프통신>은 이번 개각이 2.12 총선 결과에 다른 조치라고 말하고 대폭 개각에도 불구하고 경제부처 장관들이 유임된 점을 지적, 한국 정부가 현 경제정책을 지속시켜 나갈 방침으로 보인아고 논평했다.] (<동아일보> 1985.2.19)

중동의 쬐그만 섬나라가 한국 정치판에 무슨 관심이 있었을까. 전두환 정권은 이렇게 억지춘향으로 바레인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더니 이 해 말에는 드디어 정상외교관계로의 격상을 시도한다. 1985년 11월 24일 외무장관 이원경(李源京)이 바레인 왕궁을 방문, 이 나라 국왕의 한국 방문을 초청하는 전두환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것이다.

물론 이즈음 전두환 정권은 바레인 외에도 중동 각국들과의 관계를 증진하고 있었다. 한 해 전인 1984년 2월 말 코모로회교연방공화국의 외무협력 및 대외통상장관(사이드 카페)이 이원경 외무장관 초청으로 4박5일(2.27∼3.3) 간 한국을 공식 방문했고(아프리카 대륙과 마다가스카르 사이의 점처럼 떠 있는 섬나라 코모로공화국의 현재 인구는 88만 명), 한 달여 뒤인 그해 4월 21일에는 카타르의 석유.재무장관이 방한, 이 장관과 경제기술 및 무역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또 이원경을 포함한 장관급 인사들이 비동맹외교 전선에 투입돼 제3세계 30여개 나라에 특사로 파견된 일도 있다. 따라서 바레인 정부와의 관계 증진도 이런 움직임의 하나로 볼 수도 있지만, 머잖아 터질 KAL 858 사건에서 바레인이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달리 볼 여지가 있다.   

실제로 바레인 국왕의 방한 초청은 관계 증진 노력의 상징적 조처였을 뿐이다. 바레인 측에서 한국에 누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지금까지 바레인 국왕이 한국에 온 적이 없다. 또 이 장관이 바레인 국왕에게 방한 초청장을 전달한 뒤, 10일 일정의 중동 방문을 결산하는 기자회견을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가진 것도 바레인에 대한 한국민들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한 제스처였다. 이런 식으로 전두환 정권은 바레인과 점점 두터운 친분을 쌓았고, 그런 노력 덕분에 1986년에는 바레인 상점에 김치가 진열되기에 이른다.

( 1986.1.15. 매일경제신문 / 사진 설명 : “바레인 상점 진열대의 김치 : 바레인의 한 슈퍼마켓에서 시판되는 수출된 김치. 일본인과 태국.필리핀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마나마.연합】)

또 이 해 11월 16∼18일에는 2차 한-바레인 공동위원회 회의가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열렸고 두 달 뒤인 1987년 1월 27일에는 양국이 문화협정에 조인한다. 우호 관계 강화 및 문화 예술 교육 과학기술 관계 증진 장려를 내용으로 한 이 협정에 서명한 이는 정해융 현지 대사와 알리 파크로 바레인 문교장관이었다. 1984년 4월 정 대사가 마나마에서 ‘교역 증진 및 경제.기술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또 바레인과 ‘문화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이처럼 전두환 정권은 바레인에 한국산 포도주를 들이밀고 김치를 진열하는 식으로, 또 공동위원회다 무슨 협정이다 하며 접촉면을 ‘억지로’ 늘린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한국과 바레인의 관계가 날로 증진되는 상황에서, 김현희네가 마지막 공작 거점으로 바레인을 택한 것은 그들이 남한 공작 조직의 일원이기 때문이며 김현희를 한국으로 데려가는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한국현대사 전문가’ 한홍구 교수는 바레인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 왜 바레인 정부가 일본 국적자인 김현희를 한국으로 보냈는지에 대해 어떤 의심도 품지 않는다.  
 
[전두환 정권이 투표 전에 (김현희를) 데리고 올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에요 ... 그러나 투표 전날 온 거는 아무래도 ... 바레인 정부에서 정한 거 같고 .. 또 들리는 얘기로는 엄청난 거액을 주지 않았냐 했는데... 바레인이 산유국이거든요 ... 엄청나게 잘 사는 나라라서 ... 돈에 팔려갈 나라는 아니었었고 ... 국정원 과거사위에서도 .. 조사를 해 보니까 .. 돈이 오간 흔적은 없어요. 그런데 정부에서는 굉장히 노력을 했고 ... 선거 전에 데려오려는 노력을 ... 전두환.노태우에게는 행운이 따른 거죠 ... ]

바레인이 산유 부국이면 자주적으로 국가대사를 결정할 수 있나. 1880년 영국 보호령이 됐다 1971년에야 독립한 나라. 아직도 주요 직책은 영국 국적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 미군과 영국군이 똬리를 틀고 있는 중동의 ‘미니 스테이트’. 면적은 서울 면적(605.25㎢)보다 조금 큰 760㎢. 제주도 면적(1,849.02㎢)의 절반도 안 된다. 인구는 160여만 명(경기도 인구가 약 134만 명, 강원도 인구가 약 155만 명이다). 미.일.한 3국이 이런 나라 하나쯤 어찌 해보는 게 일이었겠나.

(28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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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인류 사회의 과제
                                                 
[신상철TV] 정치현안이슈
                                                 
청소노동자의 외침 “차별받아도 ...
                                                 
정당지지도, 민주당·국민의힘 각 ...
                                                 
홍준표 복당이 불러온 국민의힘 내...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부동산 투기대책에 등장한 ‘친일...
                                                 
돈으로 김어준을 쫓아내고 싶다고?
                                                 
[이정랑의 고전소통] 금선탈각(金...
                                                 
전두환 비서출신 이용섭 사건 재정...
                                                 
“귀환” KAL858기 사건 33주기 추...
                                                 
안병하 공직자 바로 세우기 운동본...
                                                 
[오영수 시] 중국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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